052 - 제가 키우는 고양이의 통신구랍니다. -

급한 대로 먼저 영지로 출발시킨 빌리는 아직도 오고 있겠으나, 정작 이런저런 일처리로 바빴던 나는 트리토니아 영지에 있었다.
워프 게이트, 아주 편하고 좋다.
투사가 육체를 다룬다면 법사는 자연에 퍼진 마나를 다루는 이들.
공격 마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소설처럼 운석을 떨어뜨리거나, 수천을 한 방에 소멸시키는 마법은 없었다.
그 녀석 정도 되면 수백은 가능하겠지만... 에이, 아무리 녀석이라도 수천까지는?
마족들을 대상으로 전투를 하다 보니, 인간 기준으로는 좀 헷갈렸다.
하긴, 보유한 마나에 따라 파괴력이 달라지는 메커니즘이라 드래곤같은 이레귤러들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마법이란, 현대로 생각하면 엔지니어 겸 기계 그 자체였다.
과학 문물을 누리지만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 원리를 모르듯, 이들도 우리가 모르는 이적을 행할 수 있었다.
워프 게이트...
지정된 좌표에 고유의 마력석을 박아 마나를 고정시키고, 양쪽의 마나를 동조시켜 치환시키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뭐, 대충 ‘거참, 편리하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는 소리였다.
한 명의 인원이 워프하기 위해 엄청난 마나가 소모돼서 대규모 워프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게 어딘가?
현대의 과학자들이 알면, 입에 거품을 물 기술이었다.
그 외에도 전기가 아닌 마나를 이용한 전등 등... 현대 과학이 해내는 대부분의 일들을 마법으로 대체해서 처리하고 있었다.
마력석을 이용한 기구를 발명하거나, 본인의 마나를 이용해 행하는 자.
Ai를 탑재한 기계라고 할까?
덕분에 바로 영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별일 없었지?”
“......네.”
뭐야? 어째 별일이 있다는 표정인데?
평소에도 피곤에 쩔어서 표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궤(軌)를 달리했다.
세상 다 산듯한 허망한 표정으로 반박자씩 반응이 늦는다.
“무슨 일인데?”
“...개인적인 일입니다. ...전 그럼 이만.”
평소에는 친구처럼 농담도 던지고 그러던 친구가 이러니 당황스러웠다.
“리비안느, 바루스 녀석 왜 저러지? 무슨 일이야?”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리비안느에게 질문을 던졌다.
“흐으으음. 글쎄요?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딱 알고 있지만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다. 그러니까 빨리 추궁해서 내 입을 열게 해라. 말하고 싶어 죽겠으니까.
라는 표정이었다.
”영지 일은 아니지?“
”네, 아니랍니다. 개인적인 일은 맞아요. 궁금하세요? 호호.“
-왜 안 물어보는데. 빨리 물어봐 줘.
두 눈 초롱초롱한 리비안느의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물으면 말 해줄거야?“
”아... 개인적인 일이라 좀 그렇긴 한데...“
저토록 기대를 하고 있다면 기대에 부응해 줄 수밖에 없잖냐!
”해줘~ 해줭~ 리비안느님 얘기 해주세요~ 네넹?“
”히히, 귀여우셔라. 넵! 영주님이 원하신다면. 어떻게 된 거냐면요...“
그리고 리비안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경악에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
일의 발단은 내가 자리를 비운 그 시점으로 돌아 간다.
”소개팅이요?“
”네! 네! 영주님이 약속하신 소개팅! 미리 땡겨서 받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사교계에 나간 지 오래돼서 지인들이 그리 많지는 않답니다. 그래도 한번 알아보도록 하지요.“
”아뇨! 제가 말하는 것은 귀족 영애가 아니라 황녀님의 시녀분들을 말하는 겁니다!“
”제 시녀들이요...?“
”넵! 이번에 정식 귀족으로 임명을 받기는 했지만, 저도 어차피 서자 출신이고, 그녀들도 비슷한 사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정도면 그녀들에게 꿀리는 신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돠!“
바루스의 말에 어폐(語弊)는 없었다.
황녀의 신분으로 행차한 상황이라, 안나뿐만 아니라 여러 시녀가 같이 오기는 했다.
하나, 하나가 황실에 들일 정도의 미모의 재원들.
전장에서 구르냐 노총각이 되어버린 바루스에게는 살짝 아까운 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정식 귀족이 된 바루스와 그렇지 못한 시녀의 차이를 생각하면 또 괜찮을 거 같기도 했다.
”그래서 누구를 소개해 달란 말이죠?“
”다요!“
”네? 그게 무슨...?“
‘이 자식이 미쳤나. 지가 용사님도 아니고 감히 황녀를 희롱해?’
순간 괘씸한 마음이 들었으나, 용사와 관계되지 않은 일에는 매사 신중하고 공명정대(公明正大)한 황녀였다.
”지금 말에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건 알고 있죠?“
”아! 죄,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바루스는 본인의 입장을 모르지 않고 있었다.
비록 귀족에 임명되었으나, 서출이라는 태생의 한계.
그리고 전쟁터에서 쌓아 올린 전공과 함께 먹어버린 자신의 나이.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결혼 상대로 결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실에 드는 시녀만 되어도 황실공인 뛰어난 재색과 미색을 겸비한 인재다.
미모는 당연히 기본 베이스로 탑재되어 있고, 그중에 고르고 고른 최상위의 재원들만이 황녀의 시녀가 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녀들의 눈높이는 매우 높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이 아니면 언감생심(焉敢生心), 이런 기회는 오지 않으리라.
솔직히 누구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도 그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두 눈 질끈 감고 그냥 질렀다.
”솔직히 저는 괜찮지만, 그분들이 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러니 제발 될 때까지 부탁을 좀...“
황녀도 바루스의 심정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죠. 단, 후회는 본인의 몫입니다.“
”후회라뇨! ‘감사, 압도적 감사.’입니다.“
전장에서 그는 보급의 바루스라고 불린 인물이었다.
식량이 떨어질 즈음이면 여지없이 그의 보급품이 도착했다.
그는 진정한 후방 부대의 지배자였다.
하지만 소개팅 관련해서는 그냥 ‘몽춍이’라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감히 같은 무리의 여인네들 집단에서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려고 하다니.
여심을 조금만 알았어도 미친놈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판단이었다.
차라리 딱 한 명을 꼬집으며,
첫눈에 반했다는 둥,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는 둥...
거짓부렁이라도 지껄였다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을 텐데...
본인이 판 무덤에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황녀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성녀쪽에도 정보를 넘긴 것을 다 알고 있답니다. 괘씸죄예요.’
그렇게 시녀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당연히 결과는 좋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성녀의 수행인들까지 만나기로 했다는 소식이 돌며, 경멸의 눈초리를 두 배로 받아야 했다.
***
”저기 공연 좋아하세요?“
”그 공연 봤답니다.“
”아직 무슨 공연인지 말 안 했는데요?“
”네, 근데 봤답니다.“
...
”혹시 다음에 시간 되시면, 술이나 한 잔 하시렵니까?“
”그날 바빠요.“
”언제인지 얘기 안 했는데...“
...
”통신구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거 어쩌죠? 제가 개인 통신구가 없어서요.“
”황녀의 시녀들은 개인 통신구가 기본 지급품이 아니던가요?“
보급을 담당했던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 분실했답니다.“
-뚜뚜.
”네! 황녀님. 그건 가방 옆에 지퍼를 여시면 아마 있을 거에요. 찾으셨어요? 다행이네요. 네, 들어가세요.“
”방금 그건...?“
”제가 키우는 고양이의 통신구랍니다.“
***
성녀쪽이라고 상황이 다를 건 없었다.
결국 수많은 모멸과 멸시의 시간이 지나 지금의 바루스가 형성되었다.
”푸하하하하. 꼴 좋다. 아주 통쾌해!“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태였답니다.“
”내가 직접 봤어야 했는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자리를 비우다니. 이런 멍청한!“
”그래도 ‘멍청한!’이란 표현은 바루스 경에게 양보하세요.“
”크크큭. 그러게. 이제 함부로 멍청하다는 표현은 쓰지 말아야겠어!“
”어후, 피곤하다. 그럼 난 좀 쉬러 가볼게.“
”네~ 푹 쉬세요.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르시고요.“
”어, 고마워.“
”참, 바루스님이 내일 하루 휴가계를 내셨답니다. 본인이 결재하셔서 보고를 깜박하신 것 같네요.“
”그래? 그럼 놀리는 것은 모레로 미뤄둬야 하는 건가? 푸흐흐흐.“
그리고 다음 날.
”영주님! 큰일 났습니다! 바,바...바루스 경이!“
”어? 뭔데? 뭔데?“
...
”어? 이왜진?“
소개팅이라는 나비의 날갯짓이 거대한 폭풍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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