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 차를 준비하게, 그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올 터니. -

마력석 광산을 발견하면 국가에 귀속되지만, 발견자와 속한 영지에 지분을 준다.
그럼 황실에 알려도 문제 될게 있나? 싶겠지...
응, 있어.
어디까지나 발-견-하-면! 지분을 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발견을 한 것이 아니라, 발견의 실마리를 찾았을 뿐이었다.
황실에 보고가 들어가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본인들이 직접 찾기 위해 끼어들 것이다.
그럼 우린 뭐냐고?
뭐긴... 닭 쫓던 개가 되는 거지.
“하... 자네의 부관이야 [비밀 서약서]를 쓰던,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하던 하면 되는데 리비안느는...”
“히이이익!”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 당사자의 놀라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저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머, 저도 살인멸구 하시려고요?”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화사하게 웃으며 말하는 리비안느.
“그럴 리가 있나.”
리비안느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황실이 가만히 있지도 않겠지만, 가장 먼저 길길이 날뛸 사람이 바로 나 아닌가.
짧은 시간이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처럼 정을 준 존재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대놓고 스파이를 심겠다고 선언한 황제와 그것을 쿨하게 받아들인 나였다.
이제와 손바닥 뒤집듯 할 수는 없었다.
그런고로...
“우선 이놈부터 처리할까?”
“그럴까요?”
“히이이익!!”
“쫄지마, 쫄지마. 아프진 않을 거야...흐흐흐.”
“끄어어어어.”
...
놀라 쓰러진 녀석을 옆으로 던져 놓고, 다시 본래 대화로 돌아왔다.
“보고 안 하면... 안 될까?”
“네에! 안 된답니다~”
“끙... 알았어! 알았다고! 보고해야지 뭐. 이렇게 된 이상, 속도전이다! 바루스 모든 가용 인원을 바다로!”
“넵!
”그럼 전 잠시 통신할 일이 있어서 가 보겠답니다.“
”동작 그만! 귀족이 차를 마시고 있는데, 시녀가 그렇게 중간에 자리를 비우면 쓰나!“
”그럼 다른 시녀로 바꿔 드릴까요?“
”아니! 난 리비안느가 따라 주는 차가 아니면 마시질 않는 걸!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려! 바루스는 휴가인데 빨리 나가서 마저 쉬지 그래?“
-휙휙.
내 고개짓에 바루스가 반응했다.
”아! 네, 그럼 전 휴가 중이라...하하.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이 녀석은 제가 댈구 가서 처리하지요.“
바루스가 자신의 부관을 챙겨 자리를 뜨자 리비안느가 나와 정면으로 마주 섰다.
불만이 있다는 듯, 자신의 가는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볼을 부풀리며 말을 꺼낸다.
”영주님, 정말 이러실 거에요?“
”응, 내가 뭘? 스파이 일을 못하게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스파이 일은 남는 시간에 몰래 하는 거고! 내 시녀 일이 먼저 아냐?“
”차는 저쪽에서 마셨고, 여기서는 아직 내오지도 않았으니 드리는 말씀이잖아욧! 참고로 여기가 방금 나간 바루스 경의 집무실인 건 알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험험. 그랬나? 아무튼 아까 차를 마시다 달려왔으니, 빨리 가서 마저 마셔야지. 지금 나보고 다 식은 차를 마시라는 거야!?“
”힝~ 진짜 너무하셔요!“
”나야말로 진짜 궁금하다. 대체 황실에서 뭘 약속했길래, 리비안느가 이렇게 충실하게 보고를 하는 거야?“
”...그, 그건 비밀이랍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
”행여라도 황실을 압박해서 알아내실 생각이시라면, 저 진짜 화낼 거예요.“
음... 화내는 모습도 예쁠 거 같아서 좀 궁금하긴 한데?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난리 나겠지?
”어? 리비안느가 화내는 건 좀 싫은데... 알았어. 그건 그냥 궁금증으로 남겨 두면 되잖아.“
역설적이지만, 화내는 모습을 절대 보고 싶지 않기도 하고 말이야...
”정답이랍니다. 히히.“
”하여튼 내가 차 한 잔 할 시간 정도 늦는다고, 그 사이에 광산이 발견되는 것도 아니니 그냥 가자고~“
”칫. 알겠어요. 가시죠, 우리 영-주-님!“
”‘우리’라는 어감 좋은데? 나도 앞으로 우리 리비안느라고 해야겠어. 흐흐.“
”...그건 반칙이세요.“
”뭐?“
”마음대로 하시라고요! 흥.“
”그러지 뭐. 가자구! 우리 리비안느~“
***
회의가 끝나자 고된 몸을 이끌고 침실로 향하는 데 누군가 다가왔다.
”폐하, 통신이 와 있습니다.“
피곤해 죽겠는데 또 뭔 통신이야!
”응, 잔다고 해.“
”...지금 회의 끝나는 시간 맞춰서 통신 대기하고 있습니다.“
우라질.
7시간 마라톤 회의가 지금 막 끝났단 말이다!
솔직히 니들이 양심이 있다면 이러면 안 되지!
“급한 일이 아니면, 오늘은 정말 피곤하니 내일 하지.”
“그게... 1급 통신입니다.”
아오, 이 고문관시키.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면 될 것을...
꼬오옥~ 이렇게 눈치 없이 사족을 단다.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들어 버린 상황에서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불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어딘데?”
“[그분]이 계신 곳입니다.”
보는 눈이 많은 황실에서 보고할 때 [그분]이라는 표현을 쓰는 존재는 현재 하나밖에 없다.
“왜왜! 뭐뭐! 또 왜왜왜왜?”
“일단 통신실로 가보심이...”
“그래, 가자 가! 별일 아니기만 해봐라!”
-뚜벅 뚜벅.
거친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
“뭐? 마력석이 생선 뱃속에서? 그게 말이 돼?”
“잡힐 때 살아있었다고? 확실해? 저 멀리 바다에서 죽은 게 떠내려 온 거 아니고?”
“그렇지 그렇지... 말을 안 하면 안 했지, 거짓말 할 놈들은 아니지.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지.”
“알겠네. 수고했고,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부탁하지.”
...
“방금 파한 인원들 다시 성으로 들어오라 이르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마라톤 회의를 다시 시작한다.”
“흡! 방금 마라톤 회의 끝나고, 거의 실려가는 듯 떠나신 분들인데요?”
“나도 싫어! 싫다고! 근데 네놈이 통신실로 가라며! 팍씨! 내가 잔다고 하랬지!”
“아니, 불똥이 왜 또 저에게로 튑니까요.”
“...진짜 네놈이 나를 따라 전장으로 오지만 않았으면, 진작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거 알지?”
“...제가 없었으면 진작 발할라로 가셔서 이 자리에 계시지도 못할 텐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일이 아예 없지 않았을까요?”
“자네 지금 일부러 내 복창 긁으려고 그러는 거지? 더 멀리 가기 전에 빨리 불러들이기나 햇!”
“...꿍얼꿍얼.”
“빨리 안 갓!”
“충-!”
“아오, 저게 뭐가 이쁘다고, 눈치도 더럽게 없는 놈을 여태껏 댈구 있는지...”
다시 회의실로 향하며 터져 나오는 한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뒤를 따르는 전속 시종에게 명을 내렸다.
“분명 회의 중에 쓰러지는 인원이 나올 거야. 황실 상주 사제에게 연락해서, 급하게 사제 5명만 보내 달라고 하게. 일단 나부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구만, 어휴.”
“네, 폐하.”
뒤에서 따르는 시종이 지시를 내리고 조심스레 말을 건네온다.
“폐하, 그런데 너무 무리하시는 것이 아닌지요?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다.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급하게 모두를 다시 불러들인 이유는...
“이건 자네만 알고 있게. 이번에는 내가 직접 그곳에 가볼 생각이네. 이번 이유라면 내가 행차하기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밀린 정무는 어떻게 하시고요?”
“...황후에게 부탁해 보려 하네.”
“...이러다 또 각방 쓰시는 거 아닙니까?”
“...방법이 없을까?”
“황녀님 핑계를 대시지요.”
“헤르미나를?”
“네, 이번 사안을 처리함과 더불어 다친 따님을 보고 싶다고 하시면, 마지못해 승낙하지 않으실까 합니다.
”그걸로 될까?“
”중요한 것은...반드시! 그곳에서 통신을 하셔야 합니다.“
”통신? 무슨 통신?“
”그곳으로 가시고 황녀님께 통신은 물론이고, 쪽지 한 장 없으셨지요?“
”어, 맞아! 에잉, 나쁜 년. 그 사단이 나고, 부모가 이리 속을 태우고 있는데 연락 한 통 없다니.“
”꼭! 통신실로 끌고 가셔서, 황후님과 대화를 시키십시오. 그럼 황후님의 성정상 별일은 없으실 겁니다.“
”옳거니! 내가 황후에게 약하고, 황후는 딸들에게 약하고, 또 딸들은 나에게 약하니 이 절묘한 먹이 사슬을 이용하면 된다는 소리구만!“
”......“
”팍씨! 대꾸 안 해?“
”...네, 맞사옵니다.“
”좋아, 회의 전에 단판을 짓고 오지! 차를 준비하게, 그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올 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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