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 빼에에엑- 왜 우리 남작님께 뭐라고 그래욧! -

우리가 떠돌던 전장에서는 좀처럼 웃을 일이 없었다.
미친놈들이 점점 더 미쳐가는 상황에 웃을 수 있는 건, 진짜 미친놈 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미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그 중 하나가 [내기]였다.
“오늘 전투 때, 제 3 기사단의 지휘부 움직임이 좀 이상하지 않았나? 저 안에 세작이 있다에 이 검을 걸지!”
“오호라. 그거 제국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의 성검 아닙니까?”
“성검이면 뭐 하나? 지금은 그저 튼튼한 검일 뿐인데...”
전설이 깃든 유서깊은 성검... 그람 지크프리트.
에고 소드로 불리지만 그저 전설로만 남은 이름일 뿐, 지금은 그저 단단한 검일 뿐이었다.
“원래 자네에게 주어졌어야 할 검이었네. 제국의 욕심으로 내 손에 있지만, 지금이라도 자네 손에 들린다고 흉은 아니겠지.”
“좋습니다! 그럼 전...”
“[명존쎄]를 걸게.”
“고작 그걸로 되겠습니까?”
“자네에게 검을 배운 이후... 죽기 전에 자네 명치를 쥰내 쎄게 한 대 때려보는 게, 소원이 되었네.”
황태자에게 검을 가르치는 동안 살아남길 바라며 거칠게 대하기는 했다.
때리고, 굴리고, 심할 때는 심정지가 온 적도 종종 있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한 대라도 때려보겠다며 악을 쓰는 황태자.
그래도 그렇지, 국보로 내려오는 전설의 성검과 ‘명치를 존나 쎄게 한 대 때리는 것’을 같은 선상에 두고 하는 내기를 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광기에 물든 전장에서나 가능한 딜이었다.
...
“성검 잘 먹겠습니다. 냠냠.”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저기에 세작이 있어야 하는데...”
“세작이 있는 부대에서, 적군 군단장의 목을 썰어 오나요?”
“...이이익! 비긴 걸...로 하지 않을래?”
“낙장불입(落張不入)! 내 놓으시지요.”
“...잠시 맡겨두는 것 뿐이네. 곧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올 걸세.”
“그러시던가요. 지금까지 99전 67승 32패인 건 알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큭...여기 있네. 다음 내기까지는 자네 검이네.”
성검을 처음 만져보는 것은 아니었다.
황가에 귀속된 성검이라고 하지만, 전설상의 에고를 깨울 수만 있다면 그 누구라도 소유가 가능한 검.
사후 반납이라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파격적인 처사였다.
그게 선대의 유언이었고, 그 유언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나도 만져보았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슈슈슈슈슈.
검에서 증기가 발생하며, 거친 굉음을 토해냈다.
“이...이게 무슨?”
검과 동조가 이루어졌다.
검 속에 잠든 에고의 상념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소유권 여부. 확인.
-자격 검증. 확인.
-...확인. 확인. 확인. 확인
-인증 완료. 에고 활성화.
그람 지크프리트, 전설로만 내려오던 에고가 깨어났다.
...
“조건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까다로울 줄이야. 애초에 자네가 아니면 앞으로도 깨울 수 없는 검이었구만.”
단순히 쥐는 것이 아니라 소유권을 온전히 이전시켜야 인증이 시작되고, 그 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자격 검증이 이루어져야만 에고가 깨어나는 시스템이라...
진짜 미친 성검이었다.
“자, 그럼 다음 내기를 시작해 볼까? 난 우리 둘째 딸을 걸지!”
“뒈지실래요?”
“안 될...까?”
“되겠습니까? 우리 아무리 미쳐가지만, 가족을 내기 대상으로 하다니...마지막 인간성은 지킵시다.”
헤르미나를 모르던 시절의 나, 칭찬한다.
제대로 코 꿰일 뻔.
***
“자네는 어째서!!! 어째서 목숨을 구걸한단 말인가! 기사의 명예는? 앙?”
“네...네? 설마...”
“응, 했어. 내기.”
“훌...지금 저를 두고...쩍... 내기를... 하셨다고요?”
“뭘 새삼스럽게 그래? 자네도 우리랑 종종 했잖나?”
“......”
“드루와? 드루와?”
-쓱쓱.
바루스가 눈물 콧물로 점철된 얼굴을 손수건을 꺼내 닦은 후, 우리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신 바루스! 폐하께, 삼가 말씀을 올립니다. 한평생을 황가에 대한 충심으로 살아왔나이다. 저 간악한 남작의 모략에 넘어갔으나, 저의 충심을 의심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드루오라며?”
“폐하~ 죽여주시옵소소.”
“그럴까?”
“폐하~ 살려주시옵소소.”
“어후, 저 화상.”
“내기는 제가 이겼습니다. 이제 두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끙... 이거 맞냐?”
“발견되든 안 되든... 적어도 황가에 이익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알았네, 알았다고. 바루스 자네도 이만 일어나지. 우리끼리만 있는 자리인데,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고.”
“네, 감사합니다.”
아직도 서러운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바루스 녀석.
추가 세수의 절반을 받기로 했으면, 이 정도는 버텨야지.
어디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나?
“그래서 황가는 어쩌실 겁니까?”
“우리도 소규모로 인원을 투입하긴 해야지. 제국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제국만 빠질 수는 없는 법이니.”
“네네~ 호갱님. 별관을 하나 내어드리지요. 숙박료는 실무자들끼리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 있는 놈이 더 한다더니. 자네 돈도 많으면서 어찌 이러는가.”
“들으셨다시피, 바루스에게 챙겨 주기로 해서요.”
“이미 허락했으니, 알아서 하게.”
“네! 감사합니다. 폐하.”
***
짧은 회포를 풀고, 우리가 이동을 한 곳은...
화려한 샹드리에가 반짝이는 환영회장...
......이었음 얼마나 좋을까?
간편한 무복을 걸치고 연무장에 나와있었다.
“10분간 공격 금지 룰은 잊지 않았지?”
“언제적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저도 지금 제약이 걸린 거 뻔히 아시면서. 진검승부로 하시죠.”
“장난쳐? 피만 안 보면 되는 거 다 알고 있네.”
“저희가 대련 도중 피를 안 본적이 있던가요?”
“목을 썰지만 않으면 괜찮은 거 다 알고 있네. 이미 다 들었네.”
“쳇... 황녀님은 쓸데없는 소릴 해서리...”
“자, 그럼 지금부터 10분일세.”
어후, 숨막힌다.
치사하게 호위기사 전부를 대동하고 17:1로 붙는데 거기에 제약까지 걸다니.
인간적으로 너무 한 거 아니냐고요!
황실 수호 대장은 그저 뒤에서 지켜보고 나머지 호위 기사들만 가세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압박이 엄청났다.
애초에 마스터인 수호 대장까지 가세하면, 진짜로 내가 쥐어 터질 수도 있거든.
“아시죠? 계급장 떼고 하는 겁니다.”
“당연하지. 그럼 가네- 핫!”
....
“에구구구... 딸아~ 애비 죽는다. 죽어.”
-철썩!
“나이가 몇 갠데 어디서 맞고 다니기나 하고! 제가 못 산답니다.”
“아아~ 아프다고!”
“성녀님 곧 오신다고 하셨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갑자기 돌려진 시선이 내 쪽에 머물렀다.
“남작니이임~ 어디 다치신 곳은 없사옵니까?”
“네, 전 괜찮습니다.”
“어디 좀 봐요. 제가 직접 봐야 안심이 되겠답니다.”
“괜찮은데...”
“그러시지 말고요! 예전에도 그래놓고 온갖 상처를 달고 사셨지 않습니까! 어머! 여기 보세요, 멍이 있지 않습니까! 안나~ 안나~ 빨리 연고를! 성녀님이 어디쯤 오셨는지도 빨리 확인해봐!”
“따...딸아. 애비도 여기 멍이...?”
“쓰읍! 기다리시라고욧!”
“온도차가 너무 나는 거 아니냐? 애비는 섭섭하다.”
“남작님 하고 아바마마랑 같나요?”
“당연히 다르지! 난 혈육이고! 저치는 그냥 타인이지 않느냐!”
“응석은 어마마마께나 부리시라구욧! 그리고 ‘아직’ 아닐 뿐입니다!”
“크흠...저...제 앞에서 그러시면 제가 좀 민망합니다만.”
“야이 나쁜 놈아! 우리 조신하고, 청초했던 헤르미나를 돌려줘. 흐어엉.”
-철썩!
“지금은 아니 그렇다는 소립니까!”
“아퍼! 아프다고!”
“그러게 황제나 되어 가지고, 얻어 터지고나 다니고!”
"크크크큭."
“웃지마, 네놈이 제일 나뻐!”
-철썩!
“빼에에엑- 왜 우리 남작님께 뭐라고 그래욧!”
비슷한 광경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은 황제가 떠나는 그 순간까지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모닝 대련, 조금 쉬었다가 아침 대련, 점심 먹기 전에 식전 대련, 점심 먹고 식후 대련...
이 미친 대련무새 때문에 진짜 뻥 안치고 잠자는 시간 빼고 대련만 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지나고... 각 세력이 보낸 이들이 속속들이 도착을 하였다.
그것이 대파란(大波瀾)의 시작이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