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 아! 자작님이셨구나. 내가 그걸 몰랐네? 어떻게 존댓말 좀 해드려요? -

“저, 영주님...”
“으응...응? 리비안느? 무슨 일이지?”
리비안느의 부름에 반쯤 꿈나라로 접어들고 남은 나머지 반이 대답했다.
“그... 이런 말씀드리기는 죄송하지만,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리비안느가 아닌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나머지 정신의 반을 멱살 잡고 현실로 끌고 왔다.
“어, 잠깐만...”
마른 세수를 하고, 정신을 온전히 깨웠다.
“어, 준비됐어, 말해.”
“어,음, 그러니까...이번에 온 곳과 좀 마찰이 생길 것 같아서요.”
“마찰이 생긴 것도 아니고 생길 것 같다고? 아는 사람이라도 온 건가?”
“그건 아닌데, 이따 밤에 방으로 오라고...”
반쯤 농담 따먹기하는 기분으로 듣고 있던 정신이 이제 확실하게 돌아왔다.
“어? 잠깐. 바루스부터 불러오지. 자세한 얘기는 그 다음에.”
...
“조사단들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왜 또 부르십니까! 이럴 거면 직접 업무를 보시던가요!”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호출된 바루스가 성질을 버럭 내며 들어왔다.
그리고 싸늘한 내 표정을 보고는...
“어? 그 짧은 사이 무슨 일이라도...?”
꼬랑지를 말았다.
뒈질라고! 농담도 상황 봐가면서 해야지.
“자, 리비안느 얘기 해봐.”
“이거 어째 고자질하는 느낌이라 좀 별로긴 하네요. 어떻게 된 거냐면요...”
...
”이 씨밸놈들이, 오자마자 진료소를 가랬더니 술을 처마시러 갔다고? 이색히들 미친 거 맞지?”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거 같네요.”
“거기다 뭐? 리비안느를 희롱해? 자살 특공대야 뭐야?”
정신이 어질어질 하네.
“제국이라고 막 나가자는 건가? 지휘관만 내 정체를 아는 자로 보내란 소리가 이해하기 어려운가?”
정체를 아는 이들이 많아지는 건 달갑지 않지만, 사고, 문화 등이 다른 이들이 모이는 것이었다.
당연히 다툼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미리 조심해주면 좋고, 혹여 상황이 발생해도 내 정체를 아는 지휘관이라면 사건을 크게 키우지 않을 것을 알고 취한 조치겸 경고였다.
그런데 지나가는 똥개 보듯 한 거 맞지?
“영주님 성격 더러운 건 할카스 제국이 누구보다 잘 알지 않습니까?”
“성격이 더러운 게 아니라, 공명정대한 걸세.”
“그건 영주님 생각이시고요.”
“.....”
“그래서 그 정신 나간 작자가 누구랍니까?”
“저도 이름은 잘... 1급 사제복을 입고 있었답니다.”
“술집으로 간다고 했지? 지금 바로 가서 주리를 틀고 오지.”
“영주님, 잠시 기다리시지요. 지금 가봐야 정말로 여독이 쌓여 내일부터 진료소에 나가려 했다고 하면 어쩌실 겁니까?”
“어쩌긴! 그대로 죽빵을 갈기고 진료소로 끌고 가야지!”
“그럼 저들은 고작 그 정도로 이게 뭐 하는 행태냐고 반발하겠지요.”
“그럼 어쩌라고!”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밤시중 일도 추궁했을 때, ‘넝담~’ 이러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밤시중을 들라 시키는지, 진료소를 갈 생각이 없는지, 확실히 파악부터 하고 족치지요.”
리비안느가 희롱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서, 아주 단순한 사실을 망각했다.
이런 일에는 명분이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화가 나면 순간적으로 사리분별을 못 하기는 하지만,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그러면 안 되지.
“좋아. 그때까지만 그놈의 숨을 붙여 두는 걸로 하지. 성녀님께 죄송하구만. 오늘만 기다리고 기다리셨는데. 하루만 더 참아 달라고 잘 말씀드리게.”
“직접 하시죠?”
“...자네가 하지?”
“그럼 성녀님이 더 화가 나시지 않을까요?”
“끙. 내가 하지.”
“그럼 이따 구경을 좀 하려면 오늘 업무를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해서. 이따 뵙겠습니다.”
바루스가 나가고 리비안느를 바라보며 말했다.
“들었지?”
“네, 들었답니다. 이따 일부로 그쪽 숙소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 되는 거죠?”
“좀 더러운 얘기를 들을 수도 있는데 미리 사과부터 할게.”
“섭섭한데요. 저도 이 영지의 사람입니다. 이런 일로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을 생각은 없답니다.”
“어,음. 그건 그렇지.”
“정 미안하시면 저도 애칭으로 불러 주시던가요. ‘리안느’라고...”
“...그건 생각을 좀 해보도록 할게.”
“칫.”
***
“끄어어억- 취한다.”
“3골드 50 실버입니다.”
“뭬야?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대 할카스 제국의 1급 사제인 내게! 감히 돈을 받겠다고 하는 건가?”
“음식을 드셨으면 돈을 내셔야...”
“이놈이 그래도!”
“아이고, 우리 사제님 많이 취하셨습니다. 여긴 내가 정리할 테니, 어서 숙소로 모셔라.”
...
“흐음냐~ 내가 눈군 줄 아느냐~ 흠냐흠냐.”
-쿨쿨.
...
“술에 떡이 돼서 오늘은 그냥 잠들었다고 합니다.”
“칫. 하루만 더 지켜보도록 하지.”
...
“어제 그곳은 너무 더럽더군. 제일 좋은 술집이 그 정도면 다른 곳이야 뻔하지. 여자도 없고. 오늘은 그냥 숙소에서 시녀들이나 끼고 먹지.”
“시골 영지의 시녀들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내가 어제 봐둔 시녀가 있지. 이곳에 어울리지 않게 미색이 대단하더군.”
“그렇습니까? 이거 기대가 되는군요.”
“내가 그 시녀의 얼굴을 아니, 직접 갔다 오도록 하지.”
“다른 시녀들도 미색이 출중한 이들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만 믿게나! 하하핫.”
...
“흐으으응. 어디 숨었니? 오호, 마침 저기 있구만.”
“이봐, 리비안느라고 했던가?”
“네, 부르셨습니까?”
“어제는 내가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네. 대신 오늘 자네랑 자네 친구들에게 우리 술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영광을 주도록 하겠네.”
“단순한 술자리인가요?”
“으흐흐. 왜? 그 뒤도 생각이 있나? 없어도 상관없지만 말이야.”
“상관없다 하심은...?”
“너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소리지. 안 되겠네. 친구들은 다른 사람 시켜서 부르고, 우리는 일단 저 빈방으로 가서 한 판 뜨고 가지.”
얼씨구?
“아-아-아니됩니다.”
저 어색한 연기톤은 대체 뭐냐고.
이러다 녀석이 눈치챌 수도...
“어허! 이 몸이 누군 줄 알고! 이리 오거라. 어느 방이 좋으려나? 이 방이 좋겠구나!”
뇌가 하반신에 지배 당했는데, 그럴 리 없구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진료소에 가지 않는 것도 모자라, 낮술에 시녀 희롱까지...
더는 리비안느한테 미안해서... 아니, 그냥 내가 못 참겠다.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거기까지. 좋은 말할 때, 그 더러운 손, 딱! 떼고 뒤로 물러나라.”
“무엄하다! 내가 누군줄 알고 말을 함부로... 어?”
“어?”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긴 했다.
“어어?”
-씨익.
“나 알지? 너였구나. 하긴, 남의 나라에 와서 이 지랄할 놈이 별로 없긴 하지.”
“사람 잘못 보신 듯합니다. 저는 초면이라.”
“목소리 깔지 마라. 뒈진다.”
“아이고오~ 맞죠? 맞죠? 용ㅅ...히이이익.”
-스윽.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바로 그어 버릴 거니 입 다물라고.”
“...읍읍”
“조동이 닥치고 뒤로 돌아서 지시하는 대로 걸어간다. 실시.”
-착.착.착.착.
로봇을 조종하듯 녀석을 몰고 내 집무실로 향했다.
-털썩.
검을 거두고 의자에 주저 앉...
-풀썩.
이 정신 나간 놈이 따라 앉네?
-팍.
-우당탕탕.
“누가 앉으래? 하도 오래돼서 아직 감이 안 오지? 그지?”
“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요?”
“너 나 알지?”
“...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 둘 게 있는데. 이곳에 모이는 사람 중에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은 각 세력의 수장들 밖에 없거든? 혹시라도, 내 정체에 대한 소문이 돌면 너라고 생각하고 바로 죽여버릴 거니까 단어 선택에 주의하고 대답하도록.”
“히끅. 그...그럼 뭐라고 불러야...?”
“나? 여기 영주. 카인 L. 라기스 남작이 나야.”
“아니, 왜 용- 흡. 이름은 그렇다 치고 왜 남작 따위로?”
“그지? 내가 남작 따위라 좀 만만해 보이지? 계속 그렇게 말 짧게 대꾸해. 아주 바람직해.”
“......저는 자작인데요?”
“아! 자작님이셨구나. 내가 그걸 몰랐네? 어떻게 존댓말 좀 해드려요?”
“법도상 그게 맞지...요?”
-철썩!
“아악-!”
역시 짐승하고는 대화를 하려 하는 게 아니었다.
“다시 말해 봐.”
“적어도 서로 존댓말을 쓰는 걸로...”
-철썩!
“으어어어.”
그래, 한 번에 알아처먹으면 짐승이 아니지.
“다시.”
“저는 귀족이기 이전에 여신에게 귀의한 몸. 사제가 되어 세속의 신분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
“네, 저 할카스 제국의 1급 사제 일레노이 칼빈스!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 여신의 종이옵니다.”
“좋아, 그럼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지. 대가리부터 박아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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