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라 황후의 도움

자정이 되기까지는 약 10분이 남아있었다.
이용익은 그때까지도 블라디보스토크의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다.
“아이고······ 뭔 일이 생겼나 보네. 갑자기 러시아 궁전으로 가서 차르를 만난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는데.”
석돌이 전전긍긍하며 애를 태웠다.
“어쩔 수 없네. 일단 우리는 이용익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네”
안중근은 이번 헤이그 특사 작전을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용익을 구해 고종황제의 내탕금을 가질 예정이었다.
독립운동에 가장 핵심은 끊기지 않는 돈이었으니까.
그는 대한 제국의 황제를 믿지 않았다.
그가 믿는 건 조국과 오직 하나님뿐이었다.
그는 성호를 긋고 총을 고쳐 잡았다.
블라디보스토크 감옥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안중근의 지시 하에 복면을 쓴 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만일을 위해 소통은 일어로 하기로 했다.
잡히지만 않으면 이건 돈을 노리는 일본 갱단이 한 짓이 될 것이다.
러시아와 일본은 지금 사이가 매우 좋지 않으니 분명 일본에 책임을 물을 것이다.
중근은 자신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00시 00분
약속한 시간이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시기를.’
그는 사로 일행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의 차르는 무자비한 사람이었다.
몇 해전 차르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온 군중들을 그는 다 쏴 죽여버렸다.
대한 제국황제도 그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종은 독립협회에서 군중들을 모아 집회를 만들고 민중의 뜻을 전달하려고 했을 때, 자신의 권력을 위해 가짜 뉴스를 퍼트려 의회를 해산시켜 버렸다.
그 의회는 처음으로 백성들의 말을 왕정에 전한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권력 있는 자들은 믿을 것이 못 돼.’
그는 민중의 투표로 세워진 지도자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의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돈이 필요했다.
황제는 그 돈을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이용익에게 맡겼다고 했다.
‘훗날 도모’는 바로 독립군을 위해서 쓰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작전을 지시했다.
감옥의 문 앞에는 경비병 두 명이 총으로 무장을 한 채 서 있고 위쪽 탑에는 불빛이 길게 감옥의 이곳저곳을 비추고 있었다.
독립군들이 갈 루트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들을 불빛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의 건물 벽 밑에 서 있었다.
중근이 지시하자, 복면을 쓴 동지 두 명이 옆 벽면에 갈고리가 달린 끈을 걸었다.
그들이 한쪽 발은 벽에 고정한 채 줄을 당겼다.
쓱 하고 작은 도르래에 의해 로프가 빨려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중근에게 경례를 한 후, 줄을 타고 올랐다.
하늘에서 복면을 쓴 자들이 총을 들고 지붕을 올랐다.
그들은 지붕 위 환풍구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었다.
이제 환풍구 안으로 들어가 러시아의 교도관들을 처리하고 이용익을 구해올 것이다.
그때였다.
육중한 블라디보스토크의 감옥 문이 끽 소리를 내며 열렸다.
웬 남자가 비틀거리면서 나와 쓰러졌다.
그를 데리고 나온 경비병은 손을 털면서 러시아 말로 뭐라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잠, 잠시 중단하라!”
석돌이 안중근의 지시를 듣고 휘파람을 불었다.
중단하라는 사전에 짜인 암호였다.
안중근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감옥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을 보았다.
이용익이었다.
***
자정이 되기 두 시간 전,
사로는 니콜라이 2세의 접견실로 들어가기 전에 황후에게 조언을 들었다.
“저는 오늘 황제 폐하와 중요한 사업 이야기를 하기 위해 러시아 왕국으로 왔습니다. 황제 폐하는 어떤 분인가요?”
사로가 안렉 산드라 황후에게 물었다.
정말 모르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황후가 자신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길 바랐다.
황후는 약간의 도움을 주고 그들에게 더 큰 호감을 가질 것이었다.
앞으로의 일에 러시아의 역할은 중대했다.
“황제 폐하는 매우 고집스러우시지. 그리고 빨리 관심이 사그라든다네. 그와 대화할 때 팁을 주자면, 절대로 황제에게 먼저 요구사항을 말하지 말게. 그러는 순간, 그의 흥미는 짜게 식을 것이야. 황제가 먼저 질문하고 그가 그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흥미를 갖게 해야 하네.”
사로는 황후에게 감사를 담아 무릎을 살짝 굽혔다 일어섰다.
“황후 폐하, 제국의 안녕을. 저희는 또한 이번에 황제 폐하께서 네덜란드에서 열릴 만국평화회의에 대한 제국을 초대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올리려고 합니다. 황제께서 초대하신 만큼 저희의 편에 서주시겠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로는 러시아에 감사를 표하면서 러시아의 도움을 쐐기를 박듯 확인했다.
이 말을 알아차린 황후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대는 매우 현명하군. 내가 그대의 편에 서겠다고 했으니, 황제께서도 그리할 걸세. 러시아의 번영을 위해서는 일본에 견제가 필요했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도 불사했네. 비록 우리가 패배했지만 말야.”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포츠머스 조약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랬지. 그런데 우리는 전쟁 배상금도 내지 않겠다고 했네. 뭐 어떤가? 러시아는 언제나 거부할 권리가 있지. “
과연 러시아 제국의 황후 다운 이야기였다.
어차피 국제 사회의 조약이란 힘의 균형에 따른 결과로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
을사조약이 영원한 힘을 갖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사로 일행은 니콜라이 2세와 접견실에서 마주 앉았다.
황후는 니콜라이 2세의 옆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니콜라이 2세는 짙은 눈썹과 고집 센 턱을 가진 자로 그의 판단이 한 번 내려지면 바꾸는 게 매우 어려웠다.
그가 조선인들과 마주 앉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이들이 황태자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는 이들을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투자라니? 어디에 투자를 하겠다는 말이오?”
니콜라이 2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황후도 이미 이야기했지만, 협상을 하려면 내 쪽에서 안달 나게 보여서는 절대 안 되었다.
시간이 없었지만 사로는 최대한 여유로운 척을 하였다.
그녀는 뜸을 들이다가 차 한 모금을 마시고서야 이야기를 했다.
“러시아에 개간되지 않은 땅들에 투자하려 합니다.”
그말에 니콜라이 2세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조선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는 돈이 없어 자신의 군사력을 강하게 하지 못하는 조선을 비웃고 있었다.
군대만 강했더라도 일본이 노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조선을 먼저 먹으려고 하다 실패했지만.
“돈은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저희 가문의 회사, 백산무역에서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폐하께서는 저희가 가진 돈보다 어디에 투자하려고 하는지 더 궁금해하셔야 합니다.”
사로가 핵심을 짚어주자 니콜라이는 비웃음을 거두고 사로를 바라보았다.
그는 곧바로 사로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알아보았다.
이들은 자신에게 뭘 부탁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주고받을 수 있는 거래를 하러 온 것이다.
그럼 부탁하러 온 사람들을 위에 군림하는 태도를 버려야 했다.
그들은 러시아 이익에 중요한 것을 줄 것이고, 자신은 그들의 이익을 도와주면 될 터였다.
“그래, 어디에 투자하려고 하는가?”
“사하지역의 땅을 조금 매입하고 그곳에 회사를 세우고 싶습니다.”
“사하지역?”
러시아는 17세기에 시베리아를 정복하면서 사하지역을 손에 넣었는데, 이곳은 매우 척박하여 버려진 땅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눈만 있는 땅. 그 땅을 왜? 니콜라이 2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핫핫핫! 조선인들을 그곳에 이주라도 시킬 것인가?”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곳 광산 개발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니콜라이 2세는 사로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내자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그는 황태자의 은인인 그들의 요구를 무엇이든 들어줄 생각이 있었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줄 수는 없었다.
“이봐. 뭘 잘못 알고 있네. 그곳은 광산이 없어.”
니콜라이 2세는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사로를 보았다.
양복을 입었지만 조금 앳된 얼굴.
어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얼굴은 왠지 믿음이 가질 않았다.
저 검은 호수 같은 눈. 그것만이 가장 신뢰할만 요소였다.
하지만 그는 황태자를 구해준 이들에게 예의를 차려 물었다.
아니면 듣지도 않고 내쫓았을 것이다.
“만약 있다고 치세. 그럼 채굴권을 가져가는 건가? 감히? 나의 나라에서?”
러시아는 조선에 들어와 강원도 일대의 광산 채굴권과 산림 채굴권을 가졌다.
특정 지역의 광물 자원을 채굴하고 사용하는 권리로 러시아는 조선의 광산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을 쥐고 흔들었다.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가 감히 큰 대국의 땅을 논하다니 니콜라이 2세는 가소롭다는 듯이 사로를 쳐다보았다.
“채굴권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러시아의 광산 개발에 돈을 대겠습니다.”
“돈만?”
“네. 채굴권은 우리가 아니라 황제께서 가지시는 겁니다. 저희 가문은 백산 무역이라는 회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정부와 투자가 아니라 회사대 회사의 투자입니다.”
니콜라이 2세는 사로의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모르겠군. 황태자를 치료해 준 것은 고맙게 생각하네. 근데 있지도 않은 광산을 내가 어찌 믿는단 말인가. 이제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네. 사례는 톡톡히 하겠네. 궁전에서 얼마간 머물러도 좋으나 허무맹랑한 투자 얘기는 그만 하게.”
그는 사로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황후가 니콜라이 2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나의 차르.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으셔야 합니다. 정말로 그런 광산이 있으면 우리 제국에 큰 보탬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랜 전쟁으로 백성들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고통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시겠지요?”
니콜라이 2세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밖을 향해 소리쳤다.
“총리 표트리 스톨리핀을 불러라!”
‘됐다.’
사로는 생각했다. 표트리 스톨리핀은 러시아의 총리 및 내무부 장관으로서 러시아 경제 개혁을 이끈 인물이었다.
암살되지만 않았다면 그의 대대적인 경제 개혁으로 러시아는 유럽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황후는 역시 러시아의 권력이었다. 황후가 황제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황제는 무엇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또한 니콜라이 2세가 표트리 스톨리핀을 불렀다는 것은 사로의 재안에 구미가 당겼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황후의 말에 최대한 의심을 거두고 사로의 말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광산 개발에 투자를 해보겠다니. 그곳에 뭐가 있는 건가? 금인가? 은인가?”
니콜라이 2세가 물었다. 조선인이 이렇게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니,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는 정말 뭔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로는 역사를 다시 되짚어 보고 있었다.
때는 소련 시대, 1955년 사하지역에 미르라는 곳에서 지질학자들에 의해 갑자기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다.
한두 개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 땅 전체가 거대한 다이아몬드 광산이었던 것이다.
땅을 파면 팔 수록 다이아몬드가 계속 나왔다.
2009년까지 전 세계 다이아몬드 공급량 중 25%를 여기서 채굴 했을만큼의 노다지 땅이다.
다이아몬드는 보통 수백 미터씩 땅을 파고 들어가야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노천에서 바로 주울 만큼 다이아몬드 원석들이 굴러다녔다.
사로는 그 광산의 다이아몬드를 좀 더 일찍 캐는 것뿐이었다.
러시아도 몰랐던 러시아의 다이아몬드 광산, 그 광산이라면 19세기에 러시아가 다른 나라의 힘의 경쟁에서 그렇게 밀리지 않을 것이다.
니콜라이 2세는 사로가 말을 안 하자 목이 탔는지 앞에 있는 술을 연거푸 마셨다.
마침내 총리가 헐레벌떡 황제와 황후 앞에 도착하자, 사로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론 다이아몬드가 묻혀 있습니다.”
- 작가의말
다이아몬드가 이만~큼! 현재 미르 광산은 더 이상 개발할 곳이 없어서 폐광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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