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개의 별

“제가 알기론 다이아몬드가 묻혀 있습니다.”
사로의 말에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알 수 없는 소리로 웃었다.
금 광산도 아니고 은 광산도 아니다. 무려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니. 니콜라이 2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조선인이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이냐?”
사로는 그 말에 가지고 있는 가죽 주머니를 끌렀다.
선재 동자가 가져온 바로 그 주머니였다.
사로는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기 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선재 동자를 불러 간곡히 부탁했었다.
“조금 멀리 가야 해. 많이 추울거야. 괜찮겠어?”
이렇게까지 해서 자신의 큰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로는 선재 동자에게 많이 미안했다.
선재 동자를 수족처럼 부리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수족이 아니라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재동자는 언제나 그렇듯 사로에게 밝은 미소만 보여주었다.
“걱정 마세요. 거기가 어디든 다녀올게요.”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는 것을 알아. 하지만 내가 그곳의 정확한 위치를 아니까 찾기는 쉬울 거야.”
러시아는 광활한 대륙이다.
17세기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넘어 동쪽으로 영토 확장을 했다.
시베리아에는 사하 공화국이 있었는데 러시아는 그곳을 점령하고 자신의 영토로 병합했다.
사하 지역 너머 더 깊숙이 들어가면 너무 추워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나온다.
사로는 그곳에서 지질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다이아몬드 원석을 선재 동자에게 찾아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물론, 사로만 알고 있는 그 다이아몬드 광산을 러시아 몰래 차지하면 큰 부를 누릴 수 있겠지만, 다이아몬드는 원석일 때보다 가공했을 때 더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사로는 잘 알고 있었다.
계속 다이아몬드를 위해 그 험한 곳으로 선재 동자를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현재로서는 다이아몬드의 원석을 가지고 파는 것보다 다이아몬드 광산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이득일 것이다.
다행히 러시아는 그런 세공 기술에 탁월했다.
사로가 기차를 타고 6일 동안 이동할 동안 선재 동자는 자신의 임무를 잘 마치고 돌아왔다.
그때,사로는 그 주머니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을 몇 개 자신만의 딴 주머니에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사로가 다이아몬드의 원석을 꺼내자, 황제와 황후 그리고 휘와 이랑까지도 놀라 사로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다이아몬드가 실제로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석은 다른 불순물과 섞여 있었지만 그 빛을 잃지는 않았다.
밝고 투명한 돌이었다.
“제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백산 무역의 사장으로 해외 광산에 계속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는 해외 지질학자들도 많지요. 그 지질학자들이 조사해본 결과 사하 지역에서 다이아몬드 발견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조선의 학자들을 몇 보내서 그 지역을 조사했습니다. 이건 저희만 아는 아주 중요한 정보입니다. 어디인지, 어디를 개발해야하는지 말입니다.”
한 마디로 이 정보를 사라는 이야기였다.
진짜 백산무역의 사장인 휘도 이 대화에 눈치를 채고 거들었다.
“황제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러시아의 광업 회사와 계약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니콜라이 2세가 눈을 찌푸리며 말을 했다.
“이미 러시아에 있다면 나는 자네들과 거래할 이유가 없네. 이 제국이 나의 것인데 왜 나의 것을 가지고 거래해야 한다는 것인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로는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부드럽게 받았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혹시 공주마마들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습니까?”
“그렇네.”
“피아노 치는 재능이 모두 공주마마들 안에 있을진대 어찌하여 선생을 두어 가르치십니까?”
“그, 그건······”
“황제 폐하. 저희는 폐하의 땅을 저희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폐하의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는 재능에 투자하겠다는 뜻입니다. 폐하가 폐하의 땅에 대해 모르시면 아무리 좋은 땅을 가지고 있다 해도 무용지물입니다.”
그 말이 맞았다.
사하 지역은 매우 광활하고 넓어서 모두 쑤시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들이 조사한 정보들을 내놓고 가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광산을 찾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러시아는 당장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정말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니콜라이 2세는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가 기억이 났다.
<일곱 개의 별>이라는 이 동화는 한 소녀가 가는 길에 도움이 필요한 개와 노인에게 물을 먹이는데 우물에서 국자로 물을 떠서 그들에게 주는 이야기이다.
우물에서 국자로 물을 뜨나 나무 국자는 은 국자로 은 국자는 금 국자로 변했으며, 그 국자 안에는 다이아몬드 일곱 개가 빛나고 있었다는 내용의 동화였다.
“그거 아니? 이건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인데, 시베리아 사하에는 정말로 빛나는 별들이 있단다.”
어머니가 침대 맡에서 읽어주셨던 동화인데 왜 지금 그것이 생각나는 걸까?
“좋다. 광산이 있건 없건 돈을 준다는 것은 우리에게 나쁘지 않은 일이지.”
“폐하, 혹시 일곱 개의 별이라는 동화를 기억하십니까?”
황후가 부드러운 말로 대화에 껴들었다.
둘은 서로 그윽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알지, 우물 안에서 발견한 보석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그 일곱 개의 별이 진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황후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니콜라이 2세는 이제 정말로 사로가 말한 지역에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믿어버렸다.
“그대의 회사와 거래하겠네. 대신 나도, 국가가 아니라 나의 개인 회사를 세우고, 회사 대 회사로 어떤가?”
“예. 좋습니다. 차르폐하. 그전에 해주실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저희는 폐하께 다이아몬드를 안겨 드릴 것입니다. 그럼 조선 왕의 내탕금은 조선으로 돌려주시지요.”
그러면서 사로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니콜라이 2세에게 바쳤다.
니콜라이 2세는 그 말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더니 곧이어 웃음을 터트렸다.
오전까지는 분명 조선의 내탕금이 러시아 안에 있으니, 러시아 것이라고 말했던 황제였다.
하지만 이제 조선 왕의 내탕금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땅에 다이아몬드가 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이제 손까지 휘저으며 마음 좋게 말했다.
“조선 왕의 내탕금이야 원래 우리 것이 아니니 돌려주고 말고가 어디있겠는가.가져가게.”
그 말에 사로가 대답했다.
“조선의 금고지기가 지금 블라디보스토크의 감옥에 있습니다.”
니콜라이 2세는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의 빛나는 검은 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뭔지 모를 욕망이 서려있었다.
니콜라이 2세는 그의 거래에 넘어갔다.
그 거래가 가치 있는지는 후에 드러나게 될 것이었다.
그 가치가 눈앞에 보이는듯해 니콜라이 2세는 그 순간이 간절히 기다려졌다.
그는 총리에게 말했다.
“당장 블라디보스토크의 시장에게 전화하게. 조선 왕의 금고지기를 내보내.”
그러고는 사로에게 되물었다.
“그래, 그럼 투자 수익 배당금은 생각해 보았는가?”
“40% 어떻습니까?”
사로는 일부러 배당을 크게 했다.
협상이란 원래 가격을 크게 부르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 말에 니콜라이의 욕망이 꿈틀대었다.
이 거래에 너무 많이 빼앗긴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보를 주고 돈을 대긴 하지만 결국 우리 일꾼이 다 하는것 아닌가? 결국 러시아 땅이기도 하고 말이야. 30%로 하지.”
“저희는 그럼 일단 투자금액을 채권으로 발행하겠습니다.”
“아니 그건 안되네. 내가 조선에 신용이 없어서.”
니콜라이 2세가 실망스러운 말을 하였다.
하지만 맞는 말이다. 조선이란 나라에 지금 무슨 신뢰가 있겠는가.
“조선이 아니라 대한 제국의 사람이지요. 백산 회사와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좋습니다. 반은 현금으로, 반은 채권으로 하지요.”
그제야 니콜라이 2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다이아몬드가 하나라도 나오지 않는다면 이건 무효가 되는 걸세.”
“좋습니다. 그럼 저희도 제약을 걸어야겠습니다. 폐하께서 그럴 리는 없으시겠지만, 저희가 드린 정보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시고 발견 못했다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네. 하지만 그 제약이 뭔지는 궁금하군.”
“다이아몬드가 나는 곳은 한곳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저희 회사에 수익금이 도착하면 그때 하나씩 위치를 공유하지요.”
니콜라이 2세는 사로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애써봐도 이 비논리적인 사실에 설득당하게 하는 무엇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황제였다. 사기꾼들에게 말려들지 않으려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표트리 총리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표트리 총리. 백산 회사라는 곳 말이야. 어떤 곳인지 알······”
니콜라이 2세가 총리에게 백산 회사에 대해 알아보라는 말을 하려고 할 때, 동양의 의사라는 이랑의 눈과 마주쳤다.
그는 그 순간, 말을 더하지 못하고 사로가 미리 준비한 계약서에 자연스럽게 사인을 하였다.
러시아의 총리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미 황제의 직인은 계약서에 찍힌 상태였다.
“어떤 곳인지 알만하죠? 아주 탄탄한 회사입니다.”
사로는 황제의 직인이 찍힌 계약서를 두 손가락으로 살짝 잡으며 말했다.
총리도 이랑의 눈을 보더니 표정을 바꿔 황제에게 말했다.
“좋은 투자처를 두셨군요.”
사로는 러시아 황제와 함께 있었던 접견실을 나오면서 선재 동자를 불렀다.
그녀는 휘가 가지고 있던 고종의 밀서를 선재 동자에게 쥐여주었다.
“선재 동자. 지금쯤이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용익이 나왔을 거야. 이걸 가지고 안중근이라는 사람에게 이용익을 우리가 갈 때까지 설득해야 한다고 해.”
선재 동자를 감싸고 있던 빛이 밝아지며 왕궁의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
사로는 러시아 수도에서 하룻밤을 더 머물렀다.
곧 선재 동자를 통해 이용익이 풀려났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그녀는 이랑만 데리고 러시아의 밤거리를 나갔다.
이번에는 가져온 정장을 벗고, 황궁의 시녀에게 부탁해 가장 화려한 드레스를 구해 갈아입었다.
그 위에는 검은 망토를 입어 그 드레스가 보이지 않게 가렸다.
그들이 이 밤길을 나선 건, 사로가 가진 다이아몬드 원석을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사로는 이랑과 거리를 나서기 전,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이제부터 위험할 거예요”
“그대는 항상 위험한 짓을 하는 군.”
“네. 그런데 이건 나도 예상을 못 하는 일이에요. 역사서에 제대로 쓰여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당신이 필요해요.”
그 말을 들은 이랑은 사로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어떤 위험도 내 옆에 있으면 안전하오.”
사로는 이랑이 큰 손으로 자신의 손을 쥐자, 얼떨떨하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돈이 필요한 거요? 최 진사가 여행 자금을 넉넉하게 챙겨줘서 그것이 이토록 빨리 줄지는 않았을 터인데. “
“혹시 황제의 내탕금으로 지금 다이아몬드 광산에 투자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죠?”
“아니오?”
“내탕금은 우리 돈이 아니에요. 그래서 다이아몬드 광산에 우리 마음대로 투자할 수도 없고요. 나중에, 다이아몬드 광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투자하자는 의견을 내긴 할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못하죠.”
“그래서 어쩔 생각이요?”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채권을 쓰려고 했어요. 할 수 있으면 어음을 발행하고 나중에 내탕금의 금액을 넣으려고 했죠. 그런데 니콜라이 2세가 현금도 같이 요구했기 때문에 계획이 틀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돈이 필요한 거군.”
“네. 하지만 현금으로 투자금액을 넣는다면, 똑같이 배당금을 채권이 아니라 현금으로 받을 수 있게 되죠. 곧 막대한 자금이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에요. 제 손에 다이아몬드 원석이 있어요. 아직 원석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현금으로 거래가 가능하죠.”
“그 빛나는 돌이 어느 정도 가치요?”
이랑은 그동안 금도 보고 은도 보았지만, 다이아몬드는 처음 보았다.
특히 신라는 금이 많이 나는 금광이 위치해있었고, 금으로 옷과 모자, 신발까지 아니 심지어 개 목걸이까지 금으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이랑은 금이 가장 최고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러시아 황제가 탐내는 것을 보니 이 빛나는 돌도 대단한 보석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글쎄요. 우리가 가는 곳에서 어느 정도 가치인지 알려줄 거예요.”
그들이 도착한 곳은 수도 뒷골목에 위치한 보석상 <파베르제>라는 곳이었다.
- 작가의말
30화부터 월, 수, 금 연재로 바뀝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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