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미래

일본 군인들은 설한규를 결박한 채 어두 컴컴한 지하 감옥에 처 넣었다.
그들은 킬킬 웃으며 설한규에게 한 발짝씩 다가왔다.
“왜, 왜 이러시오? 말로 하시오!”
말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군인들은 군화발로 설한규의 몸을 이리저리 짓밟고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 쳤다.
그 바람에 이 하나가 깨져서 밖으로 튀어나왔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진동했다.
설한규는 독립군에 잡혔을 때보다 더 심하게 떨었다. 생전 그런 아픔은 처음 겪어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설한규에게 침을 탁 뱉으며 일본어로 조롱했다. 하지만 정신의 혼미해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군인 한 명이 웃으며 자신의 바지춤을 내리더니 그에게 오줌을 갈겼다.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더할 수 없는 공포감이 그에게 찾아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빛 하나 없는 지하 감옥에서 설한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간혹 신음 소리가 끊길 듯 희미하게 들렸다.
“거 누구 있소?”
얼굴이 엉망이 된 설한규가 철창 너머 들리는 신음 소리에 침을 꼴깍 삼키며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고 때로는 아기 고양이가 끙끙대며 우는소리 같기도 했다.
설한규의 물음에 신음 소리가 갑자기 끊기더니 한 남자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설한규의 말을 받았다.
“누구 있소. 조선인이오? 반갑수다. 우리 통 성명이나 합시다.”
“이곳에서 반갑다니 웃기는구려. 좋소. 나는 경주에서 온 설한규요.”
“난 평안남도가 고향이오. 안창호라 하오.”
“어쩌다가 여기 잡혀온 거요?”
“뻔하지 않겠소? 일본 군인이 왜 나를 잡았겠소? 형씨와 같은 이유겠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소리 좀 내었다고 사람을 때립디다.”
안창호가 설한규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네자, 그는 도리어 민망해졌다. 자신은 독립을 외치다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흠흠······ 그렇소? 거 참 말로 하지, 왜 사람을 때리고 그러나!”
그는 민망하여 감옥 안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애꿎은 철장만 챙 소리가 나게 한번 쳤다.
“그쪽은 안 맞은 것처럼 그러시네? 아까 개 맞듯 맞는 거 다 보았소. 괜히 센척하지 마시오. 일본 군인들이 몰려오오. 그러다가 나도 덩달아 맞기 싫소.”
“아니 독립운동을 뭘 했길래 그러오? 일본 군인이라도 잡아 족치셨소?”
“그랬으면 억울하지나 않을 것이오. 하하. 나는 그냥 독립을 위해 사람들을 모았을 뿐이라오.”
‘또 되지 않은 독립단체를 만들었군. 그나저나 난 이곳에 잡혀있을 사람이 아닌데······ 필시 무슨 오해가 있을 것이다.’
설한규는 머리를 짜내 고민을 거듭했지만, 왜 자신이 잡혀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아는 것은 일본 경찰의 비밀경찰로 자신을 블라디보스토크로 보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른 일본 경찰들은 다 죽은 채 자신만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얻은 정보를 전한 것뿐인데 왜?
“형씨는? 왜 이곳에 왔소?”
“나요?”
안창호가 물어보자 설한규가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되물었다.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군화발 소리가 착착 들리더니 열댓 명의 군인들이 지하 감옥에 대열을 맞추어 섰다.
그 가운데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나왔다.
그는 왜소하였으나 눈에 총기가 있어 그와 눈을 마주치고 거짓을 고할 자가 누가 있을까 싶었다.
설한규는 두려움에 침을 꼴깍 삼켰으나, 이토는 설한규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철창 안에 있는 안창호의 앞에 의자를 갖다 놓고 그 위에 앉았다.
이토가 조명을 안창호에게 비추자 눈 한쪽이 짓이겨진 채 얼굴 이곳저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설한규는 그 모습을 보자 헉하고 자신의 입을 가렸다. 그만큼 처참한 몰골이었다.
안창호는 그 모습에도 설한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큰소리 내지 말라 하지 않았소? 군인들이 때리러 온다고 말이요. 하. 참!”
“내가 언제 큰소리를 냈소?”
설한규가 억울하여 냅다 또 소리를 지르자, 이토는 집게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에 갖다 대었다.
“쉿. 조선인들은 항상 이렇게 목청이 크지. 그래. 그렇게 목청이 크면 어디 큰 소리로 말해봐. 네가 만든 단체, 이강이 주도했나?”
이토의 말에 안창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이강이 주도했을 거야? 그렇지? 그렇다고 끄덕이기만 해라. 그럼 풀어줄 테니.”
하지만 안창호는 눈을 감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토는 그의 모습을 보고 코웃음쳤다.
“이혜련을 데리고 와라.”
이토의 말에 안창호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두려운 눈빛이었다. 설한규는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한 여자가 끌려왔다. 이십 대 초밖에 안돼 보이는 여자가 결박된 채 발을 질질 끌고 있었다.
그녀는 두려워 몸 전체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강제로 의자에 앉혀지고 양손이 의자에 묶였다.
그리고 곧 양동이 하나와 긴 침 하나를 고문기술자가 들고 왔다. 이토는 그녀의 단발로 짧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네 부인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마는 어쩔 수 없지. 남편이 큰 잘못을 했는걸. 하지만 독립단체를 만들고 일본에 대항하여 외교권을 흔들려고 한 것이 이강이라고 말하면 내가 아프게 하지 않으마.”
그 말에 그녀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힘 있게 외쳤다.
“의친왕이 대체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내가 밟고 있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려 한 것이다!”
이토는 그녀의 외침에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머리카락 한 움큼이 뽑힐 만큼 강한 힘에 그녀는 저절로 악 소리를 내었다.
“침을 준비하라.”
고문기술자는 결박되어 있는 양손 중 한 손 아래 양동이를 갖다 대었다. 피를 받기 위함이었다. 그러고는 긴 침을 손톱 밑으로 쑤셔 넣으려고 했다. 안창호의 눈이 흔들렸다.
설한규도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부들부들 떨었다.
“설한규라고 했나? 독립군들이 새 정부를 만들려 한다고 했지? 글쎄 독립단체들이 하나로 모이고 있다는 소식은 내 일찍이 들었지.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 분명 다른 소식도 들었을 거야. 그렇지?”
“네? 다, 다른 소식이라뇨? 아, 아닙니다.”
“이용익의 돈이 전부 새 정부에 쓰이는 건 아닐 거야. 분명 황제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다. 황제가 다른 나라와 접촉했을 거야. 난 그걸 말해주길 바라는 거야. 잘 생각해 봐.”
설한규가 망설이며 서있자, 안창호가 이토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썩은 정치에서 대체 무엇이 나오겠는가? 그런 정치와 우리는 상관이 없다. 나의 목표는 나라의 백성이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것이 왜 잘못인가? 내 나라는 대한이오. 나는 대한 제국의 사람이다!”
이토는 고문기술자에게 눈짓을 했다. 고문 기술자는 그의 부인의 손톱 밑에 긴 바늘을 쑤셔놓았다.
비명이 지하 감옥에 가득 찼다. 설한규는 말을 잃고 바닥에 그만 주저앉았다.
“설한규. 다음은 네 차례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 나와 양동이를 적셨다. 하지만 혜련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원하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죽여라”
그 말에 고문기술자가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고는 양말을 벗기고 그곳에도 바늘을 깊숙이 박았다. 비명이 퍼졌다.
설한규는 그 비명에 눈을 질끈 감았다. 혜련이 기절하자, 고문 기술자는 그녀에게 물 한 바가지를 부어 깨어나게 했다.
비명이 연이어 이어졌다. 안창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혜련은 그런 안창호를 보고 고개를 저으며 말을 막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가 실신하자 안창호는 울부짖었다.
이토는 부인을 고문해도 입을 열지 않는 안창호를 보며 질린다는 눈빛을 보냈다.
“설한규를 고문 의자에 앉혀라.”
이토가 명하자, 군인들이 다른 의자를 가져왔다. 그리고 설한규를 끌어내어 그 의자에 억지로 앉히려 했다.
설한규는 손으로 그들을 제지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 전체가 떨려왔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말, 말하겠습니다. 저는 살려주세요!”
설한규가 고문 기술자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자 두려워 소리쳤다.
그는 사로가 황제의 밀서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냈다.
나중에 자신이 독립군이었다고 밝혀져도 지금 당장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뭘 말하겠다는 말이냐?”
“황, 황제가 이준을 시켜 밀서를 전하게 했습니다. 제가 그 밀서를 읽었어요.”
“밀서? 자세히 말해봐라.”
“분, 분명히 다른 나라의 황제나 관료들한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만국평화회의에서 조선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황제의 국채가 찍혀있었습니다.”
“으하하하하하. 그럴 줄 알았다.”
“그 밀서는 어디 있느냐?”
“독, 독립군들이 가져갔습니다. 제가 분명 뺏었는데 그들이 다시 가져갔습니다.”
“증거를 빼앗겼군.”
“죄,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주 잘했어. 자네가 그 증거가 되면 되니까. 이 정도로 충분해. 아주 잘했어! 증거가 없으면 증인이 있으면 된다. 그것이 명분이야.”
이토가 흡족하여 웃었다. 그러고는 명했다.
“증거가 하나만 있으면 안 되지, 안창호와 그의 부인에게 일러라. 그 독립 단체를 황제가 만들었다고 말한다면 무사할 것이라고 말이다.”
안창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이 지옥이 영원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사로는 어니스트 베델이 보내온 편지를 읽고 있었다.
편지에는 도산 안창호가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만들었고, 단체를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안창호가 잡히다니. 역사에 없던 일이야.’
1907년 신민회라는 비밀결사단체가 결성된다.
<대한매일신보>에 있는 양기탁과 베델, 1896년도에 결성되었던 독립협회, 김구 등 상동 교회를 중심으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던 세력 그리고 안창호처럼 미국에 있던 공립협회의 집단 세력들이 같은 뜻을 품고 뭉친 단체였다.
일본이 신민회의 존재를 감지한 것은 1909년 3월 경이었다. 1907년이 아니었다. 사로의 활동으로 인해 위기를 느낀 통감부가 독립단체를 더 면밀히 조사하게 된 것이다.
사로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안창호가 감옥에 들어가다니. 역사에 없었던 일이야. 나 때문에 조선이 독립을 못하고 계속 일제 치하에 있으면 어쩌지?’
이랑이 떨고 있는 사로를 보고 어깨를 감쌌다.
“무슨 일이오?”
“역사가 바뀌었어요. 가장 중요한 독립운동가 한 사람이 뜻을 펼치기 전에 조선에서 잡혔어요. 내, 내 탓이에요. 내가 역사를 바꿨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진정하시오. 그 사람이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면, 구하면 될 일이오. 우태의 옥이 있으니 조선에 다녀옵시다. 내가 함께하겠소.”
사로는 눈물 젖은 얼굴로 이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랑이라면, 그를 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신선과 함께 한다는 것이 이렇게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작가의말
원래 제목을 신선과 함께라고 하려고 했었어요. 아직도 고민이 된답니다. 대체 뭐라고 제목을 정해야 사람들 눈에 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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