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8 샤인머스캣으로 귀농 왔더니 신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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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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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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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DUMMY

“이 씨감자 무게가 얼마나 되어야 한다고?”

“30에서 40그램.”

“그램···? 그게 뭔데?”

“나도 몰라. 30그램에 1온스쯤 된다던데.

“허··· 왜 편리한 온스랑 드램을 안 쓰고 이상한 단위를 쓰는 건지 모르겠어.”

“입 조심해. 잘못하면 감자 한 알도 못 받고 쫓겨날 수 있으니까. 무게는 앞으로 무조건 그램만 쓰라고 하던데.”

“그건 또 뭔···.”

“방금 드램과 온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요.”

“···네모 님?”

“그, 그게 아니라···.”

“아니라면 되었습니다.”


윽, 뭐지? 분명 어디선가 사악한 16진법 단위계 냄새가 났는데.


착각이었나 보다.


아무튼,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당장 중요한 우리 공동체의 상황을 살펴보자.


“감자 토막은 이만큼으로 잘라 땅에 심으십시오! 깊이는 이만큼만 파서 심으면 되겠습니다!”

“다들 간격 똑바로 맞춰 심으십시오! 네모 님께서 여러분께 직접 나누어주신 작물 아닙니까!”


새 주민들의 정착은 어찌어찌 이뤄지고 있었다.


4월쯤 도착해서 약간 시일이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각자 황급히 농사의 대열에 합류했고 다들 텃밭을 일구며 각자가 먹고살 거리를 챙기고 있다.


“네, 네모 님! 저, 저, 저 내일은 교습에서 빠져도 되겠습니까? 어제 4시간밖에 못 자고 일어났습니다!”

“네모 님! 이, 여, 여기만 감자밭만 같이 봐주십시오! 네모 님···!”


어··· 다들 잘 살고 있는 듯 보인다.


아님 말고.


일단 100여 명에 달하는 크로아토안 섬의 잉글랜드인들은 죽을 맛이 되었다.


이들은 몇 년 앞서 아메리카에 정착했다는 죄, 몇 년 앞서 감자와 기타 작물들을 재배해 봤다는 죄로 전원 체서피크 만에 끌려나왔다.


“허억, 허어어억···. 이렇게, 몇 그램 안 되는 분량이지만 이 정도 크기가 씨감자에 적당···”

“그런데 그램이 뭡니까?”

“다, 닥치는 대로 외우십시오. 벌써 여덟 번째로 설명하고 있는데 한 번 더 물어보면 지금 이 낫으로 대가리를 찍어버릴···!”


이들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팔자에도 없던 농사 선생 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당신들 말고는 감자 농사 성공시켜 본 사람들이 거의 없잖아.


그리고 당신들은, 어? 그나마 축복받은 거야. 저기 만테오랑 부족원들 좀 보라고.


“야, 이 새끼들아! 똑바로 안 해!”

“왜 욕을 하고 그러나?”

“그걸 먹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당신 겨울에 굶어죽고 싶어!”

“먹으면··· 안 되는 거였어?”

“이거 먹으면 안 된답니다!”

“어, 진짜? 그게 씨라고? 그렇게 생긴 게?”

“···미치겠네.”


현재 체서피크 식민지의 주민 중 원주민 수가 약 6,000명 이상.

만테오의 부족원들은 200명쯤. 거기에 일할 수 있는 성인의 수는 더더욱 적다.


로어노크 식민지 출신의 잉글랜드인들이 한 사람당 예닐곱 명만 맡아서 가르칠 때, 만테오 쪽 부족원들은 한 사람당 50명 넘게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다.


심지어 부족원들이 맡아서 가르치는 건 원주민들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뭐라고···? ‘짐승’을 사냥해서 잡아먹지 않고··· ‘농기구’로 쓴다···?”

-“‘씨’를 뿌리기 전에 ‘흙’을 판다고···?”


그렇다. 죄다 처음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 탓에 만테오는 이미 나흘 전에 과로로 몸져누워 버렸다.


일단 나랑 1년 넘게 같이 있던 인간들은 죄다 농사 선생 역할을 맡아줘야 했다. 나는? 나는 안 되지. 명색이 천사인데.


어쨌든, 그렇다고 배우는 사람들 입장은 편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월터 롤리의 무분별한 마케팅만 듣고서 여기를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 정도로 생각했던 잉글랜드인들이 많았다.

신세계에서 부자가 될 생각에 부풀었던 그들은 난데없이 찾아온 천사의 장기자랑쇼와 갑작스러운 농사 교실 필수 수강 요구에 정신을 놓아 버릴 뻔했다.


그리고.


“여러분도 빨리 알곤퀸어를 배우십시오!”

“···왜죠?”

“여러분도 원주민들한테 농사를 가르쳐야 하니까요.”

“···???”


토머스 해리엇이랬나?


저 친구가 아주 잘 해주고 있다. 잉글랜드인들한테는 알곤퀸어를, 알곤퀸인들에게는 영어를 가르치면서 상호 교류(농사 수업)을 촉진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이 정착지의 모두가 농사 강의와 외국어 교육에 신음하고 있다.


후우우우··· 난리도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수천 명의 반(半)정주민들을 정착시키고, 수천 킬로미터 바깥의 대륙에서 온 이들을 정착시키는 데 이 정도 공만 들어가는 거면 그래도 대성공이다.


일단 누구 하나 굶어죽은 사람도 없고, 피 흘린 사람도 없으니까.


그렇게 우리 공동체는 굴러가고 있다.


적당히 평화롭게(?), 적당히 바쁘게.


그럼 나는 뭘 하느냐.


별 건 없다.


그저 약품 좀 나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통역도 하고, 각지의 포도 농장들 관리 들어가고, 부상자 생기면 돌보다가, 텃밭이랑 종자들 관리하고, 감자밭에 관리기 돌리고, 농약 치고, 정착지 새로 지을 때 건축 자재 나르고, 사람들 다투면 중재하고···


그냥 다 했을 뿐이다.


···하아.


당연히, 그러고도 할 일이 남았다.


“마, 맙소사! 저, 저, 저게 뭐란 말입니까, 네모 님?”

“···포크레인입니다, 베이컨 씨. 말이 없는 수레에 팔을 달아 만들죠.”

“으어어어어···!”

“저걸 체서피크 만까지 옮길 겁니다.”

“···어떻게요?”

“그건··· 배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베이컨이 미친 사람처럼 노트를 펼쳐 스케치를 이어가고, 셰익스피어는 입을 떡 벌리고는 집필을 멈춘다. 크로아토안 섬으로 불러온 수많은 이들이 구경을 와서 포크레인을 운전할 공간이 없었다.


아무튼.


인간이 개간하기 이전의 중원은 반쯤 밀림이고, 반쯤 늪지대였다지? 이곳도 비슷하다.

대부분이 숲과 늪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니 농지를 확보하려면 벌목과 개간이 필수다.


체서피크 만의 나무들을 잘라내고 그 뿌리를 빨리빨리 치우려면··· 일단 기계가 필요하다.


수백 명분의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계가.


그래. 바지선을 만들어서 노틸러스 호나 다른 배 뒤편에 매달아 움직이면··· 아무튼 크로아토안 섬에서 체서피크 만까지 옮길 수 있지 않을까?


하나뿐인 굴삭기가 바다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 싶을 수 있지만. 괜찮다. 실험을 해봤다.


지난번에 관리기가 바위 사이에 끼었을 때 식겁해서 식은땀만 줄줄 흘렸는데 자정이 지나니 창고로 되돌아가 있더라. ‘행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 여겨지면 수리만 되는 게 아니라 리스폰도 시켜주는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황숙 소프트···!


이제 문제는 한 가지뿐이다.


“약 10톤짜리 포크레인을 옮길 배를 짓기만 하면 됩니다!”

“···.”

“···.”

“···네모 님?”

“예.”

“그게 가장 큰 문제 같습니다만.”

“비센테, 당신의 문제는 바로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람이 무언가에 두려움을 갖는 까닭은 그것에 모습이 없기 때문이지요.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실패에 겁 먹지 마십시오.”

“···아!”


말은 비센테에게 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셰익스피어의 손이 빨라진다. 뭔가 영감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뭐지? 갑자기?


“아무튼, 방법은 찾으면 될 겁니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으니 너무 두려워 마십시오.”

“그··· 만약에 배가 파손되면 많은 걸 잃어버릴 텐데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어··· 아마도.


“일단 여기 포도를 담을 때 쓰는 이 상자를 활용해 보면 어떨까요?”

“스티로폼은 안 됩니다.”

“어··· 왜죠?”


퍼석.


“팜리코 만의 파도는 아주 거세지 않습니까? 이걸로 배를 만들었다가는 위험할 겁니다.”


그래도 한번 실험해 보았고, 결과는···


콰콰콰콰쾅!


···바다로 가기도 전에 포크레인 밑에서 찌그러졌다. 아, 왜 우리가 그 생각을 못 했지?


아무튼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포크레인의 무게를 견딜 만큼 튼튼하면서도 가볍고, 배 하나를 뚝딱 만들 만큼 양이 많아야 하는데. 그럴 물건이 우리 집에 소모품으로 있을 리가···


“여기! 액체 비료가 다 떨어져서 빈 물통을 가져왔는데, 이건 어디다 버리죠?”

“평소에 하던대로 깨끗이 씻어서 없는 집에 물통으로··· 아니, 어.”


어?


IBC(Intermediate Bulk Container) 탱크.


왜 저걸 생각 못 했지?


가벼운가? 철제 팔레트만 밑에서 떼어내면 플라스틱이다.

튼튼한가? 겉이 철제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당연하지.

형태는? 500리터짜리라 적당히 큰데, 네모네모 직사각형 모양이라 블럭처럼 여러 개를 엮고 그 위에 판자를 얹으면···?


곧 바로 널찍한 바지선이 완성된다.


우리는 곧장 집집마다 물통으로 쓰던 IBC 탱크를 수거한 다음 철사로 엮었다. 그렇게 엮은 IBC 탱크 수십, 수백 개를 모아다 바다에 올리자 출렁거리면서도··· 떠 있었다.


성공이었다.


곧장 그 위에 판자를 고정시키고 포크레인을··· 올리니까···.


쿵!


···됐다.


“성공이다!”

“저 괴물을 진짜로 바다 위에 띄웠어!”


됐다. 바지선을 완성했고 그 위에 포크레인을 올렸다? 이제 다마스든 아무리 무거운 기자재든 바다로 옮길 수 있다는 뜻이다.


크로아토안 밖으로 말이다.


“후우우··· 이제 저걸 옮길 사람이 상당히 고생하겠습니다? 구조를 보니 저 바지선을 뒤에다 달고서 체서피크만까지 끌고 나가야 할 텐데.”

“그렇죠. 아주 위험한 항해일 겁니다.”

“···.”

“···.”

“···수고해 주십시오, 비센테.”

“역시 저군요.”


당연하지. 너 선장이잖아.

3년 전에 날 죽이러 왔던 죗값을 치러라, 비센테!


“포크레인? 주님께서 도우시기에 망가져도 되돌아올 겁니다. 바지선이요? 재료는 많으니 망가지더라도 또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노틸러스 호가 부서지면···.”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죠.”


비센테 곤잘레스, 48세.

포크레인에 치여 죽을 뻔한 최초의 인류.


그는 과연 이번에 포크레인과 함께 바다에 수장되는 최초의 인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헉, 허억···. 사, 사, 살았···.”

“수고 많았습니다.”


다행히도 포크레인은 수장되지 않았고 비센테 곤잘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며칠 동안의 대장정을 거쳐 체서피크 만에 포크레인이 도착하자 사람들이 미친 듯이 몰려와 구경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쿠콰콰콰콰쾅!


예상했던 대로 체서피크 만의 농지 면적이 순식간에 몇 배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벌목 작업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땅을 파고, 나무 뿌리를 들어내서 완전히 치워버리는 게 힘들지.


우리는 목재를 구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개간이 목적이니 나무 밑동까지 송두리째 치워야 하고.


그 작업에 포크레인이 동원되자 작업은 몇 배로 빨라졌다.


순식간에 수십 헥타르의 땅이 새로 개간되어 알곤퀸인들과 잉글랜드인들에게 분배되었다. 이제 4월 말이니 아슬아슬하게 몇몇 작물들의 재배 시기와 겹쳐서 다행이었다.


땅을 개간하면서 생긴 목재로 집을 짓고, 교회를 올린 이들은 하나둘씩 비좁은 선실에서 나와 체서피크 만에 정착했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크로아토안과 달리 체서피크 만에서는 무한으로 청정수가 나오지 않는다.


“끄으··· 끄으윽···!”

“배앓이가 심해요! 아이가 계속 설사를 하는데···!”

“일단 이 해열제를 먹이십시오! 마거릿!”

“수액 여기 있어요!”


그 탓에 몇몇 사람들이 배앓이를 심하게 하고 고열에 시달렸다. 나는 배앓이 환자가 나온 근처 집집마다 바지선을 만들고 남은 IBC 탱크를 놓았다.


“다들 저 탱크에 물을 채우고서, 이 액체를 살짝 타십시오. 이 액체를 만지거나 마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아, 아, 알겠습니다!”

“다들 기억하십시오! 한동안 반드시 물은 끓여서 마셔야 합니다!”


물에 락스를 타 마시거나, 아니면 끓여 마시거나.


그 간단한 사실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며칠만에 원인 모를 질병이 사그라들었다. 사람들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마을과 정착지가 생기고, 식민지가 자라나는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바쁜 일들이 마무리되고 나자 월터 롤리가 찾아왔다.


“맙소사··· 정말로 이게 될 줄이야.”


그는 반쯤 감동받아 눈물을 흘렸다.


“바로 얼마 전만 하더라도 파산 직전이었는데··· 이제 식민지에 수천 명의 백성이···. 게다가, 저 목재!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런 목재는 이제 잉글랜드에서는 구경도 못 합니다!”

“그렇습니까?”

“예. 저런 크기의 참나무를 구하려면 러시아나 덴마크, 스웨덴 등지에서 들여와야 하죠. 특히 지난 스페인과의 해전에서 수십 척 넘게 깨졌으니 지금 목재가 없어 난리일 겁니다.”

“그럼 저걸 가지고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 크고 무거운 걸 들고서, 대서양을 건널 수 있을까요? 말과 젖소 300마리 실어오는 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제 목숨을 걸었었죠.”

“흠···.”

“하아··· 저걸 가져갈 방법만 있다면 여왕 폐하께 신임을 얻기란 참 쉬워질 텐데.”


스페인이라.


그래. 아메리카에는 스페인이 있었다.


이곳이 잉글랜드의 군사기지로 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미 전함 몇 척을 이쪽으로 보낸 적이 있었지. 실제로 충돌도 했었고.


웬만하면 둘 사이의 전쟁에서 잉글랜드가 적당히 우세를 점해 줘야 여기도 안전하고 편한데···.


그리고, 꼭 군함이 아니더라도 다른 수출품들 생각하면 우리도 빠르게 움직이는 수송선 몇 척이 있으면 편해질 테다.


“그, 롤리 경? 배는 여기서 건조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게 말이 되는 일이겠습니까? 일단 목재부터 숙련된 선원과 조선공, 거기에 각종 기자재···가··· 필요···.”

“···.”


갑자기 롤리의 눈이 커지더니 내 쪽을 바라본다.


그도 생각난 것이다.


이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기자재가 있다.


“···.”

“···.”

“···생각해 두신 설계라도 있으십니까?”

“있기는 합니다. 제가 선박에 대해 잘 몰라서, 일단 그림으로 보여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요.”

“크로아토안까지 따라오시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롤리는 크로아토안의 정착지로 돌아왔다.


나는 곧장 컴퓨터를 켜서 19세기를 다룬 도시 빌딩 게임 ‘Anno Domini 1800’의 화면을 캡처, 인쇄해 가져갔다.


“제가 항해에 무지해서 이런 게 괜찮을지 잘 모르겠군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제게 여러번의 선박 설계 경험이 있으니 알아서 잘 보고··· 판단···을···.

“···.”

“···이런 배가 세상에 존재한 적 있습니까? 이 그림은, 어, 어디서 가져오신···!”


대강 19세기 선박이니까 지금 것보다야 낫겠다는 생각으로 가져온 건데.


나는 인쇄해 온 자료를 읽으며 그에게 말했다.


“배의 이름은 클···리퍼? 클리퍼라고 합니다.”

“돛의 배치가··· 예사롭지 않군요. 이 배의 속도가 얼마나 됩니까?”

“저는 잘 알지 못하겠군요. 저도 전해 들은 바인지라.”

“맙소사, 주님.”


신에게 선박 설계도를 받았다 생각했는지 갑자기 열정적인 탐험가 겸 여왕의 섹스토이 월터 롤리의 눈이 불타오른다.


“이 배가 지어진다면 그 속도는 정말 만만찮을 겁니다! 장담하지요! 클리퍼! 이름도 경쾌하니 좋군요!”


숙련된 뱃사람인 그는 뭔가 직감적으로 알아낸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영 모르겠지만.


“일단 그러면 조선공도, 설계사도 필요할 테니 당장 움직여야 하겠군요. 하긴, 슬슬 런던으로 돌아갈 때가 되기는 했지요.”

“돌아간다고요? 런던으로요?”

“예! 아마 2개월에서 3개월쯤 뒤 런던에 도착하게 될 겁니다! 안 그래도 정착민들 중에 일가친척들을 데려오고 싶다는 이들이 많기도 하니 사람을 모으는 데 몇 달 정도는···.”

“···돌아올 때까지 1년 정도는 걸리겠군요.”

“예? 뭐, 그렇지요?”

“쓰으으읍··· 그렇다면 조심해야 할 겁니다.”

“물론 조심하는 게 당연하지요! 제게 항해가 아무리 익숙해도 저는 항상 조심합니다!”

“아뇨. 항해 말고 런던 말입니다. 흑사병이 돌고 있을 테니.”

“···예?”

“지금이 5월 초이니 런던에 도착하면 딱 흑사병이 돌기 시작한 8월쯤일 겁니다. 몸 조심하십시오.”

“···.”

“아 참, 그리고 챙겨드릴 것들이 좀 있습니다. 여기 이 비타민제를 챙기십시오. 이걸 며칠마다 한 번씩 선원들에게 먹이면 괴혈병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괴혈병을요? 그 알약 하나로요?”

“예.”


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비타민제를 그에게 보여주고 난 다음, 손목 시계를 풀어 그에게 건넸다.


“이곳 크로아토안의 시간으로 고정된 시계입니다. 선상에서는 이것으로 시간을 확인해서 경도를 파악하십시오. 지도까지 드리면 아마 위치 파악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

“그리고··· 어··· 아, 옷 하나를 챙겨드리겠습니다. 제가 농약을 뿌릴 때 입는 방호복인데 그것만 입고 있으면 환자와 접촉해도 흑사병에 걸릴 확률이 줄겠죠. 마스크도 챙겨드릴 테니 도착하면 선원들에게 씌우십시오.”

“···.”

“그리고, 떠날 때 제가 약 하나를 드릴 겁니다.”

“···약이요.”

“예. 먹힐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적절한 시기에 주사하면 흑사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흑···사병을, 치료한다고요? 주사한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흠··· 나중에 마거릿 로렌스 양을 데려가십시오. 로렌스 양이 알려 줄 겁니다. 물이 썩지 않게 락스 타 마시는 것도 잊지 말고요.”

“···업, 어버법?”

“롤리 경?”

“···.”


급하게 이것저것 전하고 나니 롤리의 표정이 멍해 보였다.


마치 폭풍이 그를 휩쓸고 간 듯했다.


작가의말

MN 님, 애독자0 님, 조선냉면 님, qoochang1 님, 앤젤머스켓 님, 얼룩아범 님, 데리어 님, 파딤 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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