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꿈을 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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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엘민
작품등록일 :
2024.05.08 16:44
최근연재일 :
2024.05.2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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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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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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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깨어나다.

DUMMY

***



“으음”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어와 콧등을 간지럽혔다.

어느새 간지러움은 극에 달하며 달콤한 내 잠을 방해했다.

결국, 나는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에취”


재채기와 함께 일어난 나는, 내 침을 얼굴에 가득 묻힌 한 남자와 마주쳤다.

내 코에는 남자의 손에 들린 강아지풀이 맞닿아있었다.


이 남자가 강아지풀로 내 코를 간지럽힌 건가?


“아, 죄송합니다”

일단 빠른 사과.


남자는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강아지풀을 거둬 들였다.

아니, 애초에 강아지풀로 내 코를 간지럽힌 당신이 잘못한 거잖아.


“근데 누구세요? 왜 제 코에 강아지풀을?”

“김 혁”

“··· 그게 끝이에요? 아니, 제가 이름을 묻는 게 아니라···”


대답 한마디에서 보이는 이 남자의 성격.

나는 그만 입을 닫고 말았다.


근데 잠깐.

여긴 대체 어디지?


몸을 일으켜 눈을 돌리니 낯선 환경이 내 눈앞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나는 넓은 들판의 어느 한 언덕에 누워 있었다.

내 아래로 푸릇푸릇한 잔디가 부드럽게 깔려 있다.

위로는 거대한 구름이 하늘을 빼곡하게 덮었다.


이렇게나 빽빽한 구름이면 날이 흐릴 만도 한데, 날씨는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화창하다.

대체 햇빛이 어떻게 투과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촘촘한 구름.

덕분에 무언가에 갇힌 듯한 답답함이 몰려온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하게 솟은 산.

산은 어찌나 거대한지 중턱에서부터 구름과 맞닿아있을뿐더러, 정상은 보이지도 않았다.

저런 산이 집 근처에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적어도 내가 살던 곳은 아니다.

아니, 살던 곳을 넘어 지구상에 저런 큰 산이 존재했던가?


“어디에요, 여긴?”


당황스러움에 저절로 내 눈앞의 남자에게 질문이 나갔다.


“몽계”

남자는 또다시 간결하게 대답했다.


“몽계요?”

남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

내가 몽계가 뭔지 알겠냐고.


진짜 말 섞기 싫은 타입이다.

그래도 이 상황에서 의지할 건 이 남자 뿐이기에 마음을 다시 잡았다.


“몽계가 어딘데요?”

“꿈속 세상”

“네? 꿈속 세상? 여기가 꿈속이라고요?”


남자가 이번에는 무응답으로 긍정의 의미를 내뱉었다.


말도 안 돼.

여기가 꿈속이라고?

눈앞의 모든 게 이렇게나 선명하게 보이는데.

손의 감촉도, 풀의 내음도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정확히는 영몽증 속인 거지”

남자가 처음으로 먼저 입을 열어 길게 말했다.


영몽증 속이라고?


아, 그렇구나.

나도 결국 영원한 꿈속으로 들어오게 된 거구나.

허탈함이 몰려와 저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20XX년, 어느날.

일명, ‘영몽증(永夢症)’ 이라 불리는 병이 전 세계에 퍼졌다.

이 병은 감염된 모두를 ‘영원한 꿈’속에 가뒀다.


그저 잠자는 것.

병의 증세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그저 잠을 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다시는 깰 수 없는 잠이라는 것.

적어도 내가 잠들기 전까지는 영몽증에서 깨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처음엔 한두 명으로 시작하던 발병 숫자는 어느 순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어느새 영몽증은 전 세계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다.

단지 꿈을 꾸는 것 이외의 어떤 증세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대체 무엇이 잠자는 사람들을 죽인 것일까?

원인과 치료법을 알기 위해 전 세계가 힘을 합쳐 연구를 거듭했지만 밝혀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패닉에 빠진 모두는 그저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뉴스에서 전 세계 인구의 90%가 영몽증에 걸렸다는 보도를 본 후,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정확히는 다시 켤 수 없었다.

다시는 방송을 하지 않았기에.

앵커고 기자고 모두 영몽증에 걸린 거겠지.


그리고 찾아온 세상과의 완벽한 단절.

영몽증이 전염성이 있다는 소문이 돈 후로, 사람들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일하게 세상과의 연결 고리였던 텔레비전이 사라지자 나는 오롯이 홀로 남게 되었다.


어느날은 용기를 내어 집 밖으로 나섰다.

먹을 것이 다 떨어졌기도 했거니와,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절망했다.

거리엔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건물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눈앞의 남자가 반가운 것은,

아마도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여긴 영몽증에 걸린 사람들이 사는 세상. 몽계(夢界)”

“처음부터 그렇게 설명을 해주던가”

“뭐라고?”

“아, 생각만 한다는 게 입 밖으로 튀어 나갔네요”


남자가 짜증이 살짝 난 듯한 표정으로 내게서 시선을 거뒀다.

원했던 반응, 쌤통이다.


응? 근데 남자의 허리춤에 달린 저건,

진짜 검이잖아.


나도 모르게 남자에게 다가가 검을 빼 들었다.

스릉하고 최근에 벼려진 듯한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꿈인 것치고는 진짜 같네”


진검의 무게가 팔에 전해졌다.

도신을 보자 내 얼굴이 깨끗하게 반사되어 비친다.


왠지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였다.

검을 들어도 팔이 아프지 않아···.


검을 꽉 잡은 손에 손잡이의 가죽 느낌이 전해졌다.

비록 내 검은 아니지만 그리운 감각.

조금만, 조금만 더 느끼고 싶어.


“진짜 같은 게 아니라 진짜니까”

“근데 당신, 아까부터 왜 자꾸 반말이신지?”

“너, 이름은 차현우에 나이는 스물다섯 아닌가?”

“맞는데···요?”


모르는 사람이 내 신상을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저절로 위축된다.

근데 뭐지?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인가?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나는 이 사람을 모른다.


“스물다섯이야, 나도”

“그럼 나도 말 놓는다···요?”

“놔”

“응”


기회는 왔을 때 덥석 물어야 하는 법.

난 주저하지 않고 말을 놨다.


“그건 그렇고 진짜라는 건 무슨 뜻이야?”

“네가 느끼는 모든 것. 저 구름, 이 검. 모든 게 진짜라고”

“여긴 꿈속이라며?”

“그랬지. 하지만 이젠 여기가 현실이야.”

“뭐?”

“몽계가 원계를 잠식한 순간부터 몽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현실이라는 거다”

“원계는 또 뭐야?”

“우리가 원래 살던 세계. 지구”

“그럼 이제 다시 원계, 지구로는 돌아갈 수 없는 거야?”

“그렇지. 영몽증에서 깨어난 사람 봤어?”

“아니,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가능성이란 게···”

“귀찮게 말이 많네. 믿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머리에 새겨 넣어. 이곳은 몽계,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아야 해”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일단 이 싹수없는 남자의 말을 정리해보자면.

여긴 영몽증에 걸린 사람들이 살아가는 꿈속 세상.

나는 이제 죽기 전까지 여기서 살아가야만···.


“키에엑-”


등 뒤에서 갑작스레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가 나의 사고를 멈췄다.

듣기만 했는데도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괴한 소리가.


나는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쫓았다.


사람?

아니, 저건 사람이면 안 된다.


커다란 나무 뒤에서 사람의 형태를 띤 무언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괴생명체의 전신과 얼굴.


심지어 그것의 얼굴엔 눈코입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괴담에 나오던 달걀귀신이 딱 이런 모습이겠지.

근데 나랑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괴물의 손가락은 매우 길고 날카로웠다.

저런 것에 찔리면 비명도 못 지르고 죽을 것이 분명했다.


덕분에 저 괴물은 내 목숨을 보전하는 데에 필시 위협이 될 것을 단번에 직감했다.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괴물이 발을 한 걸음 움직였다.

또 한 걸음, 한 걸음.

점점 나와 가까워지는 거리.


발아, 제발 좀 움직여라.

하지만 공포심에 마비된 하체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치겠네.


눈은 저절로 괴물의 발걸음을 재기 시작했다.

저 괴물이 내게 도달하기까지 대략 스무 걸음.


열아홉, 열여덟.

··· 열.


젠장, 이젠 진짜 움직여야 한다고.


아홉.


그 순간, 괴물이 사라졌다.

두 눈으로 괴물의 발걸음을 세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음에도 놓쳤다는 사실에 공포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찾아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어디야?

어디냐고!


“검”


옆에 있는지도 잊고 있었던 남자의 목소리가 자그맣게 귀에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꽉 쥐고 있던 검을 본래의 주인에게 양도했다.


자신의 검을 받은 남자는 귀찮다는 듯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사라졌다.


내가 뭘 본 거야?

아니, 뭘 못 본 거지?

대체 여기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다시 키엑-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남자의 손에는 검은 액체가 질퍽하게 묻은 검은색 구슬이 들려 있었다.

나는 묻지 않아도 검은 액체가 조금 전 괴물의 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시나, 검은색 구슬이 남긴 검은 피의 발자취를 눈으로 따라가 보니 괴물의 시체가 있었다.

깔끔하게 목과 분리된 몸.

절단면이 너무나 반듯하다.


김 혁이라고 했던가?

이 사람 실력이 대단하다.

저렇게 절단면이 반듯하려면 일격에 빠르고 강하게 베어야 한다.

움직이는 생명체를 단 일격에 벨 정도의 집중력과 힘.


“아까 그 괴물의 이름은 몽령. 인간이 들어오기 전부터 몽계에 존재하던 녀석들이지. 이건 영옥이라고 하는 거다. 일반 몽령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오늘은 운이 좋았군”

김 혁이 손에 들린 검은색 구슬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까 그거, 날 공격하려고 한 거 맞지?”

그 생김새를 떠올리면 아직도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몽령에게 인간은 적이야. 인간이 자신들의 세계를 빼앗았다고 생각하거든.”

김 혁이 검을 검집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대체 여긴 어떤 세계인 거지?

어떤 세계이길래 저런 괴물이 존재하는 거야?


몽령에 영옥.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안심해. 난 강하니까. 몽령 따위는 몇 백 마리고 죽일 수 있어”

김 혁이 역시나 무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뭘 안심하라는 거야?

계속 나랑 같이 있어 주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고마워”

처음으로 김 혁의 얼굴을 자세하게 바라봤다.


붉디붉은 머리칼.

눈썹을 덮을 정도로 내려온 반곱슬의 앞머리.

길게 찢어져 날카로워 보이는 쌍꺼풀이 있는 눈매.

머리와 같은 색의 붉은 눈동자.

높게 솟은 코와 적당히 큰 입.


잘생겼다.

키도 크고 비율도 좋네.

그래도 서윤이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은···.


어?

잠깐만.

김 혁이 아까 뭐라고 했지?


“야. 여긴 영몽증에 걸린 사람들이 사는 세계라고 했지?”

“그렇다고 몇 번 말해야 해?”

“영몽증에 걸린 모든 사람이? 한 명도 빠짐없이?”

“아직 안 죽었으면 살아있겠지”


진짜 성격하고는.

그래도 덕분에 나의 목표가 생겼다.

이 세계를 살아갈 원동력이.


윤서윤.

조금만 기다려줘.

반드시 난 널 찾고 말 거니까.

그전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어 줘, 제발.


너무너무.

너무나 보고 싶어.


서윤이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온다.

내게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아름다운 내 첫사랑.


“궁상 그만 떨어. 일어나”

김 혁이 검을 다시 검집에 넣으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어디 가는데?”

“내 집”


그렇게 나는 김 혁의 뒤를 따랐다.

굳이 따라갈 이유는 없거니와, 굳이 따라가지 않을 이유도 없기에.


절대 다시 그런 괴물이 나올까 봐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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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발화 (2) +1 24.05.10 17 2 12쪽
7 발화 +1 24.05.09 17 2 12쪽
6 붉은 머리 길드 입단식 +1 24.05.09 17 2 13쪽
5 붉은 머리 입단 시험 (2) +1 24.05.08 17 2 11쪽
4 붉은 머리 입단 시험 +1 24.05.08 18 2 11쪽
3 깨어나다. (3) +1 24.05.08 20 5 13쪽
2 깨어나다. (2) +1 24.05.08 23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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