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꿈을 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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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민
작품등록일 :
2024.05.0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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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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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 (2)

DUMMY

***



적막한 아침의 고요한 바다 위에 그렇지 못한 배가 한 척 떠 있다.

배의 키를 잡은 건 바로 민채리.


“사, 살려줘”


작은 배가 왼쪽으로 90도 가까이 치우쳤다가 오른쪽으로 치우친다.

몇 초에 한 번씩 뒤집힐 듯 거세게 흔들리는 배.


아니, 바다에 파도도 안 치는데 대체 어떻게 운전을 하고 있는 건데···

내가 당장 키를 잡아도 이거보다는,


“우, 우웩-”


결국, 내 위는 버티지 못했다.

난간을 붙잡고 속에 들어있던 모든 것을 바다로 남김없이 분출했다.


배는 구름의 섬 항구에 도착해서야 겨우 안정이 되었다.


“다시는 네 배 안 타”

“미안. 배 운전은 오랜만이라”


사람 죽일 뻔 해놓고 그렇게 해맑게 웃으면 다야?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육지에 내딛자 안도감이 몰려온다.


“제발 조심히 가. 진짜 제발”

“응!”


열심히 키를 돌리며 다시 우회하는 민채리를 보자, 저절로 걱정이 든다.

민채리,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나저나 몽계에 혼자 떨어진 건 처음이다.

몽계에 들어온 뒤로는 항상 함께였으니까.


원계에 있을 때,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주말만 되면 혼자 배낭여행을 즐기곤 했다.

서윤이를 만난 뒤부터 못 가긴 했지만.


그럼 오랜만에 여행을 혼자 즐겨볼까!


하늘을 보니 여전히 하늘을 잔뜩 메운 구름이 나를 마주했다.

이제 두 번째긴 하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야.


구름의 섬 항구는 되게 포근한 느낌이었다.

곳곳에 세워진 표지판과 여기저기 놓인 의자들의 모양이 다 구름 모양이었다.


항구에 난 길을 따라 안으로 조금 걷자, 큰 광장이 나왔다.

광장 한가운데에 거대한 분수대가 있었는데, 분수대엔 작은 오리 모형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귀여운 곳이네, 구름의 섬은.


“길 좀 물을게요. 혹시 솜사탕 마을로···”

“떼잉, 쯔쯔. 그 불길한 곳엔 왜 가려고?”


한 할아버지에게 길을 묻자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핀잔이 돌아왔다.


“불길한 곳이요?”

“비명과 죽음이 가득한 곳에 뭐하러 가냔 말이야. 밤마다 양들이 죽어 나가!”

“그 문제를 해결하러 왔어요. 어디로 가면 되죠?”

“허, 젊은이가 고집이 세구먼. 자, 이걸 따라가게”


할아버지가 몽력을 공중에 흩뿌렸다.

구름 모양의 화살표가 공중에 생겨났다.

화살표는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꿈틀거렸다.


“감사합니다!”

“젊은이!”


화살표를 따라가려는 순간, 할아버지가 내 팔을 붙잡았다.


“괜히 나서서 휘말리지 말게나. 노파심에 하는 말이 아니야. 구름의 섬에 뭔가 거대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네. 내 느낌은 틀린 적이 없지”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게 제 임무인걸요.

안 갔다가는 겨우 얻은 보금자리를 잃을지도 몰라요.

이 자리를 잃으면 서윤이를 찾기 힘들어진다고요.


화살표는 계속해서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꿈틀거렸다.

나는 화살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곳, 은하수의 섬.

낮임에도 하늘엔 수많은 별이 떠 자신들만의 색을 발하고 있다.

심지어 하늘의 어느 곳에는 은하수가 보이는 듯하다.


은하수의 섬은 어디를 가더라도 아름답고 몽환적이지 않은 곳이 없다.

‘낭만의 섬’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섬의 한가운데에 있는 ‘황홀한 평원’.

포근한 색의 갈대들이 바람의 리듬에 맞춰 아름다운 몸짓을 자아내고 있다.


넓은 평원은 수많은 갈대로 가득 메워졌지만, 단 한 구석만큼은 비어 있었다.

갈대가 둥글게 빈 곳엔 긴 책상과 수십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에 수십 명의 사람이 앉아 있다.

단 두 자리를 제외한 모든 자리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서로 눈만 마주칠 뿐, 어떤 대화도 나누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갈대가 갈라지며 붉은 머리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지각이다”

자리에 앉아 있던, 우는 얼굴의 가면을 쓴 여자가 차갑게 말했다.

여자의 등에는 검은색의 망토가 길게 매여있었다.


“미안하게 됐어. 어딜 좀 들렀다가 오느라”

민채리가 가면의 여자에게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

하지만 미소가 차가워 보이는 건 왜일까.


민채리와 김 혁은 비어 있던 두 자리로 가 앉았다.

공교롭게도 빈 두 자리는 중앙의 상석이었다.


“길드 총회의는 오랜만이군”

긴 흑발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여자의 이름은 엘라 크리스틴.

몽계 3대 길드 중 하나인 ‘흰 방패 기사단’의 단장.


전신을 감싼 흰 갑옷 위로 검은 생머리가 길게 내려왔다.

앞머리가 없어 훤히 드러난 이마.

백옥처럼 하얀 피부.

짙은 눈썹과 쌍꺼풀. 오뚝 솟은 코와 작은 입.


누군가 차가운 느낌의 미녀의 기준을 묻는다면, 누구나 엘라를 말할 것이다.

그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얼굴에서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총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엘라가 민채리를 보며 물었다.


“오자마자 본론이야? 숨 쉴 시간 정도는 주면 안 돼?”

민채리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모인 모두를 둘러봤다.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민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길드에 두 명씩이니까 적어도 열 개 길드는 온 거네. 좋아, 뭐 이 정도면 충분해”

말을 마친 민채리는 턱을 괸 채, 할 말을 정리하는 듯 뜸을 들였다.


“먼저, 몽령 토벌에 관해서야. 지금은 정해진 구역이 없잖아? 충분히 이번 사건은 일어날 만했어. 아니, 지금껏 이런 사건이 안 일어났던 게 이상했지”

“이번 사건이라고 하면?”


누군가 민채리의 말을 끊고 물었다.


“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 같아 설명할게. 최근, 갑자기 나타난 특이형 몽령을 토벌하기 위해 우리 길드가 움직였어.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토벌된 상태였지”

“누가 이미 토벌을 했나 보군”

“맞아.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야. 토벌된 몽령 앞에서 세 개의 길드가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어. 그게 어떤 길드인지는 말 안 해도 본인들이 잘 알겠지?”

“뭐? 대체 어떤 놈들이···”


민채리의 말에 의자에 앉아 있던 몇 명이 고개를 숙였다.


“서로에게 검을 든 이유는 하나야. 영옥의 소유권. 특이형 몽령에게서 나온 영옥을 서로 가져가기 위해 검을 든 거지”

“말도 안 돼. 영옥이 아무리 희귀하다고는 해도 서로에게 검을···”


누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모두 알겠지만 요즘 몽계가 변하고 있어. 원래 잘 보이지 않던 일반형 몽령은 고사하고, 특이형 몽령 또한 이곳저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누군가 공격적으로 물었다.


“채리 말 끊지 마, 죽기 싫으면. 한낱 소형 길드 나부랭이 주제에”

김 혁의 검 끝이 순식간에 민채리의 말을 끊은 남자의 목에 닿았다.

남자는 김 혁의 엄청난 속도에 압도되어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작다고는 해도 한 길드의 대표였을 터인 남자였지만, 남자는 자신과 김 혁의 격차를 알고 있었다.


“괜찮아, 혁아. 자,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토벌 구역의 정리 및 분배’야”

민채리가 김 혁의 팔을 잡자, 김 혁이 다시 검을 검집에 넣었다.


“구역을 어떻게 나눌 거지?”

“주요 섬 다섯 개를 네 등분하여 나눈다. 그럼 스무 개의 구역이 나오게 되지. 몽계엔 길드가 스무 개가 안 되니 이렇게 나누면 충분하지.”

김 혁이 민채리 대신 대답했다.


“구역은 각 길드 당 하나씩인가? 그렇게 되면 남는 구역이 있을 텐데. 게다가 주요 섬이 아닌 작은 섬들은? 그 섬들에 특이형 몽령은 출몰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

“남는 구역은 분기를 정해 모든 길드가 돌아가며 맡도록 할 거다. 작은 섬들의 경우는 이제 정하면 될 것 같군”

김 혁이 이어 대답했다.


“분배의 기준은?”

“각 길드의 구역은 현재 각 길드의 본부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정한다. 길드 본부가 세워진 곳은 모두 다르니”

“싫다면? 우리 길드가 왜 굳이 토벌 구역을 제한해야 하지? 그리고 너희가 뭔데 감히 기준을 세우는 건지?”

우는 얼굴의 가면을 쓴 여자가 김 혁의 말을 끊었다.


여자가 속한 길드는 ‘환락(歡樂)’.

몽계의 3대 길드 중 하나로, 강함에 따라 등에 매달린 망토의 색이 다르다.

망토의 색은 총 4개.

하얀색, 파란색, 검은색, 노란색의 순서로, 색이 올라갈 때마다 몇 배는 더 강하다는 뜻이었다.


“레지네 님의 말에 동의한다. 짝퉁 주제에 이래라저래라 왈가왈부하는 게 어이가 없군”

푸른색의 망토를 두른 남자가 이어 말했다.


“뭐, 이렇게 하는 건 어떻냐는 제안이었어. 그러니 너무 살기 뿜지 말아줄래?”

민채리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가 정한 방식의 동의에 대한 투표를 받겠다. 투표권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주도록 하지”

김 혁은 말을 마치고는 몽력을 흩뿌렸다.


검은색의 안개가 김 혁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허공으로 흩어졌다.

검은 안개는 자리에 앉아 있는 모두에게 균등하게 나누어졌다.


“찬성과 반대.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둘 중 자신의 대답을 선택한 후, 몽력을 안개에 흘려보내면 된다.”

김 혁이 짤막하게 말하고는 먼저 안개에 자신의 대답을 흘려보냈다.


곧, 모두가 자신의 대답을 안개에 입력했다.

대답이 입력된 안개들은 공중으로 떠올라 다시 하나로 뭉쳤다.


“그럼 투표 결과를 보도록 하지”

김 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안개가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안개는 찬성 90% 반대 10%라는 글자로 변했다.


“결과는 이러하다. 모두가 투표한 결과이니 반대자들은 승복하도록”

“거짓말. 결과를 네가 조작하지 않은 거라는 보장은 어디 있지?”

푸른 망토를 두른 남자가 김 혁의 말에 거칠게 반박했다.


“애송이가 아까부터 쫑알쫑알 시끄럽게”

순간 사라졌던 김 혁이, 푸른 망토 남자의 앞에서 나타났다.

김 혁의 손은 남자의 얼굴을 꽉 뭉개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얼마나 응축되었는지, 김 혁이 조금만 힘을 더 주면 남자의 얼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손 치워”

우는 얼굴의 가면을 쓴 여자가 차갑게 말했다.


“강아지 교육 똑바로 해”

김 혁이 손을 놓자, 잡혔던 남자가 풀리며 기침을 거칠게 내뱉었다.


“또 투표 결과가 궁금하거나 이의가 있는 사람은 따로 찾아오도록 해. 친절하게 상대해줄 테니까”

김 혁의 경고를 끝으로 모두는 조용해졌다.


“자, 그럼 두 번째 안건이야. 아니, 이건 안건이라기보다는 통보지”

민채리가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민채리에게 향했다.


“한 달 뒤, 난 몽계를 부순다.”

“그말은···”

“그래. 붉은 머리가 도치자에게 도전을 하겠다는 거야”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그동안 잠잠하던 붉은 머리가 움직이게 된 거지?”

누군가 민채리에게 물었다.


“이제 악몽은 지긋지긋해서 말이야. 여기 모인 모두가 몽계를 부수기 위해 길드를 만든 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너희들 이미 몽계에 만족하며 살고 있잖아? 그 누구도 도치자에게 도전을 하려는 길드가 없어”

민채리의 말에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왜? 이 세계가 만족스러워? 힘 좀 있겠다, 편하게 살고 싶은 거야? 난 그렇게 못 해. 서로를 죽고 죽이며 살아가야만 하는 이 세계 따위는 부숴야 마땅해. 다시 한번 말할게. 나, 민채리는 앞으로 몽계를 부순다. 내 앞을 막는 사람은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



“오빠!”

혼자 있던 김 혁의 이름을 누군가가 불렀다.


“역시 찾으러 올 줄 알았어.”

김 혁이 자신을 부른 사람을 향해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김 혁에게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환한 미소가 김 혁의 얼굴을 가득 꽃피웠다.

그리고 그 미소는 상대방의 얼굴에서도 볼 수 있었다.


김 혁을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엘라 크리스틴.


엘라가 뛰어와 김 혁에게 안겼다.


“보고 싶었어”

엘라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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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구름 영탈전 (5) 24.05.21 8 1 12쪽
23 구름 영탈전 (4) 24.05.21 7 1 11쪽
22 구름 영탈전 (3) 24.05.20 7 1 11쪽
21 구름 영탈전 (2) 24.05.18 8 2 13쪽
20 구름 영탈전 24.05.18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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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가면 술래잡기 (3) 24.05.17 9 1 11쪽
17 가면 술래잡기 (2) 24.05.16 9 2 12쪽
16 가면 술래 잡기 24.05.15 11 1 11쪽
15 검을 잡은 이유 (4) 24.05.14 13 0 12쪽
14 검을 잡은 이유 (3) 24.05.13 11 1 12쪽
13 검을 잡은 이유 (2) +1 24.05.12 13 1 11쪽
12 검을 잡은 이유 +1 24.05.12 12 2 13쪽
11 발화 (5) +2 24.05.11 15 2 12쪽
10 발화 (4) +1 24.05.11 15 1 12쪽
9 발화 (3) +2 24.05.10 18 2 12쪽
» 발화 (2) +1 24.05.10 17 2 12쪽
7 발화 +1 24.05.09 17 2 12쪽
6 붉은 머리 길드 입단식 +1 24.05.09 17 2 13쪽
5 붉은 머리 입단 시험 (2) +1 24.05.08 17 2 11쪽
4 붉은 머리 입단 시험 +1 24.05.08 18 2 11쪽
3 깨어나다. (3) +1 24.05.08 20 5 13쪽
2 깨어나다. (2) +1 24.05.08 23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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