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시착

“몸은 좀 어떠십니까?’
“나쁘지 않습니다.”
“다행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성현을 그라논 대위가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그 시선을 눈치챈 성현이 묻자, 그라논 대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첫 작전에서 너무 많은 일을 겪은 것 같네요.”
그의 말에 성현이 살짝 웃었다.
“그래도 전투가 처음은 아닙니다. 이전 56대대에서도 몇 번 있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영웅급 개체는 처음이었죠.”
“···.”
성현은 처음 그것과 마주쳤을 때를 떠올렸다.
행성에 도착하기 직전 우주선을 부수며 등장한,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거대한 존재감.
그리고 행성에 불시착한 이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던 하늘을 짓누르며 등장하는 영웅급 괴수의 압박감.
“운이 좋았습니다.”
성현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체내에 <멸망 부름 버섯>을 저장해 놓고 있지 않았다면?’
그 괴수는 멀쩡한 상태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선발대와 성현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을 것이다.
성현은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펼쳤다.
<화이트 크라운>으로 이루어진 육체는 유달리 뽀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에 색깔의 변화가 확 눈에 들어왔다.
5개의 손가락 중 그 끝의 색이 변한 3개의 손가락.
붉은색의 검지에는 <붉은 폭탄 곰팡이>가,
보라색의 중지에는 <멸망 부름 버섯>이,
그리고 마지막 약지에는···.
“그 검은색은?”
처음 보는 색감에 의문을 표하는 그라논 대위.
“아, 이건···.”
성현의 시선이 잠시 그를 따라온 갑주로 향했다.
“그 영웅급 괴수의 고유 세계가 멸망하며 남은, 세계의 조각에서 탄생한 균사체입니다.”
성현의 시선이 잠시 그의 부사관 정보창으로 향했다.
[보유 무장: 화이트 크라운, 백면, 붉은 폭탄 곰팡이, 멸망 부름 버섯, ???]
정보창의 보유 무장 카테고리 가장 마지막 칸에 생겨난 ‘???’.
[???]
[멸망한 세계의 조각.]
<멸망 부름 버섯>보다도 간단한 설명 때문에 어떤 것인지 알아보기 어렵지만, 그것이 무슨 힘을 가졌는지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름은···.”
잠시 검게 물든 약지 끝을 바라보며 고민하는 성현.
“그게 좋겠습니다.”
<검은 질량 곰팡이>
간단하다 못해, 유치할 정도의 이름.
<화이트 크라운>이나 <멸망 부름 버섯>과 달리, 버섯 형태의 자실체를 생성하지 않는, <붉은 폭탄 곰팡이>와 유사한 이 검은 균사체에 성현은 <붉은 폭탄 곰팡이>처럼 직관적인 이름을 붙였다.
[검은 질량 곰팡이]
[멸망한 세계의 조각]
[화생방 부사관, 이성현 하사의 힘에서 탄생한 곰팡이]
[철분을 양분으로 삼아 증식하며 질량의 조절 가능]
“음···.”
성현은 이름을 확정함과 동시에 갱신되는 시스템 창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장성의 권능이 담겨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쉽게?’
심지어 그 설명 문구에 성현의 이름까지 박혀 있다는 점이 가장 신경 쓰였다.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럼 저건 뭡니까?”
그때, 무언가를 가리키며 그라논 대위가 질문했다.
“아.”
성현은 그의 손끝에 있는 검은 갑주의 모습을 확인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으음···.”
성현은 미묘한 표정으로 손 안의 작은 명함을 바라보았다.
띠링!
“이성현 하사님! 곧 도착합니다!”
“아, 알았어.”
성현은 선내 통신으로 그를 부르는 작은 고블린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곧장 방 안의 거울로 다가가는 성현.
거울 속에는 연방군의 정복을 걸친 하사가 있었다.
“흠.”
검은색 바탕에 푸른색 장식이 더해진 연방군의 정복은 성현의 미적 기준을 상당히 충족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꽤 잘 생겼지.”
어두운 정복과 뽀얀 피부가 대조되어 성현의 미모(?)를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꼼꼼하게 정복의 상태를 확인한 성현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쓸었다.
그러자 성현의 얼굴 위에 나타나는 <백면>.
‘차폐막 상태도? 좋군. 에테르로 풀이고.’
모든 것을 확인한 성현이 방문을 열고 나섰다.
그러자 그런 그를 따라 움직이는 검은 갑주, 그것을 데리고 성현은 함선의 격납고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 빈센트 병장.”
격납고를 관리하는 빈센트 병장과 인사를 나눈 성현의 시선이 한창 병장의 촉수에 의해 옮겨지고 있는 포트로 향했다.
“하··· 하필 소형함이 없어서.”
얼마 전, 괴수의 손에 소형함이 부서지는 바람에 따로 타고 갈 것이 없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차라리 함선 통째로 착륙하는 것이···.”
“아니, 괜찮아.”
성현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잘 알겠지만, 내가 지금 향할 곳이 안전한 곳은 아니니까.”
데-아블처럼 눈에 띄는 대형 함선의 이착륙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정복 차림으로 가시려고요?”
“아, 어.”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의 주민들은 연방의 군인을 반기지 않습니다. 괜히 시비에 휘말릴 일이···.”
성현은 빈센트 병장의 말에도 어깨만 으쓱했다.
“그렇긴 한데 내가 따로 옷이 없어서. 전투복을 입고 갈 수는 없잖아?”
“···.”
성현의 빈약한 변명에 병장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흠흠.”
성현은 모른 척 그의 눈빛을 무시했다.
‘나도 입고 싶어서 입은 게 아니라고.’
정복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시비 걸릴 것이 뻔한 곳에 가면서 정복을 걸친 이유는 별것이 아니었다.
‘시비를 걸리러 가는 거라···.’
괜히 주머니 속의 명함을 만지작거린 성현이 어느새 준비가 끝난 것으로 보이는 포트로 향했다.
“그냥 타면 되지?”
“네, 그렇기는 한데···. 뒤에 그것도 가져가실 겁니까?”
빈센트 병장이 검은 갑주를 가리켰다.
“어.”
“포트는 1인용입니다만?”
“괜찮아.”
성현은 그대로 몸을 돌려 갑주로 향했다.
그러자 갑주의 가운데가 저절로 열리고 그 안으로 몸을 집어넣는 성현.
이제는 성현의 껍질이 되어버린 갑주는 생체력을 이용하면 조직구조에 변화를 주는 것이 가능했다.
“···.”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빈센트 병장의 오묘한 표정을 무시한 성현은 갑주를 움직여 포트 내부에 탑승하게 했다.
자동적으로 닫히는 포트의 뚜껑.
[곧 행성의 중력권 근처에 도달합니다.]
“오케이.”
[방출까지 남은 시간 10초.]
[9, 8, 7, 6.]
성현은 빈센트 병장이 숫자를 세는 것을 들으며 계획을 점검했다.
‘우선 착륙하면 포트부터 회수해야 하고···.’
공간 압축 기능이 장착된 포트는 휴대가 굉장히 용의했고, 특임대의 자산이었기에 함부로 처분할 수도 없었다.
[5, 4, 3]
‘용병 도시의 시장이 군의 협력자라고 했던가? 그럼 도시 내부로 들어가는 건 문제가 없을 텐데.’
진짜 문제는 그 넓은 도시에서 어떻게 ‘박사’를 찾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라논 대위로부터 박사가 재료를 구하기 위해 뒷골목의 세력과 결탁했을 거라는 말은 들었지만, 어떤 세력과 결탁해 어디에 있을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2, 1! 방출!]
성현은 몸에서 느껴지는 급격한 압력 변화에도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애초에 반고리관 같은 진정 기관이 없는 성현은 멀미 따위를 하지 않았고 중력의 변화에 손상될 조직도 없었다.
‘박사가 이 분야의 최고라고 했던가?’
연방의 병기 연구소 소속이면서도 외유가 잦다는 말썽쟁이.
그럼에도 연방에서 그를 내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연방 최고의 생물학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라면 영웅급 괴수의 부산물을 장비로 가공할 수···.
“어?”
성현의 시선이 포트의 투명한 뚜껑 너머로 보이는 행성의 모습으로 향했다.
연방에서는 행성 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방치한 곳이기에 확실히 황량한 모습이 인상적인 행성은 우주에서도 훤히 보였기에 성현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저것은 아니었다.
“아니, 미친 뭐야!”
분명 행성의 이착륙 지역과 먼 곳이기에 선택되었던 낙하지에서 작은 소형함 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소형함의 이륙 궤도가 포트의 낙하 궤도와 겹친다는 것이었다.
“꺼져! 비켜!”
성현이 열심히 고함을 치며 손짓을 했지만, 애초에 그것이 보일 리도, 들릴 리도 없었고, 무슨 이유인지 그 소형함의 곳곳에 불똥이 튀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리고 때마침 소형함에서도 성현의 포트를 확인한 것인지 궤도를 틀려는 노력이 보였지만.
‘늦어!’
상태가 좋지 못한 소형함은 포트를 온전히 피하지 못했고 결국 성현의 포트와 소형함이 충돌했다.
쾅!
소형함과 충돌하며 포트 내부에 전해진 강력한 충격과 급격히 흔들리는 포트, 그리고 잠시 뒤 다시 한번 포트를 강타한 충격.
“음···.”
성현은 갑주를 움직여 열리지 않는 포트의 뚜껑을 강제로 열었다.
그리고 포트를 빠져나와 포트의 상태를 확인했다.
“···.”
다행히 튼튼한 덕분에 박살이 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불똥이 튀는 것이 상태가 영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성현은 아주 약간의 기대를 품고 입을 열었다.
“P-324 포트 휴대 형태로 전환.”
그리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포트.
“아, 제기랄. 어떻게 멀쩡히 착륙해 본 적이 없지?”
성현은 소형화는 물론이고 아예 음성 인식조차 되지 않는 모습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고작 두 번뿐인 착륙 경험이 항상 불시착으로 끝나고 있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갑주를 빠져나온 성현은 다행히 멀쩡한 정복이 구겨진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확실히 갑주 성능이 미쳤네.”
전방위에 가해진 충격의 대부분을 흡수한 갑주는 그 어떤 손상도 없었다.
망가진 포트와 멀쩡한 몸과 갑주.
“이걸 여기 두고 갈 수는 없지.
잠시 포트를 바라보던 성현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온통 모래뿐인, 황량한 행성에서도 가장 황량한 사막지대가 눈에 들어왔다.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포트 손상을 최소화하려고 고른 곳인데···.”
혹시나 착륙 과정에서 생길 문제를 대비해 고른 곳인데 정말 사고가 생길 것이라 성현도 예상하지 못했다.
덕분에 예상보다 목적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불시착한 상황.
다행히 사막지대가 제법 넓어 성현이 추락한 곳도 사막의 어딘가였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성현은 일단 정확한 위치부터 파악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주민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쉬울 것 같았다.
“그러니 알려주겠습니까? 당신들이 누구인지.”
성현의 시선이 주변의 모래로 향했다.
고요한 적막이 깔린 사막.
간간이 포트에서 불똥 튀는 소리만이 들리는 곳에서 성현은 그곳에 누군가, 아니 누군가’들’이 있음을 확신했다.
“직접 안 나오면 무력행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눈을 날카롭게 뜨며 경고하는 성현.
그런 성현의 경고가 먹혔는지, 성현이 바라보고 있던 방향에서 누군가 모래를 해치고 등장했다.
“호오?”
“연방의 군인이 이런 낙후된 행성에는 무슨 일이지?”
주변의 모래와 비슷한 황토색의 비늘.
보통 늪지에서 생활하기에 수분에 민감한 기존 종족과 달리, 건조한 사막에 적응하기 위해 한층 더 두텁고 열에 견디기 쉽게 진화한 아종.
“샌드 리자드맨···.”
성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M가 넘는 거구의 파충류였다.
“대답해라. 연방군. 이 행성에는 무슨 일이지?”
그것도 적대감에 가득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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