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들

샌드 리자드맨.
사막에 적응한 리자드맨의 아종으로 지표면의 대부분이 황량한 사막과 황야로 이루어진 행성, 에비즈락의 원주민.
성현은 사전에 미리 조사해 온 정보를 되새기며 눈앞의 거대한 리자드맨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연방군 소속 이성현 하사입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
그러자 말없이 성현을 빤히 바라보는 리자드맨.
속으로 한숨을 내쉰 성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에비즈락을 방문한 겁니다. 용건만 마치면 조용히 떠날 생각이고요.”
“그걸 어떻게 믿지?”
성현의 대답에도 여전히 적대감과 의심의 눈초리로 대하는 그의 모습에 성현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안 믿을 거라면 왜 물어본 거야?’
딱 봐도 답이 보이지 않는 대답에 성현은 곧바로 주제를 바꿨다.
“방금 착륙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있었는데, 그 소형선은 어떻게 되었나요?”
성현의 포트와 충돌하며 근처에 떨어진 소형선.
추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성현에게 찾아올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면 그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소형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
‘이걸 이렇게 발뺌한다고?’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헛소리를 지껄이는 리자드맨.
“···.”
이번에는 성현의 입이 다물어졌다.
비협조적이다 못해, 대놓고 거짓말을 지껄이는 리자드맨의 모습에 새삼 이 행성이 연방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건 뭐··· 속이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도 없는 것 같은데, 굳이 대화를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하···.
대놓고 한숨을 내쉰 성현과 그런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리자드맨.
“크크큭!”
커다란 파충류의 입이 찢어지며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에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늦었다!”
그러자 성현의 움직임을 경계하던 리자드맨이 소리를 질렀다.
팍!
그와 동시에 성현의 주변에서 모래를 헤치고 튀어나오는 이들.
“안 늦었어.”
다만 이미 그 끝이 붉게 물든 성현의 중지와 엄지가 거칠게 마찰하고 있었고,
딱!
콰아아앙!
“크윽!”
성현의 눈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앓는 소리에 이채를 발했다.
“호오?”
‘오, 이걸 버텨?’
일부러 폭발의 파괴력을 제한하기는 했지만, <붉은 폭탄 곰팡이>의 폭발에 노출되고도 살아남은 자가 지나치게 많았다.
“어, 언제부터.”
성현은 다른 놈들과 달리 제법 거리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멀쩡할 수 있었던 거구의 리자드맨과 눈을 마주쳤다.
“당연히 처음부터지.”
성현은 어느새 완전히 붉게 변한 오른손을 흔들어 보였다.
에테르-생체력을 가진 성현은 기본적으로 주변 생명체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고, 당연히 모래 아래를 헤엄쳐 다가오는 샌드 리자맨들의 기척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일부러 기척을 드러내 그의 시선을 끌었던 눈앞의 리자드맨과 달리, 완전히 모래와 하나가 된 것처럼 숨어있던 이들의 생명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미리 모래 속에 균사체를 퍼트려 오히려 역습을 가한 성현.
그가 가볍게 손짓하자, 폭발로 인해 뒤집혀 있던 주변의 모래로부터 남은 붉은 포자가 잔뜩 빠져나왔다.
모래 아래에서 사막의 열기를 먹고 증식한 <붉은 폭발 곰팡이>들은 그 짧은 사이에 조금 전 폭발로 인한 소실을 메꾸고도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하사 따위가 우리 데저트 어쌔신을!”
“···???”
일차원적이고 유치한 이름(데저트 어쌔신)에 성현이 질색하는 사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리자드맨은 여전히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분명 에테르의 잔향까지 완전히 숨겼는데, 어떻게 눈치를 챈 거지?”
“아, 안 그래도 그게 묻고 싶었는데.”
그에게 다가간 성현은 붉은 포자로 만든 손을 이용해 리자드맨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렸다.
“큭! 놔라! 연방의 개!”
발버둥 치는 것을 무시한 성현은 널브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는 다른 리자드맨들을 가리켰다.
“이놈들도 그렇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붙잡힌 리자드맨 본인까지 가리켰다.
“대체 어떻게 에테르를 가지고 있는 거지?”
성현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분명 에테르를 사용했어.’
<붉은 폭탄 곰팡이> 폭발하는 그 짧은 순간, 성현은 리자드맨들에게 생각보다 폭발 피해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에테르로 방어라도 한 것처럼.’
아무리 폭발력을 줄였다고 해도 평범한 리자드맨이 <붉은 폭탄 곰팡이>의 폭발을 맨몸으로 맞고도 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명백히 이상했다.
선천적으로 에테르 그릇을 타고나는 상위 종족과 다르게 샌드 리자드맨은 인간과 같은 하위 종족, 그러니 저들이 에테르 그릇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계급장을 통해 에테르 그릇을 얻는 연방의 군인이 아닌 이상.
‘수상해.’
성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크크큭! 빌어먹을 연방군.”
그러나 여전히 비협조적인 태도의 리자드맨.
“···.”
“차라리 죽여라!”
붉게 물들어 있던 성현의 손이 이번엔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후, 그래. 불법 각성 시술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성현의 질문에 급히 고개를 숙이며 동의하는 리자드맨.
“흠···.”
잠시 고민하던 성현의 시선이 본래 황토색 대신, 보라색으로 변한 리자드맨에게로 향했다.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리가 없겠지.’
놈이 보라색으로 변한 이유는 성현이 <멸망 부름 버섯>이라도 사용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새롭게 획득한 <검은 질량 곰팡이>로 변한 성현의 주먹에 잔뜩 두들겨 맞았을 뿐.
여전히 검은 주먹을 쥐락펴락한 성현은 고작 손 하나 변질시키는 것에도 상당히 많은 에테르가 소모되었다는 것에 인상을 찌푸렸다.
사막의 열기를 이용해 소량의 생체력으로도 막대한 양으로 증식한 <붉은 폭탄 곰팡이>와는 달랐다.
‘철분, 그러니까 철을 안 쓰면 너무 비효율적이네.’
잠시 허리를 숙여 모래 속에 파묻혀가던 리자드맨의 단검을 하나 들어 올린 성현이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강철로 이루어진 단검의 날 부분이 벌레 먹은 것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와 반대로 손에 한정되어 있던 <검은 질량 곰팡이>가 급격히 증식하더니 성현의 팔꿈치를 넘어 어깨 부근까지 그 영역을 확장했다.
“···.”
그것을 바라보던 성현이 손을 털자, 순식간에 본래의 하얀 피부로 되돌아온 팔.
꿀꺽!
성현의 오른팔이 검게 물들 때부터 긴장해서 눈치를 보던 리자드맨이 급히 침을 삼켰다.
“으음···.”
원래대로 돌아와 또다시 고민에 잠긴 성현.
‘불법 각성 시술이라···.’
에테르 그릇이 없는 이들이 에테르를 다룰 수 있게 해준다는 시술.
성현은 확실히 체내에 에테르를 가지고 있던 리자드맨의 상황을 확인했기에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치겠네.”
행성 에비즈락에 도착하고 고작 한 시간도 되기 전에 이상한 상황에 엮였다는 것을 눈치챈 성현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필 에테르라니!”
연방군이라면 누구든 체내에 보유하고 있는 계급장은 얼핏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연방의 에테르 기술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기술이었다.
한번 숙주가 되는 군인과 결합하면 절대 떼어낼 수 없는 영구적인 기관으로 변하는 계급장은 군인 개개인에 맞춘 그릇으로 변해 신체의 일부가 되고, 그릇이 되기 이전의 계급장이 철저하게 관리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유출이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분명 미약하지만 리자드맨의 몸속에 있는 것은 에테르 그릇이 확실했다.
계급장이라고 보기에는 그릇의 크기고 저열하고, 그 안에 담긴 에테르도 오러나 마력처럼 가공이 되지 않은 원시 형태의 에테르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릇이었다.
“모른 척할 수는··· 없겠지.”
지금 이 리자드맨들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놈의 말에 따르면 이미 에비즈락 행성에는 암암리에 불법 각성 시술을 받은 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그렇게 까다롭게 고객을 선발하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정도 힘과 돈을 가진 이들이라면 각성 시술을 받은 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체 그 시술을 제공하는 놈들이 누구지?”
성현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는 리자드맨.
“그게··· 시청입니다.”
“시청?”
성현의 눈이 다시 한번 의문으로 가득 찼다.
행성 에비즈락.
연방의 세력권에 속하는 행성이지만, 그렇다고 연방에 속한 행성은 아니었다.
본래 행성의 토착 원주민인 샌드 리자드맨만이 살고 있던 이 행성은 과거 연방의 조사 당시, 별다른 가치가 없다고 판명되면서 연방의 시선을 벗어난 평범한 낙후 행성이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연방군에 쫓기던 범죄 조직 하나가 이 행성으로 숨어든 이후였다.
사막과 황야에 적응해 살아가던 샌드 리자드맨과 달리, 온갖 종족으로 구성된 범죄조직은 이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높은 장벽을 세우고 그 안에 거주지를 마련했다.
불친절한 행성의 환경과 호전적인 원주민들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범죄자들이 합류하며 점차 그 규모를 키워 나갔고, 결국은 거대한 도시로 자라났다.
그게 이 행성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 디에스코의 탄생 배경이었다.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조직이 홀로, 혹은 여럿이 연합해 도시들을 세웠지만, 행성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는 여전히 디에스코였다.
“그러니까 디에스코의 시청이라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
박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본래 성현의 목적지 역시 디에스코였지만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치 않은 상황에 앞으로의 일이 암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 꼴에 도시를 운영한다고 시청이라고 부르네.”
그때, 성현의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함.
‘설마 박사가 연관된 것은 아니겠지?”
난데없이 등장한 불법 각성 시술의 근원에 박사가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상이 성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성현은 애써 그 생각을 무시했다.
“···.”
성현의 시선이 리자드맨과 그의 부하들로 향했다.
“일단 그 소형선이 추락한 곳으로 가자.”
성현은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하기 전에 이미 벌어진 일부터 처리할 생각이었다.
특히 그 일이 에비즈락의 일과 연관이 있다면 더더욱.
‘어쩐지. 소형선 꼴이 위태위태하다 생각했는데···.’
성현의 포트와 충돌하기 전에도 이미 상태가 좋지 못했던 우주선.
리자드맨은 그 소형선에 타고 있던 이들이 도망자라고 말했다.
디에스코를 비롯해, 여러 도시로부터 수배령이 내려진 자들로 리자드맨과 그의 부하들은 본래 그 도망자들을 추적하던 사냥꾼이었다.
“이쪽입니다.”
‘빌어먹을 괴물 새끼!’
데저트 어쌔신이라는 사냥꾼 그룹을 이끄는 샌드 리자드맨, 벌킨은 조심스럽게 그를 따라오는 연방의 군인을 흘겼다.
“뭘 봐?”
“아, 아닙니다.”
‘지독한 새끼!’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입자로 이루어진 안개를 전신에 휘감고 검은 갑옷 괴물을 끌고 다니는 군인 놈은 여유롭게 주변을 살피는 것이 관광객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제길!’
벌킨은 그의 두터운 비늘이 푸르게 멍들 때까지 두들겨 패던 놈의 검은 주먹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도망자를 포획한 데저트 어쌔신의 본대, 데저트 아미가 있는 곳.
성현이 들었다면 비웃었을 이름을 가진 본대와 자신과 다르게 2단계 각성 시술에 성공한 대장을 떠올린 벌킨은 그가 자신의 복수를 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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