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주변을 둘러보던 성현의 시선이 앞장서 걸어가고 있는 리자드맨 벌킨의 뒤통수로 향했다.
‘거슬리네.’
조금 전부터 자꾸만 그를 힐끗거리는 모습이 성현의 심기를 거슬렸다.
“뭘 봐?”
눈이 마주치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성현.
“아, 아닙니다.”
그러자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벌킨.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층 더 진해진 살기가 느껴졌다.
‘얘넨 진짜 뭐지?’
처음에는 그래도 살기를 숨기겠다는 노력이라도 하더니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낸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성현의 시선이 직접 닿자, 고개를 수그리는 리자드맨들의 모습에 성현은 작게 혀를 찼다.
연방의 군인에 대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적의가 만연한 그들이 뒤통수를 칠 기회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들을 따라 도착한 사막의 어딘가, 수많은 리자드맨들이 모인 집결지.
그래서 성현은 그곳에 도착한 그들이 일제히 거리를 벌리며 면전에 살기를 드러내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저,
“엄청 많네.”
목적지에 있는 리자드맨의 엄청난 수에 조금 놀랐을 뿐.
그들이 대치하는 동안 모여들기 시작한 리자드맨.
“벌킨!”
성현은 사막 한복판에 모인 수많은 리자드맨을 보고는 혀를 찼다.
적대적인 벌킨 모습을 확인하고 일제히 성현을 향해 무기를 들이미는 리자드맨들.
그때 성현의 시선이 그들의 중간을 가로지르며 등장한, 벌킨보다도 머리 하나가 더 큰 리자드맨에게로 향했다.
잠시 그와 눈을 마주친 성현은 이내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벌킨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도망자’들은 어디에 있지?”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리자드맨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평온하게 묻는 성현의 모습에, 샌드 리자드맨 무리를 이끄는 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연방군.”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대놓고 연방의 정복을 걸친 성현의 모습은 그가 보기에도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특히 이 행성이 연방군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우리 전부를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안개를 전신에 휘감은 성현을 빤히 바라보는 대장.
그의 생각처럼 성현은 리자드맨들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200에 가까운 리자드맨 무리에서 에테르가 느껴지는 이들은 대략 100 미만.
그러나 그들이 가진 에테르는 하나같이 이병급, 또는 그 이하에 불과했다.
아무리 신체적인 능력이 성현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더라도 성현의 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에테르 양이 부족한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너무 쉬웠다.
특히 성현이 대량 살상에 특화한 화생방 부사관인 만큼 그들의 숫자 역시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불길하군.’
잠시 그를 바라보던 샌드 리자드맨 무리의 대장은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서늘하게 느껴지는 사막의 바람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곧장 발을 움직여 성현과 그를 둘러싼 벌킨과 그의 부하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에게 돌아갔던 성현의 시선이 이내 그 리자드맨의 왼팔로 향했다.
본래 피와 살로 이루어져야 하는 팔 대신 부착된 금속의 팔.
그 안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마력은 저 팔이 평범한 의수가 아닌, 마도공학의 산물이라는 것을 뜻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성현의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기계 팔을 만지작거리던 대장 리자드맨, 벌카스가 입을 열었다
“모두 무기를 거둬라.”
“대장!”
벌카스에 말해 극렬히 반응하는 벌킨.
“조용히 해라. 벌킨.”
머리 하나는 큰 리자드맨이 벌킨을 내려다보며 경고했다.
“너와 네 무리가 연방군을 싫어하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쓸데없는 분쟁은 허락할 수 없어.”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성현을 가리켰다.
“저 연방군의 태도를 보면 모르겠나?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다. 하나는 그냥 미친놈이거나.”
“···.”
성현은 면전에 꽂히는 ‘미친놈’이라는 단어에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면 우리 모두를 처리할 정도로 강하거나.”
“아무리 그래도 고작 하사입니다! 에테르 양에도 한계 있을 겁니다.”
“그럼 그 에테르를 바닥낼 동안 죽어 나갈 동족이 얼마나 될 것 같지?”
“···.”
벌카스의 말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 벌킨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성현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대화는 끝났나?”
“그래.”
서로를 바라보는 리자드맨과 버섯(?).
손을 저어, 주위를 물린 발카스가 어딘가를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이리로 와라.”
다른 리자드맨들을 모두 물리고 사막에 세워진 천막 중 하나에 들어가 그대로 주저앉는 벌카스.
“···.”
대충 모래 위에 앉는 그의 모습을 보던 성현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음?”
그 모습에 의문을 표하던 벌카스는 갑자기 모래 사이에서 솟아오른 무언가에 눈을 부릅떴다.
“그건···.”
성현의 몸을 휘감고 있는 붉은 안개와 유사하지만, 그 밀도가 차원이 다른, 수많은 규사가 얽혀 만들어진 붉은 색의 의자.
성현은 그 위에 그대로 앉았다.
분명 성현은 의자에 앉고, 리자드맨 벌카스는 모래 위에 바로 주저앉았지만, 놀랍게도 벌카스의 눈높이가 성현보다 높았다.
“···.”
“···?”
갑자기 다리가 길어지는 성현의 의자에 의문을 표하는 벌카스.
“나는 모래바람 일족을 이끄는 샌드 리자드맨 발카스다. 연방의 군인, 그대는?”
“이성현이다. 계급은 하사고. 근데 너네 부족 이름은 데저트-어쩌고 아니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성현이 한 질문에 이마를 짚는 벌카스.
“그건 또 어디서···. 하, 뻔하군. 그 벌킨이겠지. 일단 확실히 하지, 우리는 모래바람 부족과 모래언덕, 모래구름 부족의 전사들이다. 그 데저트 어쩌구는 그저 벌킨 놈의 생각일 뿐이고.”
“···.”
성현이 침묵하는 사이, 굳은 표정의 벌카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성현 하사, 이 행성엔 무슨 일로 온 거지?”
“아, 그 전에 묻지. 조금 전 내가 타고 있던 포트와 충돌한 우주선, 그 안에 타고 있던 이들은 어디에 있지?”
성현은 짧은 순간 흔들리는 그의 눈을 포착했다.
“그들은 시청에서 수배령이 떨어진 자들이다. 하나같이 흉악한 범죄자들이라 이미 그 자리에서 처분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표정을 회복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벌카스.
“웃으라고 하는 소린가? 애초에 범죄 조직이 세운 도시에서 범죄자라는 이유로 수배령이 내린다고?”
그러나 그런 그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성현.
“하아···.”
그런 성현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벌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몸을 돌렸다.
“따라오게.”
성현을 데리고 그가 향한 곳은 사막에 세워진 수많은 천막 중에 유달리 큰 천막이었다.
천막의 중앙에 있는 철장과 그 안에 갇힌 자.
“수인···인가?”
성현은 철장 안에 누워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중얼거렸다.
머리 위로 솟아난 두 개의 귀와 허리춤의 꼬리.
전형적인 수인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의식을 잃고 잠들어 있었다.
“이자일세. 현재 시청에서 수배 중인 도망자, 늑대 수인 로투스.”
성현은 의식을 잃은 것 외에는 생각보다 멀쩡한 수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성현의 포트와 부딪힌 소형선에 타고 있었던 자로 보기에는 생채기 하나 없는 모습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멀쩡한데?”
“멀쩡할 수밖에 없지.”
성현의 물음에도 당연하다는 듯 답하는 벌카스.
“그의 이명을 생각해 보면 멀쩡해 보일 수밖에.”
“이명?”
“불사자 로투스. 각성 시술을 통해 초월적인 재생 능력을 획득한 놈이지.”
각성 시술, 재생 능력.
벌카스의 말에 황급히 수인의 몸에 정신을 집중한 성현은 그의 심장 부근에서 느껴지는 에테르에 눈을 부릅떴다.
“이건!”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벌킨인지, 발컨인지 하는 놈과는 완전히 달랐다.
“에테르···.”
그릇의 크기 자체는 역시 작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에테르는 마치 성현의 에테르-생체력과 비슷했다.
오러나 마력과는 다르지만, 명백히 원시적인 에테르 형태를 벗어난 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성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계급장을 부여받은 연방군처럼 자신만의 에테르를 개화한 존재.
‘불법 각성 시술로 이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보다 더 커진 스케일에 성현은 조심스럽게 철장으로 다가갔다.
‘일단 깨워서 어떻게 확인을···.’
그리고 철장 안으로 손을 뻗던 성현은 손이 철장에 닫기 직전에 멈춰 섰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니, 어떻게 레퍼토리가 이렇게 같지?”
눈이 마주친 성현과 벌카스.
성현은 도마뱀의 머리를 가진 벌카스가 웃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미안하군.”
덤덤한 벌카스의 목소리에 성현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파란빛이 흘러나오는 문양이 철장을 중심으로 천막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권 밖에 서 있는 벌카스.
“···.”
성현은 그 문양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푸른빛에 체내의 생체력이 점차 굳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쪽도 꽤 절박해서 말이야. 시청에서 놈에게 걸린 현상금이면 우리 세 부족이 한동안 걱정 없이 살 수 있거든.”
벌카스는 성현이 로투스를 찾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연방의 정복을 걸친 그가 벌칸스, 자신과 같은 사냥꾼일 리는 없었고 그렇다고 디에스코의 해결사나 시청의 하수인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
‘게다가 딱 봐도 갓 에비즈락에 도착했어.’
실제로 로투스가 타고 도망쳤던 우주선과 충돌한 포트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니, 아주 우연하게 벌어진 상황일 확률이 높았다.
가진 무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었기에 되도록 이해 관계가 얽히지 않고 조용히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여겼던 벌카스의 생각이 바뀐 것은 로투스를 찾는다는 성현의 말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저 사고에 대해 논의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는 각성 시술에 대한 것 때문에 파견된 군인일 수도 있었기에 벌카스는 그를 로투스와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를 봉인해 놓은 지금은 더 그랬다.
그렇기에 벌카스가 택한 것은 성현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연방의 하사인 만큼 심상치 않은 에테르를 보유한 것이 확실했기에 벌카스는 로투스를 봉인한 봉인지를 이용해 성현을 함께 봉인하려고 했고 다행히 그의 의도가 제대로 먹힌 듯 보였다.
에테르의 흐름을 봉쇄하는 기능을 가진 봉인지는 병사들은 물론 일부 에테르가 빈약한 하사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었고, 아무런 의심없이 안으로 다가간 성현은 그대로 봉인에 당했다.
‘아, 성가시네.’
다만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성현의 에테르 그릇이 동급의 이들 중 유달리 크다는 것과 성현이 이미 자신의 몸이라고 할 수 있는 균사체의 ‘일부’를 사막에 불어넣어 두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안타깝지만 얌전히 있어 주게.”
성현은 마치 다 끝났다는 듯이 말하는 벌카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쿠구구궁!
사막 아래에 숨어있던 것들이 기지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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