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사막

드드드!
발아래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진동과 그로 인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한 사막의 모래.
“무슨!”
갑작스러운 지진에 당황한 벌카스와 달리, 성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으아악!”
그때, 천막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잠시 성현을 바라본 벌카스는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펼쳐진 사막의 전경은 그가 익히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붉은색.
내열성이 뛰어난 샌드 리자드맨의 비늘도 달아오르게 만들 정도로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의 빛이 지상에서부터 솟아오른 자욱한 붉은 안개로 가려져 힘을 잃었다.
그로 인해 태양의 빛으로 노랗게 빛나던 사막은 제 색채를 잃고 붉게 물들었고, 덕분에 모래 아래를 비집고 자라난 붉은 곰팡이의 모습을 잠시나마 가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 속에서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벌카스의 동족들.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것은 사막의 모래뿐만이 아니었다.
“대, 대장!”
벌카스를 부르며 다가오는 리자드맨.
“칼만!”
벌카스는 급히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털썩!
몇 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쓰러지는 리자드맨.
황급히 그에게 다가간 벌카스는 몸 곳곳이 붉게 변한 리자드맨을 살폈지만 아무런 생명 신호가 느껴지지 않았다.
‘죽었어?’
멈춰버린 심장과 지나치게 차갑게 식어버린 몸.
별다른 징조도 없이 허무하게 쓰러져 죽어버린 부하의 모습에 벌카스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왜? 대체 왜 죽은 거지?’
그에게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키던 벌카스는 손에 묻은 붉은색 가루를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붉게 변한 사막과 죽은 리자드맨, 그리고 유달리 서늘하게 느껴지는 대기.
벌카스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
“끄악!”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 그리고 곳곳에 쓰러진, 쓰러지는 부하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 모든 현상의 근원이 누구인지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연방군!”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걸음을 옮기는 벌카스는 이내 달리다시피 하며 천막을 박차고 들어섰다.
“왔어?”
그러자 어느새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철장 위에 앉아 있던 성현이 그를 반겼다.
바닥의 봉인진은 이미 지면을 뒤엎은 <붉은 폭탄 곰팡이>로 인해 파괴되어 있었고, 여기저기 뭉친 균사체가 천막 곳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네놈 짓이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는 벌카스의 모습에 성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뭘?”
“내 전사들을 죽이는 붉은 모래!”
천막의 밖을 가리키는 벌카스의 모습에 성현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아, 이거?”
성현의 손짓에 그의 손바닥 위에 모여든 붉은 균사체가 구체를 이루며 요동쳤다.
“이거 모래 아닌데.”
성현의 정정에도 벌카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모래이든, 먼지든, 포자든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죽어라!”
그것이 그의 부하들을 죽였고, 그 주인이 눈앞의 군인이라는 것만이 중요할 뿐.
성현은 달려드는 벌카스를 보고는 다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꿈틀거리던 <붉은 폭탄 곰팡이>의 균사체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쏘아졌다.
재빠른 몸놀림으로 사방에서 쏟아지는 곰팡이의 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벌카스, 그런 그의 경로에 곰팡이가 뭉쳐 방패가 만들어졌다.
벌카스가 갑자기 눈앞에 생성된 방패와 충돌하려던 그 순간, 벌카스가 몸이 뒤틀리며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상하게 휜 꼬리와 함께 비틀리듯이 휘는 그의 몸.
마치 뱀의 꿈틀거림과 비슷한 몸놀림으로 벌카스는 자연스럽게 균사체의 방패를 휘감듯이 지나쳤다.
관성을 무시하는 듯한 기묘한 방향 전환으로 방패를 지나친 그는 그대로 철장 위의 성현에게로 뛰어 율랐다.
그리고 왼팔을 대체한 마도구의 팔등에서 튀어나온 칼날을 휘둘렀다.
콰직!
그러자 성현의 목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후우···.”
잘려 나간 성현의 머리를 확인하고 크게 숨을 내쉬는 벌카스.
‘저 괴물이 죽었으니 이제···.”
중얼거리던 그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벌카스는 자신의 비늘 위로 벌레라도 지나가는 것처럼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의 생각이 여전히 곤두선 자신의 비늘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왜 아직도 서늘한 거지?’
무언가를 깨닫고 황급히 주변을 둘러본 벌카스.
그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여전히 철창을 붙든 채로 꿈틀거리고 있는 <붉은 폭탄 곰팡이>의 군집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덩그러니 지면에 놓인 성현의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아, 미안. 이 정도로는 무리야.”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여는 성현.
잘려 나간 머리가 홀로 말을 이어가는 모습은 확실히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무, 무슨! 대체 정체가 뭐냐!”
눈이 동그랗게 변해 경악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에 성현은 새삼스럽게 이 행성이 연방의 관심 밖에 남겨진 곳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고작 잘린 머리가 말하는 것 정도로 저렇게 놀라?’
하나같이 계급장과 주특기를 통해 에테르를 손에 넣은 연방의 군인들은 정도는 달라도 평범한 지성체가 상상도 못 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머리가 잘리는 정도는···.
“어, 아닌가?”
잠시 눈을 깜빡이던 성현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군인들 사이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연방 각지에서 모여든 군인들은 온갖 종족들이 있지만, 지금의 성현처럼 부정형의 몸을 가진 자는 그리 흔치 않았다.
“···.”
성현은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자신의 머리를 집어 들고 잘린 목 위에 올렸다.
그러자 단면의 균사체들이 얽히며 순식간에 머리와 목이 이어졌다.
그런 성현의 기괴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벌카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에 그에게 다가가던 성현의 얼굴이 갑자기 구겨졌다.
‘자꾸 일을 번거롭게 만드네.’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본 성현은 잠시 멍하니 주저 앉아있는 벌카스를 잠시 바라보고 그대로 몸을 무너뜨렸다.
“위대한 사막의 영이시여! 전사들에게 가호를!”
리자드맨 주술사의 비명에 가까운 영창과 함께, 주술사의 앞에 모여 있던 리자드맨들의 몸에 보호 주술이 어렸다.
주술이 성공적으로 발현되자, 일제히 달리기 시작한 리자드맨들.
그렇게 생긴 빈 자리에 다른 리자드맨들이 모여들고 주술사는 그들에게 가호를 내리기 위해 영창을 시작했다.
한편, 달려 나간 리자드맨들이 향한 곳은 그들의 주둔지 중심에 생긴 ‘붉은 사막’이었다.
대기를 붉게 물들일 정도로 흩날리는 붉은 모래 바람과 붉게 물든 지면이 인상적인 그곳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반응하며 그 안의 모든 생명체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리자드맨들이 망설임 없이 그곳에 뛰어드는 이유는 가장 앞에서 그들을 이끌고 있는 한 리자드맨 때문이었다.
“가자! 사막의 용사들아! 저 사악한 붉은 모래의 악마를 토벌하자!”
조금 전, 지진과 함께 대장과 군인이 들어간 대장의 천막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붉은 사막.
그 불길한 색채와 힘에 주변의 샌드 리자드맨들이 황급히 대피했지만, 모든 리자드맨이 빠져나오는 것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빠져나오지 못한 리자드맨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별다른 전조도 없이 그저 붉은 사막에 닿았다는 이유로 죽어버린 수많은 동족의 모습에 겁을 먹은 다른 리자드맨들.
그런 이들을 모으고 그 붉은 사막이 연방의 군인이 벌인 일이라는 것과 아무리 연방의 군인이라도 에테르가 무한하지 않다며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대장 벌카스의 동생, 벌킨이었다.
그렇게 모여든 리자드맨의 앞에 붉은 모래, 아니 균사체들이 뭉치더니 이내 성현이 나타났다.
“가자!”
강화 시술을 통해 만들어진 에테르 사용자를 필두로 그런 성현에게 달려들기 시작한 리자드맨들.
에테르 침식 능력을 가진 <화이트 크라운>이 아닌, <붉은 폭탄 곰팡이>로 이루어진 포자였기에 주술사들의 보호 주술이 충분한 효력을 발휘했다.
그런 그들을 막아선 것은 어느새 바닥에서 솟아오른 검은 갑주였다.
성현의 생체력으로 인해 통제되는 검은 갑주는 사막의 열기를 통해 급격히 그 수를 부풀린 <붉은 폭탄 곰팡이>를 두른 채 그들과 맞붙었다.
쾅!
선두의 리자드맨이 에테르로 강화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갑주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자, 그와 접촉한 포자가 곧바로 폭발했다.
그러자 전신을 강타하는 충격에 그대로 튕겨 나가는 리자드맨.
“계속 달려들어!”
에테르로 강화된 비늘과 주술사의 보호 주술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무력화된 선두를 제외하고 수많은 리자드맨이 일제히 갑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과강!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붉은 포자로 인해 피해를 입는 리자드맨과 달리, 자그마치 영웅급 개체의 외골격으로 만들어진 갑주에는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안개를 가르고 내질러진 갑주의 주먹은 아무렇지 않게 리자드맨을 강타했다.
성현의 의식 일부가 담긴 감주는 효과적으로 포자의 안개를 운용했는데, 팔꿈치 쪽의 포자를 폭발시키고 그 반작용을 통해 가속한 주먹을 견딜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콰직!
그대로 비늘과 보호 주술을 관통해 리자드맨의 몸을 짓이기는 주먹과 그 과정에 생겨난 빈틈으로 찔러 들어오는 여러 병기들.
그러나 갑주는 그것을 피하는 대신,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또 다른 리자드맨의 머리를 짓이기는 것과 동시에 곳곳을 강타한 충격으로 살짝 흔들리는 갑주,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
제대로 된 에테르가 담기지 않은 리자드맨들의 조악한 병기로는 갑주에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갑옷은 시간만 끌어! 본체를 노려라!”
갑주를 뚫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벌킨이 일부 리자드맨들이 갑주를 막게 하고 그대로 우회해 뒤쪽의 성현에게 달려왔다.
그의 뒤를 따라 몰려드는 리자드맨들.
거대한 먼지 폭풍을 일으키며 달리는 모습은 장관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 모습에 성현이 느낀 것은 오로지 ‘귀찮음’뿐이었다.
성현이 가볍게 손짓을 했고, 다시 한번 사막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살상을 피하기 위해 반경을 제한했던 <붉은 폭발 곰팡이>가 성현의 뜻에 따라 일제히 모래 위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사막이 ‘붉은 사막’으로 변했다.
열기를 먹어 치우며 증식한 곰팡이로 인해 점차 차갑게 식는 대기.
붉게 변한 사막의 모든 곳에서 솟구친 균사체들이 손의 형태로 뭉치며 리자드맨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피해!
“악!”
“이 악마!”
발목을 붙잡힌 채, 그대로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리자드맨.
본래 모래 속을 파고들 수 있는 종족이지만 붉게 변한 사막은 더 이상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균사체의 손아귀를 벗어난 일부 리자드맨들이 계속해서 그들의 발목을 노리는 균사체들 사이를 달려 성현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렇게 그들이 성현의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하···.”
그들을 맞이한 것은 성현의 한숨.
그리고,
콰아아앙!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버릴 거대한 폭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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