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부녀

벌카스는 전신을 뒤흔들던 충격과 귀를 자극하던 소음이 멈췄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눈을 뜨며 귀에서 손을 떼 내었다.
그러자 그와 수인이 잠들어 있는 철창을 감싸고 있던 붉은 균사체들이 흘러내리듯 사라졌다.
“아, 아···.”
그렇게 드러난 참혹한 풍경.
어느새 하늘을 뒤덮고 있던 붉은 안개가 사라지며 평소처럼 푸른 하늘과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드러났지만, 그 하늘 아래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상의 모습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거점으로 사용하기 위해 샌드 리자드맨들이 세웠던 천막들은 이미 온데간데없었고, 사막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샛노란 모래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곳에 있는 것은 고열로 인해 모래가 녹아 유리화하며 생긴 기이한 흔적과 움푹 파여버린 지형, 그리고 곳곳에 널브러진 리자드맨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뒤덮은 붉은 모래, 아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무언가.
“게빈! 아스만! 피요른!”
벌카스는 여전히 달아오른 지면으로 인해 발바닥에 화상을 입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리자드맨들을 살폈다.
곳곳이 불에 타고 녹아내렸어도, 그는 그들이 누구인지 다 알아볼 수 있었다.
하나하나 파헤쳐 생사를 확인하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성현은 걸음을 옮겨 철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에서 무언가를 품에 안고 따라오는 갑주.
균사체로 감싸인 그것은 성인이라고 보기에는 작은, 어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인간과 다르게 머리에 달린 귀와 허리춤에 달린 꼬리는 이 아이가 철창 안의 늑대 수인과 연관이 있는 아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누군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는데, 아이일 줄은 몰랐네.”
성현은 철창에 늑대 수인 로투스가 갇혀 있는 것을 보고, 그 외에도 누군가 더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전에 벌카스가 말했던 ‘그들’이라는 단어는 복수형, 당연히 소형함에 타고 있던 이들이 여러 명이라는 뜻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성현은 처음부터 이곳을 날려버리는 대신 주변을 수색했고, 그 과정에서 외곽 천막에 갇혀 있는 어린 수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 당연히 주변의 <붉은 폭탄 곰팡이>를 일제히 폭발시켰고, 리자드맨 무리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별다른 화력의 제한 없이 힘껏 폭발시킨 덕분에 막대한 수를 자랑하던 <붉은 폭탄 곰팡이>가 이 일대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성현은 철창을 향해 어느새 검게 물든 손을 내밀었다.
파스스!
그러자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던 철창을 뒤덮고 증식하는 <검은 질량 곰팡이>.
잠시 뒤 철창 전체를 뒤덮은 곰팡이가 형태를 잃고 성현의 몸으로 돌아왔다.
봉인도 부서졌고 철창도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잠든 늑대 수인.
“수면제를 얼마나 쳐넣은 거야?”
‘불사자’라는 이명을 생각해 보면 치사량 따윈 상관하지 않고 쑤셔 넣었을 것이 뻔히 예상되었기에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으응···.”
그때 미약한 신음을 흘리는 어린 수인.
로투스라는 놈과 달리, 수면제 양을 제대로 조절했는지 깨어나려는 기미가 보였다.
“여기는···.”
그러자 주변을 둘러본 성현.
유리화된 모래 조각이 발바닥을 찌르고 곳곳에 리자드맨의 사체가 즐비한 이곳은 아이의 정서에 그리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았다.
“자리를 옮겨야겠네.”
마침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이 잘 곳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성현의 손짓과 함께 주변의 균사체들을 뭉쳐 분신이 만들어졌다.
딱딱한 갑주보다는 말랑한 균사체 분신이 아이에게 더 좋을 것 같았기에 갑주에게서 아이를 건네받은 분신.
조금 더 덩치가 큰 분신까지 만들어 널브러진 늑대 수인까지 업었다.
그렇게 사막 한복판에 생긴 구덩이를 벗어나기 전, 갑주가 어딘가로 몸을 날렸고,
콰직!
마지막 샌드 리자드맨의 생명 반응이 사라졌다.
“허억!”
로투스는 비명과 함께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어, 일어났냐? 로투스?”
“어···.”
“악몽이라도 꿨나 봐?”
“어, 맞아.”
로투스는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머리를 작게 흔들었다.
“아빠! 이거 먹어!”
“아, 고마워. 딸.”
그때, 그의 어린 딸이 건네는 스튜를 받아 든 로투스.
멍하니 스튜를 바라보던 그는 계속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딸의 눈빛에 천천히 숟가락으로 스튜를 떠먹었다.
“음? 버섯 스튜인가?”
“어! 맛있지?”
“응, 맛있네.”
“와! 아빠가 맛있데요!”
“다행이네.”
그의 말에 신이 나, 스튜를 만든 남자에게로 뛰어가는 어린 딸.
“아직 약기운이 덜 빠져서 피곤할 텐데, 조금 더 자. 애는 내가 볼 테니까.”
“아, 고마워.”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스튜를 내려놓은 로투스는 다시 몸을 뉘었다.
“···?”
벌떡!
급히 몸을 일으킨 로투스는 스튜와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자연스럽게 주저앉아 스튜를 떠먹고 있는 그의 어린 딸도.
“응? 왜 그래? 아빠?”
“응? 왜 그래? 로투스?”
그 뻔뻔한 모습에 로투스는 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리켰다.
“네놈은 누구야!”
연방의 정복을 걸친 채, 뻔뻔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성현을.
성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로나, 멍멍이랑 놀래?”
“응!”
멍멍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어린 늑대 수인, 로나.
기대감에 가득 찬 로나의 눈빛에 성현이 손을 휘저었다.
쿠르릉!
그러자 모래를 헤치고 그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붉은 늑대.
“크르릉!”
어렵게 형성한 성대에서 조금 어색하지만 우렁찬 늑대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와! 멍멍이!”
신나서 붉은 늑대(균사체 덩어리)에게 달려간 로나는 가벼운 발돋움으로 늑대의 등에 올라탔다.
어리다고 해도 수인, 평범한 인간에 비하면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멀리 가면 안 돼!”
“응!”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오고.”
“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로나를 등에 태우고 달리기 시작한 늑대.
“야호!”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는 로나의 모습을 뒤로하고 성현은 멍청한 표정의 늑대 수인과 시선을 맞췄다.
“잠자는 사막의 늑대 왕자님, 빨리도 일어난다.”
혀를 차는 성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로투스가 물었다.
“여긴 어디지?”
“사막이지.”
“분명 우주선이 추락하고···. 도마뱀들에게 붙잡혔을 텐데?”
“내가 구했지.”
“대체 왜?”
의문이 가득한 로투스의 눈동자.
그런 그에게 성현이 한 가지를 상기시켰다.
“기억나? 우주선과 충돌한 포트.”
“포트?”
잠시 깜빡이던 로투스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그게 포트였다고? 우주선에 충돌한 게?”
“정답!”
“근데 그 포트랑 넌 무슨 상관이지? 보아하니 연방군인 것 같은데.”
“그 포트 안에 있던 게 나거든.”
자신을 가리키는 성현의 모습에 로투스가 경악했다.
“아니, 포트 안에서 그런 충돌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멀쩡한 거지?”
성현은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굳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귀찮기도 하고.’
그저 빙그레 웃는 성현.
그리고 그런 성현을 보는 로투스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대놓고 수상하네.’
그의 눈에 이 군인은 너무 수상했다.
애초에 연방의 관심과 먼 에비즈락 행성에 연방군이 있다는 것도 수상한데, 대놓고 정복을 걸치고 있는 모습은 더 수상했다.
‘그렇다고 디에스코의 졸개는 아닐 거고, 현상금 사냥꾼도 아닌 것 같고.’
애초에 정말 연방군이라면, 일개 범죄자들과 커넥션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연방이라는 초우주적 집단에 비하면 이 행성을 지배하는 디에스코는 태양 앞의 먼지나 다름이 없을 테니까.
‘진짜 군인인가?’
그렇다면 홀로 그 리자드맨 사냥꾼들에게서 자신과 딸을 구한 것도 설명이 가능했다.
그의 정복으로 보아 계급이 하사, 자그마치 부사관이라는 뜻이었으니.
‘부사관이면 전선에도 투입되는 간부라는 뜻이잖아?’
“생각이 많아 보이네.”
빠르게 굴러가던 로투스의 머리가 성현의 말에 멈췄다.
“···.”
잠시 침묵하던 로투스가 물었다.
“왜 우리를 돕는 거지?”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로투스가 그를 크게 의심하거나 적대하지 않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로나.’
하나뿐인 그의 딸이 저 남자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로투스는 자신이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 저 남자는 그의 딸과 친해졌다.
본능적으로 적의에 민감한 수인은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에 뛰어났다.
그것이 어린 새끼일지라도.
특히 그들 부녀처럼 온갖 위험이 가득한 곳에서 자란 이들은 더더욱 그랬다.
피식!
“?”
로투스는 웃음을 터트리는 성현과 눈이 마주쳤다.
“도와달라고 해서.”
성현은 처음 로나를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리자드맨에게 붙잡혀 목에 족쇄가 걸린 채 수면제에 취해 있던 어린 수인을.
‘도와주세요.’
약에 취해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도움을 갈구하던 어린 꼬마.
“그래서 묻고 싶은데,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디에스코는 수많은 범죄 조직이 연합해 만들어진 거대한 범죄 도시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그 안에 살아가는 모두가 범죄자인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태어난 이들, 조직에 잡혀 온 이들, 피비린내에 지쳐 손을 뗀 이들, 그리고 척박한 도시의 밖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시에 들어선 이들.
로투스의 딸, 로나는 그중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아비인 로투스가 조직에 속해 있었기에, 태어날 때부터 피와 죽음이 가득한 도시에서 살게 된 아이.
제법 큰 조직의 간부였던 로투스가 손을 씻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의 어린 딸이 처음으로 손에 피를 뭍이게 된 날이었다.
‘아, 아빠.’
어린아이를 노리는 인신매매범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야성을 터트린 그의 어린 딸은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홀로 인신매매범들을 모두 죽이고 탈출할 만큼.
이대로 라면 로투스의 조직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었고 로투스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에 로투스는 조직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때 조직에서 건 조건은 하나.
마침 도시에서 성행하는 각성 시술을 받고 그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쌓아온 인맥을 이용해 어렵게 시술소를 찾은 로투스는 목숨을 걸고 시술을 받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특별한 에테르를 각성했다.
“재생력.”
로투스는 왼손의 손톱으로 오른손 손바닥을 그었다.
그러자 피 한 방울 나기도 전에 순식간에 아물어 버리는 손바닥.
“호오···.”
성현은 그의 손바닥에 모인 독특한 에테르를 확인하고 감탄을 흘렸다.
‘확실히 비슷하네.’
성현의 생체력과 비슷한 힘, 그러나 명백히 하위 호환에 가까웠다.
오직 재생에 제한된 힘은 성현의 생체력으로 가능한 온갖 능력에 비하면 그 용도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고작 원시적인 에테르를 다루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도시를 빠져나오기는 했는데···.”
브로커를 통해 얻은 우주선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리자드맨에게 잡혔다는 로투스의 말에 성현은 턱을 긁적였다.
성현이 이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그래서 네가 재생력 덕분에 우주선 추락에서 살아남은 것은 알겠어. 근데 네 딸은? 로나는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