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

“죄송합니다.”
“···.”
성현은 단호하다 못해 칼 같은 로투스의 반응에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 그는 존댓말로 고개까지 숙이며 절대 말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성현은 약간의 찜찜함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 그의 임무와 관련이 없다면 상관없었다.
크르릉!
“아빠!”
때마침, 돌아오는 로나와 붉은 늑대.
“로나!”
성현은 로투스가 그녀를 안아 드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가 타고 왔던 붉은 늑대를 모래 속으로 집어넣었다.
가루가 되어 모래 속으로 사라지는 늑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성현은 그 붉은 가루 약간을 손바닥으로 끌어왔다.
“그건 뭐지?”
성현의 손바닥 위에서 회전하는 붉은 가루에 관심을 보이는 로투스.
“이거?”
그의 관심에 성현의 시선이 손바닥으로 향했다.
그 위에 휘몰아치는 아주 작은 붉은 알갱이들.
“글쎄?”
성현과 로투스, 그리고 로나는 밤이 되자, 성현의 손짓 한 번에 생성된 붉은 모래 반구에 잠들었다.
드르렁!
“으음···.”
그렇게 자고도 여전히 피곤한 것인지 코를 고는 로투스와 그런 그의 소음이 거슬렸는지, 작게 뒤척거리던 로나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육체에서 벗어난 의식이 사막의 아래로 향했다.
사막의 모래 깊은 곳에 숨겨진 붉은 모래.
그 모래의 중심에 성현의 의식이 자리 잡더니, 익숙하게 시스템 창을 불러왔다.
그러자 떠오르는 성현에 관련된 수많은 정보 중 성현의 시선이 향한 곳은 얼마 전, 리자드맨을 몰살한 이후 새롭게 뒤바뀐 정보였다.
[열사폭균(熱沙爆菌)]
[바이탈 연구소에서 제작된 생물병기가 화생방 부사관, 이정현 하사의 힘으로 진화한 형태]
[고도로 응축되고 원형으로 뭉치며 내구도와 유지력 상승]
[열기를 흡수하고 정제 후 비축한다]
[비축된 열기를 양분 삼아 증식하고 그것을 매개로 폭발이 가능하다]
본래 <붉은 폭탄 곰팡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생물 병기의 변화.
성현은 그때, 처음으로 그의 에테르-생체력의 진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막대한 양분과 성현만의 고유 에테르-생체력을 통한 생물 병기의 진화.
[세부 조건을 충족합니다.]
[생물 병기 <붉은 폭탄 곰팡이>의 진화가 시작됩니다.]
[진화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생물 병기 <열사폭균(熱沙爆菌)>이 생성됩니다.]
시스템 로그를 확인하던 성현은 조건을 충족했다는 시스템 메시지 때문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세부 조건이 뭐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양분이나 에테르를 제외한 세부 조건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고 그저 변해버린 생물 병기에 대한 정보만을 알려주는 시스템 창의 행태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성현은 또 다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생물 병기의 존재에 기분이 이상했다.
‘뭐, 어쨌든 지금 내 병기는 총 넷.’
<화이트 크라운>, <멸망 부름 버섯>, <검은 질량 곰팡이>, <열사폭균>.
이 중에서 오로지 세계를 대상으로 하기에 웬만하면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멸망 부름 버섯>과 달리, 나머지 셋은 다들 유용했다.
정보창에도 제대로 된 설명이 없는 <화이트 크라운>은 가장 처음으로 획득한 병기이며 여러모로 운용하기 쉬운 데다가, 에테르 침식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사실상 일반적인 성현의 주력이었다.
게다가,
‘뭔가 숨겨져 있단 말이지.’
예전 성현의 임관식 당시, 성형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체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화이트 크라운>.
‘백 어쩌고였던 것 같은데.’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명확한 의식이 없어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없었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모를 수가 없었다.
정보창의 물음표만큼이나 수상한 병기.
그리고 영웅급 괴수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은 질량 곰팡이>는 그놈의 고유 세계가 그대로 생물 병기가 된 특이한 케이스로 그 능력의 특성상 분야가 한정되기는 하지만 굉장히 강력했다.
마지막으로 <열사폭균>.
새롭게 진화한 이 균사체는 이 행성에서 사용되기 아주 적합했다.
마치 이곳에서 사용하라고 진화한 것처럼 균사체 하나하나가 고밀도로 압축되어 모래 알갱이처럼 변한 곰팡이.
‘흠···.’
성현은 정신을 집중해 사방에 퍼진 붉은 모래, <열사폭균>을 일제히 위로 끌어올렸다.
드드드.
미약한 소음과 함께 사막의 모래를 헤치고 오아시스처럼 솟구친 붉은 모래가 성현의 일행이 잠든 반구형 임기 거처의 아래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더니 이내 통째로 흐르기 시작한 붉은 모래가 그 위의 거처를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모두가 잠든 밤, 마치 흐르는 강물 위에 띄운 배처럼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거처.
둘은 모르겠지만, 그동안 매일 밤마다 성현은 이런 식으로 목적지와의 거리를 좁혔다.
“아, 미안. 깼어?”
“···.”
육체로 의식을 되돌린 성현은 어느새 멈춘 코 고는 소리에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미숙한 로나와는 다른 것인지, 그는 잘 느껴지지도 않는 지면의 움직임을 눈치챈 것처럼 보였다.
잠시 침묵한 채, 성현을 빤히 바라보던 로투스가 물었다.
“그래서 넌 뭘 원하는 거지?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 거고.”
조금 전에는 로나 때문에 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는 로투스.
그런 그에게 답하기 전 성현은 이 행성에 오기 직전에 처음으로 열린 시스템 창을 띄웠다.
[임무창]
한창 전쟁 중인 연방의 군인인 성현이 소속 부대를 벗어나 외부 활동을 하는 것에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갑주를 장비로 가공해 줄 기술자를 찾는 성현에게 그라논 대위는 연방의 군인, 그 중에서도 부대의 지휘관만이 하달할 수 있는 ‘임무’를 하달했다.
56대대에서는 소속이 없었기에, 일전의 개척에서는 시스템의 영향권 밖이었기에 처음으로 정식 임무를 받고 파견된 성현은 아직 낯선 임무창의 목록을 확인했다.
[1. 요인 구조.]
[임무 내용; 병기 기술자, 스코튼 박사를 구조하라.]
[임무지: 비인가행성 KDZ-32B4]
[임무 수행자; 이성현 하사]
[임무 기간: 25일]
[명령자: 화생방 특임대장]
임무지에 적힌 에비즈락 행성의 일련 번호였고, 임무 기간은 이전 선발대가 정비를 끝내고 새로운 개척대를 형성하기 전까지로 본래 1달 가까이 되던 기간이 현재는 25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래도 말이 구조지, 제 발로 탈주한 박사를 ‘회수’하는 것에 가까운 임무.
‘솔직히 별거 없는 임무였는데.’
1달이라는 기간을 준 것도 갑주의 개조까지 천천히 하라는 그라논 대위의 배려였다.
‘그런데···.’
작게 한숨을 내쉰 성현의 시선이 그 아래로 새롭게 생긴 임무로 향했다.
[2. 섬멸]
살벌하기 그지없는 임무명.
그것은 샌드 리자드맨을 통해 ‘불법 각성 시술’에 대해 알게 된 성현에게 갑자기 하달된 것이었다.
[임무 내용; 비인가행성 KDZ-32B4의 관련 지성체 섬멸.]
[임무지: 비인가행성 KDZ-32B4]
[임무 수행자; 화생방 부사관]
[임무 기간: 2주]
[명령자: 제4군사령부]
군사령부에서 직속으로 하달된 명령은 연방의 새로운 병기, 화생방 부사관에게 그 기술에 관련된 모든 지성체를 학살할 것을 요구했다.
“하, 시발.”
본인의 의사 따위는 물어보지도 않는, 일방적인 명령 하달.
“???”
그리고 그 관련 지성체에 당연히 눈앞의 수인이 빠질 리가 없었다.
‘미친 거 아냐?’
성현은 머리를 짚고 고민에 빠졌다.
리자드맨과 로투스에게 대략의 상황을 전해들었기에, 디에스코의 지배세력에서 시작된 각성 시술이 이미 행성 전반에 퍼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은 2번 임무를 진행하려고 한다면 그를 위해 성현이 죽여야 하는 이들의 숫자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난데없이 주어진 대량 살상 임무.
성현이 무언가를 죽여본 적이 없는 것도, 죽음을 겪지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여태 그가 죽여왔던 것들 것 모두 괴수였다.
그러나 임무에서 요구하는 것은 괴수가 아닌 지성체의 죽음이었다.
“···.”
성현은 고개를 돌려 로투스와 눈을 마주쳤다.
“일이 있어서 디에스코에 가야 해.”
성현의 대답에 움찔하는 로투스.
그곳에서 힘들게 빠져나왔던 그들은 다시 돌아가자는 의미한 성현의 말에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고···.’
그는 각성 시술과 관계가 있는 데다가, 이전에 샌드 리자드맨에게 붙잡힌 것처럼 아무리 불사자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가진 로투스라도 그를 노리는 수많은 사냥꾼 사이에서 무사하는 것은 힘들었다.
애초에 불사자라는 이명은 시술 후 그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전투력보단 특출난 재생 능력 때문에 붙은 것이기에 스스로와 로나를 지킬 힘이 부족했다.
‘뭐, 사실 다 핑계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둘을 도시 내부에 데려갈 생각은 없으니까.”
성현은 우선 도시 밖 적당한 곳에 둘을 두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지금은 모래 속에 넣어둔 포트를 지켜볼 이가 필요하기도 하고, 연방의 정복을 입은 성현이 무사히 도시에 들어갈 확률은 한없이 0에 수렴했다.
“원래 계획은 박사를 부르는 거였는데.”
성현이 정복을, 특히 가슴팍에 화생방 특임대의 심볼이 달린 정복을 입고 온 것은 도시 전체에 화생방 특임대의 누군가가 왔음을 소문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흉흉한 임무가 하나 추가된 상태였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다.
성현의 시선이 두 번째 임무가 떴을 때부터 그라논 대위와 하던 메시지를 확인했다.
[군사령부와 얘기하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이틀 전, 그라논 대위의 메시지 이후로 계속해서 연락이 없는 상황.
성현은 슬슬 가까워지는 도시와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불안함을 느꼈다.
‘제발!’
쾅!
거칠게 열리는 문.
“음?”
난데없는 소란에 방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이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오!”
그리고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드는 방의 주인.
그는 자신의 인사에도 무시하고 다가오는 침입자, 까마귀 가면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어지간히도 화가 났군.’
얼굴은 가면으로 가려진 데다가 전신의 복장도 일체의 노출이 없는 것이라 본래 감정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선명하게 느껴졌다.
까마귀 가면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끔찍한 적의.
당장이라도 방 안을 휩쓸 것 같은 ‘죽음의 바람’ 때문에 남자는 급히 손을 휘저었다.
‘그건 안돼! 그렇게 되면 한동안 이 사무실은 끝이야!’
남자처럼 일이 바쁜 이에게 그것은 상당히 치명적인 일이었다.
“워, 워. 진정하라고. 그라논 대위. 아니 그라논 소령(진)이라고 불러 줄까? 그동안 미뤄뒀던 벽을 넘을 거라는 말이 있던데.”
“쓸데없는 사절은 됐습니다.”
모든 사족을 단칼에 잘라낸 그라논 대위는 고개를 숙여 그와 눈을 마주쳤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임무를 하달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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