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

성현의 로브가 펄럭이고 그 아래에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붉은 모래.
정확히는 모래가 아닌, 고밀도로 응축된 곰팡이지만 생명을 품었다는 것 외에는 모래나 다름이 없는 <열사폭균>이 순식간에 사무실의 바닥을 뒤덮기 시작했다.
“윽!”
마치 사막에 들어온 것처럼 순식간에 발목을 스치는 모래의 물결에 바쿠스가 덩치에 걸맞지 않은 빠른 몸놀림으로 거리를 벌렸다.
“···.”
성현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책상 위에 쪼그리고 앉은 그와 눈을 마주쳤다.
경계심이 잔뜩 담긴 눈초리에 성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제발 내 말 좀 들어요.”
성현이 가볍게 몸을 털자, 그의 머리와 허리에 붙어있던 붉은 귀와 꼬리가 붉은 모래로 변해 흩어졌다.
그런 성현을 말없이 바라보던 바쿠스는 조심스럽게 모래로 가득한 사무실의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래, 무슨 일인지 들어보지.”
“호, 이제야 겨우 들어볼 생각이 들었나 보네.”
약간의 짜증이 담기 성현의 말에 그를 가리키는 바쿠스.
“보아하니 내 힘으론 상대가 안 되는 ‘존재’ 같고, 게다가 로투스와 아는 사이라며?”
그가 가리킨 곳에는 바쿠스의 손톱에 찢긴 가슴팍과 옷자락에 모래가 모여들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긴 성현이 사무실의 소파로 향했다.
그의 걸음마다 주변의 붉은 모래가 모여들더니 성현의 로브 아래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편하게 소파에 앉은 성현은 맞은편에 바쿠스가 앉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피오나! 이 꼬마한테 방 하나 내줘라.”
“네? 네!”
‘아오.’
성현은 자신의 어깨를 팡팡 두들기며 말하는 바쿠스 때문에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찌나 힘이 센지, 어깨를 이루고 있던 <열사폭균> 일부가 잠시 형태를 잃고 흩어졌다.
“따라와. 꼬마야.”
“네.”
성현은 2층에 있는 방 중 하나로 그를 안내하는 피오나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넌 이름이 뭐니?”
피오나의 질문에 빠르게 굴러가는 성현의 눈동자.
“로···로아요.”
수인이 가지기에는 명백히 이질적인 본명 대신 반사적으로 다른 이름을 내뱉은 성현은 수인의 작명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로투스와 로나의 것과 비슷한 이름을 지었다.
“로아? 예쁜 이름이구나?”
성현은 호의를 보이는 피오나를 향해 작게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럼 푹 쉬렴.”
“네, 감사합니다.”
덜컥!
“후···.”
피오나가 방을 나서는 것을 확인하고 성현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일단 일은 잘 풀린 것 같네.’
“으음···.”
바쿠스의 사무실을 나서기 전, 다시 만들었던 늑대의 꼬리가 배기는 것을 느낀 성현은 몸을 약간 비틀었다.
“어색하네.”
일평생을 인간으로 살던 성현은 비록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어도, 그 형태가 가장 익숙했다.
그러니 갑자기 달게 된 수인 특유의 신체 기관이 어색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지금 나는 수인이니까.”
성현이 바쿠스의 협조를 통해 새로운 신분, 붉은 늑대 수인 로아를 만든 것은 그를 통해 이 도시의 ‘진짜’에 들어서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다르네.”
성현은 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 도시에 처음 들어왔을 때 걸었던 대로를 떠올렸다.
비록 곳곳에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전체적으로 ‘깨끗해’ 보였던 도로.
지금 성현이 바라보는 거리는 그 대로와 풍기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시청에서 외부 방문객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 만들고 관리하는 대로는 평화로웠지만,
‘아, 폭발음이 들렸지?’
··· 평화롭게 ‘보였’지만, 그것은 성현이 원하는 것을 얻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당장 성현이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시청이 주관한다는 불법 각성 시술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친 것인지, 또 그렇다면 성현이 ‘징벌’해야 하는 것이 어디까지라고 봐야 하는 것인지 확실히 하는 것이었다.
번쩍!
“···.”
비록 주기적으로 성현의 시선을 사로잡는 임무창은 이 행성 전체의 징벌을 요구했지만.
성현은 애써 임무창에서 시선을 돌렸다.
"역시 불법 각성 시술소부터 찾아야 겠는데."
고민에 잠기는 성현.
'역시 시청에 있으려나? 아니지, 그런 위험한 시설을 시청에 둘까?'
비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대대적으로 시술을 홍보하고 있는 시청이 연방의 분노를 살 것이 분명한 시설을 시청에 뒀을 리가 없었다.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 각성 시술을 알린 것부터가 미친 짓인데...."
잠시 고민하던 성현의 생각이 어딘가에 닿았다.
"아는 놈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여긴가?”
성현은 고개를 들어 빌딩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20층 정도 되어 보이는 건물.
도시를 둘러싼 황금의 벽이 보호해 주는 영역 때문에 건물의 고도제한이 존재하는 도시에서 20층은 제법 높은 축에 속하는 건물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건물 안에 자리한 조직이 도시 내부에서도 꽤 영향력이 있는 조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바쿠스의 말에 따지면 이 건물 안의 조직은 적어도 10위권에 드는 제법 큰 조직으로 로투스가 속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시술소의 위치에 대해 알만한 곳이고 성현에게 습격의 정당성을 부여할 곳이기도 했다.
“진짜 난리를 쳤나 보네.”
로투스 부녀가 실종될 당시, 바쿠스의 습격을 받은 조직이라는 뜻이었다.
아직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곳곳이 부서진 건물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뭐, 조금 미안한가?’
속으로 중얼거린 성현이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도시의 조명 아래 훤히 드러난 붉은 귀.
“수인?”
그것을 발견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몰리는 것을 느끼며, 성현은 때마침 자신을 바라보던 건물 입구의 경비와 눈을 마주쳤다.
우락부락한 몸과 녹색의 피부.
오크로 보이는 그의 시선이 성민의 머리 위로 향하더니 눈을 부릅떴다.
청랑 바쿠스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던 건물과 그 앞에 다시 자리한 수인, 그것도 늑대 수인.
“데, 데쟈뷰?”
오크의 중얼거림과 함께 성현은 지면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급격히 커지는 오크의 얼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성현의 모습에 그가 반사적으로 주먹을 지켜 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콰드득!
“크아악!”
그대로 몸을 비틀어 주먹을 피하면서도 손을 뻗어 오크의 팔까지 비틀어 버리는 성현.
아무리 신체능력이 뛰어난 수인이라고 해도 고작 소년의 몸으로 보이는 것이 불가능한 괴력.
성현은 그대로 비틀린 팔을 뽑아냈다.
“꺄아악!”
대낮에 누군가의 팔이 뽑히는 것을 목격한 주변 행인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 사이 성현은 쓰러진 오크를 넘어 건물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쾅!
무슨 유리를 쓴 것인지 단단한 유리와 또 그런 유리를 무식하게 박살 내고 로비로 뛰어든 성현.
그런 성현을 반긴 것은 막 뛰쳐나오기 시작한 수많은 조직원들이었다.
오크, 인간, 샌드 리자드맨 등으로 이루어진 온갖 종족의 무리.
“저 새끼 뭐야!”
“이게 미쳤나!”
“잡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흉흉한 무기들이 쥐어져 있었다.
‘균사체만 쓸 수 있으면 금방이지만···.’
붉은 모래를 풀어내는 대신, 성현은 조금 더 몸을 숙이더니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성현의 몸을 이루고 있던 <열사폭균>, 그 중에서도 수인의 근육을 모방한 균사들이 수인 특유의 폭발적인 움직임을 재현했고, 그 결과 성현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쾅!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정면으로 돌진하는 성현.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경로가 단순했기에 그의 눈앞에는 조직원들이 내민 무기들이 튀어나왔다.
보통 수인이라면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 뻔한 상황이지만, 성현은 그저 몸의 표면을 이루고 있던 균사체를 더 촘촘하게 배열했고 그 덕분에 무기들은 성현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일제히 튕겨 나갔다.
채쟁!
마치 금속끼리 부딪친 것 같은 충돌음과 그 반동으로 그들이 밀려나는 사이 오히려 그 틈을 더 파고드는 성현.
강철보다 단단한 몸뚱이가 파괴적인 힘을 쏟아냈고, 그 힘이 담긴 주먹은 그들의 몸에 치명적인 흔적을 남겼다.
쇠붙이로 된 무기를 부수고 살과 뼈까지 부수는 압도적인 폭력.
막는 것이 불가능한 성현의 주먹에 힘이 풀렸을 때는 이미 모든 조직원들이 쓰러진 뒤였다.
몸 여기저기 부서져 널브러진 조직원들 사이에서 멀쩡하게 몸을 일으킨 성현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높기도 해라.’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쾅! 콰드득!
으아악!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그 틈을 비집고 들려오는 비명.
“제, 제기랄.”
점차 가까워지는 소리에 가로낙이 이를 악물자, 전사의 종족인 오크답지 않게 살이 가득한 그의 턱이 잘게 떨렸다.
“진정해라. 사장.”
그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거구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진정을 해? 저 버러지 같은 놈들이 자동문처럼 자동으로 열리는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은 거구의 오크는 그저 가볍게 몸을 풀며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나머지 놈들은 쭉정이잖아? 진짜는 여기 모두 모여 있다.”
“음···.”
자신감이 가득한 거구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장.
‘하긴 시술을 받은 놈들은 다 여기 있으니.’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그의 사무실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흉흉한 모습의 그들은 가로낙이 이 행성에 오기 전부터 함께 하던 이들.
안 그래도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최근 시청에서 시행하는 시술을 통해 에테르를 손에 넣으며 엄청난 힘을 손에 넣었다.
‘그 빌어먹을 개새끼가 하필 시술 중에 쳐들어와서는.’
다만 아무 생각 없이 그들 모두를 시술소로 보냈던 사장은 그사이 쳐들어온 퍼런 개새끼에게 치욕을 당해야 했다.
혼자 부하들을 뚫고 꼭대기의 사장실까지 쳐들어와 그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던 눅대 수인.
지금 그의 부하들을 돌파하는 정체불명의 존재는 그때의 그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비록 다른 방법으로 복수하고 있기는 하지만, 똑같이 갚아주기 위해 시술소에 눈앞의 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가로낙.
마침 그들이 복귀했을 때, 침입자가 발생했다는 것에 사장은 새삼 안도감을 느꼈다.
“다행이군.”
그리고 재수가 없을 망할 침입자 놈을 떠올리며 가로낙은 비릿하게 웃었다.
놈이 아무리 여기까지 돌파한다고 해도,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에테르 사용하 13인.
절대 놈에게 희망은 없었다.
“놈을 죽, 켁!”
콰드득!
“끄아악!”
성현은 팔이 비틀려 비명을 지르는 오크의 머리통을 그대로 후려쳤다.
그러자 비명을 멈추고 힘없이 쓰러지는 오크.
“어우, 시끄러워.”
약간(?) 함몰된 머리가 그의 생사가 몹시 위태롭다는 것을 알렸지만 성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쓰레기 놈들.”
어차피 이곳에 있는 놈들은 이 행성에 들어오기 전부터 범죄자였던 놈들이었기에 거리낌은 없었다.
찰랑!
성현은 발 밑을 적시는 핏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뜯겨 나가 쓰러진 놈들을 넘어 마지막 지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주 떡칠을 해 놨네.”
마지막 층으로 올라온 성현은 쓸데없이 화려한 사장실의 문을 발견하고 혀를 찼다.
그리고,
“응?”
그 문 너머 느껴지는 기척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에테르.’
사막의 샌드 리자드맨처럼 조잡하지만 확실히 에테르가 느껴졌다.
그리고,
벌컥!
갑자기 열린 문 사이로 굴러오는 무언가.
“가로낙?”
그것은 성현의 목표물이었던 조직의 수장, 가로낙이었다.
그것도 머리만 남은.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