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시술소

“음···.”
성현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가로낙의 머리통과 놈의 사무실 안에 있는 오크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잠시 눈을 깜빡이던 성현이 자신을 바라보는 오크들에게 입을 열었다.
“너흰 무슨!”
쾅!
성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 안의 오크 중 하나가 튀어나와 성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뒤로 도약해 그 주먹질을 피한 성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생물의 피륙으로 이루어진 주먹질의 여파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균열 속에서 손을 뽑아내는 오크.
“피했군.”
“그럼 당연히 피하지.”
놀랍다는 듯이 말하는 오크의 모습에 살짝 불쾌해진 성현이 곧바로 빈정거렸다.
“하지만 다음번은 없을 거다.”
우웅!
“어?”
꽉 쥐어진 오크의 주먹을 휘감은 에테르-오러.
로투스와 달리, 희귀하지는 않지만 리자드맨들처럼 순정 상태가 아닌, 가공된 에테르의 등장에 성현의 얼굴이 더 찌푸려졌다.
“얼씨구?”
성현은 그가 로투스처럼 작지만 확실히 에테르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머리를 긁적였다.
로투스처럼 그릇을 가졌지만, 그처럼 시청에 쫓기지는 않는 오크와 죽어버린 가로낙.
“시청의 끄나풀이 된 건가?”
“···.”
성현의 생각이 맞았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는 오크.
“뭐? 감히 형님께 끄나풀이라니! 시청의 협력자가 되신 거다!”
뒤에서 소리치는 놈들은 무시한 성현은 잠시 가로낙의 머리를 보고는 혀를 찼다.
‘운이 좋은 놈이었네.’
놈의 휘하에서 등장한 두 명의 에테르 그릇 보유자.
‘아닌가?’
그 결과가 본인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운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뭐, 잘됐네.”
성현은 곧바로 계획을 변경했다.
마침 그의 눈앞에 등장한 시청의 끄나풀이자, 각성 시술의 피시술자.
성현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콰드득!
으아악!
귓가에 울리는 비명.
“허억!”
거칠게 숨을 몰아쉰 오크, 가니안은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오러 사용자라고 해도 복부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리면 살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그가 아직 숨이 붙어있는 이유는 그 구멍 속에 자라난 새하얀 무언가 때문이었다.
‘이건 대체 뭐지?’
오크 특유의 녹색 피부와 대조적인 새하얀 무언가는 순식간에 그의 복부를 메꿨고 그와 동시에 가니안의 몸이 자유를 빼앗았다.
가니안은 명치 부근에 위치한 자신의 에테르 그릇이 복부에서 자라난 새하얀 무언가에 의해 억압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손에 넣은 힘인데!’
빠드득!
이를 악문 가니안은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기 위해 팔에 힘을 주어봤지만, 마치 몸에 뿌리라도 내린 것처럼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고생하네.”
그때, 가니안의 머리맡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니안은 어느새 들려오던 비명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의 주인을 노려보았다.
“흠···.”
아무렇지 않게 그를 내려다보는 붉은빛의 괴물.
수인 상태의 괴물은 그 붉은 털이 핏물에 젖어 더 붉게 느껴졌다.
자유자재로 꿈틀거리며 자라나 가니안의 오러가 담긴 주먹을 아무렇지 않게 튕겨내고 그의 복부를 꿰뚫었던 그 붉은 털이.
‘괴물 새끼.’
그가 속으로 뭐라고 중얼거리던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괴물, 성현은 오러를 사용하는 오크, 가니안의 몸에 심어둔 <화이트 크라운>을 조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생각보다 너무 퍼졌네.’
딱히 에테르도 주입해 주지 않았는데, 다른 오크들을 처리하는 그 짧은 사이에도 어찌나 빠르게 증식했는지 조금만 늦었다면 가니안의 뇌까지 퍼져 그를 죽일 뻔했다.
‘그럼 안되지.’
다음 일을 위해 꼭 필요한 그가 죽어버리면, 가로낙은 물론이고 방 안의 다른 오크들을 모두 죽인 성현에게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휴!”
<화이트 크라운>이 그의 머리에 침범하지 못하게 일일이 다 조정한 성현은 그대로 가니안을 들어 올렸다.
“돌아가 볼까?”
백수 용병단 거점으로 돌아가려던 성현은 잠시 고개를 돌려 그가 일으킨 참사를 바라보았다.
“···.”
몸 여기저기가 뚫리고 뜯겨 나간 오크들의 사체들.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조리 양분으로 변환하는 균사체를 이용했다면 이런 흔적이 남지 않았으리라.
꿈틀.
성현의 감정에 따라 수인 형태로 몸을 변형한 성현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붉은 털이 일제히 꿈틀거렸다.
정확히는 털의 형태로 뭉친 붉은 곰팡이 <열사폭균>이.
잠시 참혹한 풍경을 바라보던 성현은 그 피비린내를 애써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밖이 아주 소란스러워.”
“그런가?”
“혜성처럼 등장해 홀로 조직 하나를 몰살한 살육의 붉은 늑대!”
“··· 그만하지?”
“적랑(赤狼) 로아!”
“···.”
“크하하!”
성현은 즐거운 듯 폭소를 터트리는 바쿠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됐고, 내가 말한 것 어떻게 됐지?”
“흠흠.”
성현의 말에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멈추는 바쿠스.
“네가 말한 대로, 시청과 연관이 없고 각성 시술을 받지 않은 이들과 접촉하고 있다.”
성현이 굳이 그를 찾아온 이유.
도시 내부의 세력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와 다르게, 이곳의 주민인 그의 도움을 받아 한 번 ‘거르는’ 것.
성현의 시선이 잠시 어딘가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는 바쿠스.
“근데 괜찮겠어?”
“뭘?”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시청에서 무언가 눈치챌 확률이 높을 텐데.”
현재 바쿠스가 접촉한 이들은 절대 선량한 이들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 도시는, 이 행성은 범죄자들로 가득한 곳이기에 세력을 이루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도 범죄자, 혹은 예비 범죄자나 다름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중 몇몇이 시청과 거래를 하거나, 아예 붙어먹을 수도 있기에 시청에서 무언가를 눈치채고 저항할 확률이 높았다.
“아, 그런 건 상관없어.”
성현이 굳이 이런 귀찮은 일을 벌이는 것은 시청의 저항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저 별 관련이 없는 이들이 휘말려 죽어 나가는 것이 거슬렸을 뿐.
“그러니까 진짜 각성 시술과 관련이 없다는 것만 제대로 확인해 줘.”
연방에서 내려온 임무는 오직 ‘불법 각성 시술’에 관련된 것이기에 나머지 범죄는 성현이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근데 그전에 박사와 만나야 하는데···.’
성현은 각성 시술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어떤 식으로든 박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시술소의 위치를 알고자 했고 다행히 어떤 친절한 오크의 ‘협조’로 시술소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제는 성현의 일부가 되었을 누군가를 떠올린 성현이 몸을 일으켰다.
“응? 어디가?”
“시술소에 가보려고.”
“어?”
의문이 깃든 바쿠스를 보며 성현이 웃었다.
“각성 시술에 관심이 있어서.”
다만 대놓고 들어가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적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성현은 피시술자가 포함된 조직을 궤멸시킨 상태였고 에테르 사용자인 그들을 쓰러트린 성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니···.’
“가로낙 같은 놈들, 더 있지?”
“어? 그렇지?”
“명단 줘.”
그렇기에 관련자의 협조가 필요했다.
죽은 가로낙과 다르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자의 협조가.
디에스코의 시청 부근에 자리한 작은 창고.
본래 디에스코가 세워진 초창기에 물류창고로 이용되던 그곳은 도시의 규모가 커지며 자연스럽게 버려진 곳 중 하나였다.
늘어나는 물류를 감당하기 위해 세워진 더 큰 창고로 인해 쓸모가 없어진 그 창고를 비롯한 인근 건물들은 재개발 지역으로 분류되어 인기척이 뜸해진 곳이었다.
도시의 중심 근처라 땅값이 높은데도 이상할 정도로 재개발이 지연되는 이상한 구역.
그곳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조용히 들어섰다.
목적지가 있는 듯 정확히 창고로 향하는 이들.
잠시 뒤 반쯤 열린 창고로 들어선 그들을 반기는 것은 창고의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경비들이었다.
무리의 선두에 있던 이가 무언가를 내밀자, 다시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경비들.
그리고 창고의 뒤쪽 벽면이 부드럽게 열리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없이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한 무리.
그 끝에는 지하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공간과 새하얀 조명, 그리고 새하얀 로비였다.
로비 안에 있는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네, 안녕하세요. 오늘 3시에 예약했는데요.”
“네, 잠시만요. 아, 블랙 코브라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금방 안내하겠습니다.”
“네.”
고개를 끄덕인 블랙 오크가 일행과 함께 로비의 옆, 대기실로 향했다.
오크의 아종으로 검은빛의 피부를 가진 블랙 오크는 일반적인 오크와 덩치는 비슷했지만, 유달리 지능이 뛰어난 개체가 많았고 그에 걸맞듯 그의 옷차림도 마치 샐러리맨처럼 정장을 걸친 아주 이지적인 차림을 하고 있었다.
디에스코에서 사채업자로 유명한 블랙오크, 바라틴은 별다른 의심을 보이지 않는 안내원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블랙 코브라? 실화냐?”
그때, 일행 중 하나가 그 블랙 오크의 옆구리를 찌르며 중얼거렸다.
”아, 예···.”
그러자 갑자기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블랙 오크.
“어허, 표정.”
그가 인상을 찌푸리자, 곧바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오크와 그것을 만족스럽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성현.
수인의 모습이 아닌, 인간으로 의태한 성현은 다행히 별문제 없이 시술소 내부에 들어왔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이미 몇 차례 시술소와 거래한 바라틴은 시술소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믿을 수 있는 고객인 듯, 별다른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시술 때마다 본인이 직접 시술 대상자를 데리고 온다는 점이 믿음을 준 듯했다.
‘역시 잘 골랐다니까?’
그냥 명단 중 아무나 골랐던 성현은 생각보다 쉽게 돌아가는 상황에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성현.
로비의 한쪽에 마련된 대기실은 살벌하게 경계 중이었던 입구와 달리, 따로 지키는 이가 없었고 로비의 안내원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조심스럽게 미세한 포자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게 그 크기를 줄이는 것에 집중한 포자들이 서서히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육안으로 식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작은 포자들이 조용히 로비를 넘어 그 안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조용히 천장에 일부 모인 포자가 응집되고, 이내 작은 눈의 형태로 변했다.
그러자 긴 복도와 그곳에 자리한 수많은 문이 성현의 시야에 들어왔다.
빙글
사방으로 회전한 눈을 통해 복도를 확인한 성현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포자를 보내 문을 확인했다.
‘틈이 없네···.’
문과 문틀 사이에 포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성현의 미간이 작게 찌푸려졌다.
‘어떡하지?’
성현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 어떤 문 하나가 열렸고, 그러자 급히 돌아간 눈이 문에서 나오는 이를 확인했다.
“에?”
‘당신이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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