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성현의 주특기인 <균사체>는 균사를 다루는 것을 넘어 성현의 신체를 균사로 이루어진 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비잔티움에서 새롭게 획득한 버섯, 가칭 발광 버섯은 그런 성현의 주특기를 통해 그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기에,
“빛이 있으라.”
찬란하게 빛나는 성현의 몸.
“···.”
그 괴상망측한 모습에 할 말을 잃고 침묵하던 스코튼 박사는 눈을 가려 빛을 피하더니 이내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게 무슨 연병이야?!”
성현이 편해진 것인지 갈수록 험악하게 변하는 박사의 욕설에 성현은 슬쩍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저 인간은 처음부터 저랬어.’
빠르게 현실을 직시한 성현이 박사에게 본론을 전했다.
“그래서 이걸로 어떻게 병기를 만들 수 있습니까?”
“되겠냐?”
단호하기 그지없는 박사의 말에 성현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왜 안 됩니까? 어떻게 잘하면···.”
“안돼.”
또다시 단호하게 성현의 말을 자른 박사.
영문을 모르는 성현에게 한심하다는 시선을 숨기지 않은 그가 입을 열었다.
“생물 병기라는 게 무슨 아무 버섯이나 주워서 손질 좀 하면 만들어지는 건 줄 알아? 그런 평범한 버섯으로 만들 수 있는 건 빛나는 버섯볶음 같은 괴식밖에 없어.”
“음···. 그럼 광선 버섯 같은 건 못 만듭니까?”
어떻게 빛을 모아 쏘아내는 그런 버섯 병기, 성현이 원하는 것은 그런···.
“되겠냐!”
성현은 그 버섯이 연방의 데이터베이스에도 찾아볼 수 없는 희귀종이라는 사실을 어필해 보았지만, 박사는 격이 부족하다며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실망한 성현에게 퍼부어지는 박사의 역정을 통해 생물 병기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알게 된 성현의 생각은 그가 가진 버섯, <멸망 부름 버섯>이 얼마나 특이한 것인지로 향했다.
고유 세계를 제물로 버섯을 만들어내는 특이하기 그지없는 버섯.
성현의 보라색 버섯이 가진 힘은 성현이 가진 병기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이고 까다롭지만, 그렇기에 그 과실도 굉장히 달콤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제물로 쓸 ‘고유세계’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론상 강자, 그것도 그 속에 하나의 법칙이 담긴 세계를 품고 있는 만큼, 연방군으로 치면 위관급 이상은 되어야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영관급과 달리, 완성되지 않은 고유세계를 가진 위관급에게도 버섯이 효과가 있을지는 성현도 장담할 수 없었다.
‘당장 해본 적이 없으니.’
“어쨌든 큰 쓸모가 없다는 뜻인데.”
함선에 남겨둔 단말을 통해 이 빛나는 버섯이 큰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아낸 성현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이상한데.’
박사가 말하는 ‘격’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성현에게 이 버섯이 평범한 버섯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당장 생체력을 매개로 자라난 빛나는 버섯은 다른 버섯들과 달리 상당히 많은 생체력을 필요로 했다.
‘일단 킵.’
이미 종균화된 것이 사라질 리가 없기에 성현은 잠시 고민을 미뤄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살피자 어느새 식사를 끝내고 정리 중인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 다음 작전 계획에 대해 브리핑하겠습니다.”
늪지를 건너자마자 버섯 하우스(?) 같은 괴상한 것을 만들어 둔 것은 이곳을 기점으로 더 이상 연구소의 영향권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보통 ‘야생’이라고 불리는 구역, 이제부터 이들은 그곳에 들어가야 했다.
7섹터 연구소에서 북서쪽 방면에 위치한 늪지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연구소에서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곳이지만, 늪지 너머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늪지를 건너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돌아가기에는 멀었기에 평소 연구원들이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
인적이 닿지 않는 숲이기에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곳.
블루 비틀이 그 정도 무리를 이룰 때까지 발견하지 못한 이유도 그곳이 야생에 속한 구역이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곳에 있음에도 연구소의 눈에 들 정도로 무리의 규모가 이미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조심해서 들어가겠습니다.”
일전의 선발대가 한 번 다녀왔지만, 시간이 지난 만큼 그때와 또 다를 것이 뻔했다.
티무스는 성현이 손짓으로 거대한 버섯을 흩어버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흰색?’
단순히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 새하얀 포자의 형태로 변하는 것을 보며 문뜩 그것이 그들이 늪지를 건널 때 사용했던 다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평범한 버섯의 균사를 변이해 <화이트 크라운>의 포자안개로 만들었던 성현은 그 포자들을 한곳에 뭉치더니 이내 자신이 쓰던 몸까지 그 덩어리에 합쳤다.
그대로 지면에 파고들어 사라지는 포자 덩어리.
“···.”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티무스의 눈앞에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움직이세요.]
분명 방금까지 현장에 있었음에도 자연스럽게 사무실에서 보내오는 성현의 메시지.
이해를 포기한 티무스는 그저 익숙하게 명령에 따랐다.
파밧!
파공음과 함께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티무스와 대원들.
그들도 지금부터는 이전처럼 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소리 없이 나뭇가지를 디딘 누군가의 발.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나뭇가지에는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선객이 자리하고 있었다.
캬오!
“으악!”
뜬금없이 나타나 휘둘러지는 칼날.
순식간에 보호색을 벗으며 휘둘러지는 사마귀의 앞발을 간신히 피한 대원이 통신으로 소리쳤다.
[까, 깜짝 사마귀 출현!]
[확인. 4번, 7번은 6번을 도와라.]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한 6번 대원이 빠르게 가지 끝으로 이동해 거리를 벌리자, 뒤를 돌아 자세를 잡은 4번이 등 뒤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격발음과 화약 냄새 때문에 다른 동식물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총기 대신 가져온 활.
익숙하게 시위를 당긴 4번이 화살에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
알아들을 수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정령어.
그사이 뛰어든 7번이 6번을 쫓아와 다시 칼날을 휘두르는 사마귀의 옆구리를 어깨로 들이박았다.
그러자 궤적이 비틀린 사마귀의 칼날이 6번의 어깨 위를 지나쳐 옆에 박혔고, 몸을 피하려던 6번은 그대로 몸을 돌려 사마귀의 허리 부근을 걷어찼다.
옆구리와 충돌하고 떨어져 나온 7번이 소리쳤다.
“4번!”
그러자 그대로 시위를 놓은 4번.
상체가 떠오르며 사마귀의 움직임이 제약당한 사이, 빠르게 날아간 화살이 사마귀의 머리를 꿰뚫었다.
쩡!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소리 좀 지르지 마.]
7번을 향해 핀잔을 날린 4번 엘프는 활을 다시 메는 대신 그대로 손에 쥐었다.
[대장, 이곳은 원래 깜짝 사마귀가 서식하는 곳이 아닙니다.]
4번의 말에 지도를 확인한 티무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상세한 지도는 아니지만 간단하게 표시된 바에 따르면 이전 순찰 때만해도 깜짝 사마귀의 서식지는 북동쪽으로 30분은 더 가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용.]
그때, 무언가를 눈치챈 티무스의 신호와 함께 몸을 숨기는 대원들.
나뭇가지와 이파리 사이에 숨은 그들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쿠르릉!
나무를 통해 느껴지는 진동.
점차 강해지는 진동과 함께 어떤 것이 지면을 파헤치며 이동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흩날리는 먼지로 몸 곳곳이 가려져 있지만 검붉은 감각과 수많은 다리가 인상적인 괴물.
[저건 뭐지?]
처음 보는 벌레의 모습에 대원들이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통신 너머로 들려왔다.
[릴피나 연구원입니다. 지금 보고 계신 곤충은 붉은 땅굴 지네로 갑각이 어두운 것으로 봐서 아주 오래된 개체입니다. 원래 땅 밖으로 잘 안 나오는 곤충인데···. 어!]
의아해하던 릴피나는 티무스의 시야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을 본 시야의 원주인은 상황을 파악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 비틀!]
“블루 비틀···.”
티무스는 지네의 꽁무니를 쫓는 푸른 갑각의 벌레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이 지네를 사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콰드드!
꽁무니에 푸른 벌레들을 달고 필사적으로 달리는 지네와 그 모습을 보고 한층 더 몸을 웅크리는 대원들.
[조심.]
그들은 지네와 푸른 벌레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이 완전히 시야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휴, 일단 방향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티무스의 시선이 지네로 인해 나버린 거대한 통로로 향했다.
[이동한다.]
그리고 원래 그들이 향하는 방면으로 난 통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뒤쪽 멀리서 들려온 울음소리를 무시하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깜짝 사마귀, 투명한 거미줄을 이동해 함정을 설치해 놓은 둥지 거미, 피 냄새를 맡고 쫓아온 작은뿔 흡혈박쥐 등 온갖 괴물들을 최대한 피하며 대원들이 이동하는 동안 성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지네가 도주를 포기하고 멈춰선 곳이었다.
키이익!
지면에서 몸을 일으킨 거대한 지네와 그 지네를 둘러싸는 수십 마리의 블루 비틀.
그 대치 상황 속에서 한쪽에 자란 나무의 버섯이 급격히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숲 한복판에 홀로 나타난 성현.
그 벌레들과 제법 거리를 두고 일어난 성현의 시선이 푸른 벌레 무리로 향했다.
“흐음···.”
전심을 감싼 푸른 외골격.
확실히 벌레라고 부를 법한 외형의 생물은 풍뎅잇과의 곤충으로 보였다.
그러나 성현의 시선을 끈 것은 그런 푸른 껍질 같은 것이 아니었다.
‘곰팡이?’
그 껍질 곳곳에 자라난 푸른 곰팡이였다.
‘아니 정확히는···.’
곰팡이로 보이는 흔적이었다.
“자세히 좀 봐야겠는데.”
키에에엑!
지면을 흔드는 거대한 지네와 그런 지네를 사냥하는 푸른 벌레들.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들에게 걸어가기 시작한 성현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일단 지네부터.’
첫 임무에서 복귀한 뒤, 성현이 가장 신경 썼던 것은 당연히 그를 중사로 만들었던, 의지를 담는 법이었다.
스코튼 박사가 <검은 질량 곰팡이>와 갑주를 뒤섞어 <흑강철균>을 만드는 동안, 성현이 계속해서 연구했던 에테를 통해 의지를 불어넣은 수많은 기술들.
성현은 그중에서 하나를 떠올렸다.
매개는 <화이트 크라운>.
‘<화이트 크라운>의 특징은 침식이야.’
다른 에테르를 먹어 치우는 독특한 힘.
성현이 <화이트 크라운>에 의지를 담으며 중점으로 여긴 것은 그 부분이었다.
“피어나라.”
<화이트 크라운-백화(白花)>
주변의 지면을 뚫고 빠져나온 수많은 꽃봉오리들.
성현을 중심으로 빼곡히 자라난 꽃들이 성현의 손짓에 따라 일제히 꽃을 피웠다.
순식간에 주변을 뒤덮은 새하얀 꽃의 정원.
키익?
녹색의 숲에서 눈에 띄는 새하얀 꽃밭의 모습에 지네와 푸른 벌레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새하얀 꽃밭의 중심에 선 성현이 그 시선들과 마주 보았다.
‘일단 한 마리는 제외하고.’
이 하얀 꽃밭은 그저 보기 좋으라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고,
“흩뿌려라.”
새하얀 꽃에서 꽃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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