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또 말을 하네

삐요오
띠리리리
틱틱탕
“흐흐흐흐. 하하하하하하. 재밌네요. 재밌어.”
‘또 시작이다.’
태리는 병철의 제2의 자아가 등장하자 움찔했다.
허공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흔들며 웃어 재끼는데 아까 차에서 운전하던 과묵한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들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방송 텐션이다.
병철은 능숙하게 장비를 꺼내며 세팅했다.
세워놓은 카메라를 향해 갑자기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진짜 열 받는 게 뭔지 아세요. 여러분?”
‘뭐, 뭐지. 왜 갑자기 재밌다고 하다가 열이 받은 걸까.’
“이놈이 진원이는 무서워하고 나는 안 무서워한다는 거예요. 이놈 새끼가 국내 최고의 고스트헌터를 뭘로 보고.”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 지 몰라 괜스레 집 안을 둘러보던 태리는 병철의 다그침이 시작되자 더 이상 상념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사연자님. 이거 향을 저쪽에 놔 주시고, 이 오르골은 그 앞에 놔 주세요. 그리고 오색천이 가방에 있거든요. 그것 좀 가져다주세요.”
태리는 열심히 병철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동분서주했다.
늘 혼자서 일하다가 간만에 팀이 되어 누군가를 위해 일하니 신이 났다.
그래서 더 열심히 더 빠르게 움직였다.
병철이 장비를 세팅하는 태리를 보는데, 심령 장비를 놓는 족족 영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도 태리는 묵묵히 시키는 일만 했다.
장비에서 삐삐 소리가 울리고 있는데도 무서워하는 모습 없이 고개를 들어 땀을 닦으며 ‘여기가 맞나요?’라며 긴장한 표정으로 병철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 긴장한 표정은 병철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안심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저렇게 묵묵히 일만 한다니. 뭔가 좀··· 그래도 추억을 주고 싶은데.’
다른 사람 같으면 몇 번이고 기절초풍했을 텐데.
심지어 무당인 진원도 이런 현상을 마주하면 일단 놀라고 무서워하는데 그런 기색도 없다.
조금 놀라는 모습을 보고도 싶었는데.
그런 병철의 생각과는 다르게 태리는 무척 만족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와서 뿌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제가 잘하고 있는 건가요?”
“그럼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요. 저는 카메라로 찍어야 해서 장비 이동을 못 하거든요. 아, 그리고 저 방에 들어가 보세요.”
“네···네.”
태리가 병철이 가리킨 방 안으로 들어가자 병철이 방문을 닫았다.
태리가 문이 닫히는 소리에 뒤를 돌아 문고리를 덜컹덜컹 돌렸다. 열리지 않는다.
“어? 문이 닫혔어요. 문이 왜 안 열리지? 저기요! 문이 안 열려요.”
드디어 태리가 말을 했다. 병철은 기뻤다. 조금은 무서워하는 건가.
“어때요?”
“문이 고장 났나 본데요. 잠시만요. 읏챠!”
우당탕. 문밖에서 문을 잡고 있던 병철이 안으로 들어와 넘어졌다.
그 모습에 채팅창이 또 폭발해 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가 잡는 헬창. 고스트헌터 잡는 헬창]
[밖에서 잡고 있는 문을 저렇게 당겨서 넘어지게 할 수 있는 건가. ㄷㄷㄷ]
[스쿼트가 필요한 병철 형]
태리는 앞으로 나자빠지는 병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넘어진 병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병철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리의 손을 잡고 일어나며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무서우셨지요?”
“안 무섭던데요.”
“그랬을 겁니다. 거긴 영가가 없었던 안전한 방이어서.”
태리가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긴장을 풀어주려던 것이 그만 제 다리를 풀려버리게 했다.
병철은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태리는 유튜브의 한 장면이 그제야 생각났다.
안전한 방이었다 하더라도 혼자 있기 무서워하는 무당답지 않은 진원을 병철이 방에 가두는 장난을 종종 했었고 둘의 투닥거리는 장면을 꽤 재미있게 봤었던 것을.
‘아. 장난친 거구나.’
그런 줄 모르고 열심히 하려고 문고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미리 말해주지.
“제가 좀 재미가 없었죠?”
태리는 억울했다. 나름 웹소설 작가이고 재미있는 드립도 많이 준비해 왔었는데······.
심부름하느라 정신이 없고, 지쳐있던 터라 병철의 상황극을 받아줄 타이밍을 놓쳤다.
대답 대신 병철의 눈빛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그 눈빛에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밖에서는 심령 장비의 반응이 멈췄지만, 대신 다른 방안에서 강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병철과 태리가 눈을 마주쳤다.
‘성공했다.’
그놈을 방에 가두는 것에 성공했다.
병철은 그 소리를 확인하고 태리가 가져다준 오색천을 문고리에 단단히 묶었다.
그제야 병철은 아까 태리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아니에요. 사연자님. 대답해 보세요. 우리가 귀신 잡으러 온 거예요. 아니면 웃기려고 온 거예요?”
‘아, 역시. 진지한 사람 앞에서 내가 무슨 실례되는 질문을 한 거야.’
태리는 병철이 웃길 때는 웃기다가도 진지할 때는 진지한 모습에 감동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자신의 분야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성과를 내는 열정적인 모습이구나.
그 사실을 새삼 느낀 태리는 다음에 쓸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이 저런 매력을 갖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잠깐 사이, 여러 생각이 오갔다.
하지만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려면 정신을 차리고 병철이 원하는 대답을 해야 했다.
“저희는 귀신을 잡으러 온 겁니다!”
“틀렸어요. 웃기러 온 거예요.”
‘······나한테 왜 그래요.’
태리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
바쁘다. 정말 바빴다.
태리는 이렇게 촬영이 정신없이 진행되는 것인지 몰랐다.
이리저리 태리가 움직이는 동안 병철은 채팅창을 보면서 일일이 대답해주고 있었고,
심령 장비가 어디선가 소리 나면 여지없이 카메라를 움직여 순간을 포착했다.
아무것도 해결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동선도 잡고, 오색천으로 방 안에 봉인도 해놨고. 저희가 할 일을 거의 다 한 것 같아요. 자, 인제 와서 여쭤봐서 죄송하지만. 사연자님. 여기에 오시니 어떤 느낌이 드세요?”
‘빨리도 물어본다.’
아껴두었던 준비된 멘트를 할 차례다.
“아. 저는···.”
그때 고스트튜브에서 나온 목소리가 태리의 말을 끊었다.
- 헌터 나부랭이.
“뭐, 이 새끼야? 이 거지 같은 놈이!”
병철이 달려가서 모션디텍터에 찍힌 영가의 모습이 있는 위치에 주먹을 날려댔다.
저 모습을 직접 보다니, 너무 재미있었다.
“단테. 저거 봐. 물리 퇴마.”
같이 보고 싶어 단테를 찾았다. 너무 바빠서 단테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단테가 보이지 않았다.
‘단테는 어디 있는 거야?’
“우웨에에에옹”
파바박
“우와야아아아옹”
“캬아오-”
쾅쾅
“이게 무슨 소리예요? 사연자님. 단테 어디 있어요?”
“뒷마당 쪽에서 소리가 들려요.”
단독주택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 열린 창문으로 단테가 나갔던 것 같다.
‘이놈의 고양이가. 얌전히 있겠다더니.’
병철은 태리의 걱정하는 눈빛을 보고 말했다.
“여기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으니. 가보죠.”
태리와 병철이 소리가 나는 뒷마당으로 나가자 뒷발로만 서서 복싱하듯이 고양이 두 마리가 뒤엉켜 있었다.
“어! 고양이들이 싸우고 있어요!”
단테가 웬 고양이와 싸우고 있었다.
태리는 단테의 영혼이 인간이다 보니 고양이 싸움에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됐다.
“단테! 싸우지 마-”
태리가 말렸지만 두 고양이에게 인간의 말이 들릴 리 만무했다.
잠시 소강상태일 때도 두 고양이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무협 영화의 대련 장면처럼 둥글게 돌며 서로를 견제했다.
단테는 매우 흥분한 상태여서 그런지 태리가 온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와- 고양이들 싸움이 이렇게 긴장감 넘칠 일이라니. 사연자님. 단테가 원래 길고양이들과 싸우기도 했나요?”
“전혀요. 뜯어말려야겠어요.”
병철이 태리의 앞을 막았다.
“사연자님. 제가 할게요. 발톱 보세요. 위험해요.”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카메라 잘 들고 계셔주세요.”
‘잘 찍으셔야 해요.’
카메라를 건네며 속삭이는 소리와 찡긋.
찡긋이라니. 찡긋이라니.
병철은 호기롭게 고양이들에게 다가갔다.
“단테야. 싸우지 마. 이리 와.”
그때 다시 두 고양이가 앞발을 들어 서로를 할퀴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서 병철의 손이 마구 할퀴어졌다.
길고양이는 병철의 등 위로 올라갔고, 단테는 등 위의 길고양이를 할퀴려 하다가 병철의 얼굴도 할퀴어 버렸다.
“악”
“괜찮으세요? 어. 피가”
병철은 얼굴의 피를 닦으며 아팠지만 멀쩡한 척을 했다.
이런 볼썽사나운 일이 생기다니.
“아, 괜찮아요. 고양이들이 엄청 사나운데요. 119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안 됩니다. 위험해요.”
“카메라로 잘 찍어 주세요.”
찡긋.
돌려줬다.
태리는 오색천을 가져오더니 단테와 대치하고 있는 길고양이에게 덮어 덥석 들어 올렸다.
“읏차.”
“와, 보셨어요. 여러분? 사연자님이 길고양이를 제압했어요.”
[영가도 제압, 고스트헌터도 제압, 고양이도 제압]
[저 장면을 위해 그동안 웅크리고 계셨던 사연자]
[사연자님 윙크 졸귀♡]
[멋있어요.]
[간지 폭발]
[쩔어]
그런데 오색천에 덮인 길고양이가 어쩐지 너무 조용했다.
그르릉- 그르릉- 골골골골
‘자나?’
그렇게 조금 전까지 날이 선 채로 온 생명을 걸고 싸우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색천 사이에서 보이는 길고양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태리의 품 안에서 골골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된 길 생활에 지쳤던 것일까.
아무래도 사람이 기르던 고양이처럼 보였다.
전화를 받은 병철은 고양이 사태가 진정된 걸 확인하고 태리에게 말했다.
“사연자님. 진원이 도착했대요. 금방 솔루션하고 올 테니까 단테도 잘 진정시켜서 이동장에 넣어두세요.”
“네.”
병철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태리는 단테를 불렀다.
“단테. 이리 와. 다친 데는 없어?”
단테는 씩씩대며 다가왔다.
“없다옹. 망할 고양이 같으니옹.”
“무슨 일이야. 왜 그런 거야. 대체.”
“내가 창문이 열려있길래 나가서 좀 둘러보는데 저 고양이가 담벼락에 있는 걸 봤다옹. 반갑기도 해서 다가갔는데 다짜고짜 나를 때렸다옹.”
“뭐?”
“내가 또 참는 성격이 아니잖아옹. 맞고 가만히 있는 고양이가 아니잖아옹. 그래서 나도 막 할퀴려고 하는데 태리가 발톱을 다 잘라놔서옹.”
“무서웠나 보다.”
품 안에서 골골대고 있는 고양이를 다시 풀어주려고 오색천을 열었는데 길고양이는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베아트리체 같은 예쁜 삼색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태리와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감았다 떴다.
머리를 태리의 몸에 비비기 시작했다.
성묘라고 하기에는 아직 작아서 6~7개월 정도 되어 보였다.
“어쩜 좋아. 아직 아기 같은데.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갔나 봐.”
“아기는 무슨옹. 저렇게 독기 있는 고양이는 내 생전 본 적이 없다옹. 이래서 출신이 중요한 거다옹. 누가 스트릿 출신 아니랄까 봐옹.”
격렬했던 싸움이었음을 보여주듯 마구 엉킨 털을 연신 그루밍하는 단테.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댄다.
“저걸 그냥옹. 확옹. 어우웅.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게옹. 어딜 인간에게옹.”
단테는 주인이 왔다고 기세가 등등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얘는 어쩌지.”
“뭘 어쩌냐옹. 여기 버리고 가면 되지옹. 어. 지금 내려놓지 마라옹. 나 피하면 내려놔라옹. 나 이동장에 넣어주고 풀어줘야지옹!”
오색천을 풀어 고양이를 놓아주려는 태리를 보고 단테가 기겁했다.
“구해줘서 고마워.”
그때, 오색천 속에서 들려오는 선명한 여인? 소녀? 의 목소리.
단테와 태리는 동시에 오색천 속의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가 또 말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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