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인을 강탈하는 양아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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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밀랍날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54
최근연재일 :
2024.09.0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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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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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박한 시간

DUMMY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봤다.


잠들기 전에 마셨던 약이 잘 들었던 탓인지, 아까보다는 훨씬 통증이 덜했다.


그는 다시 한번 상태창을 열어,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를 확인했다.



-사명을 받은 자 :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

(사명을 따르지 않을 시에는 페널티가 존재합니다)



“···제기랄.”


지독할 정도로 직관적인 문구.


저 문구가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기에는 지나치게 간략한 설명이었다.


‘기껏해야 상점 이용에 불이익을 주거나, 포인트를 압수하는 수준인 줄 알았지···.’


그런데 갑자기 죽음에 준하는 충격을 줄 줄이야.


‘아니, 기껏 힘들게 다른 세계에서 불러왔다고 해놓고, 말을 안 듣는다고 바로 빈사상태로 만들어버린다고?’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하다 이건가?”


아무래도 미친놈에게 제대로 물린 것 같았다.


역시 모르는 이가 주는 건 함부로 받으면 안 됐다.


‘더군다나 그걸 준 존재가 납치범인 걸 알고 있었다면, 더더욱 조심했어야 했어.’


···물론 자신에게는 선택권은 없었지만.


파리스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내가 주인공을 죽일 수 있을까?’


그 불쌍한 인간을?


흉물이나 범죄자를 베는 것과는 달랐다.


엄밀히 말하면 주인공은 ‘아직’까지는 무고하니까.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싹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나?’


잠재적인 범죄자와 그를 처벌하는 문제.


‘비슷한 딜레마를 어떤 영화에서 봤던 것 같은데.’


그 영화의 결말이···.


‘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


자신은 그처럼 도덕적인 주제를 고민할 정도로 숭고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자신을 고민케 하는 건 그보다는 좀 더 이기적이며 개인적인 욕망이었다.


자신은 주인공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겪게 될 죄책감이 두려운 것이었다.


‘목숨과 죄책감이라···.’


그리곤 이내 확신할 수 있었다.


최후의 상황이 온다면 결국 자신은 손을 쓸 거라는 걸.


단순한 손해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사명을 회피할 방법이 있나? 사명을 거부한 반동은 언제 발동되는 거지?’


그래도 그는 일단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자신은 이기적이지만, 충분히 이기적이지 못한 어설픈 인간이니까.


사명이 어떤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경험한 바로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명할 때 페널티가 적용되는 것은 확실했다.


‘속마음으로 사명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결국 행동이 문젠가?”


행동?


‘잠깐, 그럼 그냥 아무런 의사 표현도 안 하고, 주인공과의 만남도 피하면 사실상 사명을 무시할 수 있는 거 아니야?’


“···!”


이렇게 쉬운 길이?


사명에는 명확한 기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잔머리만 조금 굴린다면 사명을 무시할 수 있다는···.


띠링!


<사명 업데이트 완료!>


이제는 불길하게만 느껴지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


이윽고 하얀색의 상태창이 그의 눈앞에 떠오르며 새롭게 수정된 부분이 떠올랐다.



-주인공 죽이기: +5pt

···

(사명자에게 주어진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제기랄.”


정말 귀신같은 업데이트 속도였다.



* * *



시간이 없다.


그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곧바로 병원에서 탈출했다.


절대안정을 취하라는 플로렌스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그곳에 숨겨놓았던 ‘그 주사’를 몸에 꽂았다.


이내 뜨겁고 묵직한 무언가가 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고, 곧이어 간질간질한 느낌과 함께 몸이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생각보다 약발이 죽여줬지.’


물론 주사 한 방에 그 심각했던 상태가 완치된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에게는 그것들을 더 구할 방법이 있었으니까.


그는 곧바로 한스에게 쳐들어가 몰래 꿍쳐두었던 것을 강탈했고, 몸을 전투가 가능한 상태까지 회복시켰다.


‘한스에게 부탁해서 예비용 주사를 더 구해둬야겠어.’


달아올랐던 육체가 식어가며, 으슬으슬한 기운이 육체에 스며들고 있었다.


“스승님, 전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그는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교수에게 물었다.


“···확실히 생도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검을 다루는 센스, 마력의 운용, 심상의 활용 모두 평균 이상.


“무엇보다 그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흘러넘칠 듯한 마력량이 인상적이지.”


말을 하던 교수가 갑자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언제까지 숨길 거지?”


“예?”


그 서늘한 말투에 순간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내가 정말 네가 도달한 곳을 눈치 못 챘을 거라고 여기나?”


“···.”


“굳이 왜 그렇게까지 티를 안 내려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상대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음을 알아둬라.”


“죄송합니다.”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스승을 기만한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성장은 지극히 비정상적이야.’


그는 자신이 진정한 극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건 누군가 달아준 날개로 인해 강제적으로 끌어올려진 것이었으니.


비록 재능이 그것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긴 하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경지를 실감할 수 없었다.


“···네가 알고 싶은 건, 다른 극위 기사와 네 수준을 비교하고 싶은 것이겠지.”


교수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극위 기사의 특징이 뭐라고 생각하나?”


“···성질과 형상의 완전한 구축?”


“내가 저번에 해줬던 말이 기억나지 않나 보구나.”


교수가 마치 학습 태도가 불량한 학생을 나무라듯이 그를 쏘아보았다.


“분명 정위까지가 검식의 완성이고, 그 이후부터는 심상에 대한 개인적인 탐구라고 했을 텐데.”


“심상에 대한 탐구···.”


“그렇기에 극위 이후부터는 개인적인 편차가 크다. 어떤 기사는 네가 가진 어떤 수단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또 다른 기사는 네 무식한 마력으로 밀어붙이면 생각보다 쉽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군요.”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해.’


그는 모순적인 감정을 느꼈다.


분명 자신이 가진 경지가 감당이 안 되는데도, 더 큰 무력이 필요했다.


‘거대한 사건들에서 내 무력은 일개 개인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부터 소설의 스토리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이전까지는 스토리의 무대가 사관학교와 수도에 한정되었다면, 이제부터는 모든 세력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토리에 끼어들게 되면서 그 무대가 연합 전체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이 바로 북부 생도들의 수도 탈출이었다.


‘북부가 중앙에 맞서려면 우선 볼모들을 되찾아 와야 했으니.’


북부가 사실상 적지와 다름없는 수도로 자신들의 후계자들을 보내야 했던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연합이 그것을 법적인 의무로 정해두었으니까.


정확히는 모든 계명자들이 수도에 있는 사관학교를 졸업해야만 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해두었다.


‘법 자체는 그리 문제가 될 게 없었지.’


연합 초기에 이는 괜찮은 정책이었다.


연합은 항상 계명자들의 부족을 호소했고, 미래에 중요한 전력이 될 생도들을 후방에서 안전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장벽의 건설과 함께 북부 전선이 점차 안정화되고, 북부와 중앙 간의 정치적·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이는 중앙이 북부를 향해 걸어놓은 목줄이 되었다.


북부 귀족 가문들의 입장에서는 귀족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의 소중한 후계자들을 중앙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인질과 다를 바 없어.’


일종의 기인제도처럼 그들의 자제를 볼모로 잡으니, 북부는 중앙의 통제에 적극적인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당연히 북부는 그런 제약을 풀기 위해 노력했고,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의 계획을 준비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결국 그 계획이 성공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북부 생도들이 수도에서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북부의 준비가 치밀했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


그보다는 중앙의 상황이 개판이었다는 점이 컸다.


축제로 인한 대규모 인원 이동으로 수도의 경비가 허술해졌고, 수도를 통제할 수 있는 일원화된 명령 체계도 없었으며, 수도 경비대에 대한 예산은 나날이 축소되어 가는 중이었다.


‘생도들이 수도를 탈출한 이후라도 그들에 대한 제대로 된 추적과 생포 작전이 펼쳐졌으면 모르겠지만···.’


태생부터 도시들의 집합에 불과한 연합의 정치체제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각 도시들은 굳이 북부의 무력 부대와 마주쳐서 그들의 전력이 피해를 보는 것을 꺼려했고, 어떤 가문들은 정치적인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사태를 방관했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이었던 건, 전통 때문에 고위급 계명자들이 자리를 비웠던 것.’


이런저런 이유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북부의 작전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북부와 중앙 간의 군사적 긴장감은 급속도로 치솟게 된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훗날 ‘청색 내전’이라고 불리는 연합 역사상 최초의 내전으로 폭발한다.


‘애초에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자신은 일개 개인일 뿐이었다.


어떤 정치적인 기반도 없는 그가 혼란을 예방할 사회적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어떻게든 내전의 발생, 혹은 그것이 확전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부의 생도들이 수도를 빠져나가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


그들만 인질로 잡고 있어도, 북부는 제힘을 쓰기 어려울 테니까.


“스승님, 제가 보내준 자료는 보셨습니까?”


그는 연무장에 진열된 검들을 점검 중인 교수에게 물었다.


“···모두 읽어봤다.”


교수가 들고 있던 검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하지만 저번에도 말했듯이, 그것들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시 정황만으로는 부족하군요.”


“그 누구도 그로 인한 정치적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정황만으로 한 지역에 있는 귀족 가문들 전체를 적대한다?


어떤 권력자도 그런 미친 결정을 내리지 않을 터였다.


“오히려 그것을 꼬투리로 상대의 파벌을 공격하려 하겠죠.”


‘멀쩡한 귀족 가문들을 핍박한다는 프레임을 씌워서.’


“애초에 중앙은 북부가 왜 자신들과 적대를 하려고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평화 속에서 살던 자들과 투쟁 속에서 살던 자들의 사고방식이 같을 순 없으니까요.”


“그들에게 북부의 움직임은 기껏해야 ‘빵이나 더 얻으려는 시위’ 정도로 생각될 거다.”


그 역시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애초에 소설에서 읽은 얄팍한 지식과 뒷골목 정보망에 의존하는 자신보다 더 압도적인 정보 자산을 가진 중앙의 귀족 가문들이 그보다 정보가 부족할 리가 없으니까.


실제로 소설에서도 북부의 수상한 동향에 대한 보고가 연합 의회에까지 올라왔었지만, 그들은 북부가 중앙을 향해 군사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 채로 그들끼리의 정쟁에 몰두했다.


‘연합은 건국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고, 중앙은 그 과실에 마음껏 취해있었으니까.’


그들이 보기엔 북부의 움직임은 이 좋은 시절에 조금이라도 콩고물을 얻고자 하는 ‘투정’에 불과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회의적이다. 조만간 북부가 군사를 일으킬 것이라는 네 주장은 일견 타당하지만, 그동안 북부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는 단순히 후계자들이 볼모로 잡혀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야.”


“장벽 너머의 위협을 말씀하시는군요.”


“그래, 나는 북부가 등 뒤에 있는 괴물을 두고도, 같은 인간에게 전쟁을 걸 정도로 멍청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비록 내놓은 자식 취급이긴 하지만, 저도 엄연히 북부인으로서 북부에게 있어 장벽 너머의 위협이 얼마나 큰지 모르지 않으니까요.”


그는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런데 왜···?”


“하지만 잠시라도 장벽 너머의 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장벽 너머의 위협을 해소할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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