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인을 강탈하는 양아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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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밀랍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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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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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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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도시

DUMMY

핏빛 여울목 전투


그 전투는 북부군과 중앙의 연합기사단이 함께 장벽 너머의 짐승 부족들을 토벌하러 갔던 원정에서 일어났다.


목표로 했던 야만인들의 토벌 자체는 순조로웠다.


제대로 된 무기도, 체계도 없었던 야만인들이 연합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으니까.


그곳에는 무의미한 저항과 무자비한 학살만이 있었고,


언제나 그렇듯이 연합은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 존재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렇게 손쉽게 임무를 마친 그들은 장벽으로의 귀환을 준비했다.


하지만 철수 직전, 인간들의 대규모 이동에 자극을 받은 대규모의 흉물 무리가 북부군의 후방을 덮쳤다.


정예한 북부군은 빠르게 대응했지만, 놈들은 통상적인 수준의 흉물들이 아니었다.


해당 무리의 대다수가 수獸급이었으며, 상위종으로 취급되는 귀鬼급 역시 다수 포함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북부군의 기사와 병사들은 필사적인 분전으로 놈들의 습격을 막아냈다.


아니, 오히려 압도했다.


흉물과의 전투라면 이골이 나 있던 것이 그들이었으니까.


그러나 고위종인 마魔급의 등장과 함께 전황이 급격히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오직 고위급 계명자로만 맞설 수 있는 마급 흉물의 등장 자체도 부담이었지만, 놈이 영악하게 고위급 계명자들이 없는 부분을 들쑤셨기 때문이었다.


놈은 북부의 고위 기사가 다가오면 재빨리 고기 방패들 뒤로 몸을 숨겼고, 다시 고위 기사들이 없는 곳을 공격하여 북부군에게 극심한 피해를 강요했다.


다수의 귀급 흉물

영악한 마급 흉물

끝없이 몰려드는 흉물들


악화되는 전황 속에서도 북부의 기사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곧 중앙의 연합기사단이 전투에 참전하리라 믿었으니까.


그들과 함께라면 눈앞의 흉물 무리 정도는 이겨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그들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중앙의 연합기사단은 전장을 바라만 보다가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은 채로.


아군이 우릴 버렸다!


그 충격적인 사실에 북부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사기가 크게 저하된 북부군의 손발이 어지러워졌고, 흉물들은 그런 북부군을 향해 더욱 맹렬히 달려들었다.


많은 북부인들이 그 여울목에서 흉물들에게 찢겨 죽었다.


곳곳에서 몰려드는 흉물들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고, 북부군의 손실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불어나고 있었다.


결국 북부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전우들의 시체를 남겨둔 채 퇴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남은 이들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후미에 남아서 흉물들을 저지해야만 했다.


‘전우와 형제들을 위해!’


그리고 대다수의 북부 기사들은 기꺼이 그 자살 임무에 지원했다.


그것이 그들의 명예였으니까.


길고 고된 퇴각이었다.


부상병들은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화약을 끌어안은 채로 흉물들에게 돌진했고, 기병들은 목숨을 걸고 흉물들을 유인했다.


그러나 적들의 핵심 병력인 귀급 흉물들과 마급 흉물은 여전히 건재했고, 퇴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놈들을 저지해야 했다.


그리고 그건 남기로 결의했던 기사들의 몫이었다.


피에 눈이 돌아간 흉물들의 추격과 명예에 목숨을 건 기사들의 돌격.


흉악한 발톱과 빛나는 검이 뒤섞인 전장에서 후미를 책임졌던 기사들은 전원 전사했다.


···고위 기사까지도.


그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북부인들은 중앙의 기사들에게 따졌다.


왜 우리를 버렸냐고.


하지만 그들에게서 돌아온 답은 잔인할 정도로 간결했다.


‘우리의 임무는 야만인들의 토벌이지, 흉물의 토벌이 아니었소.’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북부는 분노했으나 중앙에게 항의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당장의 큰 손실로 위태로워진 북부의 안보는 중앙의 기사 전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으며, 기사 전력을 양성하는 것 역시 중앙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북부는 잃어버린 전력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정치적 양보를 해야만 했고, 살아남기 위해 무수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그래, 그때부터 이미 중앙과 북부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다. 이제 돌아갈 곳은 없어.”


어느 한 곳이 완전히 절멸하거나 복종하기 전까지는.


람누스의 눈이 증오와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겠군.’


애초에 그 사건을 꺼낸 순간부터 더 이상 대화할 의지가 없다고 밝힌 것과 다름없었다.


‘핏빛 여울목 전투라···.’


교수 본인도 그 사건이 치가 떨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가 태어난 아티나 가문 역시 그 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니까.


장벽이 건설된 직후에 벌어졌던 그 전투는 북부를 견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중앙의 수작임이 명백했다.


그들이 흉물 무리까지는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전투를 방관한 것은 분명 정치적 목적이 다분했다.


‘이 피로 이어진 증오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건 내가 잘못된 것이겠지.’


하지만 한편으론 그 전투만 보고 상황을 판단한다면, 그 역시 지극히 북부에 편향적인 시각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북부가 중앙을 향해 해왔던 무리한 요구들, 중앙이 북부를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인식하게 된 사건들···.’


결정적으로 연합의 대륙 진출이 실패하는 과정들까지.


연결된 모든 사건들을 고려한다면, 마냥 중앙이 북부를 배신했다고 여기기도 애매했다.


물론 대다수의 북부인들은 신경도 쓰지 않을 이야기들이겠지만.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도 교수에게 이 내전을 용납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교수는 그동안 기사로 활동하면서, 너무 많은 인간들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 것을 봐왔다.


단순히 관할권이 애매하다는 이유로

중앙에 대한 타오르는 복수심으로

토착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로


비용에 비해 너무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마을의 구원을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기사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람누스를 바라보는 교수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교수에게 기사란, ‘인간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드는 자들이었다.


흉물들의 흉측한 발톱으로부터, 그 날카로운 이빨로부터, 이성을 집어삼키는 광기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검을 휘두르는 자들이 기사였다.


‘기사는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야.’


기사란 공적인 존재, 인간과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자.


자신들의 사적인 감정으로 인간과 그 공동체에 해를 입혀서는 안 되는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교수는 북부가 하려는 일을 저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북부는 인간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난 북부인이지만, 동시에 기사이기에 너를, 북부를 막을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현실과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하지만 그것이 그가 기사로서 갖는 신념이었다.


교수는 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며 상대에게 칼끝을 겨눴다.


“그래, 기사란 말로만 떠드는 자가 아니지.”


람누스가 뒤틀린 미소와 함께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여기서 그 질긴 명줄을 끊어 주마, 이 배신자.”



* * *



“빨리 물을 더 길어와!”


은빛 자수가 놓인 망토를 두른 기사가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물을 뿌리면 불이 더 커집니다!”


“물에 떠 있는 오물과 기름들이 오히려 불을 더 키우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 있던 경비대원들이 달갑지 않은 내용을 알려왔다.


“젠장, 아까 모래를 구하러 간다던 이들은 아직인가?”


“불이 번지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우선 불이 더 퍼지지 못하게 근처에 있는 건물들을 부숴서 봉쇄선을 형성해야 합니다!”


“도시의 소화반들은 뭘 하고 있길래 감감무소식인가!”


기사는 한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이들이 화재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지만, 이미 수많은 건물과 생명들을 집어삼킨 불길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사는 화마를 향해 빨려 들어가는 거센 바람을 느꼈다.


‘이건 결코 자연적인 바람이 아니야.’


그것은 불길이 제 몸집을 더 불리기 위해 탐욕적으로 대기를 빨아들이는 욕망이었다.


그 욕망을 타고 불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불티들이 새로운 장작에 붙어 잔불을 일으켰으며, 그 잔불들이 모여 거대한 화마로 타올랐다.


‘···막을 수 없다.’


그 지독한 악순환을 바라보는 기사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 무차별적인 연쇄 앞에서는 그 어떤 발버둥도 하등 소용이 없었을 것이 뻔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


기사는 깊이 절망했지만, 이것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주변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기에.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손이 남는 자들은 연장을 들어라! 우선 불이 번질 수 없게 주변에 있는 집들을 파괴···!?”


그 순간 오싹한 느낌이 그의 등골을 스쳐 갔다.


‘뭐지?’


그는 직감적으로 아직 불길이 닿지 않은 도시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그가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던 찰나,


갑자기 그 어둠 속에서 장대한 붉은색 파동이 터져 나왔다.


“큭!”


“컥···.”


파동이 스쳐지나가자, 주변에 있던 이들 중 일부가 괴로움을 호소했다.


그들은 참을 수 없는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았으며, 심한 경우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뭐, 뭐야?”


“왜들 저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여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고, 몇몇은 쓰러진 이들에게 다가갔다.


“괜찮은···?”


그들이 조심스럽게 쓰러진 자들을 부축하려는 순간,


“캬아악!”


쓰러졌던 자들이 괴성을 지르며 일어나,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 역병이다!”


“역병?”


“흉물이다. 흉물이 나타났다!”


도망가는 사람들과 사람을 물어뜯는 사람들.


혼란 속에 헤어진 가족을 찾는 이들.


몸에 옮겨붙은 불로 몸부림치는 이들.


갑자기 도시의 한복판에 나타난 흉물들.


불과 피, 포효와 비명이 뒤섞이며, 현장에는 아비규환의 혼돈이 펼쳐졌다.


‘이건 불가능해.’


“이건 불가능하다고···.”


기사는 패닉에 빠져 중얼거렸다.


갑작스러운 대화재부터 흉물의 출현까지, 평소에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비현실이 현실로 범람하고 있었다.


“기, 기사님, 명령을!”


기사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구지? 다른 구역에서 넘어온 대원인가?’


그곳에는 낯선 얼굴의 사내가 경비대원 복장을 입은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으로 눈을 돌리자, 그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이 보였다.


그는 나가있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침착하자.


‘난 기사, 이들을 이끌고 지켜야 하는 존재다.’


기사는 새삼스럽게 사관학교 시절에 배웠던 기사의 마음가짐을 되새겼다.


“모두 침착해라! 무기가 없는 이들은 소화 작업을 계속하고, 경비대와 무기를 가진 자들은 나를 따라···, 컥!”


그 순간 기사는 등 뒤로부터 시작된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가슴에서 솟아오른 칼날을 보았다.


“너···는?”


자신을 찌른 자는 아까 그를 불렀던 경비대원이었다.


‘배신? 테러?’


설마 화재부터 역병까지 전부 계획된···?


서걱


베여버린 목과 함께 기사의 생각이 끊겼다.


“으, 으아아!”


“도, 도망쳐!”


기사의 머리가 데구르르 굴러 그들의 발 앞으로 떨어지자, 기사의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그 모습을 확인한 암살자는 칼날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빠르게 자리를 떴다.


이런 일들은 수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화재와 역병으로 발생한 혼란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기사들이 곳곳에서 죽어 나갔다.


가중되는 혼란 속에서 발생한 고위층에 대한 습격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내 집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나!”


“하, 하지만 지금 현장에서 지원 요청이···.”


“자네 소속이 어디야?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지휘체계의 공백

고위층들의 닦달

의미 없이 흐르는 시간


갖은 악재들 속에서 기사단과 경비대가 우왕좌왕하는 동안 극심한 혼란에 휩싸인 외곽지대는 방치되었다.


현장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은 지나치게 파편적이고, 이 혼란을 정리할 책임자는 부재한 상황.


그렇기에 그들은 알 수 없었다.


누군가가 이 혼란 속에 숨어들어 수도를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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