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개

-조사 3 : 음흉한 시선
“···굳이 이렇게까지 따라다녀야 할까?”
“조용히 해!”
얘는 왜 이렇게 눈치 없이 불평을 하는 거야.
‘이러다 저 녀석이 눈치라도 채면 어떡하려고.’
그녀는 오만상을 쓰며 그를 노려보았다.
“너는 저 모습을 보고도 별 생각이 안 들어?”
로베르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얗게 빛나는 하늘빛 머리와 붉은빛을 띠는 검은색 머리
은빛으로 빛나는 제복과 그림자처럼 어두운 제복
주변보다 우월한 신장과 선명히 빛나는 얼굴들
“···잘 어울린다?”
퍽
“윽!”
그는 옆구리에서 강한 통증을 느끼며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야무지게 움켜쥔 주먹으로 로베르의 멱살을 들어올리며, 그의 얼굴을 창문에 들이밀었다.
“저 음흉한 시선을 보라고!”
음흉?
샤를로테의 뒤에 서서 사방을 훑어보는 날카로운 붉은 눈동자.
그의 눈에는 아무리 봐도 주군을 보호하는 기사의 전형이었다.
‘심지어 둘 다 비주얼도 좋아서 동화 속 공주님과 기사 같다고···.’
그런데 사실대로 말하면 또 때리겠지?
“화, 확실히 음흉하네. 딱 봐도 수상···. 컥!”
그는 다시 옆구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거짓말은 하지 말랬지!”
‘제, 젠장. 나보고 어떻게 하란 거야···.’
그는 억울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노려···.
···보려다가 매섭게 쏘아보는 시선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이익!”
‘이 자식은 그때 기절해서 그래!’
그 음흉했던 시선과 행동을 못 봐서 그렇다고!
‘저 뻔뻔한 면상 아래 숨겨진 흉악한 본성을···.’
으득
그녀는 이를 부서질 듯이 갈아댔다.
‘무, 무서워.’
로베르는 마른 침을 삼키며 눈을 깔았다.
“안 되겠어.”
“뭐, 뭘?”
“놈은 샤를로테 님 앞에서는 철저히 가면을 쓰기로 한 것 같아.”
어쩌면 샤를로테 님께서 혼자 남을 때를 노리려는 것일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놈이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들을 감시해야겠어.”
“···마지막이라며.”
“잔말 말고 따라와.”
로베르는 한숨을 내쉬며 성큼성큼 앞서가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조사 4 : 마약 혐의
“거기 약 파는 곳이라며! 거길 갔는데 어째서···.”
“···그래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
그녀는 성마른 손길로 파일을 펼쳤지만, 놈의 신체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놈의 뒷조사를 하던 중에 알게 된 ‘요정의 샘’이라는 뒷골목 술집.
살롱의 정보를 통해 그곳이 약을 파는 곳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녀는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제대로 된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으니까.
샤를로테 님의 곁에서 놈을 내쫓을 명분이···.
특히나 약은 중독성이 강하니까, 틀림없이 놈이 유혹에 무릎을 꿇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부풀어 올랐던 그녀의 기대감과는 다르게, 그녀의 손에 들어온 결과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리나, 진정해.”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동안의 조사 결과만 봐도 놈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에 대한 선입견으로 지나치게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물론 나도 놈을 신뢰하거나 좋아하진 않지만.’
마치 과거에 소문만 믿고 맹목적으로 놈을 증오하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자신은 그랬다가 큰 사고를 치고 말았으니까.
“그 의사는···, 그 가슴 큰 의사와의 커넥션은 어떻게 됐어?”
“말을 좀 가려서···.”
“대답이나 해!”
“···수상한 장면이 포착되긴 했어.”
“어떤?”
그녀는 파일을 던져버리고 단번에 그의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너, 너무 가까워.”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그가 얼굴을 붉히면서 물러났지만, 그녀는 기어코 그의 멱살을 잡아챘다.
“잔말 말고 빨리 말해!”
“···수상한 거래 현장이 있긴 했는데.”
“했는데?”
“놈이 의사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거였어.”
“의사가 약을 건네는 게 아니라?”
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것 좀 놓고···.”
“뭘 건넸는데?”
“병이었어. 하얗고 끈적한 액체가 담긴 병. 마치···.”
“마치?”
그는 차마 내뱉을 수 없는 단어에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도대체 왜 놈은 의사에게 그런 걸 준 거야?’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의학적인 무언가가 있는 건가?
“왜? 뭔데? 뭘 건넸는데?”
“···아무튼 서로 약을 거래하는 사이 같지는 않았어.”
“말 안 해? 뭘 건넸냐니까?”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이, 이익! 말해! 말하라고!”
-조사 5 : 평소 행실
“지인짜, 진짜 최후의 수단이야.”
“···아직도 안 끝난 거야?”
“이렇게 쉽게 놈을 샤를로테 님 곁에 들일 순 없어.”
‘이미 충분히 검증한 것 같은데.’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의 계획을 들었다.
이번 계획은 놈의 평소 행실을 관찰하는 것.
누굴 만나는지, 뭘 먹는지, 평소에 뭘 하는지, 수업 시간에 이상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등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직접 놈을 밀착 감시하는 계획.
매우 피곤한 여정이 예상되는 계획이었지만,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다.
첫째 날
새벽부터 수련으로 시작, 수업 시간과 샤를로테 님의 호위 임무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수련으로 보냄.
둘째 날
새벽 수련, 샤를로테 님의 외부 행사에 호위로 따라감, 학교 복귀 후에 곧바로 수련.
셋째 날
새벽 수련, 오전 수업, 점심 수련, 오후 호위 임무, 저녁 수련, ···밤중에도 수련을 하네?
···
열둘째 날
이 인간 안 자?
* * *
“···이게 뭐니, 리나?”
“그놈, 아니 파리스에 대한 보고서에요!”
샤를로테는 진한 다크서클을 드리운 채로 파일을 건네는 리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은 자고 다니니?”
“그, 그럼요! 충분히 쉬고 남는 시간에 짬짬이 한 거예요!”
리나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새 자리를 자주 비운다 싶더니, 이런 일을 하고 다녔구나.’
그녀는 열심히 뛰어다녔을 리나를 생각하며 살풋 웃고 말았다.
사실 그녀도 리나가 자신과 파리스의 모습을 몰래 관찰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리나나 그녀를 도왔을 로베르나 너무 어설프게 자신들을 따라다녔으니까.
굳이 파리스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뭔가 수상한 일이 있었어?”
그녀는 리나가 건네주는 파일을 건네받으며 물었다.
“···확실한 물증은 못 잡았어요.”
리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래도 수상한 정황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약을 파는 술집에 드나든···.”
“리나.”
“네?”
“괜찮아.”
그녀는 파일을 덮어둔 채로 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그를 의심하고 못 믿는 이유를 알지만, 그래도 일단 안에 들어온 사람을 지나치게 배척하는 태도는 좋지 않단다.”
“그래도 놈이 샤를로테 님께 했던 무례를 생각하면···, 헛! 죄, 죄송···.”
리나는 그녀의 나쁜 기억을 상기시키고 말았다는 생각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후우···.”
그녀는 침착하게 기억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불쾌감을 다스렸다.
그녀 역시 과거를 생각하면, 그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이 들진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난 윗사람이야.’
어린 시절부터 받아왔던 교육이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감정을 절제해야 해.’
그래야만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
“그는 이제 우리의 사람이고, 같은 편끼리 다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란다.”
“···.”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그러니 너도 너무 그를 미워하진 마렴.”
나도 노력할 테니까.
“알았지, 리나?”
“···예.”
리나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이리 와.”
샤를로테는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어린 동생 같은 리나.
귀여운 강아지처럼 맹목적으로 자신을 따르는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내가 끝까지 이 아이를 지켜줄 수 있을까?’
부쩍 부정적인 생각이 늘어나는 요즘이었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자신은 이 아이를 버리지 않으리라고.
그녀는 자신의 품에 꼭 안겨 오는 리나의 등을 조용히 두드려 주었다.
서로를 위로하는 유대 속에 리나가 들고 왔던 보고서는 그대로 잊혀지고 말았다.
로베르가 적었던 마지막 문구도.
‘···비정상적으로 선명한 청색날개 발현, 비상식적인 수준의 마력량, 연무장에서 알 수 없는 청색오염이 발견.
종합 : 관찰 대상은 통상적인 극위의 수준을 벗어남.’
* * *
‘이제는 안 따라오는 건가?’
그는 뒤를 돌아보았으나, 어디에서도 그를 뒤따르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동안 열심히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며, 매서운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더니 결국 포기한 모양이었다.
‘뭐,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오히려 그 어설픈 모습들이 나름대로 귀여워서, 열심히 모른 척을 해줬다.
그는 피식 웃고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딸랑딸랑
“아직 영업 안 합···. 헛!”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젓던 험상궂은 거한이 빠르게 그의 앞으로 달려와 90도 인사를 박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파리스 생도님!”
“이제 기사···, 아니 됐다. 한스는?”
“사무실에 앉아 있으십니다!”
“목소리 좀 낮춰.”
“죄, 죄송···.”
그는 고개를 숙인 거한을 뒤로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벌컥
“노크 좀 하고 들···.”
“또 돈을 세고 있었나?”
“파리스 님!”
책상에서 은화를 헤아리던 한스는 급하게 그의 앞까지 뛰어왔다.
“건물이 더 넓어졌네?”
“옆에 있던 가게를 인수하면서 확장 공사를 좀 했습니다.”
만면에 미소를 띤 한스가 손을 열심히 비벼대며 말했다.
“신종 약 같은 걸 팔아서 수익을 늘린 건 아니지?”
“아닙니다. 이번에 수도에서 난리가 난 덕분에 사업을 확장할 기회를 얻었을 뿐입니다.”
한스는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으며, 자신들은 더 이상 새로운 약을 팔지 않음을 어필했다.
‘덕분이라···.’
타인의 불행을 본인의 기회로 삼은 작태가 불편하긴 했지만, 한스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했을 일이었다.
‘차라리 내 통제가 미치는 곳에 두는 게 낫지.’
그는 짧게 한숨을 뱉어내고는 이내 한스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 알카이드의 기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역시 파리스 님은 대단···.”
“아부는 그만 떨고, 부탁했던 정보나 가져와.”
한스는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은화들을 허겁지겁 챙겨 들고는 방을 나섰다.
잠시 밖에서 소음이 들리더니, 곧 한스가 서류뭉치를 한 아름 싸 들고 나타났다.
“이 서류들이 최근 북부의 동향과 관련된 자료들입니다.”
한스는 서류더미를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많군.”
“최근에 북부의 움직임이 워낙 활발해서요. 북부에 깔린 정보망이 빈약한데도 나름대로 정보를 구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이 있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한스는 한참 서류더미를 뒤지더니, 이내 몇 장의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
“이건?”
“북부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강경파인 보레아스 가와 엘렉트라 가의 동향입니다.”
“사자 백이 아니라?”
“물론 사자 백께서는 북부의 수장이고, 북부군의 핵심을 이끌고 있습니다만, 그만큼 신중합니다.”
한스는 서류 한 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자 백 휘하의 주력은 중기병이기에 다른 병력들보다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북부군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가장 기동성이 떨어지는 병종의 배치 상황을 봐야겠군.”
“정확합니다.”
한스는 서류더미에서 또 다른 서류 한 장을 빼 들었다.
“그런 점에서 포병을 책임지는 보레아스 가의 동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포병이 전장에서 갖고 있는 역할까지 고려한다면 더더욱이요.
그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한스를 바라보았다.
비록 지금은 뒷골목의 약팔이로 전락했지만, 한스가 훈장까지 받은 군인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됐다.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한스의 눈빛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아니, 설명을 계속해.”
그는 모르는 척 한스가 건네준 서류를 받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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