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인을 강탈하는 양아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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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밀랍날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54
최근연재일 :
2024.09.0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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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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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늑대와 개

DUMMY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그녀는 너른 가슴에 안긴 채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처음에는 이런 계획이 아니었다.


‘그저 소소한 복수를 하려고 했을 뿐인데···.’


그 발단은 한 사소한 정보에서 시작되었다.


“말을 잘 못 타?”


“네! 그 자식은 체력 평가는 만점이었지만, 이론과 승마 과목에서는 항상 낙제했다고 해요.”


“리나, 말투가 거칠어.”


“아앗, 죄, 죄송···.”


신나게 목소리를 높이던 리나는 급하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데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중급생으로 들어왔지?”


“인도의 가문이 관여한 것 같습니다.”


리나의 옆에 서 있던 로베르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두브헤 가문이?”


신관이나 마술사도 아니고, 기사를 상대로?


“언제나 그렇듯이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그치들의 비밀주의야 워낙 유명하니 말이지.”


샤를로테는 눈을 감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왜 갑자기 기사를 인도의 명단에 넣은 거지?’


미자르, 두브헤, 메라크.


속세와 연을 끊은 채로 별을 연구하고 섬기는 것에만 집중하는 자들.


그들의 비밀주의야 익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이번 일은 확실히 이상했다.


기사는 마술사처럼 별의 연구하는 자도 아니고, 신관처럼 별을 섬기는 자도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 메라크 출신의 의사도 파리스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았어.’


진녹색의 머리에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흉부가 큰 여자.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떠오르는 이미지를 지워냈다.


‘···이건 우연일까?’


벌써 연합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2개의 가문과 엮인 남자.


알면 알수록 미궁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이건 기회예요!”


“응?”


“그 자ㅅ, ···파리스에게 복수할 기회요.”


“···복수를?”


잔뜩 흥분한 리나가 그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녀석이 개과천선했더라도, 샤를로테 님께 범했던 잘못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리나의 말은 간단했다.


파리스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줌으로써 그 과오에 대한 죗값을 치르도록 하자는 것.


그리고 그녀가 그런 그를 구원함으로써 상하관계를 명확히 하고, 그녀의 권위를 바로 세우자는 이야기였다.


‘리나는 그 녀석이 어지간히 미웠구나.’


몇 주간의 밤샘 조사도, 이 악의적이고 편의주의적인 계획도.


평소의 리나답지 않게 극단적인 면이 가득했다.


‘하지만···.’


본래라면 허용하지 않을 터였으나, 그녀는 리나의 말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자신에게 충성을 서약한 그의 진의를 떠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무엇보다 아직도 그 크고 억센 손을 보면 불쾌함과 두려움이 일어났으니까.


‘주인 된 자가 밑에 있는 자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니.’


그건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은 타인을 휘두르는 자이지, 타인에게 휘둘리는 자가 아니었으니.


“···생각해 둔 계획은 있니?”


“그럼요!”


리나가 눈을 빛내며 그녀에게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만한 자가 아닐 텐데···.’


뒤편에 선 로베르가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우려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 *



“승마 수업에 참관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 기사가 얼마나 말을 잘 다루는지 확인해 둘 필요가 있으니까.”


파리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께서 원하신다면···.”


곧바로 말 위에 오른 그는 말을 몰아 거대한 마장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극한의 상황에서 얼마나 기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평가할 예정입니다.”


뒤편에 있던 평가관이 그녀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같이 평가석에 가셔서 보시···.”


“아니, 나도 참가할 거야.”


“예?”


“샤를로테 님!”


리나가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오늘의 계획에 그녀가 직접 수업에 참가한다는 이야기는 없었으니까.


그녀는 그저 낮은 평가를 받은 그를 꾸짖고, 그럼에도 모자란 부하를 포용하는 주인의 자세를 취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내 기사가 망신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주인 된 자가 뒷짐만 지고 있을 순 없는 법이지.’


적어도 같이 달리며 우월한 실력을 보여야 제대로 면을 세울 수 있으리라.


만약에 그가 실수한다면, 자신이 멋지게 그를 구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 그에 대한 두려움도 다소 사그라들 거야.’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애마에 올랐다.


순결한 백색의 말이 마장에 들어서자, 대기하고 있던 생도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주군?”


“나도 참가할 거야.”


그녀는 말을 몰아 그의 곁에 섰다.


“위험하실지도 모릅니다.”


그의 말대로 오늘 치러지는 평가는 위험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매년 다수의 부상자가 속출하는 것은 물론, 간혹 사망자가 나오기도 하는 살벌한 평가였다.


그러나···.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파리스를 바라보았다.


“···실언을 했습니다.”


파리스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흥.”


그녀 역시 어린 시절부터 승마를 익혔던 몸, 기사만큼의 격렬한 마상무예를 닦아본 적은 없었으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에겐 ‘백영’이 있으니까.’


그녀는 애마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최상급으로 일컬어지는 화이트섀도 품종 중에서도 으뜸가는 혈통을 가진 녀석.


이 녀석과 함께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평가는 정해진 시간 내에 가능한 많은 거리를 달리는 겁니다.”


“저들이 이동을 방해하는 거야?”


“예, 곳곳에 배치된 병사들이 촉 없는 화살과 날 없는 창으로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그리고 바닥에도 여러 장애물이 깔리며, 그것들은 끊임없이 교체됩니다.”


“보통 몇 바퀴쯤 돌지?”


“그해의 시험 내용에 따라 다르지만, 7바퀴에서 9바퀴가 평균적인 숫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난이도가 상당하네.”


“준비!”


감독관의 신호에 따라 생도들이 출발선에 정렬했다.


삐이이이--!


날아가는 효시와 함께 청색의 깃발이 올라가자, 말들이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겠는걸?’


천지를 울릴 듯한 말발굽 소리와 사방으로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주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했다.


‘그래도.’


그녀는 이내 수많은 인마人馬를 제치며, 순식간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백영은 월등한 속도로 다른 말들을 따돌리며 질주했다.


창과 화살들은 그녀가 지나가고 나서야 뒤늦게 날아왔으며, 백영의 우월한 도약력 앞에서 그 어떤 장애물도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기동력.


그 어떤 기사 생도도 그녀보다 앞서서 달릴 순 없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맛보는 제한 없는 질주에 도취되었다.


거센 바람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몸은 그녀에게 마치 공중을 나는 것 같은 해방감을 선사해 줬다.


더 빨리.


‘더 빨리!’


주인의 마음을 읽은 백영은 더욱더 속도를 높였다.


그녀가 처음 겪어보는 영역까지.


주변의 소음이 거센 바람에 묻혀 사라져갔다.


‘지금이 몇 바퀴째지?’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참가했더라?


여러 의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으나, 그녀는 금세 그것을 잊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오직 자신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동안 그녀를 옥죄어왔던 책임감과 성과에 대한 압박, 실패에 대한 비웃음과 갖은 질시들은 그녀의 질주를 따라오지 못한 채로 뒤처졌다.


해방감, 그 축복과도 같은 감정만이 마음속을 가득 메워간다.


그렇게 그녀가 또다시 무수한 인마를 제칠 무렵,


탕!


‘총소리?’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여러 발의 탄환이 그녀와 백영을 향해 날아왔다.


평소라면 가볍게 회피할 공격.


문제는 백영이 뾰족한 가시 함정을 뛰어넘는 중이었다는 것이었다.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는 그녀 역시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급하게나마 만들어낸 벼락으로 총알들을 요격했다.


‘?’


그러나 탄환들은 벼락에 직격하고도 멀쩡하게 날아왔다.


‘대마력탄환?’


분명 청색마력에 저항력을 가진 탄환이 분명했다.


그녀는 검을 뽑아 들어 총알을 쳐내려 했으나,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녀 자신과 백영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


그녀는 본능적으로 검을 뻗었다.


백영을 지키기 위해.


퍽!


“읏!”


몸이 살짝 떠 있던 탓에 그녀는 총알의 충격력만으로 말 위에서 튕겨 나갔다.


급하게 두른 마력의 역장이 총알들을 막아냈지만, 진짜 문제는 바닥에 깔린 쇠꼬챙이들이었다.


‘방호코트를 입고 왔어야 했어.’


원활한 승마를 위해 가벼운 복장을 입고 온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재빠르게 안전한 공간을 탐색했지만, 생각보다 촘촘히 깔린 그것들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다리 하나 정도는···.’


뒤따라올 고통을 상상한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그녀가 바닥을 향해 추락하던 순간.


그녀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오는 굵은 무언가를 느꼈다.


그녀의 몸이 붕 떠오른다 싶더니, 그녀는 어느새 넓고 단단한 품에 꼭 안겨있었다.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는 향···.’


불과 얼마 전에도 안겨본 듯한 품이었다.


“파리스?”


“괜찮으십니까?”


파리스가 검은 코트를 벗어 그녀에게 둘러주었다.


“어떻게···?”


그녀는 황망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완전히 깨끗해진 피부와 날카로운 선을 지닌 턱선, 선명한 콧대와 옅은 열기를 품은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능숙하게 말을 몰더니, 홀로 방황하던 백영의 고삐까지 휘어잡았다.


잔뜩 흥분하여 날뛰던 백영은 그의 손길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백영이 왜 얌전하지?’


자신과 관리인이 아니라면 늘 까탈스럽게 굴던 아이인데.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이렇게 말을 능숙하게 다루는 거야?’


분명 말은 잘 못 탄다고 하지 않았어?


“샤를로테 님!”


멀리서 리나와 병사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재능을 사길 잘했어···.”


파리스는 포대기처럼 감싼 그녀를 고쳐 안으며 중얼거렸다.


‘재능? 뭘 사?’


그녀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아기라도 된 듯이 철저한 보호를 받은 채로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이 순간이 한없이 아늑했다.


긴장이 풀리며 가물가물해지는 정신과 함께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다.


“잠시 쉬고 계십시오. 깨어나시면 상황이 정리되어 있을 겁니다.”


그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얼굴, 더 보고 싶은데.’


이내 그녀는 그의 향이 잔뜩 묻은 코트에 감싸인 채로 정신을 잃었다.



* * *



“···그래서 실패했다고?”


“며, 면목이 없습니다. 너무 급하게 준비하느라···.”


붉은 머리의 남자 앞에 바짝 엎드린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실패를 고했다.


“뭐, 너무 급하게 준비한 계획이긴 했지.”


그녀가 마장에 도착했다는 것도 그녀가 이동하기 직전에야 알았으니.


급하게 짠 계획이 실패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그는 엎드린 사내의 머리를 짓밟았다.


“큭.”


“주인의 명이 떨어졌으면 어떻게든 성공시키는 게 종복의 임무가 아니던가.”


그는 발에 힘을 주었다.


“요, 용서를···.”


머리가 터질 듯이 붉게 달아오른 사내가 용서를 구했다.


“실패는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퍼억!


“무능은 용서할 수 없지.”


무언가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주변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방에 널브러진 시체와 피를 치웠고, 피가 묻은 그의 신발과 옷을 갈아입혔다.


그는 손짓으로 사람들을 물렸다.


“참 쉽지 않은 신부님이야.”


그냥 불구가 된 채로 자신의 옆에 누워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인형처럼.


그는 그녀의 오만한 하늘빛 눈동자를 생각했다.


‘참 갖고 싶단 말이지.’


그 고고한 여자가 온전히 자신의 손에 떨어지는 순간.


그녀의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척추가 찌르르 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가 압도적인 위치에 있을 때나 가능한 것.


그녀를 온전히 손에 넣기에는 그녀가 가진 혈통도, 권위도, 무력도 모두 만만치 않았다.




“이러면 다른 수가 없잖아.”


그는 혀를 차며 책상 위에 있던 상자를 열었다.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보라색의 천

그것에 감싸인 여러 개의 병

그 안에 깨끗하게 손질되어 보관된 눈알들


그는 병에서 눈알 하나를 꺼내어 손에 쥐었다.


“참 탐나는 눈인데 말이지.”


그는 손 위로 불을 일으켜 그것을 살짝 익혔다.


누렇게 변한 채로 탐스러운 즙을 흘리는 눈알.


그는 그것을 그대로 손으로 으깬 후에 잔에 넣었다.


고급스러운 붉은 빛깔의 와인이 잔을 채우며, 육즙을 닮은 기름과 섞여갔다.


그는 잔을 한 번 휘젓고는 그대로 입에 가져다 댔다.


피처럼 붉은 와인이 그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역시 살짝 익힌 게 더 풍미가 좋군.”


생고기보다 레어가 더 맛있는 것처럼.


그는 역겨운 조각들이 떠다니는 유리잔 속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골치가 아프군.”


쓸데없이 야망만 커서는.


그냥 아름다운 인형으로 박제되어서 자신의 옆에 있으면 좋을 텐데.


매일같이 깨끗이 닦아주며, 기꺼이 찬미의 노래를 읊어줄 것을.


“꼭 갖고 싶은데···.”


유리알처럼 깨끗하고 투명한 그 하늘빛 눈동자가.


‘그것은 어떤 맛을 낼까?’


아냐,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동자는 영원히 간직해야지.


모든 것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함과 티끌 없이 깨끗한 순결함이 뒤섞인 그 눈동자를.


반드시.


쨍그랑


“갖고 싶어.”


그것을 입안에 넣고 굴리면 얼마나 달콤할까.


그는 식욕과 소유욕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질척한 감정과 함께 질척한 붉은 액체가 움켜쥔 주먹을 따라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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