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만을 위해 각성한 청염의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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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룩
작품등록일 :
2024.05.08 18:08
최근연재일 :
2024.07.18 03:2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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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7,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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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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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화

DUMMY


나의 비애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발화된 분노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씹새끼들···,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찾아낸다.”


내 눈언저리는 아직 젖어있으나, 나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것은 더는 비통한 울음이 아니라 조소 섞인 다짐이었다.


잃을 것이 없어진 나의 머릿속을 채울 것은 오로지 복수밖에 없다.


더 이상 나와 엄마를 찾아올지도 모르니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앞머리를 기르고,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기 위해서 군중 속에서 구부정하게 걸을 필요가 없어졌다.


가진 정보가 없는데 어디서부터 복수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지 않았다.


“일부러 석상을 남긴 거겠지. 우리를 쭉 지켜보고 있었다고 알리기 위해서···.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데, 찾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결국 내가 먼저 찾든, 그들이 나를 먼저 찾아오든 반드시 만나게는 된다.”


기분 나쁜 붉은 석상으로부터 눈을 떼고 별세하신 엄마를 바라보았다.


내가 완전히 닦을 수 없던 피를 제외하면 어떠한 상처도 없이 말끔하신 겉모습.


“설마 그 새끼들이 약 같은걸 강제로 복용시킨 건가? 아니면-”


검은 주사기.


나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다가오는 이중 장갑을 한 어른의 손.


두통 때문에 절로 인상을 쓰고 눈을 찡그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액체가 나에게 천천히 투여된다.


-쾅!


“···허억, 헉.”


현실로 돌아온 나는 날아간 장롱 문짝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깊은숨을 내뱉고, 눈의 반쯤까지 내려오는 앞머리를 짜증스럽게 쓸어 올렸다.


“하하, 이 거지 같은 기억만 떠오르면 등신이 되잖아.”


흐르는 식은땀을 닦고 아직도 과거의 기억으로 상처 입은 나의 멍청한 뇌한테 말했다.


전부 과거일 뿐이라고.


나는 연구소에 갇혀서 그 누구에게도 저항할 수 없던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이렇게 나약한 정신머리로는 복수는 무슨,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다른 건 몰라도 엄마를 타살한 놈은-”


나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주먹을 그러쥐었다.


핏줄이 성난 것처럼 도드라질 정도로 강하게.


그야 지금 내 손아귀에 엄마를 죽인 놈의 목이 있으니까.


그렇게 상상했다.


“목을 맨손으로 천천히 비틀어 죽여줄게. 아니, 그렇게 쉽게 하루 만에 죽이지 않아. 너만은 어떻게든 찾아낼 거다.”


나는 멀쩡한 원목 장롱의 문짝에 엄지를 꾹 대어서 선 하나를 팠다.


“첫날에는 네놈의 발톱을 모조리 뽑을 거다.”


나는 다시 선 하나를 더 팠다.


“둘째 날에는 네놈의 손톱을 다 뽑을 거고.”


선을 또 하나 더 파자 나무 가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셋째 날에는 네놈의 살점을 죽지 않을 정도로만 떼어주마.”


이번에는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전보다 선이 더 깊게 새겨졌다.


“넷째 날에는 네놈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친히 문질러주겠어.”


나는 너절해진 장롱의 문짝에서 손을 떼고 붉은 석상을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최대한 너를 살려두고, 네놈이 뒈지기 직전에-”


창이 관통하고 있는 여섯 개의 뿔을 가진 사슴 머리의 석상에 손을 뻗었다.


“맨손으로 네놈의 목을 천천히 비틀어, 목숨이 꺼져가는 너를 두 눈을 뜨고 끝까지 지켜볼 거다.”


-콰직!


어느새 붉은 석상을 잡은 나의 손이 석상을 산산조각 내었다.


그때였다.


쿠구구궁.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인가?”


지진이 났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아직 내 손에 남아있는 선명하게 붉게 빛나는 사슴의 눈이 있는 석상의 조각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당황한 나는 괴상한 사슴의 눈을 노려보다가 뒤늦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아래로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내가 내려다보았을 때는 이미 발밑에서 이상한 것이 완전히 펼쳐진 상태였다.


이름 모를 괴상한 이것이 내 발밑에 있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아마 신비하다는 표현을 썼을지도 모른다.


“이게 뭔-”


나는 의문을 내뱉을 틈도 없이 곧이어 이상한 것에 빨려 들어갔다.





***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시, 아니 얼마 만큼인지는 몰라도 기절했던 것인지 눈을 뜨자 낯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미쳐서 이제는 헛것이 보이는 건가?”


나는 혼잣말을 하면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내 생각보다 나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 것 같군···.’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서 지금 나는 환각 상태인 거야.’


숲이라고 하기에는 나무들은 듬성듬성하게 있고, 땅은 메말랐으며 전체적으로 삭막했다.


싱그러운 수풀의 향 대신 거친 흙냄새만 났다.


마치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처럼 주변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이토록 이질적으로 느껴진 것은 처음이다.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앞머리를 뒤로 쓸어서 하늘을 다시 쳐다봤다.


“미친.”


분명 밤은 아닌 것 같고 구름도 많지 않은데 해가 안 보였다.


썩 기분 좋지 않은 이 꿈에서 이만 깨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꿈에서 깨어나지?’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모르니 일단 주변에 떨어진 긴 나뭇가지를 주웠다.


꽤 튼튼해 보이는 나뭇가지는 내 손가락 두 개보다 두꺼웠다.


‘이걸로 목구멍을 찔러볼까?’


내가 무심한 눈길로 나뭇가지를 보면서 일단 해봐야겠다고 다짐했을 때였다.


[던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난데없이 눈앞에서 화면처럼 보이는 이상한 창이 생겨났다.


“던전?”


내가 미간을 모으고 의문을 표하자마자 화면이 바뀌었다.


[게이트의 내부를 던전이라고 지칭합니다.]


“잠깐. 지금 내 말에 대답한 거야? 그리고 게이트라니 그건 또 뭔-”


게이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게 게이트인가?’


내 발밑에 펼쳐졌던 정체 모를 블랙홀 같기도 했고 외계의 맨홀 같기도 했던 무언가가 떠올랐다.


[현자의 탑을 찾으세요.]

[완료 보상 : 상태창 & ‘현자의 탑’ 입장권]

[실패 페널티 : 영원히 던전을 나갈 수 없음.]


애초에 이 이상한 창과 소통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내 말을 씹고 자기 할 말만 했다.


“하···, 어떻게 할까?”


나는 지금까지 놓지 않은 나뭇가지를 흘깃 바라보고 망설였다.


‘목을 찔렀는데 꿈이 아니라면 이대로 죽는 거잖아?’


나뭇가지를 잡은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솔직히 내가 죽는 건 상관없는데, 복수는 하고 죽어야지. 복수를 하지 못한 지금은 절대 죽을 수 없어.’


이 모든 것을 꿈이라고 완전히 치부하기 어려웠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니까.


일부러 놓고 간 사슴 머리의 붉은 석상을 제외하면 흔적조차 없던 완벽한 타살.


내 손으로 석상을 부순 뒤에 붉게 빛나던 사슴의 눈은 확실히 목격했다.


‘꿈인데 이렇게 오감이 뚜렷할 수 있나?’


지금처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꿈은 존재한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이 어처구니없지만, 결국 나는 현자의 탑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 깡패 새끼잖아. 현자의 탑을 찾지 않으면 영원히 여기에 갇힌다니, 애초에 나한테는 선택지조차 존재하지도 않네.”


내 말이 들리는지는 몰라도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분 나쁜 티를 명백하게 냈다.


나뭇가지는 혹시 몰라서 계속 들고 있기로 했다.


나는 던전이라는 여기가 얼마나 넓은지 모른다.


또한 자칫하면 현자의 탑을 찾으려다가 길을 잃어버릴지 모르니까, 나뭇가지를 질질 끌면서 내가 간 길을 표시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현자의 탑을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네.’


태양이 없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아가는 것밖에 없어서 일단 계속 걸었다.


얼마 후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혹시 저게 현자의 탑인가?”


운 좋게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현자의 탑을 빨리 찾은 것 같다.


나무들이 적어서 혼자 하늘에 덩그러니 솟아있는 탑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현자의 탑을 찾은 것 같으니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보상이 마음에 안 드네.’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지자, 문득 완료 보상이 떠올랐다.


현자의 탑을 찾는 완료 보상 중에 현자의 탑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 있는 게 영 꺼림칙했다.


‘갖고 싶지도 않은 탑의 입장권을 왜 주는데?’


나는 황당한 마음에 속으로 불평하면서도 답을 알았다.


깊은 한숨이 저절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시발······. 나를 또 현자의 탑 안으로 강제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하겠지. 그럼 실패 페널티도 똑같겠네.’


썩은 사회도 부조리하고, 이 던전까지 부조리하다면서 진심을 담아 욕을 하면서 빠르게 걷다 보니 내 두 다리에 감정이 실렸는지 어느덧 현자의 탑 앞에 도착했다.


“이게 현자의 탑인가?”


나는 홀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현자의 탑을 올려다보았다.


겉으로 보면 창문 같은 것은 없고 꽉 막혀있어서 탑의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똑같은 암석 같은 돌로만 탑이 세워져 있어서 내부뿐만 아니라 층수조차 파악할 수 없는 형태였다.


“절대 안 들어가고 싶은데.”


나는 스산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은 시커먼 탑을 바라보면서 혀를 찼다.


나를 놀리는 것인지 기가막힌 타이밍에 창이 다시 떴다.


[축하합니다.]


“지랄.”


나의 비아냥거림에도 창은 계속 바뀌었다.


[당신은 현자의 탑을 찾았습니다.]


“안 찾으면 여기에 평생 갇힌다고 누가 말해서 찾을 수밖에 없었지.”


[완료 보상이 제공됩니다.]

[완료 보상 : 상태창 & ‘현자의 탑’ 입장권]


“다 필요 없고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


보상을 확인할 시간도 없이 내 말을 무시당한 채 새로운 창이 떴다.


[현자의 탑에 입장하세요.]

[거부 페널티 : 죽음]

[선택지 : 수락 혹은 거부]


페널티가 똑같기는 무슨.


이번에는 자기 말을 안 따르면 내가 죽는단다.


나는 욕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이를 악물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보상조차 없다.


‘이거 완전 도둑놈이네.’


화면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두 눈으로 대신 1년 치의 욕을 해주었다.


“네가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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