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만을 위해 각성한 청염의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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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룩
작품등록일 :
2024.05.08 18:08
최근연재일 :
2024.07.18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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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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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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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3화

DUMMY

‘왜 갑자기 네 번째 승리의 관문이 열리는 건데? 실수인가···?’


나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어도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멀게 느껴졌던 네 번째 승리의 관문은 다른 관문들과 다르게 자동문처럼 옆으로 천천히 열렸다.


나는 성스러운 검을 굳건히 쥔 채 검은 기사를 힐긋 쳐다보았다. 칼리브스는 나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내 쪽은 보지도 않고 홀린 듯이 관문만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녀석도 이유를 모르는 것 같군. 아직 검은 기사를 죽이지도 못했고, 승기조차 잡지 못했는데 관문이 열릴 이유는 전혀 없다.’


내가 막 반쯤 열린 마지막 관문을 당황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시스템의 창이 떴다.


[당신은 세 번째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내가 세 번째 승리를 쟁취했다고···?”


시스템의 창이 나의 세 번째 승리를 확정하면서 내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검은 기사가 떡하니 내 옆에 서 있는데 당최 이유를 모르겠다.


[무한의 비극성의 네 번째 승리의 관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 번째 승리를 쟁취하십시오.]

[완료 보상 : 승리의 층 공략 인정으로 다음 층 이동]

[실패 페널티 : 다음 층 이동 불가]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설명해 줄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시스템 창이 연달아 뜨면서 나를 독촉한다.


“가지가지로 지랄하네.”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퀘스트까지 벌써 뜨니 어이가 없다.


‘오류인지는 몰라도 일단 난 통과한 거니까 좋아해야 하는 건가?’


마침내 네 번째 승리의 관문이 열렸으나, 나는 선뜻 마지막 관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생선 뼈가 목에 걸린 것처럼 기분이 찝찝하기도 했고 검은 기사도 무척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문이 열린다고 끝인가? 아직 검은 기사는 있는데···. 관문을 지키는 것에 그토록 집착했던 놈이 나를 가만히 보내줄 리가 없다.’


아마 내가 마지막 관문에 진입하려고 하면 검은 기사는 끈질기게 나를 막을 것이 분명하다.


어서 오라는 듯이 열린 네 번째 승리의 관문은 검은 기사를 처치하지 않는 이상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결국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내가 검은 기사를 죽여야 하는 것은 변함없다.


“하···.”


나의 숨통을 막고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던 저주의 기운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길이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녀석을 이길 방법을 빨리 생각해 내야만 한다. 제길···. 아무리 생각해 봐도 광휘의 속박으로 놈의 움직임을 잠깐 제한시켰을 때 베었어야 했어. 그래도 이제부터 녀석은 스킬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


어떻게든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숨 쉬는 게 힘들지 않잖아···?’


저주가 말끔히 정화된 것처럼 지독하게 탁했던 공기가 맑아졌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마지막 관문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검은 기사를 바라보았다.


‘저주의 기운을 다시 억누른 건가? 왜?’


검은 기사가 나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그도 나를 마주 보았다.


나는 검은 기사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아래를 슬쩍 살펴봤다. 그의 옆구리가 거의 회복된 것을 보고 욕을 삼켰다.


‘회복력까지 괴물이잖아···.’


머리로는 이해한다.


승리의 층은 빌어먹을 소레스트가 나 같은 도전자들이 현자의 탑을 공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층이니까,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도 검은 기사는 막강할 것이다.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겨우 입힌 상처가 벌써 사라지고 있군.’


허무하지만, 여기서 싸움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정신을 다잡았다.


“그런가······.”


검은 기사가 돌연 알 수 없는 깨달음의 탄사를 흘리더니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야? 이번에는 내 검의 의지를 보여 달라고 안 하는 건가?”


나는 검은 기사를 경계하면서 언제든지 녀석에게 반격하기 위해서 성검을 들어 올렸다.


“더는 의지를 보일 필요가 없다, 도전자여. 아니. 우리의 은인이여.”


검은 기사는 나를 해칠 의지가 없다는 듯이 ‘일념의 사암마검(死闇魔劍)’을 사라지게 했다.


-철커덕.


검은 기사가 천천히 무릎을 굽히더니,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거대한 몸집을 나를 향해 숙였다.


나는 검은 기사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어안이 벙벙해서 곧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 방금 그쪽이 나를 은인이라고 부른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었거나 네가 잘못 말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나는 은인이라고 하는 걸 똑똑히 들었으니 네 실수다.”


처음에는 속임수가 아닐지 생각했지만, 명예를 중요시하고 나보다 강한 검은 기사가 굳이 나를 방심시키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할 연유는 전혀 없다.


“실수가 아니다.”


검은 기사가 단호하지만,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은인이여,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를 범한 과거의 나를 반성하면서 깊이 사죄하겠다. 어리석은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이봐, 뭔가 큰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은인이라고 불릴 만큼 누굴 도운 적이 없어.”


나는 이런 낯간지러운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의 호의는 불편하기만 하다. 바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면 왜 나에게 친절한 것인지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대의 오해 때문에 감사를 받는 지금은 당장이라도 자리를 벗어나고 싶게 한다.


차라리 서로 죽일 듯이 덤비고 싸우던 조금 전의 상황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녀석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뭐 잘못 먹은 것 같은데?’


“지극히 당연한 감사와 사과를 마다하다니, 우리의 은인은 너무나 겸손하군. 은인의 넓은 마음씨를 배우도록 노력하겠다.”


검은 기사가 낮게 웃으면서 헛소리를 지껄였다.


“겸손한 게 아니라 솔직한 거다.”


나는 검은 기사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녀석은 거슬리는 웃음을 다시 흘린 후 거구를 일으켰다.


반사적으로 성스러운 검을 들어 올렸으나, 검은 기사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올곧은 자세로 마지막 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땅에 절대로 내려앉지 않는 그의 어두운 청색의 망토를 심란하게 바라보았다.


검은 기사가 ‘일념의 사암마검’을 다시 불러내고 입구의 옆을 지키듯이 섰다.


‘그럼 그렇지. 정신이 멀쩡히 돌아와서 나랑 다시 싸울 생각인가 보군.’


검은 기사가 다시 검의 의지 타령을 하면서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은인이여, 절대 무너지지 않는 왕의 충검인 나 칼리브스가 이 문 앞을 지킬 테니 안심하고 들어가도 좋다.”


‘진짜 비켜준다고? 내가 뭘 했다고 이러는지 진짜 모르겠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어.’


나는 얼떨떨했지만, 이 기회가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관문으로 걸어갔다.


물론 녀석이 갑자기 돌변해서 덤벼들 것도 염두에 두고 성검을 절대 놓지 않았다.


내가 입구의 코앞까지 왔는데도 검은 기사는 우뚝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검은 기사를 지나치고 마지막 승리를 쟁취하러 가기 위해 다리를 뻗었다.


“고맙다···. 나는 오늘부로 기적을 믿게 되었다. 내 눈앞에 있는 기적을 목도했으니.”

“아직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넌 꽤 훌륭한 기사다.”

“마음에 새기겠다. 은인의 뜻과 용기를.”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마지막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들어갔다.


-쿠궁.


나를 위해 줄곧 열려있던 네 번째 승리의 관문이 닫혔다.


‘가시덤불인가?’


나는 내가 어느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먼저 눈치챘다.


독이 묻은 것 같은 가시덤불들이 가득히 깔려있어서 앞으로 더 걸어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긴 길의 끝을 보니 커다란 왕좌와 검은 기사의 왕으로 추정되는 이가 보였다.


‘왕좌의 길이군.’


왕좌로 향하는 길은 어두운 대리석 같았고, 길의 양옆은 발을 딛을 곳이 없다. 고개를 살짝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게 깊고 어두웠다.


‘적어도 아직은 나를 공격할 생각은 없는 것 같네.’


왕좌에 앉은 왕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왕도 검은 기사처럼 칠흑빛의 갑옷을 두르고 있는데 검은 기사와 달리 투구는 왕의 하관을 완전히 감싸지 않아서 그의 날카로운 턱과 얼굴이 조금 보였다.


‘왕이라고 해서 최소 중년일 거로 생각했는데 편견이었나. 생각보다 젊네.’


왕의 드러난 얼굴에는 수염이 없고, 피부는 창백한데 깨진 유리처럼 갈라진 선들이 보였다. 그의 일자로 굳게 닫힌 입술은 생기 없이 차갑게 보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왕의 잿빛 머리카락은 죽은 식물처럼 윤기 없이 뻣뻣했다.


‘저주의 영향인가···. 나도 패시브 스킬이 없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군.’


내 발밑을 바라보았다.


‘저주의 기운이 느껴지지만, 괴롭지는 않다. 설마 왕이 통제하고 있는 건가?’


검은 기사가 발산했던 불길한 기운 이상으로 저주의 기운은 짙었지만, 신기하게 바닥에만 깔려있어서 숨을 쉬는 게 힘들지 않았다.


살아있지만, 죽은 자에 가까운 어둠 속에 잠긴 왕을 바라보다가 문을 발견했다.


거대한 암석을 깎은 것 같은 왕좌의 등받이 너머로 작은 문이 보였다.


‘왕좌의 뒤에 있는 게 다음 층으로 가는 문인 것 같으니 나는 왕에게 가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여기서는 왕을 이기는 승리를 쟁취해야겠네.’


계단을 올라야 하는 높은 곳에 있는 왕좌에서도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왕좌까지 저주받은 건가?’


나는 이곳이 무한의 비극성이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왕을 쳐다보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당신 뒤에 있는 문에 볼일이 있는데 나를 그냥 보내줄 그런 기특한 생각 따위는 당연히 없겠지?”


길을 만들기 위해 성스러운 검으로 시험 삼아 가시덤불을 찔러보았다.


‘움직이네. 골치 아프다.’


내가 건드린 가시덤불이 성스러운 검을 빼앗으려는 것처럼 다가왔기 때문에 나는 왼손에 있던 성검을 일시적으로 해제했다가 다시 소환했다.


“······.”


왕은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침묵을 거절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왕이 허공에 손을 휙 움직이자, 가시덤불들이 아치형의 통로처럼 모양이 바뀌었다.


나는 왕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낸 후 깨끗해진 길을 성스러운 검으로 두드려봤다.


‘멀쩡한 길이네. 그렇다면 왕은 나와 싸울 생각이 없는-’


“그대의 검은 짐이 본 검 중에서 가장 멋진 검이다.”


왕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서 빨리 겨루자는 뜻이군.’


나는 내 뗀석기 같은 성검에 힘을 꽉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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