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욜 챌린저스 컵 예선이 끝난 지 일주일.
이동하, 구교환, 김수하, 정한진, 최현준과 피시방 사장님, 알바생 그리고 소규모의 팬들이 피시방 한자리에 모여 시간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AM 09 : 59
앞으로 1분 뒤 예선의 결과가 나온다.
AM 10 : 00
오전 10시가 되자마자 구교환은 욜 홈페이지에 뜬 '욜 챌린저스 컵 예선 결과'라고 적힌 공지글을 클릭했다.
- 욜 챌린저스 컵 본선 진출팀
반달곰들 - 150점
별똥별 - 150점
곰 같은 여우 - 150점
악어새 -150점
범 - 150점
부성이들 -15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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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지방생 - 145점
용사 오브 레게노 - 145점
다함께 욜욜욜 -140점
욜로! - 14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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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숨죽여 내리던 스크롤. 마지막 팀 이름이 보이는 순간 스크롤 내리는 걸 멈췄다.
용사와 함께 춤을 - 125점
난 심각한 표정으로 바로 옆에 보이는 최현준한테 물었다.
"···..근데 우리 팀 이름이 뭐였더라?"
"···..지금 진짜로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응."
"여기 있잖아요. 오인사격."
"아. 그러네. 캬! 오인사격이라니! 현준아 아주 잘 지었어!"
팀 이름을 만든 최현준이 얼굴을 붉히며 주변 관람객 눈치를 보고는 날 째려봤다.
"일부러 그런 거죠?"
사실 본선으로 갈 거라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야 우린 전승이니까.
오인사격 - 150점
한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이렇다 할 큰 위기 없이 승리를 쟁취했다.
단 한 번도 프로 연습생 팀을 만나진 않았다.
운이 좋았다면 운이 좋았고, 우리가 잘했다면 잘한 것이다. 내가 굳이 뽑자면 후자를 택하겠지만.
다만 조금 우려됐던 건 '상위 32팀 이상 150점이 나오면 어쩌지?'라는 것이었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주최 측이 그리 바보는 아닐 테니까.
"후~ 드디어 끝났다!"
지금까지의 고생을 말해주듯 깊은 한숨을 털어내며 기지개 켜는 수하를 향해 현준이가 째려보며 말했다.
"끝이라니! 이제 진짜 시작이지."
맞는 말이다.
앞으로 일주일 뒤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일주일간 펼쳐질 욜 챌린저스 컵 본선 토너먼트가 진짜 전쟁이다.
지금까진 연습에 불과하다.
그걸 증명하듯 전승으로 올라온 팀이 15팀이나 된다.
앞으로 싸우게 될 상대가 이런 괴물들이라는 거다.
그 벽을 넘지 못한다면 이 여정은 끝이다.
"다들 고생 많았고, 몸조리 잘들 하고 일주일 뒤에 용산에서 보자.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네.""
다들 잠시 피시방에 묶여있던 영혼을 일상으로 풀어주듯 해방감과 함께 피시방 밖을 나섰지만, 나는 혼저 집 근처 피시방에 다시 들렀다.
32팀의 명단이 공개된 시점. 한 마디로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는 것.
또 분석할 시간이 됐다.
"에휴··· 지친다···."
그럼에도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예선은 몰라도 본선에선 모두가 상대가 누구인지 알기에 분석한다.
챔피언 폭이라든지, 플레이 스타일이라든지, 팀 전체적인 운영 방식이라든지.
사실상 본선에 올라왔다는 것부터 기본적인 피지컬은 모두 증명됐다는 것.
결국엔 전략과 정보 싸움.
우리가 숨겨놓은 전략이 있다는 건, 상대 또한 그러하다는 것.
본선 32팀의 계정과 부계정을 찾아 최근 20판의 경기를 모두 분석한다.
'한 팀당 다섯 명이니까···. 160계정··· 미치겠다 정말.'
그래도 어쩌겠나.
남들보다 늙고 피지컬도 딸리는 내가 남들과 격차를 벌릴 거라곤 이것과···.
'이세계에서의 정보뿐.'
사실 오늘 피시방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분석도 있지만 게임을 하면 할수록 떠오르는 이세계에서의 기억들이 과연 얼마나 실용적인가다.
현실에서의 5년 동안 잠시 잊고 산 탓에 오르지 않았던 기억들이 게임 속 챔피언들을 보며 조금씩 떠올랐다.
원래부터 쓰던 전투 구도나 챔피언끼리의 상성, 챔피언의 활용도를 넘어선 무언가.
그에 대한 실험을 오늘부터 진행한다.
[ 사용 시간 5분 남았습니다. ]
··· 일단 충전부터 해야겠네.
***
일주일 동안의 분석과 테스트를 마친 뒤 용산에서 모인 우리.
다들 결연한 표정으로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럼, 갈까?"
말없이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곧 우리와 전투를 펼칠 수많은 상대와 함께.
[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 제2경기장 ]
선수 모두 경기장 관중석에 각자 팀끼리 자릴 잡고 앉아 있었다.
선수들은 자신의 경쟁상대들을 힐긋거리며 대진 추첨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 최현준은 누굴 찾기라도 하듯 두리번거렸다.
잠시 뒤 한 남성, 여성 스태프가 나와 룰에 관해 설명했다.
예정대로 이번 오프라인 본선은 토너먼트로 진행되며 3, 4위전과 결승전은 5판 3선승제 나머지는 3판 2선승제로 진행된다.
8강까진 메인 무대가 아닌 관중석에 섹션을 나눠 준비해 둔 자리에서 경기한다고 하며 오늘은 대진 추첨 후 3시간 뒤에 경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후 간략한 부정행위에 관해 설명했다.
상대 팀 매수, 일찍 끝난 팀이 옵저버 행위를 하는 것 등등 기본적인 상식선에서 불법이라 생각하는 모든 것이 부정행위이며 발각 시 즉각 탈락인 것 같다.
'설마 이 좁은 바닥에서 불법 행위를 하겠어? 프로 연습생들이?'
"그럼, 바로 대진 추첨 진행하겠습니다."
경기장 한가운데 놓인 작은 상자. 스탭 중 남성 스텝이 상자 안에 손을 넣고 휘휘 젓다 종이 한 장을 꺼내 읽었다.
"오인사격."
처음부터 우리 팀이라니. 선수들은 아마추어팀인 우리의 얼굴이 궁금한지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오인사격이 우리다! 그래서 긴장 중이다!'라는 얼굴로 침을 삼키고 손톱을 물어뜯는 수하, 한진, 동하를 보곤 주변 선수들이 속닥이기 시작했다.
"그 상대는···."
모두가 긴장하는 순간.
남자 스태프의 손을 따라 움직이는 320개의 눈.
"욜로!"
"아!"
남자 스태프가 욜로를 연호하는 순간 탄식하는 누군가.
그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불안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치는 다섯 선수.
'너희구나.'
우리의 첫 본선 상대가 정해졌다.
아마 다들 알고 있을 거다.
어떤 팀이 몇 점으로 올라왔는지를.
그렇기에 140점의 욜로!가 150점 전승의 우릴 보고 탄식하는 것이다.
욜로!는 상대가 우리로 정해지자마자 전략을 짜기 위해 자릴 떴지만, 우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바로 앞에 닥친 팀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욜로!를 이기고 난 뒤 어떤 팀을 만날 것인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범! 그 상대는···용사 오브 레게노...."
계속되는 대진 추첨.
"...곰 같은 여우! 그 상대는···반달곰들!"
"우와~!"
적막했던 지금까지의 추첨과 달리 추첨식을 지켜보던 선수들이 탄성을 질렀다.
그 이유는 이 두 팀은 프로 연습생들이자, 서울을 연고지로 둔 동한 베어스 게이밍(DBG) 소속의 반달곰들, 대전을 연고지로 둔 아메리카 포디움 팍스(APF) 소속의 곰 같은 여우간의 라이벌 대결임과 동시에 이번 대회의 우승 후보끼리의 경기. 그리고
반달곰들의 이름이 들리자마자 어딘가를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는 최현준.
동한 베어스. 그가 몸담고 있었던 팀이자, 그의 라이벌인 기우라가 소속한 팀.
최현준의 시선을 따라가니 보이는 한 덩치 큰 소년.
수많은 시선을 받고 있던 그는 그 시선들에 아무런 대꾸 없이 대진이 확정되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결승이라···.'
만약 우리가 결승까지 간다는 가정하에 반달곰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가장 높은 곳. 결승전.
과연 우리가 그곳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바로 앞부터 해결해야겠지?'
추첨이 끝나고 한 카페에 모인 우리. 카페엔 이미 자리 잡은 팀들이 들어오는 우릴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특히 곧 싸우게 될 욜로!팀은 눈으로 욕하듯 경계했다.
"분위기 살벌하네."
"그...그러게. 다른 게임 대회는...이 정도로 살벌하진 않았는데···."
"얘네들 우리랑 또래인 거 맞아요? 왜 이렇게 무서워."
"뭔가 우릴 특히나 더 경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야! 쫄지 좀 마. 눈싸움부터 지면 어쩌자고!"
어찌저찌 자리에 앉은 우린 전략회의를 시작했다.
"전략은 간단하게 말할게. 경기가 시작되면 실시간으로 바뀔 수 있으니까."
""네.""
"일단 첫 경기는 기존 하던 대로 하면서 간을 볼 거야. 적들이 현준이 위주로 밴하는 지 아니면 무난하게 현재 메타픽을 위주로 밴하는 지 확인해야 해."
수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조건 현준이가 잘 다루는 챔피언 위주로 벤하지 않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다행이지."
"네? 왜요?"
"사실 우리 핵심은 탑 챔피언이 아니라 정글이니까. 아무리 다섯 개의 밴카드를 현준이한테 쏟아부어도 수많은 챔피언 중에 현준이가 못 다룰만한 건 없어. 문제는 정글이지. 사실 현준이 템포를 따라갈 정도로 정글링이 빠른 챔피언을 픽해야 하는 게 우리 전술의 핵심이거든. 정글링 속도는 챔피언 성능에 따라 차이가 크니까. 적들이 그것까지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우리의 스탠스도 살짝 달라질 거야."
이번엔 동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정글링이 비교적 빠른 챔피언을 다 밴하면 어쩌지?"
현재 욜에서 압도적으로 정글링 속도가 빠른 챔피언은 총 5개로 정해져 있다.
만약 상대가 우리 전략의 핵심을 파악하고 정글 챔피언을 모조리 벤한다면 정글 속도는 어차피 상대적인 것이기에 큰 문제 되지 않지만, 혹여나 4개만 벤하고 하나 남은 정글 챔피언을 선픽을 이용해 뽑아간다면···.
"형! 시간 거의 다 됐어요."
"그래. 일단 가자."
경기장엔 160대의 컴퓨터가 5대씩 짝지어 관중석이었던 곳에 흩어져 있고, 자리 앞에 대문짝만하게 팀 이름이 적혀있었다.
"각자 자리로 가주세요!"
스태프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선수들은 일사불란하게 제 자리를 찾아갔다.
곧이어 경기 감독관 32명이 각각의 팀 뒤에 서서 자기가 맡은 팀의 모니터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해설자도, 지인을 제외하곤 관객도 없는 곳이지만 그 누구도 이 경기에 진지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경기장에 내려앉기 시작하는 무거운 공기. 중압감. 부담감. 긴장감. 잡념.
부정적인 감정을 게워 내기라도 하려는 듯 몇몇은 기지개를, 몇몇은 크게 심호흡을, 몇몇은 자기 가슴을 두드리던 중.
-째깍 째깍
PM 04:00
"경기 시작해 주세요!"
오프라인 본선 첫 경기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 욜 챌린저스 컵 대회 본선 32강 ]
경기 시작 전 입구에서 했던 제비뽑기로 욜로!가 선이었기에 그들의 첫 벤 카드가 화면에 뜨길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냐. 데비? 용리? 아니면 바텀 라인부터?'
- 레우스 Banned
""레우스?""
예상외의 벤에 수하, 한진, 동하, 현준이 동시에 구교환을 쳐다봤다.
'쉽지 않은데?'
상대는 예상보다 대처를 잘했다.
지금까지 오인사격이 진행한 예선 50경기 중 레우스의 픽률은 43판으로 압도적이다.
이유는 탑에 모든 자원을 투자해서 키운 뒤 그 탑의 영향력으로 초중반을 지배해 게임을 끝낸다는 전략.
이 전략에서 중요한 건 '모든 자원'이라는 단어.
탑을 키워주기 위해선 단순히 정글의 갱킹도 언노페의 궁극기를 활용한 수적 우세를 지닌 싸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시야.
즉 상대방 정글의 위치.
시야석을 많이 구비할 수 없는 초반엔 욜에서 유일하게 맵 전체 중 원하는 곳을 겨냥해 시야를 밝힐 수 있는 스킬은 레우스의 매날리기뿐.
게다가 원거리 광역 스킬로 라인도 준수하게 밀고 한타에 중요한 궁극기에 데미지를 %로 증폭시켜 주는 Q스킬까지 겸비한 육각형 챔피언이지만, 확실한 특징 없이 모든 걸 애매하게 갖춘 탓에 주류 픽은 아니지만, 오인사격에게 있어서 레우스는 완벽에 가까운 육각형이었다.
'이번엔 쓸 수 없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당황할 구교환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당황하기보단 웃었다.
예선에서 만나던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던 팀과 다른 전략을 겸비한 상대에 드디어 자기 능력을 온전히 맞부딫힐 생각에 설렌다. 즐겁다!
팀원들의 걱정과 달리 음흉하게 미소 짓는 구교환의 모습에 팀원들이 광기를 마주한 듯 약간의 두려움에 떨 때.
"흠··· 어떻게 나오려나."
누군가는 그 미소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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