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수하가 밖으로 뛰쳐나가자마자, 한진이가 뒤따라갔다.
"동하야. 현준이랑 같이 가서 시간 좀 끌어 봐. 난 수하 데리고 올 테니까."
"아...알겠어."
"왜 저러는 거야 미친놈이. 쳇."
그러게, 말이다. 왜 저러는 걸까.
급발진이 아니라 지금까지 현준이의 싸가지없는 언행을 참다못해 터졌다? 그럴 리가.
그렇게까지 아무 말 없이 혼자 참으며 끙끙댈 녀석은 아니다. 한진이가 말하길 수하가 이기적이긴 해도 피드백을 수용하지 못하는 녀석은 아니라고 했다.
게다가 정말 불만이 있었다면 한진이한테 먼저 얘기했었겠지. 그런데 한진이조차 이해 못 하겠다는 느낌이 컸다.
그럼, 프로지방생과의 경기에서 벽을 느껴서 갈 곳 잃은 승부욕이 분노로 표출되고 있는 걸지도. 아직 어린 애들이니까.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다.'
사실 갑자기 수하가 급발진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다만 그 상황이 제발 아니길 바랄 뿐이지.
만약 내 우려와 같은 상황이라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까.
"왜 갑자기 급발진이야?"
수하를 찾으러 가는 길에 비상구에서 들리는 한진이의 목소리. 비상구 틈으로 보이는 정말 떠나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가방을 멘 수하와 화가 난 한진이가 보였다.
"뭐가 급발진인데? 넌 욕먹는 게 기분 좋아?"
"그럼 네가 잘했어? 솔직히 아까 아저씨 얘기 듣고 나서부터 정신 놓고 플레이했잖아."
"아까 아저씨라니?"
비상구를 열고 들어가자, 수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봤고, 한진이가 대신 입을 열었다.
"아까 형 화장실 갔을 때 동한 베어스 감독님이 왔었어요."
"뭐? 그래서?"
"저희한테 연습생으로 들어오라고 말했어요. 저는 안 한다고 했지만, 수하는 승낙했어요."
난 조심스럽게 수하를 바라봤다.
'아, 이런. 망했네.'
우린 욜 챌린저스 컵 우승이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모인 팀이다.
라는 건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목적일 뿐. 정확한 각자의 목적이 있는 팀이다.
누군가는 본인 방송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누군가는 상금만을 위해.
누군가는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나와 수하의 목적은 프로게이머이지만 상황이 다르다.
난 곧바로 현역에 뛰어야 하고, 수하는 연습생이 되어 차근차근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그런 수하의 목적이 이루어졌다.
"그게 뭐! 뭐가 문젠데?!"
목적이란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던 수하.
그가 눈 깜빡하는 사이 결승선이 사라져 버렸다.
공허 속 가야 할 길을 잃은 어린 양은 혼란만 가득 안은 채 멀뚱히 시간이 자신을 새로운 트랙으로 데려다주길 기다릴 뿐.
더 이상 달리는 것에 의미 따위 없다.
"난 이미 프로 연습생이야! 내가 왜 최현준한테, 형한테 욕먹어가면서 온 힘을 다 해야 하는데? 내가 왜 열심히 해야 하냐고."
한진이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는 나 대신 화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안 이길 거야?"
"뭐 하러 이겨야 돼는데?"
"뭐 하러 이기냐고? 그럼 넌 이걸 왜 했는데?"
"왜 하긴. 프로게이머가 하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그걸 이뤘고."
"너 혼자 이루면 끝이야? 교환이 형, 동하 형은? 현준이는?"
"알 게 뭐야? 지금까지 열심히 했잖아. 내가 뭘 더 해야 하는데?"
"네 팀 버려? 팀이잖아. 무너져도 같이. 올라가도 함께."
"뭐가 팀이야? 어차피 끝나면 다신 안 볼 사람들인데. 내 팀은 여기가 아니라 동한 베어스라고."
이미 마음이 떠났다.
수하는 이미 새로운 트랙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형도 뭐라고 좀 해 봐요!"
할 말이 없다.
이세계였더라면 설득에 이용했을 지위도, 재력도, 권력도, 명예도 없는 수하와 같은 처지인 빈털터리다.
내 목적을 위해 이 어린아이 앞에서 감정 호소하며 이용해 먹고 싶지 않다.
우린 다 같은 도전자다.
이 대회가 끝나면 서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진 모르지만,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솔직히 수하도 알고 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물론 일부러 수하가 º어뷰징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흥미를 잃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있을 뿐.
그런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제 없다.
물론 나는.
조용히 한진이의 두 눈을 지긋이 바라봤다.
아직 어린 한진이가 알아들을 수 있을진 몰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한진이가 한참을 내 눈을 마주보다 말없이 수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난?"
"뭐가?"
"일회성 팀에 노력하기 싫은 거 알겠어. 근데 나는? 난 친구잖아."
"그러니까 같이 동한 베어스 가자니까."
김수하는 날 바라봤다.
"형한테도 제안할 거라고 했어요. 그냥 천천히 해요. 너무 힘들이지 말고. 솔직히 너무 힘들잖아요. 제대로 된 훈련도 안 받은 우리가 어떻게 우승해요. 오늘만 해도 프로지방생 팀한테 다 읽혔잖아요. 아니에요?"
"지금은 나랑 말하면 안 될 거 같은데?"
난 곁눈질로 한진이를 가리켰다.
"난 애초에 프로게이머에 관심 없어. 난 상금이면 돼. 2등 이상의 상금."
"그래서?"
"친구잖아. 내 목적까진 최선을 다해줄 수 있잖아."
"······"
김수하는 한동안 뭔가 말하려다가도 다시 삼키길 반복하다 호소에 가깝게 말했다.
"나...나 진짜 힘들어. 매번 상대 분석하는 것도. 어떻게 하면 더 이득 볼 수 있는지에 관한 것도 전부 내가 스스로 배워야 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동한 베어스에 들어가면 코치님이 알려주는 대로,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끝이라고. 책임질 필요도 없다잖아. 이겨도 져도 감독님의 역량이잖아. 난··· 더는 상처 입고 싶지 않아."
예선부터 지금까지.
그 수많은 경기 속에서 우리 모두가 경기를 하면 할수록 프로의 벽이 높게만 느껴졌다.
바로 최현준 때문에.
동하가 탑을 기준으로 정글을 도는 이유도, 내가 무의식적으로 탑 중심으로 전략을 짜는 이유도, 김수하와 정한진이 최현준의 날카로움에도 가만히 있는 것도 전부.
최현준이 잘 하기 때문이고, 최현준이 프로 연습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했다.
최현준을 이길 정도로, 최현준이 인정할 정도로 할 수 있어야 프로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고
그런데도 할 수 있을 거라 억지로 다독이고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게임에 들어가면 또다시 최현준이 벽을 높게 세운다.
반복
반복 반복
한 걸음 한 걸음
어느새 도착한 8강이다.
이젠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 없는 곳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인사격 원딜러 맞제?"
탈출구가 생겼다.
김수하만의.
"그러니까 내버려둬! 어차피 못 이겨! 상대 팀 정글러가 프로 연습생이었대. 그러니까 우리 동선을 다 알고 카운터 치는 거 아냐. 그러니까 그냥 포기하자. 뭐 하러 힘들이려는 거야. 네 여친 선물? 내가 사줄게. 응? 그러면 되잖아 한진아."
"...네 목적만 중요해? 네 목적만 목적이야? 네가 날 여기까지 데려왔잖아. 최소한 2등 안에 못 들더라도, 꼭 좋은 결과가 아니라도 좋으니까! 결승까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한진이는 김수하의 멱살을 잡고 끌었다.
"친구로 남기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게 관계에 대한 책임이라는 거야."
김수하는 울먹이던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몸에서 힘을 뺐고, 한진이는 그런 김수하를 경기장 쪽으로 끌고 갔다.
"넌 앞으로 나만 보고 게임을 해. 현준이고, 동하 형이고, 교환이 형 말 들을 생각하지 마. 네 말대로 내가 시키는 것만 해. 프로연습생 새끼야."
그렇게 비상구를 나온 순간 보이는 상기된 표정의 동하와 현준이.
그리고 그들의 뒤로 짐을 싼 채 집으로 향하는 프로지방생 선수들.
"교...교환아."
그제야 들여다본 시계.
'16분 늦었네···.'
······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건가.
이세계에서도 이 세계에서도 내 첫 도전은 항상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야만 하는 것인가.
뭔가 말하려는 현준이의 뒤로 감독관이 나타났다.
최현준은 감독관에게 딱 붙어서 흥분함을 감추지 못한 채 항의했고, 동하는 상기된 얼굴로 김수하를 바라봤다.
감독관은 김수하를 끌고 가던 한진이를 지나쳐 내게 다가왔고, 부고를 가족에게 알려야 하는 의사 같은 표정으로 내게 실격패라고 속삭였다.
- 작가의말
º어뷰징(Abusing) : 게임이나 경기에서 허용하지 않은 방법으로 기획 의도와 다른 플레이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 버그성 플레이, 승부 조작도 포함된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