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오늘을 위해서 피시방에 박혀서 하루를 통으로 보내고.
솔랭으로 피지컬을 갈고 닦고, 수십 명의 플레이를 보며 분석하고.
팀을 꾸리고, 결속력을 다지고, 전략을 만들고.
서로 맘이 맞지 않아서 다투기도 했고 경기에 패하여 탈락할 상황에도 놓였었다.
그런 위기의 순간마다 내가, 때론 최현준이, 어쩔 땐 이동하가, 정한진이, 김수하가 위기에서 팀을 구했다.
그 수많은 우여곡절을 넘긴 팀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오늘 난 최선을 다할 거다.
우승 때문이 아니다.
내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까지 올라오는 동안 힘들게 고생했던 나를 위해서.
나의 과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다.
"그러니까 각자의 과거 속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자. 그때의 내가 불쌍하지 않게."
구교환은 그리 말하며 김수하의 어깨에 손을 부드럽게 올렸고.
김수하는 아직은 어색한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오인사격 팀 스탠바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우릴 향해 손짓하는 스태프.
"··· 경기 파이팅하세요. 오인사격팀 올라갑니다!"
무대에 올라가는 우리를 반기는 관중의 함성과 스포트라이트 캐스터의 목소리.
"밑바닥에서 올라온 혜성! 그 누구도 이 팀이 올라올 줄은 몰랐을 겁니다. 언더독. 그들의 총구는 우승을 향해! 팀 오인사격!"
""와아!!!""
반대편에 보이는 반달곰들.
크게 들이쉬는 숨.
천천히 내뱉는 숨.
"우승 후보의 예견된 승리가 될 것인가. 언더독의 반란이 될 것인가. 욜 챌린저스 컵! 그들의 마지막 도전이 지금 시작~합니다!"
[ 욜 챌린저스 컵 결승전 1세트 ]
[ 오인사격 0 : 0 반달곰들 ]
1세트 밴픽
용리, 호걸, 채플랭크, 갸르, 이멜리아, 렉스, 랩틸러스, 레우스, 레드, 가이온 Banned
탑 최현준 : 심장을 멈추는 자 데비 - 기우라 : 검무일홍화(劍舞一紅花) 플뢰레
정글 이동하 : 용감한 무덤지기 브레이브즈 - 브랜스웨이트 마지막 왕 브랜스웨이트 7세
미드 구교환 : 겜블러 언노페 - 두 영혼의 환술사 블랑
원딜 김수하 : 저격수 여왕 레이틀린 - 빗속의 학살자 레인
서포터 정한진 : 현자 오드리 - 영혼의 거울 쓰레이 슈
경기 시작
1세트 오인사격 팀 밴픽의 의미는 가장 자신 있는 것.
이유라면 반달곰들의 실력을 화면과 귀동냥으로밖에 들은 것이 없어서다.
구교환은 1세트를 내준다 해도 그들의 피지컬을 피부로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꽤 유효했다.
실제로 경기가 시작되고 초반 º인베를 막기 위한 시야 탐색전에서 서로 나눈 스킬의 합.
그 한 합으로 서로의 실력이 느껴졌다.
그 느낌은 '할만하다.'라는 자신감.
각자 라인전이 시작되자마자 구교환은 블랑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압박했다.
블랑은 이동 스킬과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는 듯한 딜을 하는 ºAP 암살자.
로밍과 라인 관리로 이득을 챙기는 언노페와 라인전 상성은 블랑이 유리.
하지만 구교환이 라인을 압박하는 이유는 암살자라는 특징 때문.
암살자의 스킬은 대부분 단일 타겟 스킬이 많기 때문에 라인을 미는 속도가 느리다.
그 허점을 이용해 구교환은 라인을 빡빡하게 압박하며 본디 최현준에게 주었던 '갱 먹는 하마' 역할을 본인이 떠맡았다.
왜 인가? 왜 하던 대로 하지 않고 구교환이 그 역할을 자처했는가?
그것은 눈에 불을 켜고 라인전 하나에 몰입하는 최현준.
기우라에게 항상 패배했던 제너러가 있기 때문이다.
평소 이동하만을 애타게 부르던 최현준의 마이크는 집중의 거친 숨소리만 뿜어냈다.
"후우~ 후우~."
또 질 순 없다.
이번만큼은 질 수 없다.
최현준의 머릿속엔 기우라를 이기겠다는 생각뿐 다른 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최현준의 머릿속을 잘 알기에 구교환이 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
그 역할이 꼭 필요한 이유는 최현준을 위해서.
정글의 개입 없이 마음껏 기우라와 칼을 맞대라는 의미.
그 의미를 알고 하는 것인지 모르고 하는 것인지 최현준의 데비는 3렙을 찍자마자 창끝을 기우라의 플뢰레의 목을 향해 들이밀었다.
[ 붉은 창 ]
-휙!
근접[ 붉은 창 ]으로 짧게 찔렀지만, 플뢰레는 스킬도 쓰지 않고 가벼운 무빙으로 창 끝을 피했다.
[ 아따끄 ]
창끝을 피한 뒤 재빠르게 반격을 시도하는 플뢰레. 짧지만 강렬한 펜싱 스텝으로 순식간에 데비의 흉부를 향해 칼끝을 조준했지만.
데비는 돌진기 [ 맥진 ]을 뒤로 짧게 끊어 치며 대미지는 넣으면서 플뢰레의 칼끝을 피한 뒤 [ 적린(赤燐) ]으로 빠른 삼 타를 플뢰레에게 먹였으나.
[ 빠레 ]
플뢰레의 수비 태세로 세 번의 창 찌르기를 모두 물을 흘려보내듯 쳐내고, 바로 [ 꽁르트 아따끄 ]로 반격했다.
앞 발을 쭉 내밀며 직선으로 강하게 찌르는 [ 꽁르트 아따끄 ]는 [ 빠레 ]로 막은 대미지 비례로 더욱 강한 공격이 나간다.
그런데 [ 적린 ]의 대미지를 모두 막았으니 이번 [ 꽁르트 아따끄 ]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대미지가 들어올 것이기에 무조건 피해야만 했다.
그 어떤 사람이든 [ 점멸 ]을 누르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하지만 최현준의 데비는 죽음의 냄새에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손가락을 억누르고 마우스를 틀었다.
순간적으로 밟는 우측 스텝.
-타닷!
최현준의 데비는 기우라의 [ 꽁르트 아따끄 ]를
-휙!
"피했어요!!!"
해설진 모두가 감탄했다.
그건 분명 위험한 도박이었고.
그 위험천만한 도박을 성공했기에 관중들도 환호했다.
이번 [ 꽁르트 아따끄 ]를 맞았다면 필히 죽었다.
[ 점멸 ]을 써서 피했더라도 다음 6렙 타이밍에 죽거나, [ 점멸 ]을 가진 기우라가 강하게 º디나이 당해 말려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단 한 번의 무빙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로 만들었다.
놀란 건 해설진만이 아니었다.
'! 음···.'
기우라도 최현준이 피할 줄 몰랐기에 적잖이 놀랐다.
예전 스크림할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돌진하고 죽은 뒤 갱 좀 오라며 하루 종일 노래만 부를 줄 알았는데 무빙으로 피했다.
물론 애초에 무빙으로 피할 생각하는 것조차 무리한 생각이고, 이 라인, 이 타이밍에 데비로 플뢰레한테 싸움을 거는 것부터 무리였다.
'최현준답다.'
무리한 선택.
걸어야 하는 것에 비해 성공한다 해도 적은 이득의 선택이었음에도.
분명 최현준은 성장하고 있다.
탑에서 칼과 창이 불꽃을 만들며 온몸을 부딫히고 난 뒤.
미드에선 치열한 겜블과 환술의 마법 공방전이 펼쳐졌다.
라인 압박에 잠시 뒤로 물러나 언노페의 빈틈이 생기길 기다리던 블랑이 5렙을 찍는 순간 [ 환영 돌진 / 환영 인장 / 환영 올가미 ]연계로 언노페를 건드렸다.
언노페는 [ 환술 돌진 ]과 타겟팅 스킬인 [ 환영 인장 ]은 맞았지만, 논타겟팅 스킬인 [ 환영 올가미 ]를 피함과 동시에 [ 셔플 ]로 노란 카드를 [ 오픈 ]한 뒤 블랑에게 던졌다.
-띵!
[ 환영 돌진 ]의 스위칭 스킬[ 환영 돌아가기 ]로 돌진 전 자리로 돌아갔지만, 노란 카드는 그녀의 머리를 정확히 맞추어 기절시켰다.
[ 환영 돌아가기 ]로 순식간에 움직인 블랑에도 불구하고 언노페는 침착하게 [ 플랍 ]으로 세 개의 카드를 맞추며 딜교환에 성공.
그에 그치지 않고 [ 조커! ]패시브 스킬의 5번째 공격으로 딜교환에 이득을 보며 빠지려는 순간.
[ 왕가의 깃발 ]
깃발이 코앞에 꽂히더니, [ 왕국을 위하여! ]로 돌진하는 브랜스웨이트 7세에 맞아 공중에 뜨고 말았다.
상대 정글의 갱킹.
브랜스웨이트 7세는 피가 반토막이 난 사상 최악의 겜블러를 찢어 죽일 생각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 왕의 찬가 ]를 부르며 갑옷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때.
언노페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동하야!"
[ 연막탄 ]
순식간에 황금빛을 집어삼키는 뿌연 연기.
갱 먹는 하마에게 갱이 올 것을 알고 기다리던 브레이브즈가 부쉬에서 튀어나왔다.
[ 화염 산탄 ]
연기 속에 쏜 화염 산탄은 분진 폭발을 일으키며 거대한 화염 기둥이 올라왔고.
황금빛으로 물들던 갑옷이 모두 녹아내리며 브랜스웨이트의 쉴드는 순식간에 사라지다 못해 그 이상의 대미지를 받은 사이.
브레이브즈는 가까울수록 대미지가 강해지는 패시브를 활용하기 위해 [ 점멸 ]로 브랜스웨이트 7세에게 가까이 다가간 뒤.
평타 후 [ 빠른 재장전 ]후 평타. 빠르고 간결한 연계로 브랜스웨이트 7세의 피를 반 이상 깎았다.
브랜스웨이트 7세는 순간적인 등장과 더불어 순식간에 빠지는 체력을 보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죽음의 냄새에 [ 점멸 ]로 빠졌다.
이젠 두 정글 모두 [ 점멸 ]도 스킬도 전부 빠진 상황.
언노페의 눈은 브랜스웨이트 7세에게 블랑의 눈은 브레이브즈에게.
잠시 빠져 숨을 고르던 두 미드가 2차전을 위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 울리는 브레탈 속 내레이션.
[ 퍼스트 킬 ]
미드에 있던 모두가 본능적으로 탑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곳에 놓인 건
데비의 목이었다.
- 작가의말
º인베 : 인베이드(Invade)의 줄임말로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상대의 정글로 몰래 들어가는 행위.
ºAP(Ability Power) : 마력 공격력을 뜻한다.
º디나이(Dney) : 상대방이 경험치, 골드 등의 이익을 차단하기 위해 견제하는 모든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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