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2세트가 시작되자 동한 베어스 코치진은 혼비백산이 됐다.
"감독님! 감독님 어딨어?"
"전화 좀 해봐!"
뒤늦게 커피를 들고 오던 한 코치가 부산스러움에 당황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야! 감독님 어디 가셨어?"
"감독님 지금 선수랑 면담하러 가셨어요. 성원성 선수가 많이 심적으로 지친다고. 그만하고 싶다고 해서. 왜 그러시는데요?"
"하이씨! 네가 저걸 봐!"
코치가 가리키던 것은 2세트가 진행 중인 전광판.
게임 화면에 보인 건 기우라와 팀 오인사격의 바텀 듀오가 대치 중인 탑 라인이었다.
[ 이세계 용사 프로게이머되다 ]
탑 최현준 : 천둥 흑곰 벨베어 - 기우라 : 검무일홍화(劍舞一紅花) 플뢰레
정글 이동하 : 농사 링 쟈오밍 - 용감한 무덤지기 브레이브즈
미드 구교환 : 겜블러 언노페 - 내가 누구게? 카멜레온 네코
원딜 김수하 : 신성 총잡이 아킴보 - 말괄량이 폭탄마 정크
서포터 정한진 : 현자 오드리 - 영혼의 거울 쓰레이 슈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흥분하는 해설진.
"오인사격 팀 바텀이 지금 탑 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제너러 선수는 바텀으로 향하고 있고요. 설마 이거 스왑 전략으로 가는 것 같죠?"
탑 바텀 스왑 전략.
순전히 탑에 가던 한 명이 바텀에 가고,
바텀에 가던 두 명이 탑으로 가는 전략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전략.
하지만 모든 전략은 때와 상황에 따라 승리를 향한 지름길이 될 수도.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기우라를 향한 압박! 너무도 강합니다!"
"저러면 경험치조차 못 먹죠? 괜히 경험치 먹으려고 앞으로 가면 딜교환이 아예 성립이 안 되거든요."
김수하와 정한진의 라인 °프리징에 기우라는 CS는커녕 경험치조차 먹지 못하고 타워에서 손가락만 빠는 상황.
그나마 데비나 갸르, 채플랭크 같이 원거리 스킬이 있는 챔피언이라면 최소한의 CS는 챙길 수 있었겠지만.
기우라의 챔피언은 플뢰레. 원거리 스킬 따위 없다.
그에 반해 제너러의 벨베어는
[ 천둥 치기 ]
-콰릉!
원거리, 심지어 광역인 스킬로 CS를 어느 정도 챙길 수 있다.
지옥의 프리징으로 기우라에게 단 한 점의 경험치조차 허락하지 않는 김수하와 정한진.
어느덧 김수하와 정한진의 레벨이 3이 되자 서서히 탑 쪽으로 이동하는 이동하.
프리징 되었던 라인의 댐을 열자, 순식간에 범람하는 미니온과 함께 타워에 박혀있던 기우라를 덮치는 김수하와 정한진 그리고 이동하.
기우라가 1대2, 1대3이 가능했던 건 레벨이 동등했기 때문.
아무리 프로급 실력을 갖췄다 해도 1레벨의 기우라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뿐.
[ 퍼스트 킬 ]
""와아!!""
"기우라가! 이번 대회 처음으로 퍼스트 킬을 당합니다!"
이런 전략이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
첫째
동한 베어스 감독 코치진은 오인사격이 스왑 전략을 가져올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는 것.
둘째
반달곰들에 압도적이라 부를만한 피지컬은 기우라 밖에 없다는 것.
셋째
동한 베어스는 감독과 코치가 말해준 대로만 움직이는 기계들이라는 것.
반달곰들의 메인오더인 정글러는 이미 패닉상태.
"형, 이제 어떡해요?"
"어··· 몰라. 이럴 때의 대처법은 감독님이 말을 안 해줬어."
상대가 A전략을 쓸시엔 A-1대처법을.
B전략을 들이밀면 B-3대처법으로
정해진 공식에 따라 게임을 풀어나가는 팀을 만드는 것이 송재림 감독이 지향하는 스타일.
그가 좋아하는 선수는 뇌가 없이 피지컬만 뛰어난 선수.
선수는 칼.
감독은 무사.
결국 칼을 휘두르는 건 감독의 몫.
그렇기에 선수에게 지식만을 흡수하길 원했고, 지혜와 자아를 버리길 원했다.
"우라야! 뭐, 어떡하냐?"
"······"
[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
탑에서 계속되는 오인사격의 승전보.
어떻게든 버텨보기 위해 반달곰들의 정글도 제너러를 향해 바텀 3인 다이브로 행동을 개시했지만
원거리 스킬로 야금야금 경험치를 챙기던 제너러의 벨베어에겐 기우라처럼 맥없이 자빠지는 것이 아닌
저항할 힘이 갖춰져 있었다.
[ 아군이 당했습니다 ]
[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
반달곰들의 바텀 3인 다이브는 제너러의 벨베어가 반달곰들의 서포터를 데려가며 1대1교환이 되어버렸다.
"어,어... 이건 손해인데."
제대로 고장나 버린 송재림의 AI들은 코드에 에러가 난 듯 뜬금없는 계산을 반복하다. 결국
[ 패 배 ]
오인사격에게 승리를 내주었다.
"괘...괜찮아 애들아."
가까스로 멘탈을 잡으려는 반달곰들의 정글러.
그래.
지금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진짜 지옥은 게임이 끝난 후부터 시작됐다.
"감독님이 안 계신다고요?"
송재림 감독의 AI들은 그들의 뇌가 되어줄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에 넋을 놓았다.
코치진조차 송재림 감독의 AI일뿐이기에 넋을 놓은 그들을 진정시키기위해 할 수 있는 말은 조금만 기다려라, 곧 감독님이 오실거다 정도.
혼이 나간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는 반달곰들의 선수들.
유일하게 기우라만이 말없이 대기실 밖으로 나와 오인사격이 있던 자리를 유심히 바라봤다.
[ 오인사격 1 : 1 반달곰들 ]
3세트가 시작되었을 때 반달곰들은 일단 언노페를 밴했다.
반달곰들에게 언노페란 존재는 그저 기동력 좋은 보너스에 불과했었다.
탑으로 로밍을 오면 기우라가 1대3으로 한 명만 데려가도 이득이었기에 풀어두었지만
스왑 전략에서 언노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기우라에게 3인 다이브를 어느 정도 맞받아칠 능력이 생길라치면 [ 신출귀몰 ]로 4인 다이브를 쳐 꼼짝도 못 하게 만들거나
3인 다이브로 제너러를 잡을라치면 [ 순간이동 ]으로 제너러를 지켜주거나, 최소 2명 이상 데리고 갔다.
물론 그런 이유에서 언노페를 밴할거라는 걸 구교환이 모를 리 없었다.
"지금 원거리 스킬을 가진 탑 챔피언을 중점적으로 밴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네요. 이번에도 스왑전략을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벨베어 Pick 채플랭크 Pick
"오인사격 벨베어와 채플랭크를 픽하는데요?"
"설마 탑 벨베어에 미드 채플랭크요?"
"어~ 미드 채플랭크지만 미드 채플랭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크레이드 선수가 채플랭크인 것은 맞지만, 미드로 갈 것인지, 탑으로 갈 것인지 모르는 거 거든요."
"아! 그렇죠. 바텀으로도 갈 수 있겠네요!"
"맞죠. 2세트에서 보여줬던 라인 스왑. 이제 그 스왑 심리전까지 해야 하는 반달곰들입니다."
3세트
최현준 : 천둥 흑곰 벨베어 - 만취한 난동꾼 비어가스
이동하 : 브랜스웨이트의 마지막 왕 브랜스웨이트 7세 - 농사 링 쟈오밍
구교환 : 바다의 무법자 채플랭크 - 기우라 : 천개의 검 이멜리아
김수하 : 신성 총잡이 아킴보 - 원소술사 후흐
정한진 : 아틀란티스 마지막 심연의 닻 랩틸러스 - 현자 오드리
밴픽이 끝나고, 반달곰들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기 시작한다.
'과연 적은 이번에 어디로 누가 올 것인가.'
송재림 감독만 있었어도 임기응변을 발휘해 라인스왑을 타파할 전략을 가져왔을 테지만.
송재림 감독이 없는 반달곰들은 마치 좀비처럼 플레이할 수밖에 없다.
라고 생각하며 큰 불안감 없이 미드로 간 구교환의 채플랭크 앞에 나온 건
"호오~. 아직 자아가 남은 불량품이 하나 있었네."
기우라의 이멜리아였다.
미리 얘기된 전략은 아니었다.
기우라의 기지나 다름 없었다.
'그래. 얼마나 잘하는지 해보자.'
하지만 그 작은 균열이 경기의 양상을 뒤바꾼다.
- 작가의말
º라인 프리징 (Line Freezing) : 라인을 밀지도 당기지도 않으면서 현재 위치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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