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그게 최소한의 책임이라는"
구교환이 사라진 순간.
"것은 아니다···. 이런."
호지르는 분노에 아랫입술을 깨무는 캉캉과 함께 구교환이 사라진 자리만 넋 놓고 보고 있었다.
"부길드장님 이제 어쩌죠? 정찰대장님을 데려올까요?"
호지르는 무언갈 말하려다 어떠한 기색을 눈치채곤 말을 바꿨다.
"너는 여기 남··· 아니다. 넌 길드장님을 따라가라. 분명 무리하실 것이 뻔하다. 살아남은 길드원이 있다면 [ 임시 보호 ]한 뒤 안전한 곳에 가 있어라. 후에 연락하마."
캉캉은 고개를 끄덕이곤 [ 캉캉! ]을 써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와라."
"정말 보내도 되겠어?"
캉캉이 사라지고 난 뒤 바위 그림자에서 레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 죽을 수도 있어."
호지르는 지팡이 위에 놓인 새 조각상을 보더니 지팡이를 꽉 쥐었다.
"뭘 원하는 거냐. 그림자 일족의 계략이냐?"
"전혀. 이번 건 그냥 개인적인 일."
"그런데 우리 길드원을 죽인 것이냐?"
레드는 팔에 장착된 암살 검을 집어넣으며 바위에 앉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나와 얘기해주질 않으니까. 애초에~ 내가 죽인 것도 아니고."
"이야기? 근데 가이온에게 붙은 거냐? 가이온과 우리 길드장님이 어떤 사이인지 알면서?"
"우리? 언제 우리 길드가 됐어. 네가 누군지 잊었어? 네가 말하는 '우리'에 들어갈 사람은 그림자 일족이잖아?"
"난 그림자 일족이 아니다."
"그게 그렇게 아니라고 말한다고 아니게 되는. 그리 쉬운 게 아닌데 말이야."
호지르는 지팡이로 바위에 앉아 있던 레드를 찔렀지만, 그건 그림자에 불과했다.
"하하! 너무 그 곰탱이랑 같이 있어서 둔해진 거 아니야?"
"길드장님을 욕되게 하지 마라!"
없어졌던 레드가 호지르의 그림자에서 칼날을 휘두르며 튀어나왔다.
"네 일족이나 욕되게 하지 마라. 길바닥에 버려진 날개 다친 새를 먹여주고 길러준 것이 누군데!"
"난 단 한 번도 살인자로 길러 달라 한 적 없다."
호지르는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롭게 그의 칼날을 지팡이로 막았다.
-챙!
호지르와 레드의 힘겨루기.
레드는 칼날을 막고 있는 지팡이의 끝에 달린 새 조각상을 확인하곤 비웃었다.
"호오~ 말로는 일족을 버렸다 어쨌다 하면서 아직 가지고 있군."
"이건 나의 어머니가 물려주신 거다."
"네 어미의 출신도 그림자라는 걸 잊은 거냐!"
-팅!
레드의 박력으로 튕겨 나간 호지르.
레드는 곧바로 자신의 그림자로 마법진을 그렸다.
[ 그림자 분신 ]
순식간에 늘어나는 레드.
그 수는 30. 아니, 50!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레드의 분신이 차례차례 호지르에게 칼날을 들이밀고 표창을 던졌지만.
-붕~ 붕~붕~붕붕~붕붕붕~~!
호지르는 지팡이를 창처럼 휘두르며 다가오는 표창과 칼날을 튕겨냈다.
물론 전부는 무리였다.
-촥! 푸슉!
조금씩 생기는 생채기에 호지르는 날개를 활짝 펴 찰나의 날개짓으로 뒤로 물러나며 지팡이로 땅을 찍으니
[ 평탄화 ]
반경 50M 숲속의 땅이 마치 물 위에 돌멩이를 던진 듯 파동이 일며 나무와 바위를 토해냈다.
공중으로 튀어 오른 레드'들'과 바위, 나무 덕분에 날아오던 표창과 단검으로부터 호지르는 몸을 숨긴 채 땅에 지팡이로 마법진을 그렸다.
"소용없어."
레드의 분신을 상대하는 사이 호지르의 그림자에 숨어든 진짜 레드가 호지르를 잡고 그림자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그걸 노릴 거라고 생각했다."
[ 돌기둥 ]
마법진에서 솟아오르는 돌기둥이 레드의 옆구리를 쳐 하늘로 날려 보냈다.
날아가는 레드를 향해 호지르는 지팡이를 들고 "스파이크!"라 소리치자
땅이 수십 개의 죽순처럼 솟아나 미사일처럼 발사됐다.
[ 그림자 바꿔치기 ]
레드는 [ 스파이크 ]를 피하기 위해 공중에 떠 있다 반격을 준비하는 분신과 바꿔치기를 한 순간.
호지르는 본인의 날개깃으로 마법진을 완성했다.
그 마법진의 위력을 본 적 있는 레드가 저지를 위해 모든 분신과 함께 일제히 던진 표창이 호지르의 코앞에 다가왔을 때.
마법진은 마력을 받아 빛을 내뿜고 있었다.
[ 최초의 행성 ]
-쿠구구구구
대지가 갈라지며 운석처럼 날아가기 시작한다.
표창은 올라가는 운석에 허망하게 박혔고.
레드들은 아쉬움을 표하며 서서히 대지와 함께 하늘 위로 날아가 하나의 점으로 모였다.
-쾅! 쾅! 콰앙!
진짜 레드는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그림자를 타며 발버둥 쳤지만
이미 하나의 작은 행성이 된 중력에 빨려 들어가 행성의 일부가 되었다.
"네가! 그 그림자 일족의 힘 없이 이길 수 있을!" -쾅!
완성된 행성은 솔레트 숲을 환히 비춰주던 태양을 가리고 거대한 그림자를 낳았다.
그리고 조금씩 쪼그라들기 시작한다.
-쿠구구구구콰직! 콰직!
조금씩 쪼그라들던 행성은 결국 거대한 조형물 정도의 크기가 되어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자신의 뿌듯한 결과물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기려던 호지르의 발목을 잡은 건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비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걸어가지 않고 고개를 돌린 건 지금 껏 들은 물방울 소리와는 다른 끈적하고 불길한 느낌의 떨어짐이어서였을까.
"내가 말했지."
호지르의 귀에 들린 건 레드의 목소리요.
"그림자 일족의 능력을 쓰지 않으면 날 이길 수 없다고."
호지르의 눈에 보인 건 자신의 결과물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검고 찐득한 무언가.
액체라기엔 가볍고, 기체라기엔 끈적했고, 고체라기엔
온 땅을 검은 색 페인트 통을 엎지른 듯 빠르게 퍼져나가는 것이
"그림자···."
대지를 뒤엎는 그림자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주변의 나무, 바위 그리고 모든 생명체.
"모든 시작에 존재하는 건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 개세지영 蓋世之影]
그림자는 순식간에 솔레트 숲을 집어삼켰고
호지르도 아무리 날갯짓을 해봐도 서서히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호지르의 몸이 전부 먹히고 지팡이 위 새 조각상마저 집어삼켜지던 순간.
-팟!
그림자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와 새 조각상을 지팡이에서 뜯어 그림자 속으로 함께 빨려들어가니.
어둠 속에서 레드의 환한 웃음이 들려왔다.
"봐! 결국 넌 그림자 일족의 힘 없이 아무도 이길 수 없어! 이제 인정해라 넌!"
-푸왁!
레드의 웃음과 함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새 한 마리.
아니, 검고 또 어두운 까마귀 한 마리.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진 건 지팡이가 아닌 까마귀의 우상.
"그림자 일족의 새 캬라스다!"
***
"가이온!!!!"
숲에서 빠져나온 벨베어는 가이온을 굳이 부를 필요가 없었다는 걸 한눈에 알았다.
벨베어를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가이온 길드 전원이 나와 진을 치고 있었고
그 뒤로 보이는 마을에선 화마와 비명뿐.
그리고 그들의 가운데 가이온이 벨베어 길드원들의 시체 위에 앉아 웃고 있었다.
"내가 말했었지. 내 턱을 부순 걸···."
-콰르릉! 콰앙!
벨베어는 잡담따위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죄책감은 없는지
후회 따위 할 것인지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콰르르릉!! 콰르릉!!!
한시라도 빨리
1분 1초라도 빨리
가이온을 숨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으니까.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전룡.
그 전룡들이 새로운 마법진을 만들어내니
[ 문답무룡 問答貿龍 ]
-쿠구구구 콰과과광!!!!!!
279km 떨어진 브레탈 도서관 서기가 기록하길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솔레트 마을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라고 착각할 정도의 천둥이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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