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난 지금 중대한 고민에 빠졌다.
"흠···."
이름 구교환. 180에 0.3cm부족한 키. 잘생겼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지만 못생겼단 말도 들어본 적 없는 평범한 얼굴. 곧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내 나이 스물여덟 살. 뜨거운 경쟁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책임감을 짊어진 남자이자 장남인 내 직업은 다름 아닌 GBS.
개백수 되시겠다.
"도대체 뭘 하지?"
백수도 직업이라고 친다면 난 아마 낙하산이나 특채 같은 느낌일 거다.
스물셋.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를 살리려다 휘말린 교통사고. 그 교통사고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져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살다 4년 뒤에 깨어났다.
깨어난 뒤 1년간 재활에만 매진해야 할 만큼 만신창이가 된 몸도 몸이지만 집안 꼴은 더 엉망이었다.
여동생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1년 정도 참다 생명유지장치를 떼길 원했다고 한다. 그런 결정을 한 이유야 많다지만 역시 돈이 문제겠지.
뭐, 어찌 보면 1년을 참은 것도 용하다. 애초에 투석 환자이신 어머니도 기생충 취급하던 사람이었는데 뭘.
살아 돌아올지 말지도 모르는 아들놈 붙잡아둬서 뭐하겠나. 버는 족족 병원에 다 가져다 바치면 나 같아도···.
'아니, 난 절대 안 그랬을 거야.'
아무튼 이혼한 것인지 만 것인지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일절 언급조차 안 하시는 데다 눈뜨고 난 뒤 1년 동안 아버지를 본 적도 없고, 현재의 집안 경제 상황을 보면 사고 합의금을 가지고 도망친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행방이 궁금하지도 않고.'
투석 환자인 어머니는 일자리가 제한되어 자택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한다지만, 그 작은 급여론 턱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캠퍼스 생활을 꽃 피우려던 내 여동생은 대학 입학을 취소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그런데도 내가 깨어난 뒤 재활을 마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분 나쁜 말 한마디 하지 않은 나의 여동생. 우리 이쁜 지현이.
이렇게 이쁜 여동생이 프랜차이즈 햄버거집 '버거탑'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장남으로서 두 눈 뜨고 볼 수 있겠나.
꽃다운 나이 스물다섯! 학사모를 집어던지고 사회 초년생의 길에 접어들어야 할 여동생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오빠가 꼭 대학 보내줄게!"
하곤 하지만 아무 능력도, 아무 이력도, 심지어 몸 쓰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까지.
뭐, 병원에서 사회적 기업과 연결해 일자리를 준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페이가 좀···.'
어딜 불평불만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근데 방금까지 내 상황을 듣지 않았는가. 그 페이로는 빚도 못 갚고 인생 쫑날 수도.
'뭔가...뭔가 기가 막힌 거 없나?'
인터넷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해 봤자 몸 쓰는 일은 애초에 논외.
몸을 적게 쓰는 일 일수록 능력이 필요한 게 현실.
"뭐. 이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긴 한데··· 이력으로 봐줄까?"
그렇다고 말로가 뻔한 불법적인 일엔 손대고 싶지 않다. 지금처럼 눈물만 흘리면 됐지, 피눈물은 좀 거시기하잖아.
그래서! '도대체 뭘 할까?'라는 고민만 며칠째 하며 합리적인 백수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까톡!
한창 진지한 고민 중인데 눈치 없이 울리는 까놀라톡.
[ 얌마 구교환! 재활 끝난 기념으로 치킨 한 마리 사주려니까 나와. ]
몇 남지 않은 친구인 장준의 까톡. 음~ 미처 풀지 못한 푸념을 조금 더 하자면 4년 동안 산송장으로 산다는 건 쌓아온 인간관계 대부분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혼수상태인 인간관계를 둔다는 건 뭐랄까. 친구 가챠를 돌렸는데 SSS급 부조금 확정! 이라는 느낌이랄···.
-까톡!
[ 집 앞 치킨뱅뱅이 다 왔다. 빨리 기어 나와라 곧 치킨 나온다. ]
"아따··· 왜 이리 급해."
***
"야! 여기!"
덩치도 큰 주제에 키도 훤칠하고 코도 부리부리한 것이 잘생긴 강백호 느낌의 남자가 손을 거세게 흔든다.
"아우! 더워 뒤지겠는데 밖에서 먹으려고?"
"야! 이열치열 몰라? 이렇게 몸을 뜨겁게 하고 얼음 같은 차가운 생맥 한 잔 때려야 비로소! 아, 여름이었다. 하는 거야~."
"너 이열치열 뜻 모르지?"
두 눈을 깜빡이다 핸드폰으로 [ 이열치열 뜻 ]이라고 적는 꼴로 보아 얼굴도 뇌도 착한 장준 맞다.
장준이 열심히 이열치열 뜻을 공부하는 동안 후라이드 반 양념 반에 골뱅이까지 나오고 시원한 생맥 두 잔이 나왔다.
"야! 왜 두 잔이야?"
"에? 너 재활 끝났잖아. 먹어도 되는 거 아니야?"
먹어도 되긴 하는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고, 의사 선생님도 되도록 반려하라 했으니까···.
"그러게. 끝났으면 마셔도 되지. 짠!"
"짜안~."
팅! 하는 경쾌한 소리. 부드러운 거품과 함께 흐르며 목을 기분 좋게 간지럽히는 탄산.
"캬! 맥주! 넌 오늘 뒤졌다."
술이라는 거 참으로 오랜만이다.
"야! 그나저나 지현이 일 아직 안 끝났냐?"
"아우! 이 새끼 또 시작이네. 넌 나랑 친구 하는 이유가 지현이 때문이냐?"
"뭐래?!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절친의 여동생한테 치킨에 맥주 한 잔 사준다는 게 어렵나?"
"어려워! 존나 어려워! 데비가 강철 송곳니로 드렉의 굳건한 심장 뚫는 거만큼 어려워!"
"그건 불가능에 가깝잖아."
"웬일로 말귀를 알아듣냐? 너 누구야! 장준 아니지!"
말은 이렇게 해도 단지 여동생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안다.
4년간 의식도 없이 숨만 쉬는 시체를 보기 위해 꾸준히 찾아온 사람 중 한 명이니까.
어머니도 처음엔 지현이 보러 오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간호사 말을 들어보니 지현이도, 심지어 어머니조차 없을 때도 자주 찾아와 혼자 주절주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는 항상 "또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고 한다.
한 마디로 '친구'다.
"캬! 역시 이 집 생맥주 잘해. 사장님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그렇긴 하···? 너 혹시 생맥주를 가게에서 만드는 줄 알고 있는 건 아니지?"
"··· 아니었어? 그럼, 왜 '생'을 붙여?"
······ '좀 많이 모자란 친구'다.
"그나저나 이제 뭐 먹고 사냐?"
취기도 조금 오르겠다. 집에서 혼자만 앓고 있던 고민이 입 밖으로 술술 나온다.
"너도 모델하던가. 너 혼수상태에서 나온 이후로 엄청나게 말랐잖아. 모델은 얼굴 안 보니까 나름 괜찮아."
"그럴까? 생각해 보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 좋은 점 딱 하나는 자고 일어나니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거? 원래 좀 통통했는데. 그치?"
참고로 장준은 모델이다. 뭐 잘나가는 모델은 아니고. 그냥저냥 인스타에 아~주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
"그래. 뭐 모델이라는 게 그렇게 체력적으로 고달프진 않아. 프로급 아니라면."
"모델이라···. 프로급이 아니면 월급이 어느 정도인데?"
장준은 단순 월급계산에 시간이 걸리는지 한참을 "음~."거리며 먼 산을 바라보다 말했다.
"얼마나 뛰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한데 난 150에서 200정도 벌어. 그 정도면 먹고살 만하니까."
장준은 그리 말하며 치킨 닭 다리를 행복한 얼굴로 뜯었다.
장준이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없는 것에 욕심부리지 않는 사람. 머리는 모자라도 마음은 풍족한 그런 녀석이다.
"그렇지. 넌 원래 흐르는 대로 사니까."
장준은 뼈만 남은 닭 다리로 날 가리키며 말했다.
"반대로 넌 항상 흐름을 거스르려고 하지."
맞는 말이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도 흥미를 끄는 문제가 있으면 항상 해답지에 나온 풀이대로 풀려고 하지 않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매일 고민했다.
그래서인지 항상 시험은 제 시간에 맞춰 풀지 못했고 그 덕에 성적은 나빴지만, 어려운 문제에 막힌 모범생들은 풀이를 위해 전부 날 찾아왔었다.
"이왕 할 거면 프로급은 노려야지."
"음··· 근데 현실적으로 프로 모델이 되는 건 네가 할 순 없을 거야. 차라리 프라모델이 되는 게 빠를걸?"
"프라모델이라. 나쁘진 않네."
"네가 프라모델이 되면 내가 사줄게. 하하하!"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
-짠
"아, 맞다! 야, 야! 진짜 대박 뉴스!"
"뭔데."
아무리 1년 전 혼수상태였다 할지라도 자고로 수컷은 수컷. 술자리에 빠질 수 없는 이성 이야기.
"그 여자도 모델이더라. 심지어 나보다 잘나감."
"어떤 여자?"
사실 누굴 말하는지는 알고 있다. 장준과 나 사이에 공통으로 아는 여자라 함은.
"누구긴 성하연 씨지!."
성하연. 내가 교통사고에 휘말린 원인이라면 원인이자, 혼수상태인 날 꾸준히 찾아와준 사람.
"진짜? 모델이었어?"
그녀가 모델이라니! 물론 실제로 본 건 퇴원할 때와 재활할 때 한 번씩 총 두 번 본 게 전부지만, 기억에 또렷하게 남을 정도로 이쁘시긴 했다 했더니 모델이었다니!
"내 말이! 아니, 저번에 인스타 광고 촬영하러 스튜디오 갔는데 거기 계시더라고. 그래도 인사는 안 했다. 친구의 여자는 안 건드리니까."
"친구의 여동생은 건들면서? 네 두개골로 탕후루 만들어줄까?"
"탕후루도 알아? 와~! 아닌 척하면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 이미 알아봤네. 이거!"
"뭐래! 워낙 여기저기 생기니까 아는 거지. 그리고 내 여자 아니야. 그분은 그냥 나한테 고마워서 그런 거지."
내 여자라니 말도 안 된다. 그냥 생명의 은인으로서 감사의 표시로 찾아와준 거뿐이지 절대 날 맘에 품었을 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어머니가 4년 동안 그 아프신 몸을 이끌고 내 몸을 닦아 주셨다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역한 채취와 정돈되지 않은 수염과 머리에 미라처럼 삐쩍 마른 날 봤는데 좋아할 리가 없지. 그리고 내가 장준처럼 잘생긴 것도 아니고.
시무룩해진 날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지 장준이 소맥으로 갈아타려고 소주를 시키며 말했다.
"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여자는 좀 아는데. 널 쳐다보는 눈빛이~! 그거, 그거! 그냥 고맙다는 눈빛이 아니야. 보통 눈빛이 아니라고. 막말로 그 사람이라고 삶이란 게 없겠냐? 굳이 시간 내서 너 보러오는 거 보면~. 딱! 사이즈 나오지."
"네가 다른 걸 좀 모르냐? 적당히 몰라야 신빙성이 있지."
"야! 나 나름 모델이야. 계약서도 읽을 줄 알아! 쩝······ 근데 신빙성이 뭐냐?"
"닥쳐! 그냥. 맥주나 마셔."
"드립이지 이 새끼야! 하하하하! 그건 알지!"
-짠
오랜만의 술이라 그런가. 왜 이리 들떴는지 각 4잔에 소주까지 타 마셨다.
"아~ 취한다. 야! 넌 혼수상태였다는 놈이 술을 왜 이리 잘 마셔!"
"그러게··· 뭔가 잘 들어가네. 거기서 마시던 것보다 도수가 약해서 그런가?"
"도수? 도수체조 얘기하지마라. 군대 얘기는 지긋지긋하다."
"도수가 그 도수가 아니잖아! 등신아."
"뭐래!? 네가 등신이지! 사고 날 거면 군대 가기 전에 당하지. 전역하고 당하냐! 하하하하!"
"큭큭큭! 맞네. 맞아. 아니, 생각해 보니까 짜증 나네. 심지어 가자마자 또 군대를 갔으니."
"뭐? 뭐 아무튼. 막잔하고 피방이나 가자."
"피방? 거긴 왜?"
"나도 요즘 '욜'에 빠졌거든. 이래 보여도 나 다이아 랭크야 이 자식아!"
"욜? 그게 뭔데?"
장준은 지갑에서 카드를 찾으며 대충 말했다.
"뭐야. 욜 아는 거 아니었어?"
"나 집에 컴퓨터도 없는···."
"사장님! 계산이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카운터로 달려가는 장준. 동선을 보아하니 카운터에 카드만 내고 토하러 화장실로 가는 것 같다.
근데 그나저나 욜이 뭔데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음··· 오늘 대화 중에 이상한 게 있었나?
"모르겠다. 뭐 얻어먹었으니, 끝까지 놀아주는 게 도리 아니겠어! 난 시간 만수르 대한민국 백수니까!"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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