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5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줄만 알았던 내게 펼쳐진 새로운 세상 브레탈.
난 그 이세계 속에서 별의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며 40년을 살다 왔다.
그렇게 현실로 돌아왔건만, 한철의 꿈 같은 일이라 넘기려 했건만.
그때 그 세상이 모니터 속에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얌마 뭐해. 게임 시작하고 나서 세계관 읽는 놈은 전 세계에서 네가 유일할 거다."
그것만 유일하겠냐? 지금 네가 화면 속에서 잡고 있는 몬스터를 실제로 쓰러뜨린 적 있는 사람도 내가 유일할 거다 이 놈아.
'일단 침착하자. 그때. 이세계에 날아갔을 때도 침착했잖아. 그때 비하면 목숨에 위협도 안 받는 상황이잖아. 일단 자세한 건 나중에 알아보자.'
괜히 여기서 게임은 안 하고 계속 알아보려 해봤자 아무 의미 없다. 아니 애초에 내가 다녀왔던 이세계면 어쩌라고? 어쨌든 게임인 걸? 사람이 만든 데이터란 말이다.
그냥 일단 즐기자. 즐기자는 마음을 먹고 내 캐릭터로 화면이 옮겨지자마자, 겨우 진정시킨 마음이 다시 울렁인다.
'아··· 왜 하필 힐라인거야. 아니, 챔피언 이름도 힐라네?'
물론 아까 장준이 힐라라고 말하긴 했지만, 귀에 들어오질 않아서 그냥 넘겼는데 진짜 힐라였다니.
일단 화면 아래 나와 있는 액티브 스킬 4개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 댔다.
'신성 모독, 교화, 사일런트 힐, 영원한 신성까지? 와···.'
똑같다. 힐라가 영창하던 기술의 이름도, 효과도 똑같다. 심지어
'혹시나 해서 Q부터 찍고 써 봤는데 이거 이팩트도 힐라가 영창한 뒤 하는 동작이랑 똑같네? 말이 돼!?'
캐릭터가 부활하는 공간인 '요람'에서 이리저리 구경만 하고 있는 내가 답답했는지 이미 3렙을 찍고 미드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꾸 내 화면을 들여다보던 장준이 버럭 화낸다.
"야! 뭐해! 아니 너 이 게임 모르는 거야 아는 거야 확실히 말해. 모르면 알려주게."
"아따~ 알았다. 좀 기다려 봐. 오랜만이라 그러니까."
"오랜만? 너 재활을 게임으로 했냐?"
근데 생각해 보니까 이 녀석 왜 자꾸 내가 욜을 안다는 것처럼 말하지?
"아니, 근데 너 왜 자꾸 내가 이 게임을 안다는 듯이 말하는 거야?"
"네가 아까 그랬잖아. 데비의 뭐시기로 드렉 어쩌고저쩌고 했잖아."
아. 맞다. 오랜만의 술이라 흥분해서 이세계에서 쓰던 말을 그대로 써버렸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 녀석이 그걸 알아들었지. 그때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럼 이 게임에 데비랑 드렉도 있어?"
"?... 너 괜찮냐?"
장준의 얼굴에 취기가 확! 사라지더니 걱정되는 얼굴로 내 어깨에 손 올리며 말했다. 하긴 장준 입장에선 자꾸 이랬다 저랬다 헛소리하는 걸 봐선 사고 후유증인가 싶겠지.
그리고 약간 '내가 술을 먹여서 그런가?'라고 생각하는지 미안한 얼굴도 있는 것 같다.
이러면 어쩔 수 없이 조금 어울리도록 하자.
"아.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 좀 공부하려고 다튜브로 봐서 조금 알긴 하는데 1대1은 처음이라 그래. 룰이 뭔데?"
"··· 그런 거지? 그래. 일단 퍼스트 킬 내면 당연히 끝이고, CS100개를 처음 먹거나, 1차 포탑 부수면 승리. 요람으로 귀환하는 건 딱 한 번 가능이고 정글 먹으면 안 되고. 아마 그게 끝일 걸?"
"CS가 뭔데? 미니온?"
"어어. 저 미니온이 약간 게처럼 생겨서 crab이라 부르거든? 그래서 crabscore를 줄여서 편하게 cs라고 불러."
"오케이. 접수 완료."
'그래. 일단 이세계에서 내가 알던 것이 이곳에 그대로 녹아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플레이하는 챔피언인 힐라는 이세계와 똑같으니까. 힐라가 어떻게 싸웠는지를 기억해 내며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미드라인에 들어섰고 그제야 화면에 들어온 장준의 챔피언.
"데비? 장난해?"
데비. 마창술사이자 꽤나 잘나가던 모험가 중 하나였다.
특히 심장을 관통하는 창이라는 일명 '심관창'은 일정 조건을 달성하면 즉사시킬 수 있는 이세계에서 몇 안 되던 즉사 마법.
그래서 알고 있다. 즉사기를 가졌다는 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의 이슈이기도 했고.
'나랑 싸워 봤기도 했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지. 당연히 모르겠지만, 장준은 옆에서 킥킥대며 CS를 열심히 먹고 있다.
"킥킥"
왜 이리도 이 녀석이 킥킥대느냐. 간단하다. 힐라는 힐러고 데비는 딜러니까.
현실에서야··· 아니, 이세계에서야 실제로 싸우니 힐러든 딜러든 탱커든 마력 그리고 전략 싸움이고.
마력과 전략이 동급이면 마나가 다 떨어질 때까지 소모전을 벌이다 진흙탕 싸움에서 누가 먼저 칼을 맞느냐 하는 절대적인 실력 싸움이지만 이건 데이터가 전부인 게임이다.
숫자와 숫자로 이루어진 데이터 세상에서 힐러로 고안된 캐릭터로 딜러로 고안된 캐릭터를 1대1로 이기라는 건 말이 안 되지.
'아··· 까짓거 만 원 내고 다음 판에 한 삼만 원 걸면 되지. 일단 맛만 보자.'
어차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긴 했다.
이제 라인에 도착해 방금 2렙을 찍은 나와 달리 안 그래도 상성이 안 좋은데 저 녀석은 벌써 5렙이다.
당연히 난 타워를 죽부인 삼아 끌어안고 미니온이 죽을 때 발생하는 경험치만 빨아 먹었다.
'장준이 저 녀석 이제 곧 6렙이네.'
욜의 만렙은 18렙 그중 6, 12, 18 렙에 궁극기(R스킬)을 찍을 수 있다.
그 말인즉 저 녀석이 곧 궁을 찍는다는 것이고, 내 심장이 관통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
-레벨업
그래도 2렙인 내가 경험치 총량이 적어 먼저 3렙을 찍었다.
이제 스킬을 찍을 시간.
Q스킬인 신성모독은 원거리 딜링기. 이세계와 정말 똑같은지에 대한 실험을 위해 요람에서 1렙에 찍어버렸다지만, 현재 cs먹기와 견제용으로 나름 유용하게 쓰고 있다지만 데미지가 그리 강한 스킬은 아니다.
W스킬인 교화는 자신과 아군 한 명에게 링크를 걸어 둘 중 한 명에게라도 힐이 들어오면 W스킬 레벨에 따라 일정 수치만큼 링크가 걸린 자와 힐라에게 동시에 힐이 들어가는 스킬.
아군이 없는 1대1이기에 찍지 않고 있다.
결국 E스킬인 사일런트 힐로 자힐하며 데비의 창을 버티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이번 스킬 포인트도 E스킬에 투자할 수밖에.
-E스킬 레벨 2
이렇게 질질 끌리다 보면 cs를 먹어 골드를 많이 획득한 데비가 요람으로 가 상점에서 아이템을 사고 돌아와 압도적 강함으로 내 심장을 꿰뚫겠지.
'뭐 별거 있나. 그럼, 담판 하면 되지. 담판엔 무슨 캐릭터를 해볼까? 정말로 내가 갔던 이세계가 맞다면. 브레탈이 맞다면··· 오드리도 있으려나?'
이미 머리는 다음 판에 가 있고 그저 화면만 멀뚱히 보고 있는 상태.
그렇게 찌르는 창에 맞고.
-촥!
평타로 처맞고
-팍!
그냥 두들겨 맞고
-팍팍팍!
'······ ···... 이기고 싶다.'
어느 순간 이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 판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왜냐면 ··· 힐라가 맞는 걸 지켜만 보고 있으니까.
챔피언이, 힐라가 내 플레이 때문에 맞고 있는 걸 보고 있는 것이 괴로워졌다.
그래서 이기고 싶다. 장준이 아니라 데비에게 이기고 싶다.
'단 한 번이라도 좋다. 어떻게 잡을 거냐. 구교환. 어떻게 잡을 거야 힐라!'
생각해 보자.
현재 힐라는 5렙 데비는 7렙.
데비가 궁을 찍는 순간부터 경험치도 조금 포기하고 타워 옆에만 있었으니, 이마저도 더 벌어질 것이다.
아마 내가 6렙을 찍는 순간 데비의 렙은 적어도 8 혹은 9.
내가 가진 건 힐이 전부다. 딜링기라곤 Q하나 뿐인 힐라인데 그마저도 내 나약한 마음가짐 때문에 스킬 렙이 1렙이고, 나머지 4개의 스킬 포인트는 전부 E스킬인 힐에 투자했다.
어찌 됐든 드러눕기엔 성공했다지만, 저 데비가 요람으로 귀환한 뒤 템이라도 사 오는 날엔 들어오는 데미지를 힐로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이길 것이냐.
'무리하게 만든다.'
내가 계속 드러눕기만 하니 데비는 재미없을 것이다. 어차피 천천히 돈을 모아 귀환한 뒤 죽여도 되고, 사실 이대로 cs만 챙겨도 이긴다.
다만 cs보단 시원하게 '심관창'으로 죽이는 것이 이 지루한 게임을 빨리 끝낼 방안이다. 실제 데비였어도 그랬을 성격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기회라는 미끼를 주면 된다.
-레벨업
이번 레벨업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힐라는 6 데비는 8.
데비는 이제 슬슬 집에 갈 채비 중이다. 왜 데비가 6렙에 승부를 보지 않고 8렙까지 기다렸는가.
아까 언급했듯 데비의 '심관창'은 일정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게임 내 조건은 실제와는 좀 다르지만, 체력을 15% 이하로 깍는 것이 1렙 기중 '심관창'을 즉사로 쓸 수 있는 조건이다.
타워 옆에서 계속 힐만 하는 내 체력을 15% 이하로 내리긴 근접 챔피언인 데비에겐 쉽지 않기에 유일한 원거리 스킬인 Q스킬의 스킬 레벨을 5레벨로 마스터하기 위해 8렙까지 기다린 것.
장준은 왜 굳이 '심관창'에 집착하는 것인가. '심관창'으로 날 죽여 더욱 큰 좌절과 치욕을 맞보게 해주고 싶으니까.
'진짜 데비였어도 그랬을 거야. 오히려 몰입되잖아?! 해보자고.'
자기 타워 근처로 피신한 뒤 요람으로 귀환하려는 데비에게 가까이 붙어 '신성모독'을 쓴 뒤 다시 도망쳤다.
-삥!
"?"
귀환 모션이 풀리자, 장준은 놀란 표정으로 날 힐끗 보더니 이내 뒤쫓기 시작했다.
게임 내내 타워를 끌어안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자기 미니온을 넘어 라인 중앙까지 넘어와 귀환을 방해하는 걸 눈 뜨고 볼 데비가 아니다.
'그래, 그래. 도발에 응해줘야 데비답지!'
데비는 곧장 힐라의 뒤를 쫓았고, 기본 이동속도 차이와 돌진 스킬인 E스킬 덕에 그녀의 뒤를 따라잡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데비의 사정거리에 힐라가 들어오자마자 데비는 앞으로 4번의 평타에 공속과 고정 데미지를 추가시켜 주는 W스킬을 쓴 뒤. 평타, 평타, 짧은 Q, 평타, 평타라는 데비의 공식과도 같은 콤보를 빠르게 넣었다.
-취잉! 팍팍! 촥! 팍팍!
한 콤보에 체력은 순식간에 반피.
데비의 콤보 도중 자힐을 못 했다면 아마 그대로 '심관창'을 맞고 게임이 끝났을 피다.
그걸 데비도 아는지 기본 이동 속도 차이를 이용해 계속해서 꼬리에 붙어 평타를 차근차근 넣고 있지만, 이미 한 싸이클의 스킬을 써버린 상태.
그 말인즉 힐라도 힐이 쿨타임이라는 것이고, 킬각이라는 것.
타워가 힐라의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할 때조차 데비는 미니온에게 맞으면서도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이번에 끝낼 생각이네.'
힐라의 피 냄새에 눈이 돌아버린 데비와 마찬가지로 힐라의 힐과 데비의 Q의 쿨타임도 곧 도는 상황 속.
"하!"
장준은 자신의 승리를 예감하듯 무심코 짧게 웃었고 데비는 타워의 사정거리로 들어오면서까지 날 때렸다.
타워의 사정거리로 데비가 들어서자, 타워는 데비를 노려보며 마법 포탄을 장전했다.
맞으면 맞을수록 강해지는 타워의 마법 포탄이지만 데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힐라에게 다가간다.
타워 다이브.
타워데미지를 맞으면서 적을 잡는 행위는 렙이 낮을수록 템이 적을수록 어렵고 고난이도.
요람에 함 번도 가지 않아 가진 템이라고는 기본템에 이제 갓 8렙을 찍은 상태로도 자신있게 들어오는 이유.
장준은 게임 내에 존재하는 랭크 시스템 속 약 상위 4%에 해당하는 다이아 4라는 것. 심지어 그는 다이아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아주 가~끔 있을 정도로 데비만 한 데비 장인이라는 것.
그는 정확한 계산이 아닌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한 감으로 타워 다이브를 실행했지만, 그의 감은 실로 정확했다.
살아돌아올 생각없이 먼저 죽이면 그만인 1대1이기에 가능한 다이브라는 것을.
앞으로 타워를 세 대 맞으면 죽지만, 힐라에게 평타 두 대와 Q스킬 한 번만 맞춘다면 자힐을 쓴다고 해도 그녀의 피는 정확히 14%. '심관창'을 즉사기로 쓸 수 있는 피.
-퉁!
타워 한 대와 맞바꾼 평타 한 대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잃은 체력 비례 대미지라는 옵션이 붙은 Q스킬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바칠 평타니.
그의 창은 힐라의 옆구리를 찔러 첫 번째 과제인 두 번의 평타를 완성함과 동시에
-퉁!
타워를 두 대 맞았다.
-궁극기 영원한 신성
피 흘리는 그녀의 마지막 발악일까? 힐라는 궁극기를 사용했다.
힐라의 근처에 하얀 신성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 불에 닿은 모든 아군 생명체는 받는 치유효과가 50% 증가했고, 그에 반해 파렴치한 적들이 받는 치유효과가 50% 감소했다.
데비는 온몸을 감싼 하얀 신성 불보다 뜨거운 눈빛으로 힐라에게 다가갔다.
아, 힐라여. 그렇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넌 하프 엘프이자 성녀. 네 모든 것은 네가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 기술 또한 네가 아닌 아군을 위한 것. 너에겐 그 어떤 효과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느냐.
이제 그만 너를 내려놓···
"무슨 헛소리를!"
장준이 키보드 Q를 누르며 마우스 커서를 힐라에게 고정하기 위해 애쓸 때.
구교환은 키보드 E를 누르며 마우스 커서를 데비에게 고정했다.
"사일런트 힐!"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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