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가 짜장면 배달을 잘함

29화
적토마와 철가방이라.
이건 좀 보고 싶은데?
여포가 적장의 머리 이외의 무언가를 배달한다니.
삼국지 팬으로서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이었다.
‘아니, 아니지. 무슨 소리야.’
이유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적토마고 짜장이고 다 필요없이, 상대는 여포란 말이다.
이유제는 짜장면에 몰래 황제의 밀서를 넣을 생각이다.
어젯밤 황제와 미리 이야기해놓은 내용이다.
그런데 여포가 짜장 배달을 가다가 밀서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 때는 진짜로 여포의 철가방에 이유제의 목이 담겨 배달되는 것이다.
‘여포와 적토마 조합이면 내가 지금부터 도망쳐도 잡히고 만다.’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동탁은 껄껄 웃으며 여포의 제안을 승낙했다.
“여포, 네가 이 아비를 위해 애써주는구나. 갔다 오너라.”
***
이유제는 부엌으로 돌아가 짜장을 볶았다.
몇 십인분의 짜장이 배달을 가야 하니 손이 바빠졌다.
고소한 짜장 냄새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짜장 냄새보다 사람 고개를 돌아가게 하는 향이 있을까?
궁인들이 부엌을 기웃거리며 구경했다.
하지만 이유제는 그런 데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이미 밀서는 쓰여졌다.
황제가 어제 친필로 모두 적어냈다.
그 밀서들은 부엌 깊숙한 곳, 이유제만 만질 수 있는 향신료 항아리에 들어있었다.
황제의 방은 궁인들이 수시로 드나드니 오히려 들킬 위험이 높은데,
부엌이라면 온갖 항아리가 가득하니 숨길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여포도 배달 가면서 남의 음식을 건드리는 극악무도한 짓은 하지 않을테지.’
하지만 여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밀서를 숨기고 태연한 척 하기에는 여포라는 존재가 너무도 거대했다.
그때.
“음식은 언제 나오나?”
“뭘... 으악!”
누군가의 목소리에 뒤돌아본 이유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 뼘 앞에 여포의 얼굴이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굵직한 이목구비.
잘생긴 얼굴이지만 지금 이유제의 눈엔 저승사자로 보일 뿐이었다.
“여장군께서 부엌에는 웬일이십니까?”
“적토마를 달리고 싶어 못 견디겠다. 짜장면 만드는 것이 왜 이리 더디냐?”
“아, 금방 해드리겠습니다.”
“비켜 봐라. 칼 쓰는 걸 보니 답답해서 못 견디겠군.”
여포가 덩치를 비집고 들어왔다.
이유제는 은근히 빈정이 상했다. 칼솜씨는 꽤 자신있었다.
‘지가 방천화극이나 휘둘러봤지 무슨 부엌칼을 쓴다고.’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아무 생각도 할수 없었다.
여포가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잘 손질된 칼날이 예리하게 허공을 갈랐다.
마치 칼날에 달라붙듯이 썰리는 재료들.
여포는 재료들이 어느 궤적으로 들어올지 전부 알고 있다는 듯이 방천화극을 휘둘러댔다.
‘아름답다.’
여포의 칼끝에서 산산히 흩어지는 야채만 아니었다면,
검무를 추는 것처럼 보였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자, 다 됐다.”
차라락-
여포가 손 위에 접시 하나를 올리자 재료들이 자석에 달라붙듯이 안착했다.
“우, 우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썰린 재료들 중 어느것도 모나거나, 비뚠 것이 없었다.
정말 귀신같은 칼솜씨였다.
“그런데 이건 뭐냐?”
“으... 으악!”
여포의 물음에 이유제는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여포는 어느새 손에 황제의 밀서를 들고 서 있었다.
이유제 자신만 만질 수 있는 항아리에 숨겼으니 문제 없다 생각했는데,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아무리 이유제의 포지션이 높다 한들
동탁의 오른팔인 여포만 할까?
부엌에서, 아니. 황실 전체에서 여포가 못 만지는 물건은 없었다.
황제의 밀서도 포함해서.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짜장면을 만드는가 궁금해서 향신료 통을 열어보았는데.
이런 게 있더구나?“
쿵쾅. 쿵쾅.
이유제의 심장이 요동쳤다.
“네가 직접 썼느냐?”
“그, 그건...!”
대답을 할 필요도 없어보였다.
여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것으로 보아, 이미 다 아는것같았으니.
“잘 썼다.”
“으악, 살려주... 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잘 썼다지 않느냐!”
여포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아, 저. 감사합니다.”
“글씨 잘 써서 좋겠다. 무슨 내용이냐?”
여포가 밀서를 거꾸로 들고 말했다.
‘아, 얘 설마... 한자 못읽나?’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여포는 천하무적이다. 단, 무력에 한해서만.
모든 스탯을 무력에 몰빵한 남자이지만 지략은... 음. 미지수다.
“이건 짜장면을 맛있게 드시란 내용입니다.
제 고향에서는 숙수들이 손님에게 이렇게 손글씨를 써 전하기도 하거든요.”
아무렇게나 둘러대었다.
“음. 낭만적이군.”
납득한다?!
이유제는 조마조마하게 간을 졸이며 짜장면을 다 완성했다.
여포가 장난을 치는 건가, 하고 눈치를 슥 살폈으나 그런 것같진 않았다.
밀서를 거꾸로 들고 읽는 표정이 진지하다 못해 심각했다.
여포는 적토마를 타고 짜장 배달을 나섰다.
“여기 짜장이오.”
황제의 밀서를 한 개씩 전달하는것도 잊지 않았다.
***
이후 여포는 종종 부엌에 놀러왔다.
“적토마 진짜 빠르다. 또 배달할 음식이 없는가?”
“그럼 상국께 음식을 전해주시지요.”
이유제는 종종 여포에게 동탁의 음식 배달을 맡겼는데,
자신은 동탁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동탁은 따뜻한 상태의 음식을 바로 받아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그런데 이건 대체 어떻게 쓰는거냐?”
“으... 으악!”
이유제는 또 놀라고 말았다.
여포의 손에 황제의 밀서가 들려있었던 것.
“그건 왜 아직도 가지고 계십니까?”
“글자가 하도 예쁘기에 그날 따라 써보았다. 어떠냐?”
“훌륭...하십니다.”
“그래? 아버님께 자랑해야지.”
“잠깐!!”
이유제가 급히 잡아세웠다.
“좀더 연습해서 보여드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그렇지. 아버님께선 훌륭한 신하들의 글씨를 늘상 읽으시니.”
여포가 풀이 죽었다.
나는 어린아이 달래듯 그를 살살 구슬렸다.
“그래도 잘 썼습니다. 이건 기념으로 저 주시면 어떻습니까?”
“좋다!”
다행히 여포는 단순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여 장군께 글을 가르쳐드리지요.”
“글이라?”
“예. 아주 쉬운 글부터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좋다!”
여포는 그날 이후 이유제와 글공부를 했다.
이유제는 부지깽이를 들고 아궁이 앞에 앉아 글자를 하나씩 써주었다.
“자, 기역.”
“기역.”
“니은.”
“니... 근데 이건 한자가 아니지 않은가.”
이런, 눈치챘나?
이유제는 한자를 잘 알았다. 태평요술서를 통해 한자를 다 떼었다.
그런데 여포에게 한자를 가르쳤다가 정말로 밀서의 뜻을 다 알아버리면 어쩌나?
“그래도 이 글자 꽤 좋다. 한자는 어렵다.”
“그... 그렇죠?”
나는 한자 옆에 한글로 독음을 써주겠다면서 여포를 구슬렸다.
여포는 순진한 면이 있는 사내였다.
글을 가르칠 때 그는 한 마리 순한 양이 되었다.
여포는 제 이름 쓰는 것부터 연습하더니,
곧 메뉴 이름도 쓸줄 알게 되었다.
“짜...장. 짬...뽕. 탕수육...”
그리고 한글에 자신이 붙은 여포는 드디어 자신있게 동탁에게 제 글씨를 선보였다.
“오오, 여포야. 네가 글을 다 쓰는구나!”
“예, 아버님.”
“이 글자는 처음보는 것인데. 무엇이냐?”
동탁도 처음 본다는 말에 여포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한글로 쓰여진 글자니, 아무리 동탁이라도 알아볼 리가 없다.
“오늘의 음식 이름을 글자로 적은 것입니다. 맞혀 보소서.”
“흐음...”
동탁이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을 보며 갸웃했다.
노리끼리하고 울퉁불퉁한, 그다지 예쁘지는 않은 음식.
“기름솥에 튀긴 건 알겠는데...”
흠흠.
냄새를 맡자 고소한 기름내가 타고 올라왔다.
“이 냄새는... 분명 아는 냄새인데!”
동탁이 괴로운 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치킨이라 하옵니다!”
여포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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