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가 치킨 배달도 잘함

30화
치킨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겠지.
하지만 다른 음식보다야 호불호가 훨씬 덜 갈릴 것이다.
기름과 고기와 밀가루가 한데 뭉쳤는데 맛이 없기가 더 힘들다.
‘그러니 동탁 밥으로 딱이지.’
이유제가 생각했다.
동탁은 변덕스러운 자다.
음식을 맛있게 먹다가도, 언제 돌변해서 숙수의 목을 베라 난리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치킨처럼 안전빵을 하나씩 넣어주는 게 좋았다.
동탁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오, 이거 맛있구만!”
닭튀김과 무의 조합은 또 찾을래야 찾기 어렵다.
베어물 때마다 쭉쭉 빠지는 기름기를 새콤한 무가 잡아준다.
“이 음식을 아랫것들에게 나눠주어라!”
동탁이 하명했다.
요즘 적토마를 달리며 배달을 가는 것이 낙인 여포는 크게 기뻐했다.
“이럇-”
여포가 치킨을 들고 적토마를 달렸다.
‘말 중에 적토마요, 사람 중에 여포라.’
여포의 말 달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그 말이 실감났다.
마당을 박차고 나간 적토마가 어느새 작은 점으로 보였다.
자칫 고삐를 잘못 쥐었다간 나가떨어질 법도 한데, 여포는 적토마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말을 몰았다.
여포는 치킨을 집집마다 돌리며, 기념으로 자신이 직접 적은 글씨도 전해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하고 사람들이 물어오면
“멍청한 놈, 글자도 못 읽느냐! 치킨이다 치킨.”
여포는 핀잔을 주곤 했다.
내로라 하는 문신들도 못 읽는 한글을 자신이 읽을 수 있다는 게 여포에겐 엄청난 자부심이었다.
이유제는 열심히 치킨을 튀겼다.
기름이 절절 끓으며 닭을 헹가레 쳤다.
기름의 품에 안겨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어느새 닭은 노르스름한 치킨으로 변해있다.
치킨을 잘 건져내 상자에 담으면 어느새 여포가 문가로 돌아와 배달거리를 찾는다.
“줘라. 금방 갔다 오마.”
치킨을 건네받은 여포가 나가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저기, 그런데...”
“예?”
“이 음식 이름이 뭐라 했지?”
그새 까먹었나?
“치킨이요 치킨.
기억이 안 나시면 여 장군이 쓰신 글자를 들여다보면 됩니다.”
여포는 아무 대꾸도 않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글 잊어버린거야?’
이유제가 깜짝 놀랐다.
“안 되겠다. 같이 가자.”
“예?”
“같이 가자고. 음식은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엇, 하지만...”
“이럇!”
투두두두-
정신을 차려보니 이유제는 적토마의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아니, 매달려있었다.
“억, 여 장군. 잠시만...”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속도감은 느껴본 일이 없다.
비행기는 편안하기라도 하지, 이건 승차감이 미쳤다.
아니, 여포가 미쳤다.
아무리 한밤중이라 사람이 없다 해도 민가의 골목길을 이렇게 누비고 다니다니.
여포가 거의 오토바이 속도랑 맞먹게 배달하고 다닐 때 알아봤어야 했다.
“자, 다 왔다.”
“우읍.”
다행히 토 하기 직전에 도착했다.
“안심해라. 마지막 목적지니까.”
여포가 하인을 부르자 곧 사람이 나왔다.
“이걸 너희 주인에게 전해라.”
물건을 전달하자마자 여포가 뒤돌아 나가려는데...
“여 장군 아니십니까!”
집 주인이 불러세웠다.
“이렇게 찾아주셨는데, 한 잔 하지 않으시고요.”
“으음.”
여포가 망설였다. 하긴, 마지막 배달지니만큼 적토마를 더 달릴 구실도 없다.
‘그리고 닭고기 맛이 궁금하기도 하군.’
여포의 관심은 온통 적토마에 쏠려있긴 했으나, 치킨을 주렁주렁 매달고 몇 시간을 달리는데 입맛이 안 당길 리가 없다.
“우욱, 좀 쉬었다 가시죠 장군.”
거기다 이유제가 토할 것같은 얼굴을 하자 여포도 승낙했다.
집은 굉장히 호화로웠다. 높으신 나으리의 집인 것같았다.
올망졸망 모양낸 석등이 정원을 환히 비췄다.
마치 낮은 해가 여러 개 뜬 것처럼 밝았다.
‘여기서 물만 마셔도 맛있겠다.’
그런데 하물며 치킨이라니.
하인들의 안내에 따라 정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인나리께서 곧 오실테니 먼저 드시랍니다.”
‘아, 뭐야? 치킨 식는데.’
이유제는 치킨이 눅눅해지지 않게 상자를 열어젖히고,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이봐, 음식 이름 뭐랬지?”
여포 역시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여포는 음식 이름을 잊어버려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열심히 치킨 두 글자를 되뇌었다.
그때였다.
솨아아-
갑자기 저 멀리 버드나무가 요사스럽게 흔들렸다.
가련히 손짓하는 버드나무가 일렁일렁 그림자를 만들었다.
마치 물 속에 잠긴 듯 신비로운 그림자를 보며 여포와 나는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그런데 가만 보니, 사람이 일부러 버드나무를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누구냐!”
여포가 방천화극을 치켜세웠다.
“사람이냐, 귀신이냐!”
버드나무 아래의 사람은 여인이었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가느다란 목과 고운 몸선을 보니 틀림없이 미인일 것 같다는 기대감이 일었다.
화악-
여인이 버들잎을 꺾더니 손에 쥐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버드나무가 꽃으로 피어나듯 아름다운 춤사위였다.
손가락 끝부터 발끝까지 가녀리게 흔들리다가도
사내의 눈을 확 잡아채는 담대함이 있었다.
“사, 사람이냐 귀신이냐...”
성을 잘 내는 여포조차 멍하니 춤을 구경할 뿐이었다.
한발, 한발 여인이 다가왔다.
여포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만약 저 손에 버드나무 가지가 아니라 칼이라도 들려놓았다면
여포라도 꼼짝없이 당하겠다.’
이유제가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쑥-
여인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드는 것이 아닌가.
이유제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했다.
그러나 뭔가 반응을 취하기도 전에...
화악-
꽃잎이 휘날렸다.
여인이 공중에 흩뿌린 것은 꽃잎이었다.
그 아래, 마침내 복면을 벗고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흩날리는 꽃잎이 여인의 얼굴을 가리는 것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초선이라 하옵니다.”
여인이 말했다.
***
곧 집주인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사도 왕윤.’
초선의 아버지, 왕윤이었다.
“허허, 여 장군. 초선의 춤이 어떠셨소?”
왕윤이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어...”
여포는 바보가 되었다.
이 아저씨, 일부러 우리만 남겨놓고 초선을 내보인 게 분명하다.
여포를 홀리려는 것이다.
그런데 부작용인지 여포가 고장났다.
이유제가 대신 나서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 장군께선 초선의 춤이 아주 훌륭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요, 장군?”
“어...”
그래, 누가 미래의 장인을 앞에 두고 침착할 수 있겠냐마는 이건 좀 아니지 않니?
이유제는 이 어색한 자리가 더 어색해지지 않도록 애쓰며 열심히 중간다리를 놓았다.
‘여포와 초선은 꼭 맺어져야 한다.’
동탁을 처치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니까.
사도 왕윤은 망해가는 한나라를 더 두고볼 수 없어 계책을 생각해내었다.
아름다운 무희 초선을 동탁에게 선물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시키는 것.
‘결국에는 성공했고, 덕분에 동탁이 죽었지.’
그러니 반드시 여포와 초선이 잘 돼야 한단 말이다.
그런데 여포 이놈을 보니 뇌가 녹아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늙은이는 실례를 무릅쓰고 이만 가야겠습니다.
초선을 불러드릴테니 편히 놀다 가십시오.”
사도 왕윤이 떠났다.
아씨, 나도 빠질 타이밍인 것 같은데.
사라질 때 사라지더라도 여포 혼자 두고 내빼기에는 영 불안했다.
“여 장군, 초선이랑 둘이 할 말이 없으면 음식 얘기라도 하십시오, 예?”
스몰톡 주제를 던져주었다.
“치. 킨! 잊어버리면 안 돼요. 치. 킨!”
“어...”
틀렸다, 가망이 없다 싶은 그때.
“장군께 인사 드리옵니다.”
망했다. 초선이 벌써 와버렸다.
‘둘이 어떻게 분위기를 잘 엮어주고 나가야하나?’
이유제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와락-
초선이 갑자기 이유제의 품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저를 받아주시어요, 여 장군!”
초선이 큰 눈망울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뭐, 뭐라고? 지금 나한테하는 말인가?
“어...”
이유제는 뇌정지가 왔다.
뒤에서 여포가 눈을 번뜩이는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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