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리세마라
스킬을 부여받았음에도 얼떨떨한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때 다시 한번 하늘에서 예의 NPC 음성이 울렸다.
-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으로부터 이 게임의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플레이 방법 또한 적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그럼 모두에게 WTA 승리가 기원하길.
그것이 그 음성의 마지막이었다.
“이봐요!”
그때 어디선가 하늘을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이! 씨X! 야!”
욕설도 들렸다.
하지만 하늘에 아무리 욕을 해봐야 들리는 답변은 없었다.
난 그것이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몇은 쭈그려 앉아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렸고, 몇몇은 울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모인 곳은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이상한 것은 이곳만큼은 그 몬스터와 같은 것들이 들어온 흔적이 보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혼란함과 현기증이 동시에 밀려왔다.
좀 앉아서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커다란 화강암으로 멋을 낸 화단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자 긴장이 풀렸는지,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
핸드폰을 켜봤다.
평상시와 같은 기능을 여전히 제공하고 있었다.
카톡은 난리가 났고, 부재중 전화도 몇 개 찍혀 있었다.
아! 엄마! 아빠!
놀란 마음을 진정하기도 전에 부모님 걱정이 먼저 된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찰칵.
“엄마?”
“아들! 괜찮니?”
걱정을 많이 하신 듯 떨리는 음성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엄마는? 아빠도 괜찮고?”
“다행히 다른 사람들이랑 피신하긴 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엄마. 어디 나가지 마시고 거기 계세요.”
“응? 그래. 여기로 오려고? 올 수 있겠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우선 뉴스 좀 보시고 안전한 곳에 계세요. 갈 수 있을 때 바로 갈게요.”
“그래. 알았다. 조심하고.”
“네.”
그렇게 부모님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현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나보다 먼저 빠르게 현 상황을 이해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의 스킬이 무엇인지, 이 상황이 무엇인지, 그리고 핸드폰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정부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등등 발 빠르게 파악하려 했다.
나 또한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변한 것은 있었다.
처음 보는 어플이 깔려 있었다.
이름은 WTA.
앞서 NPC가 설명한 게임의 이름과 같았다.
이 이름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사실 이 이름이 무엇인지 그때 알았다면······.
아무튼 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되도록 침착하게 마주하려 했다.
WTA는 수집형 RPG고 게임 플레이를 해서 얻는 재화로 뽑기를 할 수 있었다.
뽑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캐릭터였다.
캐릭터는 등급이 나누어져 있었고, 그 캐릭터가 전투를 돕는다고 적혀 있었다.
이건······ 그냥 게임이잖아?
여타 다를 것 없는 수집형 RPG와 다름없었다.
등급도 SSR, SR, R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그동안 해왔던 게임과 같았다.
그때 각자의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이 알람은 자신만 들렸고, 진동과 무음에 상관없이 무조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 WTA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으로 일반 뽑기권 10장을 드립니다.
아!
핸드폰을 보자, 뽑기 아이콘이 생성되었고, 우편을 통해 우리는 재화를 받을 수 있었다.
뽑기를 누르려던 손이 주춤했다.
순간 내 스킬을 떠올린 것이다.
스킬 발동조건이······?
부랴부랴 어플을 뒤적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내 스킬의 발동조건에 관한 건 적혀 있지 않았다.
하물며 도감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개인이 갖는 스킬은 비공개가 원칙인 것 같았다.
젠장.
그렇다면 지금 이 재화를 사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킵(Keep, 재화를 소모하지 않고 아껴둔다는 뜻)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
그때 몇몇 사람들에게서 보라색 빛이 반짝였다.
그렇게 반짝이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사람들이 쳐다본 것은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 못하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사람이긴 했다.
정확히 말하면 ‘유저’가 아니었다.
그것은 갑자기 나타났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생겼다.
고풍스러운 청색 장포로 온몸을 덮고, 푸른 사파이어가 빛나는 하얀 지팡이를 쥔 장발의 사내라는 것을 빼면 말이다.
“왕실 수석 마법사. 푸른 불꽃의 스플린. 주인님의 명을 받고 도착했습니다.”
나타난 ‘그것’은 마치 영화 속 대사처럼 오글거리는 대화를 하며 자신을 소환한 자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
하지만 그 주인이란 자는 아직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얼떨떨한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얼어 있었다.
“부디 저에게 일어나는 것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아, 네. 이, 일어나셔도 되, 됩니다······.”
그제야 불편하게 대답한 그에게 스플린이라는 캐릭터가 웃으면서 말했다.
“부디 편하게 말씀해주시길. 주인님을 따라 이 세계를 삼키려는 것들을 단숨에 불태울 것이니.”
게임에서나 봤던 대사를 직접 들으니 이렇게 오글거릴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쳇.”
그때 한쪽에서 혀를 차는 목소리가 들렸다.
파란색 빛이 발하며 또 다른 캐릭터가 핸드폰 화면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게임에 익숙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현실인지 꿈인지 파악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자일 것이다.
이해도.
게임을 하게 되면 따라오는 단어다.
얼마나 이 게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냐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인데, 그것은 캐릭터의 능력, 스킬, 설정 및 시스템의 전반적인 설계까지 아우르는 말이었다.
보통 ‘넌 게임 이해도가 낮다.’라는 식으로 많이 쓰였다.
노란빛은 SSR, 보라색 빛은 SR, 파란빛은 R 등급이었다.
나도 어디 가서 게임 짬밥으로는 밀리지 않을 경력이었다.
불현듯 모든 게임을 시작할 때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를 떠올렸다.
보통······ 오픈 축하 보상이 주어지고······ 사전 예약 보상이, 아! 이건 없겠네. 쿠폰, 쿠폰이 있었지. 아! 이것도 없으려나?
그다음은 주어진 퀘스트 또는 스테이지를 진행해서 재화를 모으는 것이었다.
아! 이벤트도 있었다.
모든 게임은 오픈과 동시에 이벤트를 진행했다.
무언가 즐길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 오픈 기념 첫 번째 PICK UP 안내입니다.
PICK UP이란 영문 그대로 ‘픽업’이라고 읽는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을 때, 이벤트 배너를 만들고 그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에 비해 더 높은 확률로 나오게 설정한 것을 의미했다.
즉,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할 때 일정한 기간을 정해서 그 캐릭터를 뽑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 기간이 다하면 그 캐릭터는 다음에 다시 픽업하기 전까지 뽑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었고, 일부 특정 게임에서는 특별 뽑기와 일반 뽑기를 나누고, 특별 뽑기의 픽업 기간이 끝나면 일반 뽑기에서 뽑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다.
아! 새로운 픽업이라는 안내를 듣자마자 떠오른 것은 바로 ‘천장’이었다.
천장이란 뽑기의 상한선을 가리키는 용어다.
쉽게 말해서 뽑기를 한다고 좋은 캐릭터가 내가 원하는 캐릭터가 100% 무조건 나오지 않았다.
저마다 확률이 존재했고, 그 확률을 기대하며 나오길 빌었는데, 확률이라는 것이 의례 그렇듯 운이 없는 사람에겐 많은 돈을 써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상한을 만든 것이다.
보통 100번 또는 200번 뽑으면 100% 획득으로 설정해두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나 NPC의 음성이 들려왔다.
- 신규 픽업 ‘반짝이는 별빛, 오로라’는 빛 속성으로 여러분이 죽더라도 부활시켜주는 캐릭터입니다. 그 외 전투의 후방에서 치료를 맡은 서포터로써 여러분을 도울 테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기캐잖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무섭고 떨렸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마치 VR 게임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릴수록 적응이 빠른 것 같았다.
물론, 겁을 집어먹고 아무것도 안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저렇게 친구들과 모여 있으니, 떨렸던 마음도 점점 사그라들고, 게임이라니까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아직까지도 현실이 아니라고 믿고 있을 수도 있었다.
저 학생이 말한 ‘사기캐’라는 것은 사기 + 캐릭터의 준말로 성능이 아주 좋은 캐릭터를 뜻하는 단어였다.
아! 사기캐 하니까 떠올랐다.
보통 이런 게임은 처음 공짜로 주는 재화로 좋은 캐릭터를 뽑고 시작하기 위해 번거로운 수고를 덜기도 했다.
그것을 우리는 ‘리세마라’라고 불렀는데, 이는 수집형 게임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까닭에 일본어에서 파생된 단어이기도 했다.
리셋(Reset) + 마라톤(Maraton)의 합성어로 줄여서 ‘리세마라’라고 불렸으며 국내에서는 그것도 길어서 일명 ‘리세’라고 불렸다.
마라톤이란 단어가 붙은 이유는 좋은 캐릭터가 단숨에 나오지 않고 마라톤처럼 장시간 해야 했기에 붙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리세마라가 떠올랐지만, 이 게임이 현실에서 일어난 ‘진짜’라면 리세마라가 가능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수집형 RPG를 해본 유저라면 이해할 것이다.
이 리세마라를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처음부터 좋은 캐릭터를 들고 시작하면 게임 플레이가 수월한 것도 있었지만, 그 캐릭터를 얻기 위해 사용해야 할 재화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즉, 시간을 들여 리세를 하고 돈을 덜 쓰는 것이었다.
물론, 돈이 많은 유저는 굳이 리세를 하지 않았다.
나올 때까지 돈을 썼으니까.
아무튼 리세를 떠올렸지만, 이게 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다시 핸드폰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없던 배너가 생겼는데, 바로 오로라의 신규 픽업 배너였다.
그리고 다시 NPC의 음성이 들렸다.
- 신규 픽업 ‘반짝이는 별빛, 오로라’ 기념으로 특별 뽑기권 10장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슬슬 암울해져 있던 사람 중 게임에 익숙한 몇몇 사람들은 현재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뽑기권을 사용했다.
이게 진짜 게임이라면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에 따라 등급에 따른 확률을 고시해야 했다.
무슨 말이냐면 도박처럼 그 확률을 비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어디까지나 오락이고 놀이이기 때문에 유저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게임사에서 직접 확률을 공개하는 것이다.
사실은 각 개발사에게 자율 규제로 맡겼었지만,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결국 법으로 제정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WTA가 게임을 표방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현실이었다.
즉, 우리가 아는 게임의 개발사가 있을 리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누군지 지금 알 수도 없었다.
그러니 저들은 아마도 국내법을 지키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SSR이나 SR에 대한 확률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개X렬이네.”
SR조차 뽑지 못한 학생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캐릭터가 중요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편함에서 특별 뽑기권 10장을 받아 오로라 픽업 배너를 눌렀다.
꿀꺽.
마른침이 삼켜지며 내 손가락은 천천히 뽑기 버튼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내 머릿속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울렸다.
처음 안내를 맡은 NPC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 개인 고유 스킬 발동. 미래시.
- 현재 ‘반짝이는 별빛, 오로라’의 뽑기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 현재 가장 추천하는 캐릭터는 SSR ‘번개 속 고요한 암살자, 소르카’입니다.
아!
아무래도 내게 주어진 미래시 스킬은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려고 할 때 자연적으로 발동되는 강제 발동형인 듯싶었다.
하지만 내가 놀란 것은 스킬이 발동돼서가 아니었다.
그다음 이어지는 내 스킬의 능력에 대해서 놀라고 만 것이었다.
- 미래시 스킬로 인해 ‘리세마라’가 가능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 작가의말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