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미지의 성(2)

식당 주인의 입에서 동생의 이름이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리고 내심 나오지 않기를 바랐던 준성은 손을 바르르 떨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긴 했지만, 아니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일말의 희망을 품긴 했지만, 정말 먼지 한 톨 정도의 희망이었었는데.
준성은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부여잡으며 물었다.
“정말.... 정말 최준수가 맞나요? 잘못 기억하고 계신 거 아니죠?”
“네, 맞아요. 독특한 이름이라 기억하고 있었어요. 이 지역에서는 쓰지 않는 이름이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 답지 않게 가족을 생각하는 게 기특해서 그런가 인상에 깊은 청년이었어요.”
“가족.....”
“돌아가신 부모님 얘기도 했고.... 아! 형, 형을 걱정하더라고요. 홀로 두고 여행을 왔다는데.....”
말을 하다가 멈춘 주인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준성과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숨을 ‘헙’하고 들이켠 뒤 손으로 입을 가렸다.
“네, 제가 사장님께서 기억하시는 청년의 형인 거 같네요.”
“......하.... 이런 우연이....”
“우연.....”
정말 우연일까.
준성은 의문이 들었다.
플레이어마다 플레이 시작점이 다르다는 건 익히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물론, 장소가 겹치는 확률이 0퍼센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겹칠 확률이 큰 것 또한 아니었다.
이세계는 워낙에 넓었기에 겹치기란 로또 1등에 연속으로 당첨되는 것보다 어렵다고들 하니.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상했다.
같은 날 게임을 시작한 준수의 플레이 시작점이 이곳이라는 점도, 회귀 전에는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민정을 만나게 된 것도.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그럼 대체 누가 이들을 한곳으로 모았단 말인가.
준성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준성아, 뭐해. 얼른 준수 찾으러 가야지.”
식당 주인에게 음식값을 벌써 지불한 민정은 준성을 재촉했다.
그 재촉 덕에 준성은 빠르게 침착을 되찾았고 이내 정신을 붙잡았다.
“그곳에 가기 전에 무기를 사야 하는데 혹시 괜찮은 상점을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한시가 급한 와중이었지만, 준수를 찾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그곳에 어떤 괴물이 있을지 모르니 단단히 준비해야 했다.
그것까지는 생각지 못한 건지 조급함에 발을 동동 구르던 민정은 대단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준성을 바라보았다.
“넌 역시.... 계획이 다 있구....”
“그만해. 장난할 시간 없어. 사장님, 좋은 무기 상점 좀 추천해 주세요. 정말 괜찮은 물건이 있어야 합니다. 동생을 찾아야 해요.”
준성의 간절한 마음을 느낀 건지 식당 주인은 갑자기 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같이 가죠.”
“네? 가게는요?”
“가게는 저 없어도 돌아가겠죠. 주방장만 있으면 되죠, 뭐.”
말릴 틈도 없이 식당 주인은 손을 이끌었고 준성은 못 이기는 척 따라갔다.
그와 함께 도착한 곳은 작은 무기 상점이었다.
“여기보다 더 큰 상점이 있긴 하지만, 이곳보다 더 좋은 무기가 있는 상점은 없죠. 내가 장담합니다.”
짧게 무기 상점을 소개한 식당 주인은 함께 그곳으로 들어가 상점 주인에게 준성과 민정을 소개해 준 후 쿨하게 떠났다.
그 덕에 준성과 민정은 진열되지 않은 귀한 물건을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원래라면 안 보여드리는 거예요. 저놈이 누굴 이렇게 데리고 온 적이 생전 없는데.....”
상점 주인은 닫힌 문을 쳐다보며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고 준성과 민정은 답 없이 물건을 확인했다.
“아, 그렇다고 해서 싼값에 줄 수는 없어요. 이것들 다 제법 값이 나가는 거라. 돈은 있는 거죠?”
의심 섞인 주인의 말에 민정은 배낭을 열어 안을 보여주었다.
“이게 바로 초....”
“초콜릿! 이거 초콜릿이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아본 주인은 다급히 달려와 민정의 앞에 섰다.
“화... 확인해 봐도 되나요? 워낙 가짜가 많아서.”
“그럼요, 이건 진짜입니다. 시식 한번 해 보실래요?”
“.....시식.....”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킨 주인은 민정이 내민 초콜릿 한 조각을 먹더니 이내 황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시다시피 초콜릿 하나당 가격이 좀 나갑니다.”
“아, 그럼요. 그럼요. 잘 알고 말고요. 요즘 이 녀석 구하지 못해서 난리 아닙니까. 당연히 알지요.”
준성은 이 광경이 신기하기만 했다.
초콜릿 하나에 모든 걸 다 내어 줄 듯 굴다니.
회귀 전에 이세계에 들어왔을 때는 어느 곳에서나 초콜릿을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이 정도 초콜릿이면 뭐든 구매하실 수 있겠네요. 맘껏 구경하십시오.”
이전과는 조금 태도가 달라진 주인은 안으로 들어가더니 무기를 더 들고나왔다.
준성은 그가 들고나온 무기들을 하나씩 꼼꼼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급해도 대충 고를 수는 없었다.
준수가 어떤 게 존재할지 모르는 미지의 성으로 들어갔다면, 그 존재로부터 구할 힘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건 어때?”
이미 총을 가지고 있는 민정은 욕심이 나는지 장검을 골라 준성에게 보여주었다.
“너 총은 어쩌고.”
“아, 이건 장거리에서는 유용한데 단거리에서는 영 별로라서.”
“두 개 다 들고 다니려면 힘들지 않겠어?”
“그런가....”
민정은 장검을 사고 싶은 건지 만지작거렸다.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에 준성에게 물어본 듯했다.
준성은 친구의 고민은 뒤로 하고 자신의 무기를 찾기 위해 다시금 살폈다.
'생각보다 좋은 무기가 없는 거 같은데.....'
이전에 사용했던 표창과 단거리에서 유용한 단검을 고르고 싶긴 한데 육안으로 봤을 때는 거기서 거기였기에 준성은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아직 안 골랐냐?”
이럴 거면 왜 물어 본 건지.
민정은 아까 고민했던 장검을 들며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고 준성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다시 무기를 찬찬히 살폈다.
'이럴 때 진짜 게임처럼 정보 창 같은 게 나타나면 좋으련만.'
준성이 생각을 함과 동시에 놀랍게도 그의 눈앞에 정보 창이 나타났다.
[낡은 표창
10년이 넘은 세월 동안 방치한 것으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토끼 한 마리 죽일 수 있으면 다행인 정도]
“이.....이게 대체.....”
“응? 뭐가? 뭔데?”
표창은 든 채로 준성이 놀란 표정을 짓자 민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표창과 친구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뭐, 무슨 문제 있어?”
“아니..... 너..... 이거.....”
준성은 정확히 눈앞의 정보창을 가리켰지만, 민정은 무슨 헛소리냐는 듯 손가락 끝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뭐, 또 놀리는 거냐? 넌 이 와중에도 놀리고 싶냐? 얼른 골라. 준수 찾아야지.”
보이지 않는구나.
준성은 이 놀라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게임이 아니었다.
그런고로 게임처럼 시스템 창이 나타나거나 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작 나타나는 거라고는 워치에서 나오는 홀로그램 정도.
'죽기 전에 봤던 게 진짜였다고?'
놀랄 일이었다.
죽기 전에 본 환각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회귀도 했으니 이런 건 놀랄 일도 아니긴 했지만,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하루 동안 두 번을 겪으니 준성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야, 최준성. 뭐하냐고. 안 갈 거냐? 여기서 살 거야?”
준성은 민정의 잔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찌 됐든 이 시스템 창은 환각 따위가 아니었다.
놀랄 일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계속 정신줄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민정의 말대로 준수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물건도 정보를 볼 수 있는 건가?'
준성은 테이블 위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표창을 들었다.
“오, 손님이 뭘 볼 줄 아시네요. 이게 정말 귀한 물건인데.....”
가게 주인이 무슨 말을 하건 말건 준성은 표창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번엔 시스템 창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까는 잘만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왜 정보 창 같은 게 나오지....'
[검은 표창
등급: B
특별한 기능은 딱히 없지만, 무기로서의 기능은 충분히 하는 표창이다.]
짧고 명료한 정보,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등급이 있다는 점이었다.
또 하나, 이 정보 창으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정보 창’
생각만으로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준성은 알아낸 것을 톡톡히 이용해서 표창 하나와 단검 하나를 골랐다.
등급은 각기 달랐다.
표창은 A, 단검은 A+.
혹시나 해서 다른 무기를 다 살폈지만, A+를 넘어서는 무기는 찾지 못했다.
“아.... 손님, 이건 그렇게 좋은 물건이 아닌데요. 다른 걸 고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 준성아. 내 생각도 그래. 표창은 몰라도 단검은 좀..... 너무 낡은 거 같은데.”
“맞아요, 안 그래도 버려야 하나 고민하던 거였는데.....”
주인은 난감한 듯 말했고 민정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준성은 이 무기의 강점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검을 샀다.
검을 사면서 민정에게 더 좋은 장검을 추천해 줬지만, 고집이 완강해 들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정보창’
[빛나는 표창
등급: A
날이 무뎌지지 않는 표창. 어떤 종류의 동물이든 상관없이 가죽에 상처를 낼 수 있다.]
[용사의 검
등급: A+
원하는 곳을 정확히 노리는 검.]
단검의 날이 좀 무뎌진 것 같긴 했지만, 이건 갈면 그만이었다.
정보 창에 적힌 ‘정확히’의 정확도는 잘 알진 못하나 A+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구입한 거였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네, 조심히 가세요. 동생 꼭 찾길 바랄게요!”
다섯 개의 초콜릿을 소중하게 쥔 사장은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준성은 여전히 이 상황이 낯설었다.
“신기하네, 초콜릿이 돈이 되다니.”
“그렇지? 나도 놀랐다니까? 그 정보를 알고 곧장 초콜릿 사러 나왔었잖아. 근데 이것도 얼마 못 갈 거야. 이미 정보가 퍼지고 있어서 곧 흔해질 거 같아.”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준성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수 찾고 얼른 팔아버리자.”
“그래, 준수부터 찾는 게 먼저지. 성에 들어갔다니.... 겁도 없다, 정말.”
정보도 없이 성에 들어가려고 했었던 민정이 그럴 말을 할 입장은 아니지 않을까.
준성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선 그와 함께 성으로 향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어 보이던 성이 점점 가까워짐이 느껴졌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그 웅장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 저기 뭔가 보이지.....”
민정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을 하던 때, 준성의 워치에서 나오던 푸른색 빛이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어! 화살표!”
그간 계속 나타나지 않았던 화살표는 정확히 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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