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반지(2)

준수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말을 했다.
그 순간, 준성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토록 찾던 동생을 찾았으니 나가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일까.
“준수야....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너 진짜로 죽을 뻔했어. 위험했다고. 이건 목숨이 여러 개 있는 게임과는 달라!”
“알아, 나도 이 게임에 대해서 대충 안다고. 목숨이 한 개라는 거. 죽으면 끝이라는 거.”
고개를 푹 숙인 준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외쳤다.
"나 부자가 되고 싶단 말이야!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잖아!”
현실성이 떨어지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말에 잠시 벙찐 준성은 정신을 차리고 준수의 팔을 잡았다.
“준수야, 우리 부자 안 돼도 돼. 형이 너 대학 보낼 돈도 있고 결혼 자금도 모으고 있어. 부모님 역할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생각보다 우리 가난하지 않아.”
준성의 말에 준수가 훌쩍거리며 말했다.
“그럼 형은?”
준성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어린놈이 뭘 안다고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훌쩍 커 버려 형 생각을 하고.
기특하면서도 애잔했고 또 슬펐다.
“준수야.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너 대학 가면 그때 다시 얘기해 보자. 너 이제 고3이야. 근데 게임은 무슨 게임이야.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형. 돈이 세상의 전부야.”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준수는 진심처럼 보였다.
“하..... 돈이 다는 아니야. 네가 아직 어려서.....”
“나 안 어려!”
소리를 빽 지른 준수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뭐 하려고 하는 거야? 준수 너.... 설마....”
“형이 계속 반대한다면..... 도망치는 수밖에 없어. 만약 찾으면 몇 번이고 도망쳐서 부자가 될 거야. 알잖아, 형도. 이 게임은 날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어!”
“야, 최준수!”
“나도 2년만 지나면 성인이라고! 좀 내버려둬! 돈만 벌어서 금방 갈 거야. 1년도 안 걸려. 3개월, 3개월 뒤에 무조건 돌아올게. 응?”
준성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3개월이 5년이 되고, 5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안다면 저런 말은 절대 할 수 없으리라.
끝까지 회귀 사실을, 그리고 회귀 전에 겪었던 일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던 준성은 고민에 잠겼다.
그들이 믿고 안 믿고는 나중 문제였고, 지금 중요한 건 준수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저 고집불통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반지를 손에 넣게 된 과정을 말하는 게 제일 빠르리라.
“준수야, 잠시만. 내 말만 듣고 가. 내 말을 듣고도 생각이 안 바뀌면 허락해 줄 테니까. 도망가는 것보다 허락받고 가는 게 네 맘도 더 편하지 않겠어?”
여차하면 달리기 위해 자세를 잡던 준수가 돌아섰다.
“말해....”
“준수야.... 형은....”
-아! 말하지 않은 사실! 회귀에 대해 말할 수 없어용! 정확히는 말해도 들리지 않겠지만용.
준성은 벨라의 말을 무시하고 회귀에 대해 말했다.
“준수야 밥 먹었어?”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온 건 너무 뜬금없는 말이었다.
준성이 하려고 했던 말은.
'형.... 회귀했어, 네가 죽었던 그날에.' 였건만.
“갑자기 무슨 밥이야.”
준수는 뜬금없는 말에 인상을 팍 쓰다가 이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변했다.
“형.... 괜찮은 거 맞아? 아까.... 흰자만 보였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데....”
“....괜찮아. 그..... 형이 말이야. 사실 회........가 먹고 싶은데. 아! 씨X!”
회는 무슨 회!
회귀했다고 회귀!
마지막에 욕을 시원하게 한 준성은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왜 말할 수 없는 건데!’
-말하게 되면 세계가 혼란스러워지니까용.
‘그럼 너도 존재하면 안 됐던 거 아닌가? 회귀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잖아!’
-그러게용. 근데 전 신이 만들어서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답니당! 회귀 능력도 신이 주신 거고용.
“형.... 괜찮은 거 맞지?”
걱정스러운 준수의 물음에 준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준수야, 우리 돈 많아. 그러니까 게임 계속 안 해도 돼.”
준수는 뭔 헛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준성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거 봐. 민정이 형이 초콜릿을 잔뜩 가지고 왔거든? 이게 이곳에서는 돈이 돼.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집 살 돈은 안 되잖아.”
“왜 안 돼. 아! 그래, 카를로이!”
준성의 부름에 백작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뭐든 명령하십시오, 주인님.”
“이 세계의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지?”
“원하시는 만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1억 골드. 그것도 가능한가?”
백작은 고민도 하지 않고 즉시 답했다.
“네,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10억 골드도 가능합니다.”
현재는 아니지만, 1년만 지나도 100억 정도의 가치였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 높아지게 될 것이다.
“들었지, 준수야? 우리 부자야. 그러니까 나가자.”
“싫어.”
“부자가 되는 게 네 목표라며.”
“나 내 손으로 돈 벌어보고 싶어. 목표만 달성하면 나갈게. 그러니까.....”
목표 달성이란 말을 들은 준성은 가까스로 잡고 있던 정신의 줄을 놓고 말았다.
“안 돼!”
소리를 지른 준성은 억지로 준수의 팔목을 꽉 잡아끌었다.
“절대 여기에 놔둘 수 없어. 준수야, 이 게임은 너무 위험해!"
“나 애 아니라고! 다 컸단 말이야!”
“이 게임은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살인을 요구할 거야. 살인을 하지 않으면 네가 이룬 모든 것이 다 물거품으로 돌아갈 거라고.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은 거야?”
믿지 못할 내용에 준수는 몸부림을 멈추고 준성을 올려다보았다.
“그걸 형이 어떻게 알아?”
“알아, 다 아는 수가 있어. 하아...... 네가 정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네.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카를로이!”
준성은 한쪽 무릎을 꿇은 백작에게 명했다.
“준수가 도망가지 못하게 꽉 잡아. 데리고 나가는 걸 도와줄 수 있지?”
“네, 명 받들겠습니다.”
백작은 준수를 손쉽게 들어 올려 성 밖으로 나갔으며 준성은 이런 방법으로라도 동생을 안전한 원래의 세상으로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이곳은 너무 위험했다.
아무리 동생이 울고불고 떼를 쓴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하나뿐인 동생의 소원이라고 하더라도.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나..... 엄마 아빠를 살릴 방법을 알아! 3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이야!”
준수의 외침에 준성은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추고 말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일단 이거 내려달라고 해 줘. 응? 형.....”
간절하게 바라보는 준수를 향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은 준성이 말했다.
“먼저 말해. 말하고 난 뒤에 카를로이에게 내려주라고 명령할 거야. 최준수. 방금 그 말 뭐야. 엄마 아빠를 살릴 수 있다니.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3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
“하..... 제대로 말해.”
“.....처음 게임에 들어왔을 때는 돈이 목적이었어. 그래서 목표 설정을 하려는데 누군가가 그러더라고.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준성은 어이가 없었다.
대체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
‘아 있구나.’
다시 만나게 된 동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준성은 한숨을 쉬었다.
“목표를 설정하니까, 어떤 퀘스트가 나왔는데?”
“이 성으로 가서 반지를 찾으라고 했어. 그러면 회귀할 방법이 생긴다고.....”
준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말했다.
‘설마, 이거 네 이야기냐?’
-호옹, 그런 거 같긴 한뎅. 근데 이상하네용. 전 이미 회귀 능력을 잃었는걸용. 그리고 전 지금 주인님의 손에 있잖아용.
벨라의 말이 옳았다.
회귀하는 순간, 벨라는 준성의 손에 있었으니까.
근데 왜 퀘스트는 준수를 이 성으로 인도한 것일까.
회귀 전의 준수는 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반지가 원래 있던 곳은 이 성이었으니 회귀 전에는 준수가 이곳에 왔을 것이다.
똑같은 목표를 설정했다면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백작을 이기고 반지를 획득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준수는 왜 회귀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애초에 어떻게 백작을 이길 수 있었단 말인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준성을 향해 벨라가 물었다.
-제가 보여줄까용?
‘네가 어떻게 보여 준다는 거야.’
-전 주인님처럼 회귀 전도 기억하니까용.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지용. 절 처음으로 발견한 게 최준수였으니까용.
‘그러고 보니 아까 그 기억도.....’
벨라가 보여줬던 통화 장면이 준수의 기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준성은 짧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네가 준수와 함께 있던 시간의 모든 걸 보여 줄 수 있다는 거지?’
-네, 그렇죵. 아까 그 통화 장면은 최준수의 기억 속에 있던 거라 아주 자세히는 보여주지 못했지만용.
그렇구나, 그랬던 거구나.
심호흡을 몇 번 한 준성이 속으로 말했다.
‘준수가 널 발견한 후, 이 성을 나오기까지를 모두 보여줘.’
벨라는 질질 끌지 않고 곧장 준성의 머릿속에 장면 하나를 띄웠다.
처음으로 보인 건, 준수가 반지를 손에 쥔 때였다.
반지를 엄지에 낀 준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술을 꽉 물었다. 그러고는 워치로 퀘스트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뭐야, 왜 저러는 거야? 네가 가진 능력이 회귀 말고 내 눈에 보이는 이 시스템 창 아니었어?’
-시스템 창?
벨라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듯했고 준성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준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 같냐고. 내 눈앞에 나타나는 이거 말이야!’
-제 음성이 눈앞에 보이는 거 말이죠? 아마도.... 제가 주인으로 모시지 않아서가 아닐까용?
‘뭐?’
-제가 주인으로 모신 분에게만 음성이 들리거나 보이고 회귀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거죵!
당연하다는 목소리에 준성은 더 어이가 없었다.
‘왜 나야? 준수는 왜 아니었지?’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거든용.
‘조건?’
-지금은 때가 아니라 알려드릴 수가 없답니당. 더 안 보실 건가용?
한숨을 내쉰 준성은 백작에게 얌전히 안겨 있는 준성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보여줘.’
-넹, 아! 근데 저기에 도움을 준 사람이 오네용. 준수를 살려준 사람이 바로 저 사람입니당!
장면을 보기 전 나타난 한 사람으로 인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준성 또한 그를 봤고, 보는 순간,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하...... 저...... X발X끼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개X끼가 눈앞에 나타나다니.
-최준수를 죽인 놈이네용!
벨라가 기억하는 대로, 그리고 준성이 기억하는 것처럼.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건 바로 준수가 속해 있던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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