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이세계(2)

벨라의 침묵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준성은 그러려니 하며 ‘다있소’라고 적힌 아이템 거래소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벨라가 말한 것처럼 물약들과 약초, 그리고 잡다한 것들을 팔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이 많아서 그런가 사장은 인사만 짧게 한 뒤 시선을 거두었다.
물건의 용도를 알지 못한다면 불편했겠지만, 정보가 알아서 뜨는 현재로서는 그편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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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물약 (소)
미미하게 체력을 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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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물약의 실물을 본 준성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소 중 대, 크기 별로 나열된 빨간색 음료수는 다름 아닌, 일명 ‘에너지 드링크’였다.
시중에서 파는 ‘핫나인’보다도 효과가 없는 음료수로도 유명했다.
너튜브에서 이미 입이 닳도록 말했던 것.
‘절대 빨간색과 파란색 음료수를 사드시지 마세요.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그것의 정체가 체력 물약과 마력 물약이었다니.
그 정보를 이미 알고 게임을 시작했던 준성은 단 한 번도 사 먹어 본 적이 없었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사장님, 이건 뭔가요?”
준성의 질문에 사장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답했다.
“빨간색은 피로 회복제고 파란색은 정신을 맑게 해주는 물약이에요.”
벨라가 말했던 것처럼 체력 물약, 마력 물약이라고 말하지 않는 게 의아하긴 했지만.
“이거 세 개만 주세요.”
일단은 사 보기로 했다.
체력 물약 세 개를 계산하고 나온 준성은 곧장 빵집으로 향했다.
“미안, 기다렸지.”
“아니야. 형이랑 빵 먹고 있었어. 간식으로 먹을 것도 잔뜩 샀어. 잘했지?”
준성은 그들이 산 빵을 보며 입을 벌렸다.
부자 된다는 애가 돈을 이렇게 펑펑 써도 되는 건가 싶어 민정과 눈을 마주치자 그가 씨익 웃었다.
“잘했지? 네가 좋아하는 팥빵도 샀어.”
준성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됐다.”
“응?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아, 이거 한 번 마셔 봐. 신기한 게 있어서 사 봤어. 체력을 올려 준다는데?”
준성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빨간 물약 한 병씩을 건네었다.
“어! 나 이거 알아. 근데 저번에 마셔봤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던데?”
“아, 그래?”
한 달이나 게임을 즐겼던 민정은 이미 먹어본 모양이었다.
“어! 나 마셔볼래!”
시큰둥한 민정과는 다르게 준수는 신기한 듯 물약 뚜껑을 열어 단번에 들이켰다.
“어?”
“왜, 뭔가 느낌이 와? 달라진 거 같아?”
물약을 다 마신 준수는 손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하며 제자리 뛰기를 반복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똑같은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럴 리가 없지.
너튜브에서 말한 대로 이세계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있는 듯했다.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실망도 없었다.
준성은 제 손에 든 물약과 민정이 마시지 않겠다고 건넨 물약 두 개를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일단 숙소 잡고 구경하자.”
“근데 오늘 방은 어떻게 하지? 같이 쓸까? 아니면....”
민정의 표정으로 보아 같이 쓰고 싶다는 것을 알아챈 준성이 물었다.
“한방에서 묵고 싶은 거지?”
“......절약하면 좋으니까.”
가방 안에 골드가 가득 들어 있어서 그런가. 민정은 살짝 민망한 듯한 웃음을 흘렸다.
“근데 오해는 하지 마. 돈도 돈이지만, 같이 방을 쓰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거 같아서야. 그리고 이 빵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산 거고....”
민망함이 가시지 않는지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던 민정은 혼자 샐쭉해져서는 작게 말했다.
“아니면 따로 자도 되고....”
그 모습에 준수가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
“형! 난 형이랑 같이 자고 싶어!”
“.....진짜?”
“응, 민저.... 아니, 민식이 형 재밌으니까. 코도 안 골고.”
“아이, 그럼! 코는 절대 안 골지!”
둘의 대화를 들은 준성은 헛웃음을 뱉었다.
“너희 둘 다 코 골거든?”
“와..... 형,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나 코 안 골아.”
“그래! 내가 증인이다. 준수 코 고는 거 들은 적이 없는데!”
그건 둘 다 바로 곯아떨어져서 못 들은 거고.
준성은 말 하기도 입 아프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검지로 오른쪽 길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가니까 여관이 모여 있더라고. 그리고 같이 자자. 뭐.... 민식이 네 말대로 이것도 추억이니까.”
준성의 허락에 민정은 다시금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서 나가는 민정을 보며 준성은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 부자가 되려고 하는 걸까.’
민정이 방을 따로 쓰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말한 대로 돈 때문일 것이다.
준성은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절약이 필수이긴 하지만, 현재 그의 가방에는 1억 정도의 가치가 있는, 그리고 몇 년만 지나면 몇 배의 가치를 가지게 될 이세계의 골드가 들어 있는데.
그 정도로 성에 차진 않는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절약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었다.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수이지 않을까.
한데 투자보다 절약이라.
어쩌면 부자가 될 방법 자체를 모르는 게 아닐까.
“어! 여기로 가자. 괜찮아 보이는데?”
민정이 말한 여관은 주변의 다른 곳보다 허름해 보였다. 아마도 가장 저렴한 것 같은 곳을 고른 것이리라.
“민식아, 제일 싼 데를 고르고 싶으면 다른 곳도 돌아다니면서 가격을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내가 여기 세 군데 가 볼 테니까 너희는 각자 세 군데씩 맡아서 가 보고 모이자.”
“......야,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거 같아?”
살짝 감정이 상한 건지 발끈하는 민정을 보며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나한테는 안 쪽팔려 해도 돼. 너랑 나랑 친구 몇 년인데 그게 왜 쪽팔리냐.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건데.”
“.......”
말이 없던 민정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그냥.... 잠깐 내 자신이 조금 창피했어.”
“창피해할 필요 없어. 여기서 너 흉볼 사람 없으니까.”
“맞아, 형! 난 형 존경해. 경호원이었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존경이라는 말에 민정은 감동한 듯 준수를 바라보았다.
“준수야.....”
“형.....!”
그들은 갑자기 끌어안더니 서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게 무슨 짓일까 싶었던 준성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밖에서 잘 거냐?”
“하..... 이런 감정 없는 놈. 너 T발 C야?”
“그게 뭔데.”
준수는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적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T든 C든 그게 중요하냐고. 얼른 알아보고 여기서 모이자. 한 번만 더 딴소리하면 제일 비싼 데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그렇게 말하고 돌아선 준성의 귀에 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박, 형 이거 무슨 말인지 모르나 봐.”
“그러니까, 설마 MBTI 물어보면 정상이라고 하는 거 아니냐?”
“에이, 설마. 우리 형이 매일 일만 한다고 무시하고 그러면 안 돼.”
“그래, 설마, 아니겠지.”
아니, 그래서 그게 뭔데.
준성은 알 게 뭐냐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여관 세 군데를 쭉 둘러보며 가격을 물어본 후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갔다.
알아 온 곳 중 의외로 가장 저렴한 곳은 민정이 가자고 했던 허름한 곳이 아닌, 다른 데였다.
생각보다 시설도 괜찮았으며 심지어 아침도 무료 제공이었다.
“와.... 그런 곳이 있었네. 물어보길 잘했다.”
“뭐든 발품을 파는 게 좋아. 만약 무기를 사려면 이 마을에 무기점을 다 돌아보는 거지.”
“역시, 네 말 듣길 잘했다.”
준성은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변한 민정을 보며 말했다.
“일단 들어가자. 세 명 같은 방으로 하루만 묵는 거로 하고 얘기해 보면서 며칠 더 있을지 정하자.”
“좋아!”
“역시 J!”
준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여관으로 들어갔다.
방을 잡은 그들은 각자 돌아다닌 후 다시 모이기로 했고 준성은 방에서 쉬기로 했다.
그들이 나간 후, 준성이 벨라에게 물었다.
“벨라, 너 아직도 실체화 못 하냐?”
-으음..... 글쎄용. 한 번 해 볼까용?
머릿속에서 벨라의 ‘끄응’하는 소리가 들렸다.
-히잉....
“왜, 안 돼?”
-네.... 아직 힘이 안 돌아왔나 봐요.
“힘이 생기면 실체화할 수 있다고 했지?”
-네, 그런데 그래봤자 꼬맹이 모습일 거예용.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힘을 완전히 되찾아야 하는데.....
말꼬리를 흐리는 벨라가 안타까웠다.
왜 반지 속으로 봉인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500년 동안 갇혀 있다가 나왔는데도 계속 갇혀 있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으니.
-그래도 전 지금이 더 좋아용. 이렇게 대화할 수도 있잖아용?
“지루했겠다.”
-뭐, 괜찮아용. 이제 다 잊었어용.
애써 밝게 말하는 것처럼 들려 더 안쓰러웠다.
“네가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나랑 함께 있기만 하면 되나?”
-흐음.... 그러면 미미하게 힘이 조금씩 돌아오겠죠?
“미미? 그럼 다른 방법도 있어?”
-주인님이 강해지면 제 힘도 그만큼 돌아온답니당.
강해진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기준이 없었기에 애매했다.
“힘을 기르면 되는 건가? 아니면..... 마물 같은 걸 죽여야 하는 거야?”
-아니용. 그건 아니고..... 아니에용.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용. 전 진짜 괜찮아요.
이번에도.
저번처럼 뭔가를 숨기는 듯했다.
준성은 캐묻고 싶었지만, 분명 시원하게 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질문은 덮어두고 잠을 청했다.
눕자마자 어제 못 잤던 잠이 쏟아졌고 준성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
.
.
“형! 일어나!”
“밥 먹으러 가자!”
준수와 민정의 목소리에 일어난 준성은 잠이 든 지 세 시간 만에 일어나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왔다.
피곤했는지 준수는 곧장 잠이 들었으며 민정은 자는 준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와.. 진짜 코를 고는구나.”
“너도 골아.”
“에이.....”
“진짜거든.”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던 중, 민정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준성아... 어떻게 부자가 될지 모르겠다. 길을 잃은 거 같아. 목표를 설정하고 싶다는 유혹이 계속 든다.”
준성은 그의 고민에 섣불리 답을 할 수 없었다.
쉽게 답을 내리거나 목표를 설정하면 안 된다며 화를 낸다면 불화의 불씨가 될 것만 같아서였다.
“같이 답을 찾아보자.”
준성이 그에게 해줄 말은 하나였다.
‘같이.’
함께했으니 함께 나아가는 것.
그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으아아아아악!”
가장 먼저 눈을 뜬 준성은 일어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이, 이게 왜 내 눈앞에 나타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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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준성
나이: 28세
종합 LV. 1
능력치:
[체력 LV. 1]
[방어력 LV. 1]
[근력 LV. 1]
[민첩 LV. 1]
전용 스킬: X
직업: X
부하: 벨라[LV. 1]
카를로이[LV.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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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성을 놀라게 한 건, 준성의 능력치가 고스란히 적힌 상태 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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