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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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선생
그림/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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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08 21:32
최근연재일 :
2024.07.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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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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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총통 04

DUMMY

카페 ‘시보리’의 2층 야외 테라스는 모처럼 찾아온 따뜻한 날씨에 사람들로 붐볐다. 아직 공기가 차가운 2월이었지만 사람들은 봄을 예감하는 훈풍을 벌써 느낀 듯 눈에 띄게 가벼운 옷차림으로 초봄의 햇볕을 쬐기 위해 야외로 나섰다. 테라스 저편으로 보이는 성강江변 일대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미풍을 타고 흥진이 있는 테라스까지 들려왔다.


흥진은 공업용 맥주를 마시며 이 모든 평화에 이질감을 느꼈다.


다양한 곳에서 삶의 거처를 꾸렸던 그였지만 그의 집은 항상 무법지대에 있었다. 불과 지난달까지 있었던 암담시에서 그는 인생 최초로 정기적인 출퇴근이 존재하는 직장 생활을 했지만 그가 살던 직장 관사 역시 연합군이 관리하는 특별구역이 아닌 무법지대에 있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한성시의 중심인 성남 지역이었다. 2주 전 일행과 함께 이곳으로 온 그는 처음으로 특별구역에서의 삶을 경험하고 있었다.


“황당할 정도로 평화롭군.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지경이야.”


흥진이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촌평한 감상과는 달리 잔 옆에 놓여있는 신문지엔 암담시의 끔찍함이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암담에서 한성까지 오는 한 달여의 여정에서 그가 틈틈이 살폈던 사설지엔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아름다운 세상은 없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그간 보았던 암담시 관련 신문의 헤드라인이 스쳐 지나갔다.


무법지대의 참상은 언제까지. 연합군은 과연 칼을 빼 들 것인가? 미켈슨의 다섯 가지 오판. 정부군이 투입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 경찰국 국장의 부재가 암담시 4차 내전에 끼칠 영향은?


마지막 헤드라인에서 흥진의 생각이 멈추었다. 정무일 검거를 위해 성황이 유폐된 타워를 점거했던 경찰국 국장이 느닷없이 실종되었다는 소식. 경찰국 국장의 실종이 정무일과 관련이 있을까?


“빨리 왔군요?”


단발머리를 경쾌하게 흔들며 걸어오는 유련을 보며 흥진의 사념이 흩어졌다. 유련이 자리에 앉으며 그에게 싱긋 미소를 보였다. 흥진은 다시 한번 쓸데없는 생각을 떠올렸다.


‘아무리 봐도 긴 머리가 어울렸는데.’


흥진, 유련, 미키로 구성된 일명 ‘정무일 추적팀’이 암담시를 출발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암담시 외곽 검문소를 습격하는 일이었다.


“정 팀장은 거주증이 있었습니다. 전파를 추적하다 특별구역에 출입해야 할 때 팀장이 자주 써먹었죠. 위조된 거지만.”


“꽤 정교한 위조증이었나 보군요?”


“아뇨. 절반 정도는 위조 사실이 들켜서 연합군의 총알받이가 될 뻔했죠. 그래도 단속이 헐거운 시외 검문소 통과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겁니다. 거주증에 기재된 가명을 알아요. 검문소 기록을 살펴보면 정무일의 행적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거주증 없이 무력으로 통과했을 가능성은?”


“글쎄요, 살인 용의자로 쫓기는 상황인데 굳이 소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을까요? 거주증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성법을 써서 무력을 행사하진 않을 겁니다.”


“좋아요. 그래도 검문소 습격이라니, 어째 3인조 산적단이 된 기분이군요.”


“오! 멋져요! 3인조 산적단이라니!”


미키의 황홀한 외침을 무시하고 유련은 검문소를 살펴보자는 흥진의 주장을 결국 받아들였다. 연합군은 특별구역으로 진입하는 검문소가 아닌 시외 검문소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특별구역 바깥이라면 시내나 시외나 연합군에겐 아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흥진 일행이 처음 목표로 삼은 암담시 서쪽 외곽 검문소에는 예상대로 검문소 직원 한 명이 의자 등받이를 눕힌 채 잠들어 있었다. 유련이 직원을 간단히 기절시키는 모습에 미키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 유련 씨! 경찰국 무장 대원이셨나요?”


“과거는 묻지 마요. 실례니까.”


흥진 일행에겐 운이 따랐다. 첫 번째로 습격한 검문소에서 정무일의 검문 이력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추적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처음 한 주 동안 큰 위험 없이 진행되던 그들의 추적행은 한반도 중남부 지방의 교통 관문인 삼가 지방에서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지역 불량배 조직들이 그들의 군용트럭을 목표로 삼아 한밤중에 습격을 가한 것이다. 숙소 침대나 트럭 운전석이나 숙면을 취하는 데 아무 차이가 없는 휴머노이드 미키는 항상 트럭 안에서 밤을 보냈기 때문에 그들의 습격을 가장 먼저 맞이했다. 간신히 트럭 안으로의 침입은 막았지만 스무 명이 넘는 장정들을 끌고 온 그들을 트럭 안에 있는 미키가 혼자 처리할 순 없었다. 뒤늦게 숙소에서 뛰쳐나온 흥진과 유련이 그들을 상대했다. 흥진의 권총과 유련의 무술 솜씨는 불량배 스무여 명을 처리하기에 충분했다.


트럭은 무사히 지켜냈지만 한 가지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다. 불량배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유련이 긴 머리채를 붙잡힌 것이다. 부상을 입진 않았으나 유련은 이를 마음에 담아둔 모양이었다.


“머리가 거추장스럽네요.”


다음 날 아침 숙소 1층 식당에 유련은 머리가 뜯긴 듯 제멋대로 잘린 단발로 등장하여 흥진과 미키를 놀라게 했다.


“으아아악! 유련 씨! 이게 뭐야! 이건 진짜 산적 같잖아요!”


괜찮다는 유련을 기어코 앉힌 미키가 가위를 집어 들었다. 유련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걱정 마요! 내겐 최고의 미용 기술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으니까.”


퇴역 군인 휴머노이드가 미용 기술 프로그램을 갖고 있을 리 없다는 유련의 주장을 특유의 호들갑으로 무마시킨 미키가 가위질을 시작했다. 의외로 깔끔하게 정돈된 단발에 내심 만족해하는 그녀를 보며 흥진은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긴 머리가 어울렸는데.’


“왜 이렇게 얼이 빠져 있어요?”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에 흥진은 그간 있었던 여정의 회상에서 벗어나 한성시의 평화로운 카페 2층 테라스로 돌아왔다. 단발머리의 유련이 맞은편에 앉아 길쭉한 눈으로 그를 수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흥진이 심드렁하게 화제를 돌렸다.


“허탕입니다. 그 전직 경찰국 직원이라는 여자의 정보는 믿을 만한 겁니까?”


“정보는 틀림없어요. 미키를 기다려 보죠.”


검문소 기록을 토대로 차근차근 한반도 위를 올라가던 흥진 일행은 지금으로부터 2주 전 유련의 경찰국 정보대로 한성 근처에까지 도달했다.


한성은 한반도 주요 도시 중 유일하게 특별구역이 없는 도시다. 연합군 유라시아 사령부 본부가 위치한 한성 전체가 연합군의 관리하에 장악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성시 전체가 일종의 특별구역인 셈이었다. 연합군이 관리하는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선 통행증이나 거주증이 필요했다. 한성 근처 한 허름한 마을에서 일행은 유련의 동료였던 전직 경찰국 직원과 접선하였다. 그녀는 특별구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각종 위조 카드를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깡마른 몸매에 신경질적으로 치켜 올라간 눈매가 까다로운 인상을 주는 이 중년의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빈’이라 소개했다. 한성을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이 필요하다는 유련의 말에 빈이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다 조그만 입을 열었다.


“한성시 거주증은 위조 못 해. 하더라도 금방 들키지. 무기한 통행증도 마찬가지야.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치는 4주 단기 통행증이다. 필요하면 그거라도 가지고 가던가.”


빈은 아무 대가 없이 위조 통행증 3장을 그들에게 주었을 뿐 아니라 정무일이 갖고 있는 위조 통행증에 기재된 가명도 알려주었다. 정무일의 위조 통행증을 만든 이가 바로 그녀였다. 정무일은 자신의 허접한 거주증 대신 빈에게 새로 위조 통행증을 샀던 것이다.


“이게 언니가 말하던 행운이군요. 고마워요.”


“고마워할 필요 없어. 행운은 빈자貧者를 따라다니는 채권자일 뿐이야. 반드시 갚아야 하지.”


행운은 빈자를 따라다니는 채권자다. 경찰국에 함께 있던 시절 빈이 유련에게 거창한 삶의 비밀이라도 말해주듯 해줬던 말이었다. 마을 외곽까지 배웅을 나온 빈은 엄마가 딸에게 하듯 그녀를 따스하게 껴안으며 등을 쓰다듬었다.


“불쌍한 것. 외롭다고 해서 아무도 없다는 뜻은 아냐. 너에겐 내가 있다. 잊지 마라.”


유련은 눈물을 글썽였다. 흥진과 미키가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빈이 준 4주짜리 통행증으로 흥진 일행은 한성 시내에 무사히 도착했다. 트럭 주차가 가능한 성남 외곽의 한 허름한 숙소에 장기 투숙권을 끊은 그들은 빈을 통해 알아낸 정무일의 가명을 토대로 그의 흔적을 샅샅이 조사하고 다녔다. 셋은 숙소 기록을 주로 찾아다녔지만 정무일의 가명은 찾을 수 없었다. 인구 백만이 넘는 한반도 최대 도시는 세 사람이 발품 팔아가며 뒤지기엔 너무 큰 도시였다.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카페 시보리의 맥주도 이젠 지겨워질 시간이었다.


“이미 한성을 떴을지도 모르겠군요. 벌써 2주나 지났으니.”


“떠났을지라도 어쨌든 그의 흔적을 찾아야죠. 그의 다음 행선지를 알아야 하니까.”


한성에선 다른 도시들처럼 외곽 검문소를 확인해 볼 수도 없었다. 시 전체가 특별구역인 한성은 다른 도시들처럼 무법지대에 외곽 검문소가 있어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정무일이 떠났다 하더라도 한성 안에서 그가 어디로 떠났는지 정보를 확인해야 했다. 흥진은 쓴 입맛을 다시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미키! 이쪽이에요.”


검은 선글라스를 낀 미키가 그들을 향해 경쾌하게 걸어왔다. 휴머노이드임을 광고하고 다니는 백색 동공을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었기에 미키는 한성에 들어온 순간부터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는 유난히 풀죽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큰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미키를 보며 흥진이 물었다.


“역시 별 소득은 없었나?”


“없어. 없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유난스러운 호들갑에 흥진과 유련의 눈이 마주쳤다. 그간 미키의 행동 패턴을 통해 유추해 보자면,


“뭔가를 찾았구나?”


미키가 흥진과 유련을 향해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보았다. 그의 백색 동공이 춤추고 있었다.


“한성 천자교 법관들의 비밀 결사 접선지를 알아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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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거짓 넋풀이 01 24.07.15 5 0 10쪽
68 암살자의 맨얼굴 13 24.07.14 7 0 10쪽
67 암살자의 맨얼굴 12 24.07.13 6 0 11쪽
66 암살자의 맨얼굴 11 24.07.12 6 0 11쪽
65 암살자의 맨얼굴 10 24.07.11 5 0 13쪽
64 암살자의 맨얼굴 09 24.07.10 6 0 13쪽
63 암살자의 맨얼굴 08 24.07.09 7 0 10쪽
62 암살자의 맨얼굴 07 24.07.08 6 0 11쪽
61 암살자의 맨얼굴 06 24.07.07 6 1 12쪽
60 암살자의 맨얼굴 05 24.07.06 8 1 9쪽
59 암살자의 맨얼굴 04 24.07.05 8 1 11쪽
58 암살자의 맨얼굴 03 24.07.04 8 1 11쪽
57 암살자의 맨얼굴 02 24.07.03 8 1 9쪽
56 암살자의 맨얼굴 01 24.07.02 7 1 10쪽
55 최후의 사냥꾼 13 24.07.01 9 1 13쪽
54 최후의 사냥꾼 12 24.06.30 7 1 14쪽
53 최후의 사냥꾼 11 24.06.29 7 1 11쪽
52 최후의 사냥꾼 10 24.06.28 6 1 10쪽
51 최후의 사냥꾼 09 24.06.27 8 1 11쪽
50 최후의 사냥꾼 08 24.06.26 8 1 12쪽
49 최후의 사냥꾼 07 24.06.25 8 1 11쪽
48 최후의 사냥꾼 06 24.06.24 6 1 12쪽
47 최후의 사냥꾼 05 24.06.23 7 1 10쪽
46 최후의 사냥꾼 04 24.06.22 6 1 11쪽
45 최후의 사냥꾼 03 24.06.21 7 1 11쪽
44 최후의 사냥꾼 02 24.06.20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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