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에단의 속셈(3)

결속식이 시작하기 전 환영회는 생각보다 더 화려하고 고귀한 분위기로 시작했다.
본관에 속하지 못한 방계는 한자리를 꿰차기 위해 비위를 맞추며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뜨였다.
직계와 방계 그리고 원로회와 가문의 중요한 자리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참가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여기에 오지 않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명가 친목회에 가기 위한 인물을 제외하고 오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가주 클라이드까지 이곳을 빛내줬다.
유일하게 한쪽 구석에 보이는 빈자리가 유독 크게 보였다.
‘레네 엘리오트 아니 레네 아르티우스 정말 티가 나도록 멍청한 짓을 하는구나.’
레네는 일부러 환영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엘리오트 다섯 번째 공자. 에단 엘리오트님이 입장하셨습니다.”
화려한 빛깔을 받으면서 에단의 입장을 환영식에 알렸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짙은 피의 주인공이었지만, 주인공의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본관 소속 사람들이 장난을 쳐놨다.
그런데도 몇몇 방계와 마법사는 에단과 시답지 않은 인사를 나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이 몸으로는 아직 술을 못한다는 거지.’
마셔보지 않았지만, 여기에 보이는 술들은 대부분 달콤하고 맛있어 보였다.
현대의 주진혁이었으면 당장 몇 잔이나 마셨을테지만, 지금은 12살의 꼬마였다.
수행인도 없이 공식적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상당히 피곤했는지, 에단은 들어온 지 10분도 되지도 않아서 피곤해했다.
“공자.”
심심한 와중에 말을 걸어온 것은 푸른색 머리카락의 그녀였다.
“키아나 브리아트.”
“혼자 뭘 그렇게 궁상맞게 있으세요? 혼자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주인공답게 얼굴 좀 피고 계시지 그래요?”
저 말이 거슬렸는지 에단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내가 쓸데없이 붙어있지 말자고 했었던 거 같았는데?”
괜히 여기서 키아나와 붙어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목격해서 좋을 것이 하나 없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키아나가 에단의 스승이 될 뻔했다는 이야기가 들렸기에 더욱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을 게 뻔했다.
“이번 환영회 주역이나 마찬가지인 에단 공자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수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적당히 있다가 갈 거니 걱정하지 마시죠.”
“···맞는 말이긴 하네.”
주변을 둘러봤지만, 생각보다 신경을 쓰는 사람은 적었다.
“그래서, 이번 결속식 때는 무엇을 보여줄 생각이에요? 이제 저는 에단 공자의 편에 섰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요?”
아직 키아라에게는 이번 에단이 할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이번에는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지. 이게 없잖아. 키아라.”
에단은 자신의 손등을 슬쩍 보여줬다.
마나를 주입하자, 맹약에 푸른빛이 돌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였다. 키아라는 손등을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금세 사라졌지만, 설마 자신보다 먼저 맹약을 건 사람이 생길 거라곤 생각 못 한 모양이다.
결국, 키아라는 작은 신음을 흘렸다.
“흐음. 누구예요? 그 맹약의 주인은.”
궁금했다. 자만은 아니지만,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한 자신보다 먼저 영입했는지 슬쩍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에단은 손등에 묶인 맹약이 그저 거래를 위한 맹약이었지, 아직 편을 만들고 영입에 성공했다는 맹약은 아니다.
“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뭐 한솥밥을 먹어야 할 사이가 될 테니까.”
맹약을 보여준 것은 저렇게 속이기 위함이다.
“뭐, 어쩔 수 없죠. 오늘 밤에 찾아가면 되겠습니까? 맹약으로 묶어야죠.”
키아라는 한숨을 쉬면서 가벼운 태도를 보였다.
그녀가 자리를 떠나기 무섭게, 몇몇 이름 없는 방계가 찾아오긴 했지만, 생산성이 없는 대화를 했다.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비전 마법이나 바람 마법 같은 그런 것들로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딘’”
어떻게 보면 이번 결속식에서 에단보다 주목받고 있는 인물 중 하나인 알리스 엘리오트였다.
“알리스 엘리오트.”
“딘 아니었나요? 설마 에단인 줄은 몰랐네요. 그래서 그때 에단에 관해 질문한 거였군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
모르는 척했지만, 맹약이 한쪽은 딘, 한쪽은 무녀라는 증거를 뜻했다.
“···거짓말하지 마요!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손등을 슬쩍 보이며 마나를 불어 넣어 맹약을 확인시켰다.
“누구랑 맹약했는지 모르겠는데, 자랑할 거리는 아니지 않나? 알리스 공녀.”
다시 한번 모르는 척하자, 그녀는 자신의 손등에 더 많은 마나를 주입했다.
“···큭! 알았다고. 알았어!”
마나를 부여하니, 에단이 고통이 느껴졌다. 맹약에 이런 효과가 있는지 몰랐는지 낭패 봤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붕대 때문에 보이는 것은 고작 눈이었지만, 그녀의 눈빛이 그렇게 말했다.
알리스 엘리오트. 그녀는 지금 앞에 있는 에단이 너무나도 수상했다.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에단의 행보는 어느 정도 파악은 했다. 어렸을 때부터 마나의 축복을 받았다는 소문과 함께 천재라는 별명을 가졌다.
그것도 아주 잠시일 뿐 그는 멍청한 첩출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에단 엘리오트. 우리가 원하는 인물일까? 아버지. 죄송하지만, 계획과는 조금 달라지긴 해도, 한번 떠보겠습니다.’
“무슨 소리지?”
“엘리오트 가문! 그걸 묻는 이유가 뭐예요? 반역이라도 할 셈인가요?”
사실 진짜 궁금하기도 했다. 도대체 엘리오트의 짙은 피가 정보 길드를 이용해서 엘리오트 가문에 관해 묻는 것은 나쁜 쪽으로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알리스는 어느 정도 에단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다. 에단이 현재 가문에서 어떤 취급을 봐도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었다.
애초에 알리스를 포함해 몇몇 방계는 이번에 이곳에 온 이유는 짙은 피. 에단 엘리오트를 만나기 위함도 있었다.
근데 하필 그 에단 엘리오트가 엘리오트의 정보를 산 딘일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반대로 내가 묻고 싶은 셈인데?”
에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귀족의 여식이라는 것은 원작의 내용을 봐서 알고 있었지만, 엘리오트의 방계면서 스톰 마법 기사단장의 딸이자 엘리오트의 정보를 파는 길드의 지부장이다.
이 이유만으로도 알리스와 가족들은 즉결 처분 대상이다.
“···그, 그건 비밀이에요!”
“그럼 나도 비밀로 하지.”
대답하자, 알리스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에단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혹시···.”
“그 이상의 대답을 원하는 것은 내 쪽이나 네 쪽이나 부담이 될 텐데 괜찮겠어? 그 제안. 잘 생각하고 입 밖으로 꺼내길 바란다. 알리스 공녀.”
알리스의 말은 에단은 이해했지만, 받아들일 순 없다.
어느 정도 이해관계가 일치되었지만, 꼭두각시가 될 생각도 없고, 가주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증오스럽지 않습니까? 엘리오트 가문이.”
“듣는 귀를 생각해. 알리스 공녀.”
아무리 엘리오트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 에단이 좋아하는 대화였지만, 결국 이곳은 엘리오트 가문의 한복판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 목이 저 바닥과 입맞춤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저는 엘리오트가 좋긴 하지만 동시에, 증오합니다.”
“그 말은 나중에 듣지.”
“···알겠어요. 그럼, 서비스 하나 드리도록 하죠. 이건 정말 당신이 감사해야 하는 거예요.”
일부러 뜸을 들여서 정보의 가치를 올렸다.
“뭐길래? 그렇게 뜸을 들여? 무녀님.”
“여기서 무녀님으로 부르지 마세요! 계속 그러시면 저도 에단 님의 정체를 알리는 방법 말곤 없어요!”
그녀는 화를 냈지만, 여기서 정체를 밝히면 더 타격을 받는 것은 에단이 아니라 알리스다.
에단은 그저 밤에 나간 것뿐이지만, 알리스는 엘리오트의 정보를 판 반역죄의 차이다.
“원로회에서 비밀로 하는데, 이번 결속식은 쌍둥이와 저만 참가하는 게 아니에요.”
헤르만 원로의 말에 따르면 에단을 포함해 4명이 참가한다고 했었던 거 같았는데, 사실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 늙은 너구리에 대한 감정을 삭인 뒤에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마음 같아서는 누구인지 살피고 싶었지만,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숨을 죽였다.
“그래서, 누군데?”
“이따 밤에 찾아가겠습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무, 뭐라고요!”
화를 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컸기에 환영식에 모인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기엔 아주 충분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에단은 장난을 치지 않았을 텐데 낭패였다.
“무슨 일입니까?”
여러 방계 사람과 본관 소속 사람들이 이곳에 왔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붕대로 얼굴이 가려졌지만, 빨개진 것이 다른 사람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알리스는 다른 말도 하지 않은 채 회장을 떠나버렸다. 결국, 해명의 몫은 에단의 것이 되었다.
이곳을 해명해야 하는 사람은 에단이었는데 하필 그는 방계나 본관 소속 마법사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었기에 제대로 된 말을 들어주려는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에단과 비슷해 보이는 한 방계 마법사가 기세등등하게 다가왔다.
‘13살 아니 14살쯤 되나? 설마 이 녀석은 아니겠지.’
외관적인 모습만 보면 딱 결속식에 참가하기 좋은 나이였지만, 느껴지는 마나는 그다지 높은 수준이 아니다.
“별일이 아니다.”
“별일이 아니긴요. 방금 알리스가 뛰쳐나가지 않았습니까? 소리까지 지르면서!”
알리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선 아는 사이였다.
딱, 그녀가 말한 사람과 일치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한 것인지 에단은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강경한 대응을 하지 않은 덕인지, 오히려 방계 마법사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아주 당당하게 에단의 앞에 자리를 위치했다.
‘데···뭐였지 그래. 데렌. 그 녀석 같군.’
에단이 가지고 있는 위치를 이용해서 자신의 가치를 더 높게 만들려는 마법사는 본관이든 방계 소속 사람이든 있었다.
방계 출신이라 그런지, 본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에단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조각들은 이미 맞춰졌다. 키아라와 알리스 공녀의 정보력까지 있다. 이제 끼우는 일만 남았기에 이제 참을 필요는 없다.
“내가 해명해야 하나? 이름도 모를 옅은 피인 너에게.”
충격적인 한마디.
이곳을 정적으로 만들고 떠들고 웃고 있었던 사람들의 이목을 확실하게 주목시켰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여기에 짙은 피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가주 클라이드와 그의 여동생인 엘라인 엘리오트 말고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곳에는 짙은 피보다 옅은 피인 방계 마법사들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짙은 피가 강한 힘과 정당성을 가졌더라고 해도, 에단은 힘도 부족하고 첩의 자식이라는 안 좋은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결속식. 짙은 피의 힘을 알리는 직계의 행사이자 현재 클라이드와 엘라인이 입을 열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름 모를 마법사인 옅은 피 방계가 에단에게 항의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조용히 입을 닫아도 되었지만, 혈기 왕성한 마법사는 결국 입을 놀렸다.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상대가 에단이었기에 입을 연 것이다. 짙은 피에서도 ‘최약’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이렇게 나온 이유는 방계에서도 힘이 약한 자신의 힘을 조금 더 키우기 위함이었다.
지금 하는 이 행동이 더 약하게 만드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옅은 피.”
에단은 더 자극되도록 소곤거렸다.
“겨, 결투입니다! 설마 짙은 피인 에단 공자께서 피하진 않으시겠죠?”
결국 그는 장갑을 벗어서 결투를 신청했다.
이 싸움도 시작하기 전에 본관 소속 마법사들은 희생자가 누구인지 이미 점지했다.
정글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것은 에단이다. 일부 방계들은 방금 결투를 신청한 이름 모를 마법사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본관에 있는 마법사들은 이미 에단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데렌이라는 마법사를 상대하고, 더스턴 공자를 이긴 것이 에단이다.
더스턴도 본관에서는 천재 마법사라고 불리는 사람 중 하나다.
“옅은 피라도, 엘리오트의 피를 받았길 바란다.”
장갑을 줍지도 않고, 마법 결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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