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못 쓰는 나, 위저드리 마스터가 되다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여지한
작품등록일 :
2024.05.08 22:32
최근연재일 :
2024.06.21 00:52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3,008
추천수 :
0
글자수 :
184,409

작성
24.05.27 05:41
조회
131
추천
0
글자
20쪽

8화 - 정(精)의 길1

DUMMY

‘그래, 가람이 너는 조선의 마지막 정기술사 유덕형의 자손이다.’


간밤에 나래에게 들은 놀라운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가슴이 뛰는 바람에 나는 결국 한숨도 자지 못했다.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나에게 다시 살길이 주어진 것과 다름없는 이 상황에서 설레지 말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였다.


이부자리에 누운 채 창문 너머로 조금씩 파랗게 물들고 있는 하늘을 보던 나는, 머리맡에 있던 마나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미리 꺼내놓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밖에 나가는 이유는 당장 오늘부터 정기술사가 되기 위해 수련을 시작하기로 나래와 정했기 때문이었다.


“나래 누나! 어떻게 하면... 정기술사가 될 수 있어?”


정기술사라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알게 된 직후, 내가 나래에게 한 말이었다.

아직 정기술사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되겠다고 할 정도로 나는 아직 필사적이었다.


나의 간곡한 눈빛을 본 나래는 웃으며 말했다.


“이미 각오는 된 것 같구나. 인시(새벽 3시~5시)에 마당으로 나와라. 수련을 시작할 테니까.”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수련의 날이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어디선가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보니 나래가 새벽의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아직도 꿈속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는 나래를 불렀다.


“누나, 나 왔어. 계속 밖에 있었던 거야?”

“응~ 야생의 바람들이랑 놀고 있었어.”

“뭐? 바람이랑?”


그 말에 내가 자세히 보니 기분 탓 인지 나래 주변에 뭔가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나래는 야생의 바람이라 말한 그것에 작별인사를 한 뒤 내 쪽으로 날아오며 말했다.


“준비됐나?”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하며 마음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나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품에서 책을 꺼내며 말했다.


“해동정본심서에서 이르길 ‘그릇을 단단히 그리고 깨끗이 하라’ 하였다.”

“그릇을 단단히? 깨끗이? 그게 무슨 뜻이야.”

“후후.. 그러니까 이런 뜻이다.”


나래는 갑자기 마당 밖으로 날아가더니 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뛰어라! 나를 끝까지 쫓아오지 못하면 오늘 밥은 굶어야 할 줄 알아!”

“.... 뭐?”


내가 놀라서 멍해 있는 사이 나래는 먼저 앞으로 빠르게 날아가고 말았다.


“자... 잠깐만 기다려 누나! 치사하잖아!”


나는 한발 늦게 허둥거리며 그 뒤를 따라 뛰었다.

그렇게 나의 정(精)을 향한 길은 갑작스러운 새벽 구보로 시작됐다.




--------------------------------




가람이에게 아직도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죽은 내 남편... 그러니까 가람이의 아버지는 위저드였다.

가람이가 아직 어릴 때, 위저드 임무를 수행하다가 몬스터에게 죽고 말았다.

그래서 위저드라는 직업은 나에게 있어서 남편을 앗아간 위험한 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 날, 가람이가 위저드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정말 어떻게든 뜯어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가람이가 진심으로 원하는 꿈을 함부로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진짜 마음의 소리를 감춘 채 아들의 꿈에 응원을 보냈다.


가람이가 CMDS(선천성 마나 결핍 증후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람이가 위자드의 길을 금방 포기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 아버지를 닮은 건지, 아들은 내 생각보다 더 강했다.


가람이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높은 벽을 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런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숨긴 채 옆에서 지켜보며 계속 응원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일까?

가람이가 시험 중에 크게 다쳐 영영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되자, 나는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는 길이 완전히 막혀 작은 희망조차 없어져 버린 지금이라면, 더 이상 아들이 불합리함에 맞서며 고통받지 않아도 되니까.

내 남편을 앗아간 위저드의 길로 가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앞만 보고 열심히 뛰던 두 발을 강제로 멈춰야 했던 아들은 아주 빠르게 무너져 내려갔다.

이러다가는 아들마저 잃을 것 같아 무서웠던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남편의 고향인 시골 시어머니 댁에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발을 딛는 모든 곳에 마법이 펼쳐져 있는 서울은 그렇게 원하던 마법을 못 쓰게 된 아들에게는 너무 자극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것보다는 요양의 의미도 포함해 한적한 시골에서 지내는 것이 가람이를 위해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가람이는 시골 생활에 금방 적응했다.

농사일도 싫지 않은지 딱히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서 돕기 시작했다.

점점 농사일에 익숙 해져갈수록 보람도 많이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아들이 어쩌면 새로운 길을 찾은 것만 같아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다시 아들의 마음을 흔드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갑자기 책에서 튀어나왔다는 수상한 여자애가 같이 살게 된 것이었다.

마법에 관련된 일이라면 앞이 보이지 않게 되는 가람이가 또다시 헛바람이 들까 봐 불안했던 나는, 시어머니에게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정말 그 애랑 같이 사실 거예요?”

“응 그럴 건디? 왜? 싫으냐?”

“예... 솔직히 너무 수상하잖아요. 몬스터나 그런 거면 어떻게 해요.”

“아니여. 그렇건 아닐 거여.”

“어머니가 어떻게 아세요?”


내 말에 시어머니는 처음 보는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그 아가가 나왔다던 책 말이여. 그거 죽은 영감이 집안의 수호신이 살고 있는 가보라고 소중히 하던 책이여. 그런 책에서 나온 아가가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 거니께 걱정허지 마러.”


시어머니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이상,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나래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맞이한 첫날.


여느 때처럼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일어났는데, 그 여자애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새벽잠이 없어 먼저 일어나 있던 시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나래 어디 갔어요?”

“몰러. 아까 새벽에 가람이하고 같이 어디 갔으.”

“네!? 둘이 같이 나갔다고요? 어디로요?”

“글씨다. 수련인지 훈련인지 뭐라 하믄서 막 뛰어 가던디?”

“.....”


내 불안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또다시 가람이가 위험한 꿈을 향해 달려가게 되지 않을까... 너무 걱정스러웠다.




------------------------------




이렇게 뛰어본 게 도대체 얼마 만 일까?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목구멍에서 알싸한 철분 맛이 느껴졌다.

해는 벌써 높이 떠 중천을 향해 가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나래를 쫓아가고 있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따라갈 만했다.

나래가 잡힐 듯 말 듯 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내 페이스를 조절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산을 달리고 있었다.

그냥 평지를 달리는 것도 죽을 맛이었는데 가파른 산을 뛰어오르려니 죽을 맛이었다.


“헉... 헉... 나래 누나...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헉... 나 너무 힘든데?”


내가 산 중턱의 어느 나무에 몸을 기대 주저앉은 채 숨을 헐떡이며 물어보자 나래는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벌써 지친 건가?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헉... 얼마 안 뛰었다니... 세 네 시간은 달린 것 같은데.. 헉...”

“이런 이런~ 이렇게 허약해서야...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엄살 그만 부리고 빨리 따라와라!”


나래는 매몰차게 돌아서더니 다시 앞서 날아가 버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죽을 힘을 다해서 기어가듯 오르고 나서야 산 정상에 도착을 했다.

그곳이 골인 지점 인지 나래는 더 이상 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 가쁜 숨을 헐떡이며 눈을 감았다.

간밤에 잠을 자지 못한 탓인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결국 나는 그대로 기절하듯 잠에 빠지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깜짝 놀랄 정도로 심한 갈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으으.. 으....”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힘겹게 겨우 몸을 일으켜 흐릿한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니 벌써 해가 지려고 하는지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제야 일어났어? 으이구~ 겨우 그거 뛰고 얼마나 지친 거냐?”


나래가 나를 내려보며 말했다.


“누... 나?”

“목마르지?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 나래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 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땅밑에서 묘한 진동이 느껴지더니 갑자기 커다랗고 길쭉한 바위 하나가 땅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바위의 틈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 콜록! 콜록!!”


너무 놀란 나머지 갈증이 심한 목으로 비명을 지르려다가 기침을 하고 말았다.

나래는 그런 나에게 별일 안 일어났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와서 마시고 목을 축여라.”


나는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는 비틀거리며 다가가 바위에 입을 가져가 물을 삼켰다.


‘마... 맛있어!’


물을 한 모금 삼키는 순간에 반사적으로 든 생각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물이 맛있다고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물을 마시고 나서야 겨우 정신이 돌아온 나는, 그제야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래 누나. 이건 도대체 뭐야? 어떻게 갑자기 땅에서 바위가 솟아오르고 물이 흘러나온 거야? 누나가 한 거야? 어떻게?”


내가 흥분을 감추지 않고 질문을 공세를 퍼붓자 나래는 내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이것이 정기술이다. 나의 기원을 바위와 물이 들어준 것이다.”

“기원? 자연에게 부탁을 했더니 들어 준거란 말이야?”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하는 나를, 웃으며 바라보던 나래는 바위 위로 날아올라 앉아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해동정본심서에 이르길, 정기술(精氣術)은 다른 말로 기원술(祈願術)이라고도 한다. 자연 만물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내가 나무가 되고 내가 바위가 되고 내가 산과 강물이 되어 나의 뜻이 너의 뜻이고 너의 뜻이 나의 뜻이 되는 것이니,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한 모든 것이 그 기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느니라. 그러므로 천(天)과 지(地)와 인(人)은 하나다.”


너무 어려운 말을 들어버려 내가 이해 못 하고 멍해 있자 나래는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나에게 이어서 말했다.


“그래 아직은 몰라도 괜찮다.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자꾸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응. 알겠어.”


나래가 말하는 정기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감도 잡히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언젠가 나도 이런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다시 꿈꿀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위저드가 되겠다는 나의 소중한 꿈 말이다.


내가 주먹을 불끈 쥐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나래는 바위에서 내려오며 나에게 말했다.


“그만 돌아가자. 수련 첫날부터 너무 늦으면 집에서 걱정하니까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내려갈 수 있도록 다시 뛰어라.”

“뭐!? 또 뛰라고!?”


나래의 말에 나는 내 몸 상태를 살펴봤다.

당장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는데 다시 뛰라니... 무리였다.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누나... 살려줘. 나 죽을지도 몰라.”

“이런 이런~ 정말 한심하구나. 어쩔 수 없지. 오늘은 특별히 내가 옮겨 주겠다.”


그 말과 동시에 나래는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내 발은 땅에서 떨어졌고 그렇게 나는 공중에 둥둥 떠 있게 됐다.


“으아아아앗!!”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르고 말았지만, 나래는 신경도 안 쓰고 이어 말했다.


“내일부터는 이런 것 없다. 죽든지 말든지 네 발로 여기까지 왔다가 다시 집에 가야 한다. 절대로 안 도와줄 테니까.”

“자.. 잠깐만! 내일도 또 여길 뛰어와야 한다고!?”

“그래. 이제 매일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와야 한다. 알겠나?”

“..... 응.”


나는 거의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렇게 나래와 함께 둥실둥실 날아서 집으로 도착하고 보니 해가 져버렸다.

내 꼴을 본 엄마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어디서 뭘 하고 왔길래 다 죽어가는 거야!?”

“어... 엄마 그게...”


그러나 엄마는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나래를 째려보며 말했다.


“얘! 너 도대체 우리 가람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래는 왜 화를 내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수련을 한 것뿐이다.”

“뭐!? 수련? 애를 이 꼴로 만드는 게 무슨 수련이야! 너 몬스터지!? 그래서 우리 가람이 홀려서 해치려는 거잖아! 당장 나가! 당장!!”


나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엄마와 나래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엄마, 진정해.”

“진정하기 뭘 진정해! 당장 내보내! 안 그러면 엄마가 쫓아낼 거니까!”


그러면서 엄마는 공격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 적을 태우는 불꽃이라!”


나는 서둘러 엄마의 손목을 잡으며 소리쳤다.


“그런 거 아니야! 엄마!!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러지 마!”


엄마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마법을 거두고는 나를 쳐다봤다.

나는 계속 엄마에게 말했다.


“있잖아... 나 다시 마법 같은 걸 쓸 수 있을지 몰라. 정기술이라는 건데... 그 아직 잘 몰라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 아무튼 한번 만 나 믿어줘. 응? 부탁이야 엄마...”


나의 간곡한 눈빛을 본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더니 내 손을 뿌리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엄마가 들어간 방문을 멍하니 보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 나에게 나래가 다가와 말했다.


“네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나를 싫어할 줄은 몰랐다.”

“그런 게 아니야. 엄마는... 나 때문에 화가 난 거야.”

“너 때문에? 왜?”

“.....”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아무 말도 안하자 나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때 소란을 듣고 밖으로 나온 할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밥은 묵었냐?”

“.... 아니.”

“밥도 안 묵고 이 시간까지 싸돌아댕긴 거여? 부엌에 밥이랑 김치찌개 해놨응께 배고프믄 퍼묵어.”

“응... 알겠어.”


나는 나래의 부축 받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 할머니가 혀를 쯧쯧 차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음 날, 새벽.

전신 근육통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거의 죽은 듯이 자고 있던 나의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람아, 일어나라. 수련 가자...”

“.....”


나는 도무지 움직일 수 없어 무시한 채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감싸더니 나를 뒤집어 거꾸로 들고 마구 흔들었다.

근육이 살려달라고 지르는 비명이 내 입 밖으로 나올 지경이 되자 나는 급하게 나래를 말렸다.


“아... 알았어! 누나! 일어날게! 갈게!”

“응! 그래야지. 빨리 나와라!”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온 나는 이를 악물고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으며 나래를 따라 달렸다.

그것이 위저드를 향한 새로운 희망의 길임을 믿으면서 말이다.

.

.

.

.

.

.

단 하루도 달리기를 쉬지 않았다.

그야말로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쉬지 않았다.

처음에는 엄마가 몇 번 나를 막으려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정말 미친놈처럼 계속 달리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수련을 시작하고 어느덧, 일 년이란 시간이 됐다.


정기술 수련을 시작한 지 일 주년이 되는 그날, 새벽에 눈을 뜨니 공교롭게도 감기에 걸렸는지 열이 제법 심하게 났다.

그러나 나는 쉴 생각 없어 나래에게도 말하지 않고 여느 때처럼 달리러 밖으로 나갔다.

고열 때문에 괴로웠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며 계속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내 몸의 감각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됐다.

그리고 나의 정신이 몸을 떠나 하늘로 날아 올라가 농로 위를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믿기 힘든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바로 다음에 일어났다.


분명 내 앞에 먼저 가고 있던 나래가 마치 내 정신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오더니 웃으며 말을 걸었다.


“지금 가람이 네가 느끼고 있는 감각을 기억 둬라. 알았니?”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대답하자 나래는 내 정신의 손을 잡고 아직도 뛰고 있는 내 몸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하지만, 그대로 오래 있다간 완전히 떨어져 나가 죽을 수 있으니 일단은 어서 돌아가도록 해라.”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라며 공중을 헤엄치듯 다시 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신이 돌아온 내 몸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시원하게 뒹군 나를 일으켜 세우며 나래가 말했다.


“이제 슬슬 때가 됐구나.”

“아우.. 아파! 때? 무슨 때?”


그러나 나래는 내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고 그저 웃기만 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응? 왜? 아직 산 정상에 안 갔다 왔잖아.”

“너 아프니까. 이만 돌아가 쉬자.”


그렇게 말한 나래는 웬일로 바람으로 나를 띄워 집까지 데려다주기까지 했다.

덕분에 그날은 수련 시작하고 처음으로 일찍 집에 돌아가 푹 쉴 수 있었다.



다음 날이 되자 다행히 열은 금방 떨어져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체내에 알람이 설정된 것처럼 자동으로 인시(새벽 3시~5시)에 눈이 떠지는 나는, 기계적으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평소 같았으면 먼저 나와 있을 나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엄마와 할머니가 자는 방을 살짝 열고 나래가 있는지 확인해 봤다.

그러나 나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먼저 출발했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혼자 뛰기 시작했다.

지난 일 년간의 달리기로 이제는 산 정상까지 두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빨라졌다.


쉬지 않고 달려 적당히 몸이 예열될 때쯤 산 정상에 도착한 나는, 숨을 고르며 나래가 바람 샘이라 이름 붙인 신비한 물이 나오는 바위에서 목을 축이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다.


한순간에 모든 어둠을 물러나게 하는 태양이 떠오르는 장엄한 순간을 보자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채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양을 향해 포효하듯 소리쳤다.


“아아아아아아아!!”


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온 산에 울려 퍼졌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길을 내디뎠다.


나래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가람아~”


나래는 나를 부르며 하늘을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었다.


“나래 누나? 어디 갔었어?”


내가 묻자 나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먼저 와서 찾을 것이 있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찾았어?”

“응! 찾았다.”

“뭘 찾는 거였는데?”

“그건 따라와 보면 안다. 이쪽이다!”


그렇게 말하며 나래는 먼저 앞서 날아가 버렸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서둘러 그 뒤를 따라 달렸다.


나래를 뒤를 따라 한참을 달려가 도착한 곳은 어느 깊은 숲속에 있는 소나무 숲이었다.


“응? 여기야? 여기서 뭘 찾았는데?”


내가 묻자 나래는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말했다.


“나는 이 숲 자체를 찾고 있었다.”

“여기를? 도대체 왜?”


내가 물어보자 나래는 나를 보며 대견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 네가 자연과 합일을 이룰 때 말이다. 이 정기가 충만한 숲에서 너는 자연과 합일을 이룰 것이다!"


작가의말

5월의 마지막 주를 시작하는 오늘도 무사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랄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3 n6******..
    작성일
    24.05.27 10:27
    No. 1

    가람이가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았고, 조선의 최고 정기술사가 조상이면...
    마법은 인간세상을 파괴하는 몬스터를 파멸시키는 것이고
    해동정본심서의 정기술은 자연에 기원하여 의를이루는것 같은데..정기술이, 정적인것이 인간에게 더욱 잘맞을것 같은 느낌.. 최고 위저드와 정기술사 ㄷㄷㄷㄷ
    다음화가 더욱 기다려집니다.

    찬성: 1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법을 못 쓰는 나, 위저드리 마스터가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독자 여러분께 +1 24.06.21 40 0 -
20 19화 - 떠나다 24.06.21 17 0 21쪽
19 18화 - 계시몽 +1 24.06.19 27 0 21쪽
18 17화 - 재앙 종결자 +1 24.06.17 26 0 19쪽
17 16화 - 사춘기 솔이 +1 24.06.14 37 0 19쪽
16 15화 - 신내림 +1 24.06.12 189 0 21쪽
15 14화 - 던전 +1 24.06.10 145 0 20쪽
14 13화 - D등급 재앙 +1 24.06.07 152 0 20쪽
13 12화 - 솔이 +1 24.06.05 127 0 21쪽
12 11화 - 등선(登仙) +1 24.06.03 139 0 21쪽
11 10화 - 정(精)의 길3 +1 24.05.31 141 0 21쪽
10 9화 - 정(精)의 길2 +1 24.05.29 133 0 21쪽
» 8화 - 정(精)의 길1 +1 24.05.27 132 0 20쪽
8 7화 - 해동정본심서(海東精本心書) +1 24.05.24 131 0 22쪽
7 6화 - 재회 +1 24.05.22 167 0 20쪽
6 5화 - 조이현 +1 24.05.20 139 0 21쪽
5 4화 - 승리의 포효 그리고 절망 +1 24.05.17 135 0 20쪽
4 3화 - 기말 실기시험 +1 24.05.15 157 0 20쪽
3 2화 - 노력과 동정 +1 24.05.13 153 0 19쪽
2 1화 - 노마 유가람 +1 24.05.10 170 0 20쪽
1 프롤로그 - 소년의 꿈 +1 24.05.08 684 0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