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못 쓰는 나, 위저드리 마스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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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한
작품등록일 :
2024.05.08 22:32
최근연재일 :
2024.06.2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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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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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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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 정(精)의 길2

DUMMY

“잠깐만... 자연과 합일?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 다시 물어봤다.

나래는 고개를 한번 끄덕거리더니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쪽이다.”


그렇게 나는 나래 손에 이끌려 숲속 깊숙이 더 들어갔다.

이윽고 우리가 도착한 곳에는 신기한 모양의 하얗고 납작한 바위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딘가 거북이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바위는 나무 사이로 내려오는 아침 햇빛을 받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분위기에 압도돼 잠시 말을 잊고 말았다.

그러다가 나래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 바람에 퍼뜩 정신이 돌아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어... 이제 뭘 하면 돼?”


나래는 바위 쪽으로 날아가더니 손가락으로 바위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앉아라.”


나는 시키는 대로 바위 위에 올라가 앉았다.

그리고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데 나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저기... 나래 누나? 그래서 이 다음은 뭘... 어라?”


그러나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 나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정기술을 가르쳐 준다더니... 그냥 장난친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다시 바위에서 내려오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에 실린 나래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아직이다. 가람아...’


나는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나래 누나!? 어디 있어? 도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건데!?”


그러나 나래는 다시 입을 다물었는지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해야겠지?’


그렇게 나는 뜬금없이 소나무 숲속 한가운데 있는 거북이 모양의 바위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게 됐다.


초여름 햇살에 점점 기온은 달아 올라갔지만,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덥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바위에 멍하니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솔잎이 내는 노랫소리를 듣고 있자니 점점 나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저절로 감기는 눈꺼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감고 바위에 천천히 드러누웠다.

적당히 따뜻한 바위의 온기가 몸을 감싸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잠이 들어도 좋겠다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의식은 또렷했다.


그렇게 나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그대로 계속 있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마나 회로를 다치고 영영 마법을 못 쓰게 된 후 방에 틀어박혔을 때도 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서는 절망감, 허탈감, 우울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들에 시달리느라 바빴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완전한 고요의 평화가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게 진짜 여유라는 건가?’


갑자기 찾아온 여유로움 탓인지 뜬금없이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돌아보면 어려서부터 위저드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바쁘게 계속 뭔가를 하고 있었다.

특히 CMDS(선천성 마나 결핍 증후군) 판정을 받고 난 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노력만이 전부라고 생각해 내가 생각해도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뭐든 했었다.


‘정말 쉬지 않고 계속 달려왔구나. 나...’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한다면 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바보같이 안일한 믿음이었다.


‘내 꿈은 위태롭게 쌓아 올린 모래집이었어. 툭 치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는...’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슬퍼지려 하는 그 순간이었다.


“그럼 모래 말고 튼튼한 돌로 다시 쌓으면 되겠다. 그렇지?”


갑자기 어디선가 나래의 목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그제야 나는 내 정신이 또다시 몸을 떠나 공중에 날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밑에 내 몸이 바위 위에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으아아아! 또.. 또야!?’


당황한 내 정신이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어느 틈엔가 나타난 나래가 내 곁에 다가와 말했다.


“진정해. 가람아. 이미 어제 한번 겪어본 일이잖니.”

‘어떻게 진정을 해! 잠깐 한번 겪은 일에 그렇게 빨리 익숙해질 수 있겠냐고!’

“어휴~ 엄살은... 일단 나를 봐라.”


나래는 내 정신의 양손을 잡고 자기 쪽으로 돌려 얼굴을 바라보게 했다.

조용히 웃고 있는 나래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혼란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내가 진정되자 나래가 말했다.


“어때? 이제 괜찮지?”

‘어. 좀 나아진 것 같아. 어? 어라? 근데 내 말은 어떻게 알아 듣는 거야?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문득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내가 물었다.

나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럼. 지금 몸과 정신이 분리된 상태다. 분리된 정신은 순수한 정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원래 자연의 정기로 만들어진 나는 네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 그렇구나.’


솔직히 이해는 안 됐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래가 이어서 말했다.


“그것보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나?”

‘여기? 여기는... 아까 그 소나무 숲 아니야?’


나는 주변에 자라있는 소나무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러나 나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이곳은 「자연계」이다.”

‘자연계? 그게 뭐야?’

“후후... 직접 네 눈으로 봐라.”


나래는 갑자기 내 양손을 잡은 채 더 높이 날아올랐다.

나무들에 가려져 있던 하늘 위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나래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원래 있던 곳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곳에 와 있었다.


우주를 눈앞에 펼쳐 놓은 듯 별들이 운행하는 것이 보이는 하늘.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펼쳐진 산천초목과 수많은 동물의 형태를 한 정기들이 형형색색의 빛무리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동물의 정기 중에는 고대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용(龍)종도 보였다.


나래가 이곳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줬다.


“자연계는 원시의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정기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모든 자연의 정기는 이곳을 통해 현세로 나아가 순환한다. 그리고 이곳이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신비로운 광경에 감동한 나는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런 내 표정을 본 나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때? 내 고향은 정말 아름답지?”

‘응... 너무 아름다워. 나래 누나.’


그렇게 한동안 넋을 놓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일정한 형태 없는 녹색 빛깔의 빛무리가 호기심 어린 동작으로 조금씩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잡고 있던 나래의 손을 놓고 그 빛무리에 가까이에 날아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빛무리는 화들짝 놀라더니 후다닥 도망가 내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걸 본 나래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나는 조금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적이며 나래에게 물었다.


‘방금 그건 뭐였어?’

“후후~ 네 몸이 누워있는 숲에 사는 소나무의 정기들이다. 사람의 정신을 자연계에서 처음 봐서 신기했는지 보러 왔다가 그만 겁을 먹었구나.”

‘그랬구나. 미안하게 됐는데?’


나래는 다시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 몸으로 돌아가자.”

‘어? 벌써? 좀 더 있고 싶은데?’

“더 이상은 네 몸이 버티지 못해.”

‘아.. 그렇구나.’


나는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래는 웃으며 내 마음을 달래주듯 천천히 누워있는 내 몸쪽으로 이끌었다.


“그럼 저쪽에서 보자.”


그렇게 말하며 나래는 내가 몸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나는 잠깐이지만 어딘가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익숙한 몸의 감각이 전신을 뒤덮는 순간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이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허억!!”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거북 바위 위에서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었던 광경이 마치 꿈속에서 보던 것처럼 느껴져 뭔가 슬프도록 허무했다.


허무감에 이어 찾아온 것은 엄청난 피로감이었다.

마치 몇 시간 동안 전력 질주를 한 것 같은 피로감에 짓눌리며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주변이 어두 컴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야... 벌써 밤이 됐어? 내가 얼마나 저쪽에 가 있었던 거지?”


주머니에서 마나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벌써 밤 9시였다.

대충 계산해도 10시간 정도는 저쪽에 있었다는 말이었다.


“어때?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지?”


나래가 내 곁으로 날아와 앉으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그쪽에는 끽해야 5분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묻자 나래가 웃으며 대답해줬다.


“아직 수련이 부족해서 그런 것뿐이다. 합일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자연계로 갔기 때문에 시간 축이 크게 뒤틀렸지만, 계속 수련을 하면 그때는 현세와 시간에 차이가 없게 될 거다.”

“.... 그렇구나. 그럼 이제 나는 뭘 하면 돼?”

“지금까지 하던 것에 더해 오늘처럼 여기에 와서 명상 수련을 할 거다. 몸과 정신이 분리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말이다.”

“알겠어.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나도 정기술을 쓸 수 있게 되는 거지?”

“응. 언젠가는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나래는 갑자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말을 이었다.


“가람이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응? 뭔데?”

“너는 정기술을 왜 배우고 싶은 거지?”


나는 나래가 뜬금없이 던진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 그걸 이제 묻는 거야?”

“응, 대답해줘.”

“....”


아무래도 장난으로 묻는 것 같지 않아 나도 진지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글쎄...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위저드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오늘 바위에서 명상을 하면서 깨달았어. 내가 얼마나 허망한 꿈에 집착했는지 말이야.”

“모래로 지은 위태로운 집이라고 했었지?”

“그러고 보니 누나도 내가 생각하던 거 들었었지?”

“응.”


나는 솔잎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쩌면 나는 위저드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지도 몰라.”

“그러면?”

“내 삶에는 늘 자석처럼 따라오는 단어가 하나 있어.”

“어떤 단어?”

“불합리...”


그리고는 마나 회로가 망가져 버린 왼팔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대재앙을 겪고, CMDS 판정을 받고 그리고... 마법을 영영 잃어버리고... 마치 내 인생 자체를 방해하려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불합리한 무언가가...”


다시 나래에게로 시선을 돌린 나는 비참해진 기분을 애써 숨기며 말했다.


“나는 그저... 나를 가로막는 압도적인 불합리를 이길 힘을 원했던 걸지도 몰라. 예전에는 그것이 위저드가 되는 것이었고... 지금은 정기술인 것이지. 만약 정기술을 배울 수 없다면... 그때는 아마 또 다른 방법을 찾겠지.”

“.... 그렇구나.”


우리 둘 사이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쩍새의 울음소리에 잠깐 정신을 뺏길 무렵, 침묵을 깨며 나래가 나에게 물었다.


“만일 정기술을 얻어서 그 힘으로 너를 가로막는 불합리함을 모두 이겨내고 나면... 그 뒤에 너는 그 힘을 어디에 사용할 거니?”


아무래도 이 질문이야말로 나래가 나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었던 것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나처럼 불합리함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어.”


나의 대답을 들은 나래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결코 잊지 말아라. 날이 너무 늦었다. 그만 집에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며 나래는 먼저 앞서 날아갔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 놨던 말을 털어놔서 그런지 나래의 뒤를 따라 달리는 나의 마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집에 도착하니 밤 열두 시가 지나고 있었다.

마당 수돗가에서 대충 땀만 씻고 방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


“오늘은 많이 늦었네? 요즘에는 그래도 일찍 끝내는 것 같더니.”


엄마가 말했다.


“응, 오늘부터 새로운 수련을 시작해서...”


내가 대답을 들은 엄마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내일도 늦니? 복숭아 수확하는 날인데? 도와줄 수 있어?”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나를 대신해 나래가 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있으니까. 내가 가람이 몫까지 일하겠다.”

“그래? 나래가 도와준다면 뭐... 알았어. 배고프면 부엌에서 찾아서 먹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다시 잠자리에 들려는지 방문을 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를 불러 세웠다.


“엄마...”


엄마는 내가 부르자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명상 덕분에 마음이 열려서 그런지 나는 꼭 이 말을 엄마에게 해야 할 것 같았다.


“항상 고마워.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난 괜찮으니까.”


내 말에 엄마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부끄러워진 나는 얼굴을 붉히며 요깃거리라도 하려고 부엌으로 향했다.

나래는 장난스럽게 웃더니 뒤를 따라오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하지 마~”


내가 손을 치우며 거부했지만, 나래는 집요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음 날, 나래는 복숭아밭 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수련은 나 혼자 출발했다.

새벽 달리기로 정상에 도착해 나래 샘에서 목을 축이고 곧바로 소나무 숲으로 향한 나는, 거북 바위 위에 정좌를 하고 앉아 눈을 감았다.

동이 터오며 내리쬔 햇살이 나를 비출 무렵 내 정신은 또다시 몸을 떠나 자연계로 향했다.


도착하기 전, 나는 나래가 말한 주의 사항을 떠올랐다.


‘자연계 안에서 너무 오래 있지 말 것! 길어도 한 다경은 넘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정기들에게 무리해서 다가가지 말 것!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호기심 많은 자연의 정기들이 먼저 다가올 것이다. 소나무 정기들이 다가왔던 것처럼 말이다. 알았지?’


얼핏 들으면 지키기 쉬운 주의점 같지만, 막상 자연계에 들어오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금방 알게 된다.

정기들이 만들어 낸 저 빛무리의 향연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계의 풍경을 보고 있다 보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따위는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지금 넋을 놓고 주변의 풍경에 빠져 또다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만...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정신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제 나에게 왔었던 소나무 정기들이 또다시 다가오더니 갑자기 나를 휘감고는 다급한 몸짓으로 나를 끌어가기 시작했다.


‘어? 왜... 왜 이러는 거야? 무슨 일이야?’


내가 물었지만,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소나무 정기들은 그대로 나를 끌고 내 몸으로 나를 억지로 집어넣었다.

덕분에 나는 쫓겨나듯 자연계를 떠나야 했다.


“커헉!!”


어제 경험한 것보다 더 끔찍한 통증이 온몸을 감싸는 바람에 최악의 기분으로 일어난 나는,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호흡을 어떻게든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에 깔려있었지만, 그것보다 나를 더 놀라게 만드는 것이 눈앞에 있었다.


‘저게... 뭐야?’


어둠 속에서 붉은빛의 안광이 번뜩이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주머니에서 마나폰을 꺼내 플래시를 비춰보니 온몸이 뒤틀려 피부를 뚫고 나온 뼈 때문에 기괴한 형상으로 변해버린 사슴 한 마리가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몬스터가 되지는 않았지만, 꽤나 나락화가 상당히 진행됐어! 이거... 위험한데?’


위험등급으로 따지자면 G등급 이하로 일반인들 수준에서도 얼마든지 처리가 가능한 레벨이었지만 마법을 못 쓰는 나에게는 충분한 생명의 위협이었다.

나는 통증이 채 가시지 않은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 바위 아래로 내려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내가 달리자 사슴은 내 뒤를 쫓아 오며 괴성을 질렀다.


“꾸웨에에엑~!!”


한동안 술래잡기가 이어졌지만 숲속을 달리는 속도는 사슴이 훨씬 빨라 조금씩 따라잡히고 있었다.


‘쳇! 이대로 잡힐 바에야 차라리 싸우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바닥에 떨어진 내 주먹만 한 돌을 들고는 달려오는 사슴을 향해 던졌다.

내가 던진 돌에 사슴은 순간적으로 옆으로 뛰어 피해버렸다.


나는 다시 바닥에서 돌을 주워 던지려고 했지만, 사슴이 훨씬 더 빨리 나에게 접근해버렸다.

사슴은 그대로 목을 물려고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으악!”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곧이어 찾아올 고통을 참기 위해 순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슴에게 물리지 않았다.

뭔가 이상해서 살짝 눈을 떠보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흙바닥을 뚫고 솟아난 무수히 많은 나무뿌리가 사슴을 휘감아 붙잡고 있었다.

사슴은 고통스러운지 발버둥을 쳤지만, 단단하게 휘감고 있는 뿌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이 찬스를 놓칠 수 없었기에 나는 바로 바닥에서 큰 돌을 들어 올려 사슴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퍽! 퍼억! 퍽!!


한 번으로는 숨이 끊어지지 않기에 수차례 반복해서 가격한 끝에 마침내 사슴은 완전하게 침묵했다.

나는 검은 피가 묻어 뚝뚝 떨어지는 돌을 손에서 던져버리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헉... 헉...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헉...”


그렇게 숨을 고르고 있으니 사슴을 감싸고 있던 뿌리가 스르륵 풀리더니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 직후 희미한 작은 녹색 빛의 빛무리가 천천히 춤을 추듯 내려와 내 주변을 맴돌았다.


“너희들은 설마...”


정신이 자연계에 가 있을 때, 나를 깨웠던 그 소나무 정기들이 분명했다.


“그렇구나. 내 주위에 위험이 나타나서... 그래서 나를 급하게 깨우려고 한 거였어.”


만약 내 정신이 그대로 자연계에 남아 있었다면, 내 몸은 그 사슴에게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 한 채 죽었을 것이었다.


내가 알아본 것이 기쁜지 녹색의 빛무리는 살랑살랑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리고는 이내 천천히 사라져 모습을 감췄다.


‘방금 사슴의 공격을 막은 그 나무뿌리도 저 아이들이 보내준 것이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소나무에 다가가 껴안으며 말했다.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그러자 갑자기 불어온 한 줄기 바람에 소나무 가지가 일렁였다.

나는 그것이 ‘천만에’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염된 마나를 품은 채 썩어가는 사슴시체를 숲속에 버려두고 싶지 않았던 나는, 사슴을 어깨에 짊어지고 집까지 갔다.

생각보다 무거워서 가는 동안 몇 번을 쉬어야 했다.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던 차에 내가 갑자기 사슴시체를 끌고 나타나자 할머니와 엄마는 깜짝 놀라 난리가 났다.


“어이구 시상에... 이거 몬스타 아니여?”

“아니 뭐야! 아들! 설마 이거랑 싸웠어!? 어디 다친 거 아니야!?”


엄마가 나를 붙잡고 이리저리 돌려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엄마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그보다 할머니. 내일 읍사무소에 신고해서 이거 수거해갈 때까지 어디다 넣어놔야 할 텐데 어디가 좋을까?”

“일단 창고에 자루가 있응께. 그기 담아서 넣어놔.”

“응, 알았어.”


나는 할머니 말대로 한 뒤, 창고 문을 잠그고 나왔다.

창고 밖에는 나래가 웃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응? 나래 누나... 왜? 뭐 할 말 있어?”


내가 묻자 나래는 갑자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기술을 썼구나. 잘했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내가... 정기술을 썼다고? 언제? 나는 한 것 없이 그저 도움만 받았을 뿐인데?”

“소나무 정기들이 너를 구해주기 위해 움직였잖아. 그것이 곧 정기술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예전에 나래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렇구나. 예전에 누나가 정기술의 다른 말이 기원술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정기술이란 것은 결국 자연의 정기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말하는 건가? 내 부탁을 기꺼이 들어줄 만큼?”

“그 말이 맞기도 틀리기도 하다. 기억해라. 중요한 것은 합일이다. 하늘의 뜻, 땅의 뜻, 그리고 너의 뜻이 하나로 합일이 될 때 진정으로 정기술을 쓸 수 있을 것이다.”

“.... 글쎄 아직 잘 모르겠어.”


내가 이해 못 한 나머지 조금 시무룩해지자 나래는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조급해 하지 말아라. 지금처럼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

“.... 응”


그러나 그런 나래의 말에도 그때의 내 마음속에는 조급함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서 늘 행복하시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3 n6******..
    작성일
    24.05.29 10:43
    No. 1

    자연계! 하늘의 뜻, 땅의 뜻, 나의 뜻~~기원이 합해지면
    존재하고있는 산천초목등의 정기가 발동하는구나.
    신비롭고 신비로운 세계다! 정기술~~~~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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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 사춘기 솔이 +1 24.06.14 37 0 19쪽
16 15화 - 신내림 +1 24.06.12 201 0 21쪽
15 14화 - 던전 +1 24.06.10 156 0 20쪽
14 13화 - D등급 재앙 +1 24.06.07 163 0 20쪽
13 12화 - 솔이 +1 24.06.05 137 0 21쪽
12 11화 - 등선(登仙) +1 24.06.03 151 0 21쪽
11 10화 - 정(精)의 길3 +1 24.05.31 152 0 21쪽
» 9화 - 정(精)의 길2 +1 24.05.29 145 0 21쪽
9 8화 - 정(精)의 길1 +1 24.05.27 138 0 20쪽
8 7화 - 해동정본심서(海東精本心書) +1 24.05.24 140 0 22쪽
7 6화 - 재회 +1 24.05.22 173 0 20쪽
6 5화 - 조이현 +1 24.05.20 146 0 21쪽
5 4화 - 승리의 포효 그리고 절망 +1 24.05.17 140 0 20쪽
4 3화 - 기말 실기시험 +1 24.05.15 163 0 20쪽
3 2화 - 노력과 동정 +1 24.05.13 160 0 19쪽
2 1화 - 노마 유가람 +1 24.05.10 176 0 20쪽
1 프롤로그 - 소년의 꿈 +1 24.05.08 70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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