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등선(登仙)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래를 보며 내 마음도 한없이 무거워졌다.
처음 알게 된 역사의 뒷이야기에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선조의 희생과 눈물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래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 후, 나래는 눈물을 닦으며 나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갑자기 눈물을 보여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누나.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
“응? 무슨 말이냐? 네가 왜?”
나는 얼굴을 푹 숙이며 말했다.
“내가 정기술을 익히려고 한 것은 그저 나를 위해서 뿐이었어. 그런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됐어. 이 길은 그런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아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내 말을 들은 나래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너에게 전하고 싶었던 뜻을 네가 이해했구나.”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정기술의 근본은 홍익인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뜻을 가지는 것 중요한데, 나는 그런 마음 없이 그저 내 욕심을 우선시했으니 순수한 자연의 정기들에게 거부를 당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중요한 것을 알게 된 것이 기뻤는지 나래를 내 머리 쓰다듬는 것을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저기... 누나. 너무 오래 쓰다듬는 거 아니야?”
“뭐 어떠냐? 닳는 것도 아니다.”
“아니 이 정도 쓰다듬으면 닳을 것 같은데?”
“후후~ 칭찬은 받을 수 있을 때 많이 받아 둬라. 나중에는 받고 싶어도 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래가 얼마나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꽤 긴 시간 동안 쑥스러움을 참으며 쓰다듬을 당해야 했다.
한참 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 나는 쓰다듬어지는 것도 피할 겸 해서 나래에게 말했다.
“누... 누나.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 책에 깃들고 나서...”
나래는 손을 멈추며 말했다.
“아참,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었지. 알았다. 계속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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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깃든 내 의식은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바람의 신령... 모든 바람은 하나로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나는 즉시 내 의식의 일부를 책 밖의 다른 바람의 정기로 옮겼다.
덕분에 그 정기의 눈을 통해 덕형 할배의 행보를 지켜볼 수 있었다.
나를 해동정본심서에 깃들게 한 후, 덕형 할배는 그 책을 아내에게 맡기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덕형 할배의 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할배는 아내의 가만히 안아주며 말했다.
“임자, 그러니 우리 효성이와 이 책을 꼭 소중히 지켜주게. 그리고... 미안하네. 못난 남편을 만나게 해서...”
그러나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 말씀 마셔유. 지아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내 된 도리 아니것슈. 저희는 걱정하지 마시고 꼭 뜻을 이루셔유.”
“.... 고맙네. 임자.”
그렇게 둘은 눈물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아내와 아들을 먼 곳으로 피신시킨 덕형 할배는 인적이 없는 넓은 초원으로 갔다.
앞으로 벌어질 적들과의 싸움에 엄한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튼 덕형 할배는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그의 곁에 서서 적을 맞이하고 싶었지만, 정신만 다른 정기로 옮긴 터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덕형 할배가 적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며칠이 지났다.
할배가 명상을 하고 있는 초원에 스무 명 정도의 음양사들이 나타났다.
놈들은 음양술로 사방에 결계를 만들어 할배가 도망갈 수 없게 해놓은 채 점점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오고 있었다.
덕형 할배는 명상에서 깨어나며 큰소리로 외쳤다.
“네 이놈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러고는 노기 탱천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큰소리로 놈들에게 말했다.
“네놈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죗값을 하늘을 대신하여 내릴 테니 달게 받거라!”
덕형 할배의 호통이 천둥처럼 사방을 울린 순간,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가오던 음양사들은 긴장하며 저마다 술식을 펼쳐 다가올 무언가를 막을 준비를 했다.
이윽고 하늘을 찢을 듯한 우레와 함께 수많은 낙뢰가 음양사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르르릉! 콰아아앙!!
몇몇 음양사들은 미쳐 낙뢰를 막지 못하고 그대로 새까맣게 타버린 채 쓰러졌다.
그러나 대부분은 어떻게든 막아냈는지 곧바로 덕형 할배를 향해 부적을 날려 술식을 쏘아보냈다.
그들이 쏘아 보낸 부적에서는 온갖 요사스러운 식신들이 튀어나와 할배에게 달려들었다.
할배는 아무런 동요 없이 눈을 감은 채 바닥에 양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며 땅이 갈라져 내렸다.
몇몇 음양사들과 달려들던 식신들을 갈라진 땅속에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정기술의 힘에 당황한 음양사들은 잠시 태세를 정비하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덕형 할배는 놈들을 한꺼번에 소탕할 생각인지 하늘로 손을 뻗더니 이 일대에 홍수를 일으킬 만한 엄청난 양의 물을 만들어 하늘에 띄웠다.
놀란 음양사들은 주춤거리며 도망가려고 했다.
그렇게 완전한 승기를 잡아가고 있는 그때였다.
“커.. 커헉! 쿨럭!!”
갑자기 덕형 할배는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정기술로 사람을 해친 반동이 오고 만 것이었다.
할배가 만들어 공중에 떠 있던 물덩어리는 힘을 잃은 채 흩어지며 안개로 변해버렸다.
갑자기 생긴 짙은 안개 속에서 음양사들은 급변한 상황을 놓치지 않고 바로 공격을 감행했다.
그때 놈들이 쓴 술법은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것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긴 주문을 중얼거린 끝에 놈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곧이어 커다란 불덩어리가 생성됐다.
자연의 의지가 전혀 가미되지 않은... 그저 파괴를 목적으로만 만들어진 그 불덩어리를 보며 지켜보고 있던 나는 큰 두려움을 느꼈다.
불덩어리는 이내 덕형 할배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덕형 할배는 순순히 천명을 받아들이려는 것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른 정기에게 의식만 심어진 상태인 나는, 덕형 할배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마침내 놈들이 던진 불덩어리가 덕형 할배를 삼키려는 그 순간... 나는 보았다.
내 의식이 심어져있는 바람의 정기를 향해 미소짓고 있는 덕형 할배의 얼굴을 말이다.
그렇게 덕형 할배는 내가 보는 가운데 화염에 휩싸이며 산화하였다.
덕형 할배를 잃은 후로도 나는 바람의 눈을 통해 조선의 운명을 계속 지켜봤다.
정기술사를 모두 잃은 조선은 일찌감치 서구에 문호를 개방해 「마법」이라는 사술을 받아들여 무력을 강화한 일제의 침략을 당해낼 수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덕형 할배에게 최후를 가져온 그 파괴적인 술수가 바로 마법이었다.
조정의 많은 대신들은 자기 살길만을 찾아 앞다투어 일제에게 꼬리를 치며 나라를 등졌다.
임금은 조선의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바꾸며 백방으로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대한 제국은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을 통해 강제적으로 일제에 종속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저항의 불씨를 놓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들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조선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일제는 상상도 못 한 만행을 저질렀다.
훗날 「민족 말살 정책」이라 이름 붙은 이 만행은 조선 사람의 근본을 없애고 강제로 자신들에게 동화시키려는 정책이었다.
언어, 문화, 역사 등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모든 흔적을 없애기 위한 일제의 노력으로 결국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정기술의 명맥을 완전히 끊어 버리는데 성공하고 말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라는 해방을 맞이했지만, 곧 남과 북으로 갈라져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 땅은 큰 전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 전쟁에 서구의 열강들이 참전하면서 결국 그들의 마법은 이 땅의 근간으로 뿌리 깊게 자리하게 됐다.
그렇게 정기술은 지금까지 완전하게 잊히고 말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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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왜 마법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지금은 누구나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인 마법이 나래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은 사술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나는 내 평생 소중하게 공부해온 마법에 그런 숨겨진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조금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가려는 정(精)의 길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자 복잡한 기분은 이내 사라졌다.
이야기를 마친 나래는 나를 초원의 정중앙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여기였다. 여기가 덕형 할배가 마지막까지 홀로 싸웠던 자리였다.”
“그렇구나... 이곳에서 할아버지가...”
나는 자세를 가다듬고 나래가 가리킨 곳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엎드린 채 말했다.
“할아버지... 자손인 유가람이 할아버지께 인사드립니다. 너무 늦게 찾아뵈어 죄송해요. 아직 한참 부족한 저이지만,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정(精)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인사를 한 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래가 이어 말했다.
“할배... 가람이는 잘 할 거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지켜봐 줘.”
그러고는 조금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잠시 그곳을 바라보고 있던 나래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만 집에 가자. 지쳤을 테니 내가 바람으로 데려가 주겠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냥 뛸래. 어쩐지 그러고 싶은 기분이야.”
“그러냐? 알겠다.”
나는 다시 한번 할아버지에게 인사 올린 뒤, 나래와 함께 눈 덮인 초원 위를 달렸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가야 할 길이 명확해진 내 발걸음은 다시 태어난 듯 가벼웠다.
다음 날...
여느 때처럼 나는 소나무 숲의 거북 바위 위에서 명상을 통해 자연계로 들어갔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평소와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정기들에게 들이댔던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명상을 하며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자연계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내 정신을 하늘 높이 띄웠다.
그리고 무수히 빛나는 별들 사이 자리를 잡은 나는 드넓은 자연계를 내려다보며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명상을 하는 중에 또 명상을 하는 이상한 행동을 취하자 정기들은 오히려 호기심이 생기는지 먼발치에서 나를 지켜봤다.
그렇게 정기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는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솔직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자연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세에 놓고 온 내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런 걱정도 염려도 모두 접어두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유덕형 할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 줬기 때문이었다.
‘홍익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나의 마음과 뜻을 하늘과 땅에 일치시키는 것. 그것이 내가 가야 할 정(精)의 길이다.’
오직 이 한 가지만을 계속 가슴속에 새기며 명상을 이어나갔다.
.
.
.
.
.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사라진 시간 감각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굉장히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너무 긴 명상으로 내가 나라는 존재조차 망각해 버릴 무렵 일어났다.
갑자기 누군가 내 정신의 손을 잡는 것이 느껴져 나는 눈을 떴다.
처음에는 나래가 왔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내 손을 잡은 것은 어느 하얀빛을 발산하는 빛무리였다.
놀랍게도 그 빛무리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이곳 자연계에 정신을 보내왔지만, 이렇게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정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그것이 보통의 존재가 아님을 직감했다.
‘누구세요?’
그 빛무리는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내 손을 잡은 채 어딘가로 이끌었다.
나는 순순히 그 빛무리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간 내 눈앞에는 하늘을 뒤덮을 만큼 높이 자란 거대한 나무가 나타났다.
마치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세계수를 보는 듯한 나무의 위용에 내가 감탄하는 사이, 나를 이끌던 빛무리는 그대로 나를 그 나무로 나를 이끌어 내려갔다.
그렇게 나무의 뿌리 부근에 도달한 나에게 빛무리는 마치 손을 나무에 가져가 대보라는 듯한 시늉을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뿌리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내 정신 안으로 수많은 사람의 지혜가 밀려 들어왔다.
그것은 이 땅에 살아갔던 정기술사들의 지혜였다.
내가 너무 놀라서 손을 떼자 나를 인도했던 빛무리는 견디라는 듯 내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눈을 감고 다시 뿌리에 손을 올려 밀려오는 정보의 파도를 견뎌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지식 전달이 끝났는지 더 이상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눈을 뜨자 나를 인도했던 하얀 빛무리가 희미하게 웃는 것이 보였다.
그 미소를 보자 나는 왜인지 눈앞에 이 빛무리가 낯설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할아버지? 할아버지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빛무리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짓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그 손길을 통해 이 빛무리가 유덕형 할아버지임을 확신했다.
벅찬 마음에 내가 다시 뭐라 말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할아버지의 빛무리는 밝은 빛과 함께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와 동시에 나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내 몸이 있던 소나무숲 쪽으로 튕기듯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쫓겨나듯 자연계를 떠나야 했다.
마치 여기서의 일은 끝났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돌아온 내가 현세에서 눈을 뜨자 펼쳐진 숲의 풍경은 명상에 들기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명상에 들 무렵에는 분명 쌓여있던 눈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싱그러운 들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거기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따스한 온기와 봄의 내음을 품고 있었다.
‘내가 명상에 들어있는 동안 한 계절이 지난 거야?’
너무 달라진 주변 풍경에 놀라 내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내 어깨와 머리에 쌓여있던 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나는 손으로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바위에서 내려왔다.
달라진 것은 풍경만이 아니었다.
내 몸도 뭔가 이상했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몸이 가벼워.’
「자유」
그것이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였다.
그동안 내 육체를 관장하던 신경과 감각들이 감옥처럼 느껴질 정도로 몸이 자유롭게 느껴졌다.
너무 놀라운 나머지 나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그렇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 동안 신기해했다.
그때 저 멀리서 나래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어쩐지 오랜만에 보는 듯해 반가운 마음이 들어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어 앞으로 발을 굴렀다.
그 순간 마치 자연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몸이 둥실 떠올랐다.
“어? 뭐... 뭐야!?”
내가 너무 놀라 소리치자 때마침 다가온 나래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어떻게 공중에 뜰 때마다 반응이 똑같니?”
나는 그런 나래가 야속한 나머지 퉁명스럽게 한 마디하고 말았다.
“웃지만 말고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줘!”
나래는 계속 나오는 웃음을 참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나에게 다가왔다.
“하하하~ 설명이 필요하겠니? 축하한다! 가람아!”
“응? 무.. 무슨 축하?”
내가 조금 얼빠진 말투로 묻자 나래는 내 등을 두들겨 주며 말했다.
“드디어... 정기술사가 됐구나.”
“..... 뭐? 으아앗! 떠... 떨어진다!”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공중에서 버둥거리다가 바닥에 쿵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쓰읍... 아오! 머리야! 너무 아.... 프지 않네?”
바닥에 상당히 세게 머리를 찌었는데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내가 너무 당황하고 있자 나래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쯧... 몸은 선인이 됐어도 정신머리는 아직 멀었구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 몸의 변화가 이해됐다.
“아... 정기술사... 그러니까 선인이 되면 육체가 가진 속박에서 자유로워진다고 했지? 이런 느낌인 거구나.”
“그래, 그러니까 당분간은 그 자유로움에 익숙해지기 위해 꽤나 수련을 해야 할 거다.”
“하하... 역시 정기술사가 됐어도 수련은 계속해야 하는 거지?”
“당연하지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날아올라 봐라!”
나는 나래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연계에서 하던 요령을 떠올리며 발을 굴러 몸을 공중에 띄웠다.
“정신으로만 날 때 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네.”
나래는 나에게 다가와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잡아주듯 내 양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금방 익숙해질 거다. 자 따라와라.”
나는 나래를 따라 처음 자연계에 갔을 때처럼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자연계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현세도 역시 멋지네.”
내가 사방을 둘러보며 말하자 나래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자연계 만큼은 아니라... 과연 그럴까?”
“?... 무슨 뜻이야?”
“눈을 똑바로 뜨고 다시 자세히 봐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래 말대로 조금 더 집중하여 주변을 바라봤다.
그러자 놀랍게도 자연계에서 보던 수많은 정기의 빛무리가 현세에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동안 현세에서는 소나무 정기들 외에 다른 정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와... 몰랐어. 현세에도 정기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내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렇게 말하자 나래는 사뭇 진지한 말투로 설명해줬다.
“가람아, 기억해라. 너는 이제 자연과 합일을 이룬 선인... 현세와 자연계 두 세계에 걸쳐있는 특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정기술이라는 큰 힘을 다룰 준비가 된 것이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가슴에 깊이 새긴 홍익인간의 뜻을 결코 잊지 않을 테니까.”
내 말에 나래는 눈물을 글썽이며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는 품에서 해동정본심서를 꺼내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제 이 책은 네가 가지고 있어라.”
“어? 괜찮아? 누나한테 무엇보다 소중한 책이잖아.”
내가 받기를 머뭇거리자 나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책의 역할은 끝났다. 그러니 네가 맡아서 정기술의 명맥을 잇는데 사용하도록 해라.”
“.... 알겠어.”
나는 책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빛바랜 이 고서가 가진 의미를 생각하자 내 손이 상당히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책을 보고 있다 보니 문득 자연계를 떠나기 전 있었던 일이 떠올라 나래에게 말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 자연계에서 할아버지를 만난 것 같아.”
그러나 나래는 내 말에 전혀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무슨 말이야?”
나래는 내 손에 들려 있는 해동정본심서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네가 자연계에서 만난 덕형 할배는 본인은 아니다. 이 책에 남겨놓은 그의 정기의 파편이다. 그 역할은 네가 준비가 됐을 때, 너를 「신단수」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신단수... 설마 내가 봤던 그 거대한 나무가 신단수였어?”
“맞다. 신단수는 첫 번째 정기술사였던 단군 때부터 이어진 정기술사의 지혜를 모아두는 신성한 나무다. 할배의 파편은 그 신단수에 너를 안내하여 네가 그 지혜를 계승 받고 진정한 정기술사가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나래의 말에 나는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랬구나. 그래서 계승이 끝나자마자 그렇게 사라져버리셨던 거구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데?”
나래가 묻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 까먹었어.”
“뭐냐. 그게 후후후...”
나도 함께 웃다가 먼저 앞으로 날아가며 나래에게 말했다.
“그럼 집에 가볼까? 엄마랑 할머니 보고 싶다.”
내 말에 나래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조금 곤란하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저기... 집에 가려면 각오는 해두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어? 각오?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있잖나. 네가 명상 수련에 들고 나서 벌써 수개월이 흘렀잖아? 그래서... 네 할머니가 아주 많이 화가 나 있어.”
“...... 나 이제 선인이니까... 그... 할머니가 때리는 것도 아.. 안 아프지 않을까?”
“글쎄다. 나도 모르겠다. 직접 확인해봐라.”
“.... 응.”
나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집을 향해 날아갔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도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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