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못 쓰는 나, 위저드리 마스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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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한
작품등록일 :
2024.05.08 22:32
최근연재일 :
2024.06.2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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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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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 떠나다

DUMMY

나는 밖으로 나와 엄마와 할머니에게 내가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었다.

내 설명을 들은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뭐야~ 결국에는 그냥 꿈에서 조상님 만났다는 거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맞아. 비슷해.”


엄마는 솔이를 보며 한소리 했다.


“너는 왜 갑자기 호들갑을 떨어서 사람을 놀라게 만드니?”


엄마의 말에 솔이는 억울해하며 대꾸했다.


“눈 뜨자마자 가람이 보이지도 않는 할아버지에게 엎드려 절하면서 중얼거리고 있는 걸 봤는데 어떻게 안 놀라!?”


내가 생각해도 기괴한 장면이었을 것 같아 나는 순순히 솔이에게 사과했다.


“하하... 놀라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솔이야.”


하지만 솔이는 쉽사리 토라진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렇게 솔이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고 있는 그때, 공중에서 나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다들 나와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분위기를 전환시킬 겸 일부러 나래에게 더 반갑게 손을 흔들어 맞이하며 말했다.


“고생했어~ 나래 누나. 어땠어?”

“고생은 뭘. 너랑 솔이가 더 많이 고생했지. 이제 이 주변에 남아있는 몬스터는 없다. 재앙도 끝났고 이제 안심해도 돼.”


그 말에 엄마는 기뻐하며 나래에게 말했다.


“우리를 지켜줘서 고마워. 나래야. 어머니도 빨리 한 말씀하세요. 따지고 보면 어머니가 고집부려서 나래가 고생한 거니까.”


엄마의 닦달에 할머니는 헛기침을 하며 마지못해 나래에게 말했다.


“크흠... 고맙다. 나래야. 그리고... 미안허다.”


나래는 웃으며 대답했다.


“후후... 나보다는 가람이가 고생이 많았지. 이 재앙이 더 커지지 않게 막은 것도 가람이고 끝낸 것도 가람이니까.”


나래의 말에 엄마와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두 사람 다 몰랐다.

동안 걱정할까 봐 내가 재앙 일에 제대로 엮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끽해야 나래를 도와서 주변 몬스터를 잡고 있는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어쩐지 죄책감이 들어 엄마와 할머니의 눈을 못 마주쳤다.


그때 나래가 나에게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잘했다. 이제는 어엿한 정기술사가 됐구나.”


나는 눈을 감고 그 손길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나래에게 인정을 받고 나니 이제야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그런데 나 오기 전에 무슨 일 있었어? 다들 마당에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나래가 물었다.

나는 내가 자는 동안 겪었던 일을 나래에게 말해주었다.

설명을 마지막까지 묵묵히 듣던 나래는 내 말이 끝나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꿈에서 덕형 할배가... 아무래도 계시몽을 꾼 것 같구나.”


나래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계시몽? 그게 뭐야?”

“깨달음을 가져오는 신묘한 꿈을 말한다. 예로부터 정기술사들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때 이런 계시몽을 꾸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구나. 그렇다는 것은... 유덕형 할아버지와 만난 것도 역시 전부 꿈에 불과했던 건가?”


그 모든 경험이 그저 허무한 꿈에 불과하다는 것에 아쉬워하자 표정을 짓자 나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단다. 계시몽은 네가 계승 받은 선조들의 지혜에서 오는 것이니 아마 덕형 할배가 살아 있었다면 너에게 꼭 주었을 가르침을 꿈이라는 형태로 준 것이니 덕형 할배를 직접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지.”

“정말? 그렇다면 다행이다.”

“응? 다행이라고? 뭐가 말이냐?”

“할아버지가 나한테 그러셨거든. 나래를 잘 부탁한다고...”


내 말에 나래는 조금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만약 이게 평범한 꿈에 불과했다면 할아버지가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도 허상이 되니까 너무 허무하잖아.”

“.... 그렇구나.”


내 말에 나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어찌나 쓸쓸해 보였는지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러자 자기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아 버린 것을 느낀 나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미안하다. 그래서 계시몽에서 무엇을 깨달았니? 아마도 아주 중요한 것일 텐데.”


나래의 물음에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내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자 엄마가 뭔가 눈치를 챘는지 입을 열었다.


“아들... 무슨 말을 하려는데 그렇게 말을 못 꺼내? 그럴 때마다 너 꼭 엄마가 걱정되는 말만 했었는데?”


역시 엄마는 나를 너무 잘 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 방랑길에 나설 거야.”


내 말을 들은 엄마와 할머니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바로 이어서 설명했다.


“무아불망아(無我不忘我)... 나를 잊되 내가 누구인지 잊지 말라는 것이 계시몽의 가르침이었어. 원래의 삶을 잊고 정기술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 나는 이 가르침을 그렇게 이해했어.”


그리고는 엄마와 할머니를 번갈아 보며 진지하게 이어 말했다.


“나는 이 땅에 남은 마지막 정기술사로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킬 거야. 그것이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나의 일이니까.”


내 말이 끝나자 우리가 모여있는 마당에는 아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엄마 굳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할머니는 등을 돌려버렸다.

이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솔이는 내 어깨 위에 앉아 눈치를 보며 내 뺨에 손을 올렸다.

나는 잠시 솔이의 솔방울을 쓰다듬어주며 안심시켜줬다.


침묵을 지키던 엄마는 화가 많이 났는지 한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들이 갑자기 집을 나가 떠돌이 방랑자가 되겠다고 하는데 저렇게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에 미안함이 커져갔다.


그런데 잠시 후, 화가 나서 들어가 버린 줄 알았던 엄마가 외출복을 차려입은 채 가방 하나를 들고 방에서 다시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엄마? 어디가?”


그러자 엄마는 나를 보며 말했다.


“따라와. 엄마랑 갈 곳이 있어.”


그러면서 먼저 마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나는 영문을 몰라 할머니와 나래를 번갈아 보다가 솔이를 데리고 급하게 뒤를 따라갔다.



가는 동안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 속을 읽을 수 없어 눈치만 보며 조용히 뒤를 따라가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다가 문득 나는 우리가 아주 낯익은 길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이 길은... 설마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이...’


나의 예상이 맞았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온 곳은 아버지가 쉬고 있는 묘소였다.


엄마는 가방에 챙겨온 봉투 하나를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들, 여기에 든 거 저기에 쭉 깔아줘.”


봉투 안에는 과일 몇 개와 소주 한 병이 들어있었다.

나는 엄마가 시킨 대로 묘소 앞에 놓인 작은 제단에 펼쳐놓고 종이컵에 소주를 한 잔 따라 함께 놓고는 아버지에게 절을 올렸다.

내가 절을 하자 그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솔이도 따라서 절을 했다.

그렇게 나와 솔이가 두 번 절을 하고 반절까지 마치자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제단에 있던 종이컵을 들어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엄마 얼굴과 소주가 든 그 종이컵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엄마가 말했다.


“뭐해? 빨리 받아.”


뭔가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일단 그 컵을 받아 들었다.

엄마는 다른 종이컵 하나를 꺼내 소주를 따르더니 내가 들고 있던 잔에 부딪히고는 자기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쓴 소주 맛에 엄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엄마가 술 마시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멍한 표정으로 엄마를 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안 마셔? 꿈에서 조상님하고 마셔봤다며? 얼른 마셔.”


나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 진심이야. 엄마?”

“그럼. 네가 그걸 마셔야 엄마가 이야기를 시작하지. 어서 마셔.”

“...... 알았어.”


설마 이런 형태로 엄마와 술잔을 나누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숨을 참으며 종이컵에 반쯤 담겨 있던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씁쓸한 맛에 인상이 써지긴 했지만, 꿈에서 유덕형 할아버지와 마셨던 술보다는 확실히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가 한 번에 마시는 모습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잘 마시네. 우리 아들. 아빠 닮아서 그런가?”

“응? 아버지가 술을 잘 마셨어?”

“그럼. 네 아빠가 술이 얼마나 셌는데. 엄마가 네 아빠랑 사귀게 된 것도 대학에서 술 내기하다가 져가지고 사귄 거야.”

“뭐!? 진짜!? 술 내기!? 엄마가!?”

“그땐 엄마가 웬만한 남자애들보다 훨씬 잘 마셨거든. 날 이긴 사람은 네 아빠가 처음이었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엄마 아빠의 연애사에 꽤나 충격을 받은 나는 잠시 말을 잊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와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가 시작됐다.


첫 데이트에 긴장한 아버지가 촌스러운 양복을 입고 나타난 이야기, 군대 입영 날 엄마를 붙잡고 울며 안 들어가려 하는 바람에 군인들에게 도움을 청해 억지로 끌려가게 했던 이야기, 아버지가 결혼식 전날 회를 잘못 먹고 배탈이 나는 바람에 예식 내내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던 이야기 등등 파란만장했던 내 부모의 사랑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듣던 나는 문득 생각이나 엄마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아버지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 거... 처음이네? 전에는 물어봐도 안 해줬잖아.”


엄마는 내 말에 쓸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맞아. 지금 생각하면 그러면 안됐는데... 그때는 너무 힘들었거든. 네 아빠가 없다는 게...”

“응... 이해해.”


나는 엄마 곁에 다가가 손을 잡아주었다.

엄마는 눈물 섞인 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감쌌다.

잠시 그렇게 있던 엄마는 뭔가 결심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말했다.


“이제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말해 줘야 할 것 같다.”

“응? 어떤 거를?”

“..... 네 아빠가 왜 죽었는지를 말이야.”

“.....”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늘 궁금했지만, 엄마가 결코 말해주지 않아 나도 잊으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평생 모를 거라 포기하고 있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는 것에 나는 긴장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네 아빠는 사실... 위저드였어. 임무 중에... 몬스터에게서 사람들을 구하려다가 순직했지.”


이 말을 시작으로 엄마는 그동안 마음에만 담아 두었던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결혼 후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위저드 채용에 지원했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마법 능력 평가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지원만 하면 대부분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단 위저드로서 마치 소모품처럼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면서 다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엄마는 아버지가 그만두길 원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고 한다.


‘난 괜찮아. 내가 조금이라도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그만큼 누군가는 안전해진다는 거니까. 이거 꽤 보람 있다고.’


그런 아버지는 결국 임무 중 순직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남겨진 엄마는 당연히 위저드라는 직업을 증오하게 됐다.

사랑하는 남편을 앗아간 일이니까.

그래서 내가 위저드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사실 속으로는 말리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그 사람 아들이구나 싶었어. 위저드가 돼서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다고 하는 너에게서 네 아빠의 모습이 보였거든.”


엄마는 나를 안아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잡지 않을게. 대신 약속해줘. 아들... 너는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엄마 혼자 두지 않겠다고... 알았지?”


엄마의 목소리가 눈물에 젖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마주 안으며 말했다.


“응... 약속할게. 꼭... 무사히 돌아올게.”


내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울자 솔이도 눈물이 나는지 함께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 모자와 신령은 아버지의 묘소 앞에서 한참을 서로 부둥켜안은 채 울었다.

그런 우리를 아버지도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간단한 세면도구과 갈아입을 옷가지를 대충 가방을 넣고는 등에 짊어졌다.

솔이도 자기 나름의 필수품을 넣은 작은 보따리를 몸에 두르고는 내 어깨로 날아와 앉았다.


나는 솔이의 솔방울을 쓰다듬으며 힘차게 말했다.


“그럼... 가볼까!?”

“응!”


방을 나온 나는, 마당에서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나래에게 다가갔다.

먼저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알았지? 밥도 잘 챙겨 먹고.”

“걱정하지 마. 엄마. 약속 지킬게.”


엄마 다음에는 나래가 나에게 말했다.


“잊지 마라. 너는 삼라만상과 하나라는 것을... 세상 모든 것이 너에게 힘을 빌려줄 거다.”

“응... 엄마와 할머니를 부탁할게.”


할머니는 나에게 별말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했다.


“다녀올게. 할머니...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해.”


할머니는 조용히 내 등 뒤로 돌아왔다.


“응? 왜 그래?”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할머니는 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짝! 소리가 나게 때렸다.


“아악! 왜 때려!?”


내가 소리치자 할머니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프거나 다치거나 하면 또 할미한테 응뎅이 맞을 줄 알어. 알겄어?”

“하하~ 응. 알겠어. 할머니.”


나는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미소 지었다.


이제 출발할 때가 됐다.

나는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모두에게 크게 손을 흔들었다.

눈물을 흘리며 마주 손을 흔드는 엄마와 무표정하지만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할머니 그리고 밝은 미소를 보내는 나래의 얼굴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그렇게 나는 가족들을 떠나 사람들을 돕기 위한 방랑길을 나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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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냉장고를 열고 어제 미리 준비해 놨던 봉투 꺼내 가방에 거칠게 넣었다.

그런 내 뒤에서는 망할 마누라가 계속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어휴~ 그놈의 산! 산! 맨날 산~! 쉬는 날이면 집안일 좀 도와주고 그러면 어디가 덧나냐!? 내 친구 희영이 남편은 어? 그렇게 가정적이라 은퇴하고서는 가족하고 그렇게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데! 당신은 도대체 뭐니!? 내 생각은 요만큼도 안 하지!?”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른 짐을 마저 가방에 챙겨 넣고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관문에 기대어 놓은 등산 스틱을 챙겨 들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마누라가 소리쳤다.


“당신! 그 문 열면 다시는 집에 못 들어올 줄 알아! 진짜야!”


나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고는 일 말에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안에서 마누라가 야! 하고 지르는 들렸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정년이 얼마 안 남아 회사에서 집에서도 눈칫밥만 먹는 나에게 있어서 등산은 유일한 안식처였다.

가파른 산길을 온 힘을 다해 오를 때만 내가 점점 쓸모없어져 가고 있다는 고독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차를 몰고 한참을 달려 등산 코스 시작점에 도착한 나는, 산 밑에 있는 휴게소 화장실에서 볼일만 본 뒤 곧장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10월의 산은 여느 때보다 더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덕분에 오늘따라 내딛는 발걸음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두 시간쯤 올라 도착한 약수터에서 물을 받으며 잠시 쉬었다.

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딱 기분 좋게 흘러내린 땀을 식혀줬다.

나는 그대로 앉아있던 벤치에 누워 높은 가을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고 있으니 꽉 막혀있던 내 마음이 저 푸른 하늘처럼 뻥 뚫리는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그렇게 나를 위로해주는 여러 요소가 함께 해서 그런지 갑자기 집에 놓고 온 마누라 얼굴이 떠올랐다.

새삼 내가 참 못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함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가는 길에 마누라가 좋아하는 빵이나 좀 살까?’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아까 화난 모습을 생각하면 그걸로 용서받기는 힘들 것 같아 조금 불안해졌다.

뭐 그거는 그때 가서 부딪혀보기로 하고 나는 다시 출발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내 눈 바로 앞에 거대한 검은 개 한 마리가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보디빌더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근육질에 위협적으로 튀어나온 송곳니 그리고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두 개의 꼬리는 이 개가 몬스터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 어째서... 재앙이 끝난 지 한참 됐는데...’


나는 몸이 굳어버린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크르르르르르.... 츄릅~”


몬스터는 낮게 으르렁거리다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봐도 나를 잡아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도망... 도망 가야 해!’


그렇게 생각한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빠른 주문을 외웠다.


“적의 누.. 눈을 멀게 해라! 블라인드 더스트!”


적의 시야를 방해하는 호신용 주문을 사용하자 내 손에서 몬스터의 눈을 향해 뿌연 먼지가 분사됐다.


“크와아아아앙!!”


제대로 맞은 몬스터는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뒹굴었고 그사이 나는 등산로를 따라 뛰어 내려갔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도망을 치는 바람에 얼마 가지 못하고 돌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으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굴러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렇게 높은 낭떠러지는 아니라서 목숨은 부지했지만, 사지는 부러져버렸는지 움직일 수 없었다.


“으으으....”


그렇게 아무것도 못 한 채 신음만 흘리고 있는데 마법 효과가 풀려 나를 쫓아온 몬스터가 낭떠러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 마법에 당한 것에 상당히 화가 났는지 붉은 안광이 더 강렬하게 빛나는 것이 보였다.

몬스터는 낭떠러지 위에서 내가 있는 곳으로 뛰어내리더니 마치 한 번에 죽여줄 생각이 없다는 듯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박살이 나버린 팔다리를 움직여 조금이라도 멀어지려고 버둥거렸는데 움직일 때마다 끔찍한 격통이 몰려왔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고 싶은 마음에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발버둥을 비웃듯 몬스터는 두 꼬리 중 하나를 화살 날리듯 쏘아 보냈고 그 끝에 달린 가시가 내 다리를 관통하며 땅에 박혔다.


“으아아아악!!”


나의 비명이 산중에 메아리쳤다.

그 비명을 시작으로 입이 트인 나는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제발 누가 좀 살려주세요!!”


하지만 평일에 그것도 이름 없는 이런 산중에 때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내 목소리는 허무하게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큰 소리에 자극을 받았는지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내 머리를 물려고 하는 몬스터를 보며 내 머릿속에 지나온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렇게 후회되는 일뿐인지...

그중에서도 가장 후회되는 것은 역시나 마누라에게 사과도 못 하고 간다는 것이었다.


‘미안해... 여보. 미안해...’


눈을 질끈 감고 마음속으로 힘껏 미안함을 전한 나는 죽음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놈의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해서 천천히 뜬 내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땅에서 무수히 많은 나무뿌리가 튀어나와 몬스터를 휘감아 조이고 있었다.


“케에엑! 켁켁!!”


점점 강하게 조여오는 뿌리 때문에 발버둥 치던 몬스터는 결국 검은 피를 뿜으며 숨이 끊어졌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나는 다쳤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나려고 움직였다가 다시 한번 몰려온 격통에 쓰러져버렸다.


그때였다.


“괜찮으세요?”


어디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힘겹게 목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봤다.

그곳은 바로 내 머리 바로 위... 공중이었다.

어떤 젊은 남자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거듭 눈앞에서 벌어진 놀라운 광경에 나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으으... 사.. 살려줘.”


내가 힘겹게 신음을 뱉듯 말하자 바닥에 내려온 남자는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이런... 심하게 다치셨네요. 조금만 참으세요. 솔이야.”


남자는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있나 싶어 살짝 시선을 옮겼는데 이번에 눈앞에 나타난 것은 머리에 솔방울을 단 녹색 빛의 작은 사람처럼 생긴 처음 기묘한 보는 생물이었다.


“솔이야. 회복의 정기술을 쓸 거야. 도와줘.”

“응! 알았어!”


세상에... 사람 말도 한다.

나는 연속되는 충격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어? 저기요!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남자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작가의말

마지막 업로드 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지로 자세히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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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화 - 계시몽 +1 24.06.19 27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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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 사춘기 솔이 +1 24.06.14 37 0 19쪽
16 15화 - 신내림 +1 24.06.12 204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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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 D등급 재앙 +1 24.06.07 165 0 20쪽
13 12화 - 솔이 +1 24.06.05 138 0 21쪽
12 11화 - 등선(登仙) +1 24.06.03 152 0 21쪽
11 10화 - 정(精)의 길3 +1 24.05.31 153 0 21쪽
10 9화 - 정(精)의 길2 +1 24.05.29 146 0 21쪽
9 8화 - 정(精)의 길1 +1 24.05.27 139 0 20쪽
8 7화 - 해동정본심서(海東精本心書) +1 24.05.24 141 0 22쪽
7 6화 - 재회 +1 24.05.22 174 0 20쪽
6 5화 - 조이현 +1 24.05.20 147 0 21쪽
5 4화 - 승리의 포효 그리고 절망 +1 24.05.17 141 0 20쪽
4 3화 - 기말 실기시험 +1 24.05.15 164 0 20쪽
3 2화 - 노력과 동정 +1 24.05.13 161 0 19쪽
2 1화 - 노마 유가람 +1 24.05.10 176 0 20쪽
1 프롤로그 - 소년의 꿈 +1 24.05.08 70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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