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몸이 타들어간다.
‘아파, 아파, 아파’
목도 메말라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무언가 인기척이 느껴지고 입에 조금씩 시원한 물이 들어왔다.
물을 먹으니 조금 살 것 같다.
하지만 왠지 몸을 까딱할 수조차 없다.
왜 이렇게 아픈 거지.
‘아파.’
쿠구궁—!
귀가 먹먹하다.
“.. 련ㄴ···.”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고 주위가 부산스럽다.
머리를 울리는 소음에 슬며시 눈 뜨자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머리 위로 무언가 얹어졌다.
시원한 느낌에 좀 더 정신이 드는 기분이다.
“···안.”
나를 계속 부르는듯해 그쪽을 쳐다보았다.
왠지 누군가가 굉장히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소년의 목에서 갈라진 신음이 나오는 순간 다시 번개가 쳤다.
밝은 빛과 함께 소년의 의식은 다시 까무룩 잠들었다.
***
던전과 헌터가 있는 세상은 늘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신물질 발견과 연구는 활발 해졌고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VR 머신을 활용한 가상 세계에서 시뮬레이션이 더욱 활발해졌다.
가상세계는 단순한 오락 거리가 아닌, 사람들의 쉼터이자 또 다른 현실로 자리매김했다.
다양한 VR 캡슐 머신이 보급되고, VR 캡슐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 것이 흔해졌다.
여러 회사들이 발 빠르게 VR 머신을 적극 도입해 업무를 보는 시대가 되었다.
전산 작업을 VR 머신으로 하는 것은 뇌의 부하를 줄이며 뇌 가속 시스템으로, 더 많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해줬다.
푸쉭-.
Vr 캡슐에서 나오자 연구원이 가운을 내밀었다.
흰 가운에는 이계 물질 관리 연구소 배지가 달려 있었다.
“고마워.”
“주임님. 이번 샘플 X 시뮬레이션은 꽤나 고무적입니다.”
“그래, 테스트 결과는 어떻지?”
연구원이 보고서를 내밀었다.
“이대로 진행해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보안에 좀 더 신경 쓰고. 이번에도 보니 누군가 해킹을 시도한 흔적이 있더군.”
“네. 그렇지 않아도 보안 팀장님 깨서도 주의하라고 하시더군요.”
“일단 방화벽을 체크하긴 했는데. 혹시 모르니 주의하고.”
“예.”
“그리고 제2 연구소에서 샘플 대여 신청이 들어와서 옮기려고 하니 준비해 주게.”
“네. 주임님.”
연구원 주임이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회사를 나왔다.
연구원이 손에 검은색 철제 가방을 들고 있었다.
쏴—
‘비가 많이 오는군.’
흰색 승용차가 시야를 가리는 비를 뚫고 외각 도로를 달렸다.
건너편에서 헤드라이트를 켠 트럭이 클랙슨을 울렸다.
“뭐야, 저 미—.”
끼익—!
쾅!
* * *
삐용 삐용 삐용.
"웬,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 거야.”
쏴 - .
우산을 든 청년이 빗물을 쓸다시피 걸었다.
‘으··· 오늘 게임부터 하려 했는데 일단 씻어야겠네.’
바닥을 보며 걷다가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어? 이게 뭐야.”
청년이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돌조각을 집었다.
검은 조약돌에서 은은하게 황금빛이 났다.
“이쁘네.”
흠뻑 젖은 우산을 털고 집에 들어와 불을 켜자 깨끗한 VR 캡슐이 보였다.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은 후 손에 쥐고 있던 빛나는 돌을 VR 캡슐 위에 뒀다.
“DLC 다운로드부터 할까.”
삑.
VR 머신을 켜고 오늘 발매한 네오 판타지아 월드 DLC 다운로드를 활성화했다.
“일단 씻자.”
쏴.
[네오 판타지아 월드 DLC 다운로드 중···.]
후다닥 씻고 나온 청년이 VR 캡슐을 훑었다.
“흠~ 흠흠~.”
던전 게이트에서 짐꾼 노릇 해서 겨우 모은 돈으로 이번에 새로 구매한 VR 캡슐을 볼 때마다 뿌듯했다.
F 급 헌터에겐 삶의 팍팍한 노동만큼 포상도 필요한 법.
외각 지역 허름한 옥탑방 작은 원룸에 VR 캡슐이 방안을 다 차지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캡슐에 누웠다.
[생체 인증을 완료했습니다.]
[환영합니다.]
[네오 판타지아 월드 DLC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네오 판타지아 월드를 시작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 창을 보며 설명을 넘겼다.
[동기화 진행 중 75%··· 90%··· 100%]
콰광!
챙그랑!
잠시 외각 지역 일대가 정전되었다가 빠르게 복구되었다.
번개가 들이친 옥탑방 에는 VR 캡슐 위 빛나던 돌이 사라졌다.
푸쉭-.
꺼멓게 타 연기를 내뿜는 VR 캡슐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 * *
“무···ㄹ.”
“도련님! 잠시만요.”
시종이 침대에 누워있는 자세를 고쳐주고 물을 건넸다.
꿀꺽.
“큼 큼, 아.”
“도련님 정신이 드세요?”
“이건.”
힘겹게 팔을 들어 올리자 앙상하고 얇은 손과 팔이 보였다.
‘몸에 힘이 안 들어가.’
“으···. 머리 아파.”
“잠시만요 도련님.”
시종이 헐레벌떡 나가고 잠시 뒤 우르르 사람들이 들어왔다.
“에드, 정신이 드니?”
뛰어온 듯 이마에 물기가 있는 적금발의 멋진 신사가 푸른색 망토를 휘날리며 물었다.
“네.”
찌릿.
[동기화 진행 중···.]
눈앞에 떠오른 문구를 보자 머릿속 닫혔던 문이 열렸다.
소년의 머릿속에 기억이 재생되었다.
‘아악! 아파.’
비명을 지르는 아이.
정원에서 쓰러져 사람들에게 들려가는 아이.
‘으 으, 더워. 더워.’
열병에 시달리며 끙끙 앓는 아이.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리며 점점 야위어 가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때때로 뛰어오는 적금발 신사와 흐릿한 여인 얼굴과 시종들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동기화 진행 중···.]
그리고 깨달았다.
‘아. 병들어 야윈 게 나구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적금발 신사 옆으로 회색 로브를 입은 노인이 앞으로 나와 소년의 이마에 주름진 손을 댔다.
“···.”
노인의 손이 녹색 빛을 냈다.
잠시 후 노인이 무언가 중얼거리곤 손을 떼며 눈을 감았다.
“다만경, 에드 상태가 어떤가?”
“큼.”
헛기침한 다만이 눈을 뜨곤 한 손으로 에드의 손목을 짚었다.
“맥이 미약하긴 하지만. 다행히 이번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신사의 푸른 눈에 안도와 슬픔이 드러났다.
“원기 회복 약을 준비하겠지만. 지금 보다 상태가 좋아지긴 힘들 겁니다.”
“그런. 무슨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
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에 말했듯, 희귀한 병이라서 제가 알고 있는 약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럴 수가.”
신사의 얼굴에 잔뜩 먹구름이 꼈다.
“일단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도련님의 의지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
신사와 노인이 침울한 기색으로 서있자 뒤에서 귀부인이 슬며시 나왔다.
“먼저 에드리안을 칭찬해 주시죠.”
“그래, 그렇지. 에드 장하다! 내 아들. 잘 견뎌주어서 고맙구나.”
“그래, 에드리안 고생 많았다.”
그 순간 에드리안의 가슴엔 미약한 통증과 따뜻함이 차올랐다.
“훅···. 으으···.”
“에드, 아가, 울지 말렴.”
갑자기 터진 눈물에 방안 사람들 모두 어쩔 줄 몰랐다.
에드리안은 전생에 경험하지 못한 가족에게 받는 사랑을 처음 느꼈다.
* * *
에드리안이 울자 잠시 소란이 일었지만, 다만과 귀부인이 스타파이어 백작을 말리며 소동이 진정되었다.
에드리안을 간호할 시종들만 곁에 남자 커다란 방안이 조용해졌다.
‘에드리안 스타파이어.’
지금 이 몸의 이름이다.
‘분명 VR 캡슐에서 네오 판타지아 월드를 켰는데···.’
순간 끔찍했던 고통이 전생의 것인지 에드리안의 것인지 경계가 흐릿하게 몰려왔다.
‘분명, 네오 판타지아 월드에서 스타파이어 변경백 장남은 어린 나이에 요절한 것으로 짧게 나온다.’
엑스트라라고 말하기에 민망한 거의 배경지식수준으로 나온 불운한 소년.
소년이 죽고 스타파이어 가문은 연달아 불운이 찾아와 도미노처럼 무너져 간다.
소년의 죽음을 다 슬퍼하기 전 폭주한 마물들이 스타파이어 백작령을 덮치고 그때 백작도 크게 상처 입는다.
그럼에도 저력 있던 가문이기에 버티지만 악의 세력에 의해 점차 몰락한다.
‘그러니까 나는 한 줄짜리 단역에, 하필 죽어가는 몸이네.’
“하-.”
“어디 편찮으십니까? 도련님.”
“아니. 그냥 답답해서.”
“창문을 조금 열까요?”
“응···.”
창문 밖을 보자 정원이 보였다.
정원 옆 공터에서 소년이 열심히 짐을 날랐다.
왠지 낯익은 얼굴이 멀어서인지 가물가물했다.
“저 아인...?”
“아. 리오군요. 얼마 전에 기사 종자가 되더니 요즘 아주 활기찹니다.”
“그래.”
찌릿.
짐을 들고 열심히 뛰어가는 리오를 보자 기억이 떠올랐다.
어딘가에서 홀로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 꼭 안아주며 위로했던 에드리안.
혼자가 된 리오를 성에서 살게 백작님께 부탁한 일이 떠올랐다.
기억 재생이 끝나자 때마침 시야 한편에 창이 떠올랐다.
[동기화 완료.]
[각성했습니다.]
각성이라는 말을 듣자 자연스레 상태창이 떠올랐다.
‘상태창’
[에드리안 스타파이어]
나이: 9세
종족: 하프엘프
[고유 능력 - VR 마법]
‘어? VR 마법이 뭐지?’
처음 보는 능력에 머릿속으로 의문을 떠올리자 설명 창이 떠올랐다.
[VR 마법]
[현실 조작 마법]
‘현실 조작?’
설마 하는 생각에 에드워드가 시종을 봤다.
“연금술서하고 마법서 좀 가져다줄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역사 관련 책도 좀 가져다줘.”
“예. 도련님.”
잠시 후 시종이 트레이에 책들을 올려 가져왔다.
“도련님 가져왔습니다.”
“고마워. 마법서부터 줄래?”
“예.”
에드리안이 순식간에 마법서에 몰두했다.
신기하게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읽혔다.
탁.
책 한 권 다 읽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마법의 기초를 습득하였습니다.]
[마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안내 메시지를 보자마자 곧바로 몸 안 마력이 움직였다.
우웅. 웅.
‘뭔가 막히는 곳이 많네.’
시선을 보조하듯 마나가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푸른색으로 표시되어 보였다.
‘어? 마나 로드?’
마나 로드를 보다가 깨달았다.
마치 폭풍이 할퀴고 가서 온몸의 마나 로드가 뭉치고 끊어진 것 같았다.
심장 부근부터 이어지는 대부분의 엉망진창이었다.
그나마 이어져 있는 곳도 얇아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게 보였다.
‘이상하게 뭉친 곳이 검은 안개가 낀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심각하네.’
혹시나 싶어 시종들을 봤지만 시종들의 몸속 마나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음. VR 마법이 보조해 주는 거겠지?’
“큰 거울 좀 가져다줄래?”
“예, 도련님.”
시종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거울을 가지러 갔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
일어나려 하자 시종이 옆에서 부축해 줬다.
“고마워.”
시종이 비켜서고 차분하게 전신을 훑었다.
푸석한 금발의 혈색 없는 깡마른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확실히 심각해.’
마나가 지나는 길을 보려고 의식하자 자연스럽게 몸에 푸른 마나가 보였다.
심장에서 뿜어지는 피랑 다르지만 마치 은은하게 빛처럼 퍼지는 마나가 보였다.
‘평소에 이런 느낌이구나. 그럼, 움직여 보면.’
은은하게 퍼지던 마력을, 의지를 담아 심장 쪽에서부터 움직여 봤다.
최대한 끊어져 보이는 곳을 피해 움직여 봤지만 계속 막혔다.
“큭.”
“도련님?!”
옆에서 지켜보던 시종이 놀라 에드리안을 부축했다.
‘겨우 이 정도에도 무리가 오네.’
“도련님, 오늘은 책 보느라 무리하셨으니 이만 쉬시지요.”
“알겠어.”
확실히 아픈 어린아이 몸으론 더 이상 무리였다.
‘큰일이야. 이 몸으론 나도 죽고 가문도 망해버릴 거야.’
에드리안이 침대에 눕자 시종들이 순식간에 거울과 책들을 정리했다.
어느새 시종 하나가 트레이에 미지근하게 데워진 컵과 작은 사탕을 가지고 왔다.
“도련님, 다만 님께서 만드신 약입니다.”
검은 갈색 액체에선 뭔지 한약을 썩힌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에드리안의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시종이 재촉하는 눈빛을 보내자 에드리안이 결국 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윽.”
“잘하셨습니다, 도련님. 꿀 사탕 드시지요.”
“고마워.”
입에 꿀 사탕을 넣고 굴리자 입안을 강타한 약 맛이 그나마 가시는 느낌이었다.
‘하. 조금 움직였다고 이 모양이라니.’
잠자리를 정돈해 준 시종이 조용히 방에서 물러났다.
‘로그아웃, 로그 아웃, 로 그 아 웃!’
혹시나 싶어 로그아웃을 속으로 외치던 에드리안이 스르륵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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