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물든 선택 (1)

미라벨이 학생들의 춤을 보며 활짝 웃었다.
“모두 잘했어~!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자.”
“우와!!!”
기진맥진해 하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학생들이 환호했다.
“모두 예술적 감각을 조금씩 더 키우도록 하고, 노래랑 춤을 연습해 와~!”
“네.”
“참! 조만간 다시 정령술 수업 재개할 테니 기대하라고~!”
“네!”
정령술 수업을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소식에 학생들의 표정에 기대와 안도로 가득 찼다.
그러나 몇몇 학생들은 트라우마가 떠올랐는지 불안해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퇴실했다.
에드리안과 기진 춤을 추며 맥진한 리오도 자리를 정리하고 강의실을 나섰다.
에드리안은 만돌린을 손에 들고, 오늘 배운 것들을 생각했다.
‘바드의 전달 능력을 익힌 건 뜻밖이었어.’
마력에 의지를 담는 전달 스킬을 잘 활용한다면 지금 보다 마법을 더 잘 다룰 수 있을 것이리라.
“도련님 수고하셨습니다.”
제임스가 에드리안의 만돌린을 받아서 들었다.
“고마워. 제임스.”
“배고프실 테니, 저녁 식사하러 가시죠.”
“그래.”
꼬르르륵.
“으아···. 춤췄더니 배가 등에 붙은 거 같아요.”
밥 먹자는 소리에 리오가 배를 붙잡았다.
“식당에 네가 좋아하는 양념 닭구이가 잔뜩 준비돼 있으니 조금만 참아라.”
제임스가 리오를 보며 쓴웃음 지었다.
“네!”
리오의 뒤에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환상이 슬쩍 보인듯했다.
세 사람이 서쪽 이클립스 하우스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이 에드리안의 방에 세 사람이 모였다.
“도련님. 백작님께서 선물을 보내 주셨습니다.”
제임스가 에드리안의 망토를 받아 정리하며 말했다.
“응? 갑자기 선물을?”
망토를 걸어둔 제임스가 고급스럽게 포장된 나무상자를 꺼내와 탁자에 올려놓았다.
에드리안이 포장을 풀고 상자를 열자, 안에는 금실로 스타파이어 문양이 새겨진 흰 가죽 장갑이 들어 있었다.
“이거 마력이 담겨 있는데?”
“역시 안목이 있으시군요.”
제임스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스타파이어 영지의 가죽 장인에게 고급 장갑을 만들게 한 후, 다만 경께서 쾌적하게 쓸 수 있도록 인챈트를 해 주셨습니다.”
“진짜 내 마음에 들어.”
에드리안이 장갑을 보며 눈을 빛냈다.
고급스러운 나무상자에서 가문 문장이 새겨진 흰 장갑을 꺼내 두 손에 꼈다.
커다란 장갑이 크기가 줄어들며 에드리안의 두 손에 꼭 맞았다.
장갑 표면에 은은하게 마력광이 흘러서 광택이 있는 벨벳을 장갑 같은 느낌이 났다.
“크기 조절 기능과 조금이지만 마법을 쓸 때 마력 조절을 도와주며 손에 땀이 차지 않도록 체온 조절 기능이 있습니다.”
장갑을 착용하는 것을 본 제임스가 흡족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우와! 잘 어울리세요! 에드 도련님.”
리오가 에드리안의 장갑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이건 평소에 끼고 계셔도 좋겠는데요!”
리오가 눈을 반짝였다.
제임스도 리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백작님께서 이것을 보내오셨습니다.”
제임스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새로운 나무상자를 꺼내 놓았다.
“이건, 뭐야?”
“백작님께서는 그동안 아카드리온에 계신 도련님의 안위를 걱정하셨습니다."
제임스의 말에 리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습격 사건 이야기를 들으시고 보내셨다고 합니다.”
에드리안이 단단한 나무 상자를 열자, 그곳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사슬 갑옷이 있었다.
“엘프가 사용하는 미스릴 사슬 갑옷입니다.”
은은한 마력광을 내는 은빛 사슬 갑옷은 그 자체로 신성한 힘이 느껴졌다.
“근데 이걸 입고 다니면 힘들지 않을까?”
“생각보다 가벼우실 겁니다. 미스릴이 소재인 데다가 드워프의 기술이 들어간 역작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임스가 미스릴 사슬 갑옷을 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에드리안이 미스릴 사슬 갑옷을 꺼내자 차르르 소리를 내며 사슬 갑옷이 부드럽게 물결쳤다.
“한번 입어 보시지요. 입었을 때 어떤 느낌일지 저도 한번 봐두고 싶습니다.”
“알겠어.”
제임스의 도움으로 갑옷을 입자 크기가 줄어들어 에드리안의 작은 몸에 꼭 맞았다.
사슬 갑옷 위에 코트처럼 겉옷을 입고 망토를 둘러보자 감쪽같이 가려졌다.
“제가 매일 도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앞으로는 꼭 입으시길 바랍니다.”
“··· 알겠어.”
깃털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부피도 작고 방어력도 높은 데다가 활동성도 좋아 입기에 부담 없었다.
격렬하게 움직이면 사슬 갑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지만 조금만 적응하면 될 것 같았다.
“고맙다고 인사드려야겠네.”
“꼭 편지하십시오.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응, 고마워.”
제임스가 미소 지으며 가볍게 묵례했다.
“그럼, 이제 리오 차례입니다.”
“예? 저까지 선물이 있나요?”
“이번에 공로를 세웠으니 당연히 보상이 있지요.”
제임스가 따뜻한 눈으로 리오를 보았다.
“실제로 이번에 괴한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도 잘 싸웠고. 거기에 방패가 거의 부서졌다고 제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 네. 완전히 부서진 건 아니지만. 한 번 더 마법 공격을 막거나 하면 왠지 부서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커다란 나무 상자를 꺼내 탁자 아래에 놓았다.
“열어보세요. 리오.”
“네!”
상자 안에는 새로운 마법이 인챈트 된 마법 방패와 누빔 갑옷, 가죽 장갑이 놓여 있었다.
“여기 있는 모든 장비는 크기 조절 마법과 쾌적화 마법을 다만 경께서 인챈트해 주셨으니, 잘 사용하세요.”
“··· 감사합니다.’
리오가 눈이 그렁그렁 해진 채 장비를 살살 만졌다.
“그러지 말고 저기 가져가서 입어봐.”
에드리안이 칸막이를 세워둔 곳을 가리켰다.
“네!”
“제가 도와줄게요.”
“아. 아뇨 혼자 입을 수 있어요.”
“리오. 그냥 제임스 도움받아.”
“네···. 잘 부탁합니다.”
잠시 후 제임스의 도움으로 갑옷을 착용하고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방패를 들며 에드리안 앞에 섰다.
“어떤가요?”
“잘 어울려. 실습 시간이나. 모험가 활동할 때 입으면 딱이겠네.”
쭈뼛대던 리오가 에드리안의 말에 표정이 확 밝아졌다.
“백작님께서도 부담 없이 입기 좋을 것이라며 보내주신 것이니, 아끼지 말고 사용하세요. 리오.”
“네! 감사합니다!”
깜짝 선물에 에드리안과 리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도련님. 그동안 알아보라고 하신 정보를 정리해 봤습니다.”
“아! 드디어.”
빈 상자를 치운 제임스가 탁자 위에 서류를 올려놓았다.
에드리안이 서류를 살피는 동안 제임스가 차를 내왔다.
차향이 방안에 퍼질 동안 서류 확인을 마친 에드리안이 탁자에 내려놓았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에드리안이 다시 장갑을 벗어 놓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도련님, 이거 혹시 유페미아 씨에 대한 서류인가요?”
“그래.”
에드리안이 서류를 집어 리오에게 넘겨주었다.
빠르게 서류를 훑어본 리오의 두 눈이 커졌다.
“그럼, 이전에 정령의 숲에 나타난 괴한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음···. 직접적으로 관련된 건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지.”
“그럼, 아카데미 도시에 있는 암흑 길드가 아카데미 테러를 일으킨 장본인인가요?”
리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보다는 하청 직원일 거야."
“이게 사실이라면 아카데미에 알려야 하지 않나요?”
“아카데미에 알리면. 유페미아는 어떻게 되겠어.”
“··· 그래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 그래서 지금까지 제임스에게 조사를 부탁한 거야.”
에드리안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도련님 말씀대로다. 아무것도 안 하고 계셨다면 내가 바쁘게 정보를 모을 필요가 없었겠지.”
“아마도 정령술 수업 시간에 일어난 거는 일종의 실험. 간 보기였을 거야."
“그··· 런게 간 보기라고요?"
“그래···. 그러니까 우리가 그 미지의 힘을 일으키는 마도구를 찾아 파괴하거나 회수해야지.”
제임스가 에드리안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그런데 마도 공학자가 작정하고 숨기면 찾기 힘들지 않나요?”
“힘들지, 보통은 어떤 마도 장치를 이용해서 어떻게 숨길지 모르니까."
“뭔가 방법이 있으신 건가요?”
“글쎄 장본인에게 물어봐야지.”
“유페미아 씨가 설득될까요?”
“일단 해봐야지.
빈 찻잔을 내려놓은 에드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전부는 아니지만 장치를 찾아보자.”
“혹시 의심 가는 곳이 있나요?”
“일단 강의실 근처부터 찾아보자.”
“알겠습니다.”
“그럼 가볼까?”
“네!”
에드리안이 제임스와 리오와 함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
***
해가 떨어진 저녁 시간.
낡은 회색 로브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린 하플링이 인적이 없는 복도를 걸었다.
하플링은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경계심을 끌어올려 기민하게 움직였다.
춤과 노래 수업이 열렸던 강의실 문 앞에 도착한 하플링이 허리춤에 찬 작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도구를 꺼냈다.
수업 시간과 허락받은 자가 아니면 열 수 없는 강의실 문에 마도구를 가져다 대고 마력을 주입했다.
마력을 받아들인 마도구가 문과 반응하며 변형하기 시작했다.
기이잉—.
톱니바퀴가 맞물리고 모터가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던 마도구가 흑요석 같은 검은 열쇠가 되었다.
지이잉-.
열쇠에 계속 마력을 넣자, 문이 물결치는 것처럼 울렁거렸다.
마력이 가득 담긴 검은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고 돌리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끼이익—.
후···.
조용히 한숨 쉰 하플링이 검은 열쇠를 회수했다.
낡은 로브를 입은 작은 인영이 조용히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낮에 학생들로 북적였던 강의실은 찬 공기만 가득했다.
강의실 중앙 무대 위로 올라간 하플링이 적당한 위치를 찾아 쪼그려 앉았다.
톡톡.
바닥을 두드려 본 하플링이 주머니에서 도구를 꺼내 무대 바닥을 만졌다.
잠시 후 하플링이 마도 공학자가 사용하는 여러 마도구로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낡은 로브를 입은 하플링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은 큐브를 꺼내 무대 바닥 안에 넣고 구멍을 닫았다.
허리를 편 하플링이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의실을 나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일을 마쳐서 긴장이 풀린 걸까 안도하며 어깨에 힘을 푼 순간 복도 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여기 있었네.”
크진 않지만, 복도를 울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하플링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이제 그만하는 게 어때?”
“···.”
“모른척하지 마십시오. 유페미아 양!”
옆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리오가 소리쳤다.
후···.
‘결국 이렇게 됐네.’
한숨 쉰 유페미아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복도 끝에는 에드리안과 리오 그리고 본 적이 있는 에드리안의 성인 시종이 함께 서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약간 체념한 듯이 유페미아가 머리를 덮은 로브를 벗자 퀭해진 눈과 푸석한 분홍색 머리가 보였다.
“정말 에드리안 씨는 못 말리겠네요···.”
유페미아의 얼굴에는 무언가를 놓은 듯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죠. 에드리안 씨?”
“지켜보고 있었거든.”
“우와. 방금 그만 오해할 만한 말이었어요.”
유페미아가 최대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글쎄? 그보다는 유페미아 더 이상 암흑 조직의 끄나풀로 행동하는 건 그만둬.”
“무슨 말인가요?”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시치미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네요.”
말하는 유페미아의 얼굴엔 체념과 왠지 모를 안도가 섞여 있었다.
“유페미아 씨 대충 사정은 들었어요! 도련님께서 힘써주실 테니 인제 그만하세요!”
“···. 당신들이 뭘 안다고 도와준다는 거죠?”
“암흑 조직 때문에 지금 아카데미에 이상한 마도구 설치하고 있잖아!”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흥분한 리오가 소리쳤다.
“들키면 퇴학만으로 안 끝날 거야 유페미아. 너도 알고 있잖아?”
에드리안이 안타깝게 유페미아를 쳐다봤다.
“웃기지 마! 당신들 귀족이 뭘 알아! 뭘 알아서 나를 돕겠다는 건데!”
비명을 지르듯 유페미아가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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