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도우 프로그

‘뭐야 불 속성이 약점이었어?’
지금까지의 긴박함이 어느새 허탈함으로 바뀌며, 어깨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에 비해 세 사람은,
에드리안이 붉은 마력 실로,
쉐도우 스파이더를,
너무나 쉽게 베어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에드리안 씨?”
“어떻게?”
“뭘 한 거지?”
세 사람의 물음에 답하듯 에드리안이 소리쳤다.
“붉은 보호막은 불 속성이 약점이야!”
에드리안의 말을 듣고서,
모두가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왠지 농락당한 것 같네요.”
“그러게.”
“······.”
검은 비도를 날리던 타릭이 공격을 멈추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파이어 애로 마법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우웅.
화르르륵.
스크롤이 마법의 반응을 일으켜 불길에 휩싸인 뒤 사라졌다.
푸른 마법진이 나타나고,
수십 개의 파이어 애로가 생성되어 날아갔다.
슈슈슉! 퍼버벙!
키에엑.
파이어 애로가 붉은 장벽을 가볍게 지우고 쉐도우 스파이더를 관통했다.
파이어 애로에 관통되고 불이 붙은 쉐도우 스파이더가,
그림자로 도망 못 가고 바둥거리다가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아드리에는 바람의 화살 대신,
곧바로 불 속성을 담은 화살을 쏘았다.
화륵!
슈슉! 슈슈슉!
퍼버벙! 푸부북!
키에에엑! 키엑!
불 속성의 화살이,
단단하던 붉은 보호막에 닿자,
비눗방울처럼 터졌다.
쉐도우 스파이더는 반항도 못 하고,
아드리에의 불 속성 화살에 꿰뚫려,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너무나 쉽게 쓰러지는 쉐도우 스파이더에 깜짝 놀랐다.
“쉐도우 스파이더들이 제법 레벨이 높아 보였는데 생각보다 약하네요.”
아드리에는 얼떨떨해하면서도 다시 불의 화살을 메겨 쏘았다.
화륵! 슈슈슉!
푸부부북. 키에에엑!
푸확! 툭.
불길이 타오르다,
마침내 마석만 남긴 채,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아드리에가 흥이 올라,
화살을 쏘는 손이 더욱 빨라졌다.
리아나도 뭔가 결심했는지 연주를 멈췄다.
갑자기 멈춘 하프 연주에, 잠시 의아하게 보긴 했지만.
에드리안과 리아나 타릭은 쉐도우 스파이더 숫자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
불 속성에 너무나 쉽게 무력화가 되는 것을 보고서,
리아나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은 액체가 든 병을 꺼냈다.
포션 병안에서 응축된 마력이 요동쳤다.
그것은 리아나가 연금술로 만든 폭발 물약이었다.
“에잇!”
리아나가 던진 검은 액체가 든 병이 쉐도우 스파이더의 보호막에 부딪혀 깨졌다.
쨍그랑! 쾅! 화르르륵!
병이 깨짐과 동시에 마력 반응이 일어나며 폭발하고서 불길이 사방으로 퍼졌다.
키에에엑! 키엑!
폭발 범위에 있던,
쉐도우 스파이더가,
비명을 지르며 불길 잡아먹혀 사라지고,
작은 마석만 남겼다.
마지막 쉐도우 스파이더를 잡은 순간,
붉은색으로 빛나던 스위치와,
붉은 눈을 빛내던 석상 빛이 꺼졌다.
핏.
전원이 꺼진 것처럼,
석상에서 더 이상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쉐도우 스파이더가 안 나타나나네요.”
리아나가 중얼거리며 작게 안도의 숨을 뱉었다.
“끝났나 보군.”
“석상에 불이 꺼졌네요.”
“아까 마지막으로 쉐도우 스파이더 잡으니까, 불이 꺼지더라고.”
“아. 이번 방은 보호막 속성을 맞춰서 몬스터를 잡는 방이었나 보네요.”
“그런가 봐.”
에드리안이 팀원들의 말에 대답하며 석상 앞에 있는 스위치로 갔다.
팀원들이 열심히 쉐도우 스파이더를 잡을 동안,
에드리안은 눈을 붉게 빛내던 석상을 공격했다.
하지만 석상은 던전의 법칙으로 보호받아서,
마력 실 공격을 무효화했다.
‘역시 석상은 멀쩡하네.’
에드리안이 마력 실로 공격했던 곳을 살펴보고 스위치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마력 반응이 없던 스위치가,
에드리안의 마력을 빨아들였다.
“뭐야? 갑자기.”
갑자기 빨려 나가는 마력에 깜짝 놀랐다.
에드리안은 본능적으로 손을 떼지 않고,
오히려 스위치에 마력을 더욱 주입했다.
우우웅!
붉게 빛나던 부분이 에드리안의 무지개색 마력 빛으로 번쩍였다.
팟!
마력을 가득 흡수한 스위치가 번쩍였다.
그리고 단단한 돌문 앞에 서 있던 석상에 금이 갔다.
쩌저적. 쩌적.
“어? 석상에 금이 갔어요!”
리아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드리에와 타릭은 침착하게 상황을 주시했다.
콰직-.
파스스스스.
금이 간 석상이 과자처럼 부서지다가 모래 가루가 되어 녹듯이 돌문에 흡수되었다.
팟!
석상 가루를 흡수한 단단한 돌문이 빛이 나더니,
기하학적인 복잡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에드리안과 팀원들의 앞길을 가로막던 돌문이 흐릿해지며 완전히 사라졌다.
“우와! 돌문이 사라졌어요.”
“흠···. 이런 식으로 돌문이 사라지는 거였나?”
“다행이네요.”
에드리안의 마력을 흡수했던 스위치는,
역할을 다한 뒤 평범한 돌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넘어 가지전에 마석 줍고 가자.”
“그래.”
“저희는 이미 챙기고 있었어요.”
“에드리안 씨도 얼른 주우세요.”
열심히 작은 마석을 줍는 일행을 보고 에드리안이 피식 웃었다.
[루팅]
에드리안이 쉐도우 스파이더가 떨어뜨린 최하급 마석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듯 빨아들였다.
***
에드리안 일행은 마석을 모두 챙긴 뒤 앞으로 나갔다.
“시험이니까 조금 서두르는 게 좋겠어.”
“좋아요.”
“그래.”
“저기요···.”
에드리안의 말에 모두 동의하며 고갤 끄덕이는데,
리아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지?”
“그게··· 제가 포션을 만들면서 팀원한테 나눠줄 것도 넉넉하게 만들어서요.”
리아나가 손을 꼭 모아 쥐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혹시 포션을 주겠다는 건가?”
“네.”
리아나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냈다.
“이거 드세요.”
“고마워.”
“고마워요.”
“고맙군.”
전투로 조금 지쳤던 몸은,
리아나가 만들어 온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마셔 회복했다.
[리아나의 체력 포션에 의해 체력이 회복됩니다.]
[리아나의 마력 포션에 의해 마력이 회복됩니다.]
“이거 효과가 제법 좋네.”
에드리안이 알림창이 떠오른 것을 보고,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감탄했다.
빈 포션 병을 다시 리아나에 돌려주었다.
포션 병은 소모품이긴 하지만,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빈 병을 깨뜨리지 않고,
씻어서 재사용하는 건 기본이었다.
“감사합니다.”
리아나가 에드리안에 미소 지으며 포션 병을 돌려받았다.
“포션 맛이 좋네요.”
“훌륭하군.”
이어서 타릭과 아드리에도 포션을 다 마시고 리아나에 돌려주었다.
“고맙다. 리아나.”
“잘 마셨어요. 리아나 씨.”
“네.”
자신이 개량한 포션을 칭찬받자, 리아나는 기분이 좋아져 활짝 웃음을 지었다.
타릭과 아드리에는 리아나의 포션 덕에 내심 한숨 돌렸다.
에드리안은 이 정도 전투는 별것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학생에게는 꽤 고된 전투였다.
아드리에와 타릭이 체력과 마나가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안도했다.
따로 정찰할 필요도 없이,
구불거리는 복도를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넓어지며 새로운 석상과 돌문이 있는 커다란 방에 도착했다.
“금방 길이 가로막혔네.”
“어! 이번엔 지나왔던 곳이랑 비슷하네요.”
“그렇다는 건, 곧 몬스터가 튀어나온다는 거겠지.”
“전투 준비하는 게 좋겠네요.”
에드리안의 말없이도 모두가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쿠구궁.
에드리안 일행이 모두 방에 들어서는 순간,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지나온 길이 막혀버렸다.
“어?”
“깜짝이야!”
“길이 막혔군.”
“이번에도 뒤로 못 가게 하려나 보네.”
우우웅-!
석상의 눈과 스위치가 푸른빛으로 빛났다.
“뭔가 나온다!”
에드리안의 외침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슈슈슉!
띠링!
[LV. 89 쉐도우 프로그]
[LV. 90 쉐도우 프로그]
[LV. 87 쉐도우 프로그]
[LV. 88 쉐도우 프로그]
[LV. 92 쉐도우 프로그]
······.
개골 개골 개골 개골···.
개구리처럼 생긴 검은 몬스터들이 에드리안 일행을 포위하며 노래하듯 울었다.
“윽. 뭐가 이렇게 많은 건지.”
“이번엔 시끄럽군.”
“얼른 처리하는 게 좋겠어요.”
세 사람이 긴장하며 무기를 고쳐잡았다.
“석상이 푸른 눈으로 빛나는 걸 보면 물 속성이 약점인 것 같네요?”
아드리에가 화살에 물 속성을 입히며 시위를 당겼다.
“물 속성으로 공격해 보지.”
에드리안이 손끝에서 마력 실을 뿜어내며 물 속성력을 주입했다.
우우웅.
에드리안의 마력 실이 수십에서 수백 가닥으로 퍼져나가며 푸른빛을 내뿜고 너울거렸다.
띠링!
[‘실의 천재’가 발동됩니다.]
[‘신직사’가 발동됩니다.]
[‘실부림’이 발동됩니다.]
우우웅. 우웅!
개골 개골 개골 개골···!
에드리안의 마력 실이 늘어나며 푸르게 빛나자,
쉐도우 프로그들이 위협하듯 큰 소리로 울며 공격했다.
“모두 공격해!”
에드리안의 외침과 동시에 쉐도우 프로그와 충돌이 시작됐다.
개골-!
촤라라락! 서거걱!
에드리안이 앞으로 뛰어나가며 물 속성의 푸른 마력 실을 휘둘렀다.
예상대로 쉐도우 프로그들의 앞에 푸른 방어막이 생겼지만,
너무나 손쉽게 물 속성 마력 실에 베어졌다.
에드리안의 마력 실이 지나간 곳이 깔끔하게 베어지며 쉐도우 프로그를 난자했다.
서걱! 서거걱!
개골-!
마력 실에 베여서,
처절한 비명을 지르던 쉐도우 프로그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눈 녹듯 사라졌다.
투둑. 투두두둑.
땅으로 떨어지는 작은 마석이,
마치 검은 우박처럼 보였다.
‘으···. 왠지 저번보다 몬스터 숫자가 늘어난 거 같은데.’
에드리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마력 실을 휘둘렀다.
촤라라락!
서거걱-!
개··· 골···.
에드리안이 대량으로 쉐도우 프로그를 학살할 동안,
아드리에와 타릭 리아나도 분주하게 숫자를 줄였다.
아드리에는 물 속성을 입힌 화살을 쏘아,
뛰어올라 공격하려는 쉐도우 프로그를 격추했다.
슈슈슉!
푸부부북!
개골!
타릭은 쉐도우 프로그들이,
채찍처럼 휘두르는 검은 혓바닥을,
장검과 단검으로 쳐냈다.
타다당! 탕탕!
“고마워요. 타릭 씨!”
“방어는 내가 맡으니, 공격에 집중해라 아드리에.”
“알겠어요!”
일정 이상 쉐도우 프로그 숫자가 줄어들면 방안에 다시 채워졌다.
[LV. 90 쉐도우 프로그]
[LV. 92 쉐도우 프로그]
[LV. 95 쉐도우 프로그]
[LV. 89 쉐도우 프로그]
[LV. 93 쉐도우 프로그]
······.
개골개골 개골 개골···.
손쉽게 쉐도우 프로그를 사냥하고 있었지만,
일정 이상 줄어들지 않는 쉐도우 프로그에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게다가 조금씩이지만 쉐도우 프로그가 강해졌다.
“모두 조심해! 조금씩 쉐도우 프로그가 강해지고 있으니까!”
에드리안이 떠오르는 알림창과,
강화된 시야로 쉐도우 프로그를 확인하며 소리쳤다.
“네!”
“알겠어요!”
“알겠다!”
리아나는 이번엔 하프 연주를 하지 않고 아공간 주머니를 뒤졌다.
“찾았다.”
리아나가 작게 중얼거리며 새로운 연금 물 폭탄을 던질 준비를 했다.
“연금술 물 폭탄을 던질 테니 모두 조심하세요!”
“알겠어!”
“네!”
“그래!”
모두와 눈을 마주치고 고갤 끄덕인 리아나가 미리 봐뒀던 곳으로 힘껏 물 폭탄을 던졌다.
개골?
몬스터의 본능이었을까.
쉐도우 프로그 중 한 마리가 검은 혓바닥을 날려 리아나의 물 폭탄을 잡았다.
“어? 저거 위험한 거 아닌가?”
“괜찮아요.”
리아나의 확신 가득한 말에 모두가 숨죽여 물 폭탄을 봤다.
꿀꺽.
파리 잡아먹듯 물 폭탄 약병을 삼킨 쉐도우 프로그가 고갤 갸웃했다.
개골?
쉐도우 프로그가 눈을 끔벅이는 순간 폭발했다.
쾅-!
물 폭탄을 삼켰던 쉐도우 프로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변으로 물 속성 폭발이 일어났다.
물 속성이 응축된 연금술로 만든 폭탄이,
쉐도우 프로그들이 소환되는 중심부에서 터지며 주변을 삼켰다.
마치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마석만 남기고 쉐도우 프로그가 사라졌다.
톡. 토도도독.
마석이 떨어지는 소릴 들으며 타릭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서포터는 굉장하군.”
“감사합니다.”
리아나가 타릭의 말에 수줍게 웃었다.
“저건 서포터로서가 아니라, 리아나 씨가 연금술사로서 굉장한 것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아드리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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