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바젠

아벨은 다른 장소보다 인적이 드문 테오가 소속되어 있던 극단의 근처에 있는 주점으로 향했다.
게오르그 신봉자인 병사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극비로 다뤄지는 것 같았지만, 알게 모르게 이곳에 대한 이야기가 도시 괴담처럼 퍼지고 있었다.
“들었어?”
“뭘?”
“요 앞 극단에서 공연하던 사람들 말이야. 죄다 그만두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는 거.”
“그거? 들었지. 그런데 그거 요즘 유행하는 거 아니었나? 저기 사거리 쪽 극단이랑 언덕 위에 있는 극단도 인원을 싹 바꿨다던데?”
주점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 그 소문도 들었겠네?”
“아아··· 기존에 있던 단원들이 전부 실종되었다는 거?”
“그래! 뭔가 이상하지 않아? 냄새가 나지 않아?”
“냄새는 네놈 입냄새고. 나는 그 사람들 전부 르데린 왕국에 스카웃돼서 거기로 갔다고 들었는데?”
“르데린 왕국이라고? 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렇지··· 그 정도 실력이면 예술의 나라라 불리는 르데린 왕국으로 갔을 수도 있겠구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결론을 냈고, 그 결론은 조용하고 신속하게 브륜드 왕국 내에 퍼질 것이다.
‘전부 그럴싸한 내용들···’
심지어 사건의 전말을 정확히 짚어낸 사람도 없진 않았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 다른 의견에 묻히기 일쑤였지만.
“이봐. 근래에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주점 구석에서 혼자 식사하며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아벨에게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 세 명이 다가왔다.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기사··· 로 보이는 인물들.’
그들의 외모만 보고 판단한다면 숙련된 베테랑 용병들도 그들을 기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저들이 자기 입으로 ‘나는 기사다!’ 라고 외쳐도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벨은 정보를 알고 미리 대비하고 있기도 했고, 뭔가 이상할 정도로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너무···’
아벨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에 합석하는 사내들을 쳐다봤다.
“공간도 많은데 우리가 합류해도 문제가 되지 않겠지? 그래.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야.”
그들은 말과 행동거지와는 다르게.
‘치아가 너무 깨끗해.’
지저분한 외모와 산발인 머리카락.
흉터는 없었지만, 험상궂은 얼굴.
딱 봐도 밖에서 험하게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들의 외모와는 다르게 치아가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다.
심지어 그들이 조금씩 움직일 때도 코가 찢어질 것 같은 땀 냄새가 났지만, 말할 때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양치를 너무 꼬박꼬박하는 거 아니야?’
아무것도 모른 채 그들을 마주했다면 모르겠지만, 기사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극장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선 그들을 기사로 의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시비 거는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이. 사람이 물어보는데 대답은 해야지?”
“조용히 식사하고 있는데 방해한 건 그쪽이다만?”
남들과는 다르게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 것이 수상해 보여 확인이라도 해볼 생각이었겠지.
물론 그들이 이곳에서 잠복하고 있는 기사라 하더라도 굽신거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쪽? 이다만? 말이 짧네?”
“그하하하! 쿠잔! 얼마나 얕보였으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한테 한 방 얻어맞나!”
“그래 그래! 꼬맹이가 한 말에 열불 내지 말고! 술이나 퍼마시게!”
안 그래도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던 쿠잔은 동료들의 말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쿠잔은 아벨의 앞에 놓인 음식을 한 손으로 날려버렸다.
쿠당탕!
“감히 내가! 이 쿠잔이 누구인지 알고!”
쿠잔의 행동은 계획에 없었던 것인지 다른 두 사람의 눈에 아주 짧게 당혹감이 스쳤다.
그 모습에 아벨은 이들이 기사일 가능성에 확신을 가졌다.
‘그런데··· 이 녀석은 대체 왜 이래?’
아벨이 씩씩대는 쿠잔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의 모습은 험상궂은 인상의 용병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이 새끼가! 어디서 눈을 계속 부라려!”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쿠잔의 행동에 아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브륜드 왕국의 기사단은 이렇게 기본도 안 되어있는 놈을 이런 곳에 파견했다는 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아벨의 모습에 쿠잔이 다시 한번 소리치려 했지만, 그들에게 다가오는 누군가에 의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이. 너희 지금 뭐 하는 거냐?”
쿠잔과 일행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점에서 아무 말이나 떠들어대던 손님들이 저마다 분노한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묻잖아? 사람이 물어보는데 대답은 해야지?”
쿠잔은 저들이 이러는 이유를 몰랐지만, 기세에 눌릴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내 말을 무시하는 녀석이 있어 교육 좀 하고 있었는데. 쓸데없는 참견은 집어치우지 그러나?”
쿠잔의 당당함에 아벨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주점에는 많지는 않지만 몇 가지의 불문율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가만히 식사만 즐기는 사람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이는 대륙의 어느 주점을 가도 마찬가지였고,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는 용병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기본 중의 기본 수칙이나 마찬가지였다.
쿠잔은 그런 기본 중의 기본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모르고 있기까지 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피의 복수 용병단의 주요 거점도 주점이었고, 대부분의 주점에는 용병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기 때문에 용병의 소굴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저 녀석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뼛속까지 귀족이었구만?’
이런 곳에서 잠복하는 만큼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 상태를 보면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와 함께 왔던 동료들도 비슷한 처지였던 것인지 이제야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기사라는 녀석들의 상태가 이러니··· 암흑교단이 잠입해 판을 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불문율을 어기고도 당당한 쿠잔의 모습에 그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피식 웃었다.
“하하하! 이거 참··· 어디서 높은 양반들이 누굴 감시하려고 이런 누추한 곳까지 왔을까?”
남자의 말에 쿠잔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무, 무슨 이상한 소리를! 난 엄연히 용병단 소속의 용병이거늘!”
남자가 코를 후비적거리며 물었다.
“용병단 이름은?”
“우린 벌판 용병단 소속 용병···”
“아아··· 왕실 기사단 소속 기사 양반이셨구만?”
“그, 그걸 어떻게··· 아,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이미 다 들통났어 이 사람아··· 그것보다 기사단이 정체를 숨겨둔 용병단을 알고 있다고?’
아벨도 쿠잔이 용병단의 이름을 대면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의심스럽기 짝이 없지만, 어쨌든 용병단에 소속된 용병이고 그들이 잠복한 누군가라 할지라도 정확한 정체가 들통나지 않는다면 당장에 큰 문제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남자는 물론이고 주점에 있던 용병으로 보이는 자들은 쿠잔이 벌판 용병단의 이름을 말하자마자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우리가 어지간한 일이면 당신네들을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아.”
뚜둑뚜둑.
남자가 손가락 마디마디를 꺾으며 소리를 냈다.
그리고 주점 내의 용병들과 용병이 아닌 자들 모두가 손목과 발목을 돌리고 목을 푸는 모습이었다.
“이, 이봐. 자네들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건가?”
쿠잔은 조금씩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며 뒷걸음질 쳤고, 쿠잔의 일행도 사색이 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말이야? 최소한 기본은 알고 왔어야지. 걸리질 말던가? 안 그렇습니까? 기사 나으리들?”
“그, 그만! 기사라니! 우린 용병이라니까!”
쿠잔의 말에 아벨은 저도 모르게 작은 박수를 보냈다.
‘오··· 이 와중에도 자기가 기사라는 말은 절대 꺼내지 않네? 뭐··· 처음에 삐끗하긴 했지만 말이야.’
실수하지만 않는다면 최소한 함부로 입을 나불거리는 타입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뼛속까지 귀족의 권위가 스며들지만 않았어도 꽤 능력 있는 기사였을 텐데 말이야.’
쿠잔에게 다가간 남자는 악마라고 말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 가서 우리한테 맞았다는 말은 하지도 마쇼. 뭐··· 쪽팔려서 입이나 뻥긋할 수 있을까? 크크큭”
“그,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 꾸악!”
남자의 주먹이 쿠잔의 명치에 정확히 꽂혔고, 남자의 뒤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달려들어 쿠잔과 일행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꾸억!”
“크헉!”
“그마아아아··· 켁!”
구타는 기사들이 기절할 때까지 이어졌고, 기절한 기사들을 주점 밖으로 내던졌을 때 비로소 주점 내에 평화가 찾아왔다.
기사들의 구타를 주도했던 남자가 아벨에게 다가왔다.
“으하하하! 나는 바젠이라고 하네. 제법 깡다구가 있는 걸 보니 용병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마법사 양반?”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을 바젠이라 소개한 남자를 보며 아벨은 솔직하게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마법사인 것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아벨이 용병이라는 사실을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쿠잔과 서로 흥분해서 날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점의 룰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하기까지 했으니,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짐작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그것도 용병이라 확신하고 있는 상대를 마법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벨은 혹시나 자신이 마법사처럼 하고 다니고 있지는 않았나 옷차림도 확인했지만, 영락없이 초보 용병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거야 우리처럼 날 것의 느낌도 아니고 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기사 놈들처럼 정순한 느낌도 아닌 것이 딱 마법사 양반들처럼 이상한 느낌이지 않은가?”
바젤의 참신한 설명에 아벨은 혀를 내둘렀다.
간혹 기운에 민감한 사람들 중 일반적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느낌을 전달할 방법을 잘 몰랐고, 대부분 바젠처럼 느낌이 온다라는 말로 퉁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었다.
대충 상황을 짐작한 아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젠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벨이라고 합니다.”
바젠은 아벨의 손을 붙잡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아벨··· 아벨··· 으으음···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인데? 자네는 어디 용병단 소속인가?”
쿠잔에게 소속을 물어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말투.
그는 아벨이 답하기도 전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내치지 않으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네. 저치들은 소문이 뒤숭숭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이었으니.”
아벨은 그에게 굳이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었다.
브륜드 왕국의 정문을 통과하기 전 이미 들통난 정체이기도 했고, 알리바이를 만들기에는 이보다 좋은 것도 없었으니까.
“피의 복수라는 용병단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바젠이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소리쳤다.
“아아! 자네가 바로 테프가 그 친구의 용병단에 새로 입단한 천재 마법사였구만!”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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