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 조사(3)

아벨은 소파에 드러누운 로스에게 다가갔다.
말은 당장이라도 잠들어 귀찮음을 피하겠다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실제론 드러누운 채 멀뚱멀뚱 파이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 거면 그냥 잠이나 자고 있어.’
아벨의 간단한 손짓 한 번에 눈을 부릅뜨고 있던 로스는 눈 뜨고 있는 상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봐! 할 거 없으면 와서 좀 돕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달갑지 않았던 파이런이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쳐다보기만 하냐고? 와서 좀 도우라니··· 음···?”
파이런이 누워있는 로스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눈을 뜨고는 있지만, 정신을 잃은 로스는 당연하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야? 이대로 잠들었다고? 얼마나 도와주기 싫었으면 눈 뜬 채로 잠이 드는 거냐?”
로스를 한 대 쥐어박을 듯 주먹을 쥐었던 파이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내가 너 같은 뺀질이한테 뭘 더 바라겠냐?”
가볍게 로스의 뺨을 한 대 툭 친 파이런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쳐다보던 아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마법이 깨지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네. 이게 얼마나 섬세한 마법인데···’
아벨이 로스에게 사용한 슬립 마법은 말 그대로 잠에 든 것일 뿐이기에 잠에서 깰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면 마법이 풀리는 아주 단순한 마법이다.
‘피곤하지 않은 상대에게는 통하지도 않는 불완전한 마법이지만···’
문서실에 들어와 소파에 누웠던 시점에서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던 로스와 끝없는 작업으로 인해 피로가 쌓인 파이런에게는 안성맞춤인 마법이었다.
작업을 이어가던 파이런도 결국 고개를 푹 숙인 채 잠들었고, 아벨은 파이런의 작업물을 집어 들었다.
원본의 글씨체를 본떠 내용이 전혀 다른 보고서를 만드는 작업.
원본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보고서 내용에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냥 진을 징징거리고 무능한 기사로 만드는 수준인데?’
원본을 파이런이 만들어둔 가짜 보고서 사이에 끼워 넣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봤자 윗선에서 또다시 반려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어떤 놈이 대장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일일이 파이런의 보고서를 따라다니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로스와 파이런이 잠에서 깨어나 다급하게 보고서를 옮기기 시작했다.
“야! 너까지 잠들면 어떡하자는 건데!”
“아니! 네놈이 소파에서 코 골며 자니까! 나도 잠들어 버린 거 아니냐!”
여기서 확실한 건 로스가 코를 곤 적은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빨리 준비해! 시간 없어!”
“에이씨! 그러니까 내가 쉽게 쉽게 가자고 했잖아! 이게 뭐냐!”
로스가 툴툴대면서도 파이런을 돕기 시작했다.
보고서 운반책은 로스였던 것인지, 작업이 끝난 파이런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로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생하고. 늦지 않게 빠르게 움직여라.”
“이 새끼가! 너 나중에 보자? 아휴 정말!”
“그래. 고맙다. 그리고 빨리 가는 게 좋을 거다.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런 젠장!”
로스는 파이런을 향해 욕이란 욕은 다 날리고 문서실을 빠져나갔다.
로스를 따라 이동한 곳은 그다지 의심스러운 것이 없는 곳이었다.
파이런의 말을 들었을 땐, 중요한 누군가와 만나서 보고서를 전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비밀스러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기사가 보고서를 받아 그대로 들고 어디론가 향했다.
로스는 자기가 할 일은 다 끝냈다는 듯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끝까지 책임지는 게 아니라··· 계속 돌고 도는 거라고?’
아벨은 하는 수 없이 로스가 아닌 보고서 상자를 들고 이동하는 기사를 따라갔다.
보고서 상자는 한 사람이 계속 운반하지 않았고, 로스에서 기사로 거기서 또 다른 기사로 이동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더니 목적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부단장···?’
보고서는 부단장실로 옮겨졌다.
똑똑
“들어오시게.”
보고서 상자를 들고 온 기사가 부단장실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부단장실이 열리자마자 아벨은 깨달았다.
더 이상 이곳에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없을 거라고.
붉고 진득한 기운이 부단장실에서 뿜어져 나오는데 제대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든 수준이었다.
‘무, 무슨 기사단장도 아닌··· 사람의 기운이···’
애초에 기사라고 불러도 되나 싶을 정도로 흉포한 기운이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지만, 아벨은 꾹 참고 문이 열려있는 부단장실을 바라봤다.
보고서를 가져온 기사 또한 이마에서 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이번 주, 주간 보고서입니다! 문서실에서 평소보다 많았다고 전해달라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많았다라··· 그래. 알겠네. 이만 나가보게.”
“네!”
부단장실로 들어간 기사는 그곳에서 도망치기라도 하듯 빠르게 빠져나왔다.
부단장실의 문이 닫히자 숨이 막힐 정도로 끈적한 기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고, 기사는 잠시 자리에 주저앉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참을 주저앉아 있던 기사가 떠나고 아벨은 부단장실을 잠시 노려보다 기사단 본부를 빠져나왔다.
***
진은 생각보다 빨리 나타난 아벨에 놀랐고, 아벨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에 긴장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아벨은 자신이 본부에서 겪었던 것을 진에게 알렸다.
본부에서 있었던 일을 들은 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상은 했지만··· 거기에 더 큰 문제는 부단장님이겠군요···”
아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 최상급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어선 자···’
상급 익스퍼트 수준인 진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소드마스터에 진입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가 뿜어내는 기운은 아벨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런 사람을 상대로 기척을 숨긴 채 무언가를 캐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다음을 알아내려면 어쩔 수 없이 부단장님을 조사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방법은 알고 있지만, 방법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해낼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못해낼 가능성이 높았기에 진의 표정도 점점 굳어져 갔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사건.
아벨은 확실히 브륜드 왕국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레이의 동태, 아카데미의 마기, 기사단의 비밀까지··· 무엇하나 제대로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것이 없다.’
거기에 전생에선 들어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뿐.
나름 평화 속에서 마족 전쟁을 맞이했던 전생의 브륜드 왕국과는 다르게 이번 생에선 하나하나가 대규모 사건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건 극단 사건의 주범과 아카데미 마기의 주범이 같은 인물이거나 동맹 관계라 하더라도 문제고··· 서로 다른 조직이라 하더라도 문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적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실마리가 보일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도 강대한 힘에 막히거나 아예 종적을 감추었다.
진은 아벨에게 통행권을 건넸다.
“이것만 있으면 브륜드 왕국의 대부분을 다닐 수 있으실 겁니다. 뭐··· 사용해보셔서 아시겠지만···”
통행권을 건네는 진의 표정에는 씁쓸함이 담겨있었다.
아벨이 의뢰를 만족할 수준으로 달성하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껏 브륜드 왕국 내부의 배신과 비밀을 이제서야 알아낸 것에 대한 자신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
아벨이 통행권을 받으면서 말했다.
“저도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있는 것이 있으니··· 뭔가 알게 된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처음엔 진에게도 비밀에 부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타국의 사람이, 그것도 용병이 자신의 나라를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본다면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알게 되면 공유하고 힘을 합쳐야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진은 아벨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저 관광이나 하기 위해서 브륜드 왕국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군요.”
아벨은 모든 것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모든 것을 감출 이유도 없다는 듯 말했다.
“개인적인 일이 있어 온 김에 겸사겸사 조사하던 것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일과 완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요.”
아카데미의 마기는 개별적인 일이었지만, 극단의 사건과 암흑교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안톤은 같은 맥락 속에 있다고 봐야 할 정도였다.
아벨은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는 진을 뒤로한 채 바젠을 찾아갔다.
“······ 왔는가?”
“바젠? 얼굴이 왜···”
바젠 용병단이 주로 애용하는 주점의 문을 열자마자 극심한 피로에 찌든 듯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버린 바젠을 보며 아벨은 그를 걱정된다는 듯 쳐다봤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점 내의 바젠 용병단 전원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한 것이 마치 저승사자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왜···”
아벨이 당황하고 있을 때, 주점 주인이 다가와 아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자네 의뢰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군.”
아벨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의··· 뢰 내용을 알고 계신 겁니까?”
의뢰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의뢰 내용을 타인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이것들이 의뢰를 남에게?’
주점 주인은 아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아아. 오해는 하지 말게나. 나도 한때는 바젠 용병단 소속의 용병이었으니 말이야. 지금은 은퇴했지만 속은 여전히 바젠 용병단과 다름없다는 말이지.”
그러면서 바짓단을 올리는 주점 주인.
무릎 아래로는 자신의 다리가 아닌 의족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말이 주점이지. 이놈들을 제외하면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지.”
“저번에 기사들도 있지 않았나요?”
이곳에 처음 왔을 때를 떠올린 아벨의 말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덜떨어진 놈들을 제외하면 이곳은 이제 바젠 용병단의 거점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지. 내가 이놈들 때문에 은퇴하고 나서도 제대로 된 금화 하나 못 만져봤다네.”
생각해보면 이곳에 올 때마다 항상 용병단의 일원들만 있었지. 외부인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도 용병단 사람으로 가득했으니까.
아벨은 어이없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기에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전부 녹초가 돼서 저러고 있나요?”
“그놈들과 한바탕 했다는군.”
별것 아니라는 듯 툭 내뱉은 말.
너무 자연스럽게 말하길래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뭘··· 했다고요?”
“이런··· 젊은 친구가 귀가 많이 상했구먼? 거 왜. 자네가 말한 암살 조직 있지 않은가? 그놈들 쫓다가 걸려서 한바탕 칼질하고 왔다는 말이지.”
아벨은 바젠을 놀랍다는 듯 돌아봤다.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지키지 못한 건 둘째 치고 놈들과 마주하고도 아무도 죽지 않은 것에 놀란 것이다.
“부상자도 거의 없네요···?”
아벨의 의문에 답한 것은 바젠이었다.
“안톤 그 녀석이 없었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죠?”
바젠은 안톤을 감시하기 위해 쫓아다니던 그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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